비가 온다는 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류독감으로 자녀들에게 설에 내려오지 말하던 방역 작업을 하며 인터뷰를 하던 아주머니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고향이라는 말은 마치 엄마란 말이 지닌 그것처럼 아린 통증을 불러온다. 비는 곧 그치겠지만 떠나지 못한 이들의 가슴에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겠지 싶다. 그믐날 아침이라 그럴까, 김경후의 시도 생각난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너의 소리에

 잠을 깬다

 깨어날수록 난 어두워진다

 기우뚱댄다

 

 거미줄 흔들리는 소리

 눈을 감고 삼킨다

 

 오래 머물렀던 너의 이름에서

 개펄 냄새가 난다

 그것은 온통 버둥거린 자국을

 부러져 박힌 비늘과 지느러미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소리에

 내게 묻혀 던 악몽의 알들이 깨어난다

 깨어날수록 난 잠든다

 컴컴해진다

 

 닫힌 내 안에

 꽉 막힌 목구멍에

 이제 그곳에 빛나는 건

 부서진 나를 짚고 다니던 부서진 너의 하얀 지팡이

 내 안에 악몽의 깃털들만 날리는 열두 개의 자정뿐  (「그믐」전문, 46~47쪽)

 

 

 그믐의

 마지막

 빛

 테두리

 

 버려진

 뱀 허물을 뚫고

 자라나는

 제로

 담쟁이덩굴

 한

 줄기 (자라나는 제로전문, 38쪽)

 

 

 어제는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설 연휴 배송 안내를 참고하여 2월 3일에나 받겠지 생각했는데 빠른 배송에 살짝 놀랐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반가운 책들이다. 계획했던 폴 오스터의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주문했고 그 책의 첫 문단을 옮기면 이렇다.

 

 일은 잘못 걸려 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전화벨이 세 번 울리고 나서 엉뚱한 사람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훨씬 나중에, 그러니까 자기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우연 말고는 정말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휠씬 뒤의 일이다. 처음에는 단지 사건과 결가가 있었을 뿐이다. 그 일이 다르게 끝이 났건, 낯선 사람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로 미리 정해진 것이었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야기 그 자체이며,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이제야 읽었다. 정말 입소문 그대로 아주 짧고 아주 강렬한 소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함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소설에 대한 짧은 감상이나 리뷰를 쓰기는 힘들 듯하다. 남성적 소설이라는, 권희철의 해설을 읽고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는 이가 많지 않을까 싶다.

 

 설 연휴에는 떡국을 먹을 것이고, 몇 권의 책을 뒤적이며 가끔 긴 잠에 빠질 것이다. 기름진 것들을 만들고 먹기도 할 것이며,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말(馬)과, 말(語)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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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0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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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4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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