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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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웃긴 녀석들이다. 이 세 녀석들 절실하다. 새생활을 원한다. 근데,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꾀도 없다. 이런 검정, 빨강, 파랑 세복면이 할머니 한명을 유괴한다. 이 할머니 돈도 많고, 인정도 많고, 인심도 많고, 산도 많고, 꾀도 많다. 이 유괴단 할머니 가족들에게 제대로 몸값을 받을래나?

호홋! 이 할머니 보통이 아니시군. 세놈들한테 없는 것 골고루 갖추셨으니 유괴단의 앞날에 서광이 비칠지, 암흑의 그림자가 덮일지. 아님 이도저도 아닌 흐렸다 갤지. 기대하게 만든다. 세복면맨의 활약상을 기대해야 할지 아님 할머니의 탈출 활약상을 기대해야 할지, 몸값 전달의 의무가 있는 가족들의 활약상을 기대해야 할지. 과연 선은 악을 물리칠까. 아님 악을 아우를까. 유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한번 찬찬히 따라가 보자.

작품의 발표연도가 1978년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는 세련되었다. 탄탄한 이야기의 구성과 분명하고 살아있는 캐릭터는 이 소설의 주름살을 말끔히 없애준다. 여전히 매력적인 이 소설의 재치, 유머, 전개, 결과, 교훈들은 현재의 우리를 웃게 해주며, 미소짓게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며,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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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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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다 리쿠의 작품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 문에 접근하기도 전에 두려움, 공포, 떨림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기만 하지만 또다시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보면 어느새 나도 그녀의 마법에 걸렸나보다. 이래저래 만난 온다의 작품들이 모두 감동과 여운을 남긴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오히려 온다의 작품은 나에게 실망과 허무감을 더 많이 남겨주었다. 흔히들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감이 크다고 하니 온다의 작품들이 나에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도서실의 바다' 역시나 제목이 나를 낚었다. 왠지 은근하면서도 손을 놓기 싫은 환타지가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려있는 첫 작품부터 그러한 감동을 안겨주었다면 좀더 '도서실의 바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 너무나 멀리 있었다. 멀리 있어 오래 기다린 보람도 잠시 그녀가 찔끔찔끔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넓고 푸른 바다에 온 몸을 적시지 못하고 발목만 담근 채 그 바다를 떠나야하는 아쉬움같은 것이 나의 뒷목을 잡고 놓지 않는다. 이제, 그녀의 '예고편'을 넘어선 '본편'을 진득하니 기다려야 하는 일만이 나에겐 남아있다. 그녀가 '본편'을 내놓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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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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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한 사람이 있다. 적당한 고통과 비밀과 인정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앞으로 기록될 역사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혹은 자신의 4일이 후세의 사람들의 입에 어떻게 회자될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여기 한 사람'은 무지한 인류의 역사 앞에서 미미한 존재이자,  끊질긴 생명의 본보기이자, 전설이 되었다

 존재하는 모든것, 전부가  온통 불덩이와 재로 뒤덮였다. 더이상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존재할 것 같지 않는 절망의 잿더미에서 유유히 걸어나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아틸리우스, 코렐리아, 둘은 전설이 되었으며 우리 곁에 이야기로 살아남아 우리에게 그들의 4일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아틸리우스, 코렐리아를 전설로 가능케 한 것은 둘의 헐리우드식 영웅본능이 아니다. 역시 인간을 주연급으로 빛내주는 것은 아름다운 조연, 자연인가보다. 베수비우스는 자신의 내면의 모든 것을 용암과 화산재와 돌덩이와 불로 뿜어냄으로써 인간의 무력함, 나약함, 비굴함, 추함을 들춰내지만 자신의 분신이 휩쓸고 간 절망과 고통에서도 다시 인류는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연기하였다. 이에 조금은 사려깊고, 인정있고, 사랑이 있는 아틸리우스와 코렐리아가 전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빛나는 조연 베수비우스의 헌신으로 탄생한 폼페이의 전설-이야기-을 단순한 전설-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왠지 베수비우스의 희생이 너무나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만나는 동안은 잠시 팩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야기의 '진실'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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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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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걷기... 친구... 밤에 친구와 함께 걷는다. '보행제'에 앞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자리를 꽤차고 있는 것은 '고백'이다.  저절로 하게 되어지는, 또는 다른이의 의도에 따라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되는, 옆의 사람이 용기를 낸 고백의 전염으로 인한, 혹은 계획적인, 사람들의 수에 따라 고백의 수도 다르고 다양하다. 고백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행제'가 절호의 찬스이며, 고백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까 혹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고백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까지 걷기 무리 속의 개인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을 등에 지고 마지막 고교 추억만들기에 들떠 있다.

다카코와 도오루의 사정은 미스테리하다. 도오루의 보행제 파트너인 시노부는 그 둘의 사정을 궁금해하며 혹시나 둘이 연인이 아닐까하는 심증을 가지고 '고백'의 보행제 기간에 친구로써의 우정을 과시하기로 한다. 물론 시노부는 혼자가 아니다. 개인사정에 너무 관여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오루와 다카코에 관심을 가진 녀석은 시노부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밉지 않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따뜻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다카코의 녀석들은 어떠한가. 다카코와 도오루의 사정을 다 알고 있으면서 다카코의 침묵에 서운해 하지 않고 그 둘의 시작을 도와준다. 녀석들은 고교 추억만들기 하이라이트 '보행제'를 제대로 해낸다. 그들의 등에 지고 있는 그들만의 각자 사정의 무게는 다르지만 같이 걸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은 결국 시작이자 끝인 곳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꼭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 어느새 동행자는 자신을 알아 줄 것이다. 무거워하지 않아도 된다. 고백의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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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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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작품엔 어울리는 수식어가 없다. 아니 부족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깔끔하고, 단순하고, 정갈하고, 담백하다. '강산무진'의 가장 큰 장점이라하면 김훈의 다양한  생각과 시선, 단순성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젊은 소설과 젊은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현문학계에서 김훈의 다양한 단편들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중후함을 더해 준 느낌이다. 단순히 그의 나이와 상관없이 그의 작품들로 말이다.

여성이 본, 느낀 것보다 더 적나라고 실감나게 중년 여성의 심리와 사랑을 그려낸 '언니의 폐경'에서 부산하지 않으며 물결치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처럼 덤덤한 글을 만날 수 있으며, '항로표지'에선 전문가보다 더 전문적인 자세한 설명으로 사실성을 더하고 있어, 그의 소설들이 결코 허술하지 않음을 그는 자신의 필력으로 당당하게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머나먼 속세'에서 K1같은 격투기 종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로 복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며, '화장'에선 오랜 병마에 시달리는 아내의 죽음과 동시에 젊은 여직원에게서 남성의 욕망을 느끼는 한 남자의 겉과 속이 냉정하지만 안쓰럽게 묘사되고 있다.

각각의 단편 어느하나 결점과 모자람 없이, 모두 8개의 단편이 하나의 어른들의 이야기로 완성되어진 느낌이다. 더이상 거추장스럽거나 복잡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소설 속 인물들은 군더더기 없는 김훈의 문체를 닮았다.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럽고 바쁜 현실을 벗어나 김훈의 '어른들의 고백서' 같은 단편들에서 일상의 속도를 한 템포 늦춰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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