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장학사님이라고 불러야하는데 익숙한 단어인 '선생님'이란 말이 먼저 나옵니다. 건강하시지요? 그렇게 일을 많이 하시면서 건강챙기시기 쉽지 않으실텐데 언제나 웃는 얼굴로 학교생활을 잘 해내셨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제 7년차 교사가 되어 이런저런 일들을 하나씩 맡아서 해보고 있습니다. 워낙 천성이 게으르고 무딘지라 어르신들 눈에 차지 않을 때가 많아 송구한 적이 많지만 그럼에도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활하고있어요. 36개월, 12개월인 두 딸들은 엄마노릇에 익숙하지 못한 저를 '엄마,엄마' '사랑해' 불러주며 무럭무럭 잘 자라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일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요즘 평소 고마웠던 분들께 편지를 쓰며 책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책이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태어나길 나무라는 생명체로 태어나서일까요? 한장한장 넘기며 행간 사이의 의미를 곱씹을라치면 '이 친구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라는 혼자 생각에 빠집니다. 작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책 자체에게 건네는 질문이지요. 작가는 작가대로...책은 책대로 저에게 뭔가를 말해주려는 움직임이 보여 늘 긴장하고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책과 씨름하다보면 답을 찾을때도 있고, 다음을 기약할 때도 있지요. 사람을 대하듯 그렇게 말입니다.
'프레모 레비'라는 작가를 아시는지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화학자였습니다. 스스로 고백하기를 대학다닐 적에 그다지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화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그 순간에는 초인적인 암기력을 발휘하여 나치를 돕는 연구를 할 수 있게됩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인류가 자행한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를 견뎌내고 목숨을 부지하여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자전적 소설을 남깁니다. 비참했던 유대인 집단 수용소 생활을 담담하고 세세하게 그려나간 이 소설은 문장과 구성 또한 탄탄하여 읽을수록 흥미로워집니다. 레비는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짐승보다못한 수용소 생활을 해야했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타인을 해치지 않고 또 타인의 도움없이)을 찾아나갑니다. 예를 들어 손바닥만한 천을 최대한 아껴가며 갖가지 유용한 곳에(때로는 생명과 직결된 곳에)사용하는 방법이라던지, 부역을 나갈때 적당한 파트너와 일하기 위한 줄서기 방법이라던지, 의료국을 찾을 적당한 시기를 포착할 때라던지....그는 반짝이는 생명력을 보이며 끈질기게 살아나갑니다. 그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현상황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분노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그 안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몰인정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을 애도하였으며 심지어 도와주기까지합니다(그런 상황에서 남을 돕다니요...정말 말도 안되는 일 아닙니까?)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여서 그런지 그는 침착하게 하루하루 궁리를 하며 살아나갑니다. 그래서 결국 살아남습니다.
저처럼 감정이 과잉 분출되는 곤란한 성격의 소유자는 저에게 불리해보이는 조그만 상황에도 '이건 말도 안돼' '왜 내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해?'라며 울분을 토합니다. 주변사람들은 한 두번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자신이 그런 경우를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하느라 두 번 이상의 관심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또 동정받지 못한 나 스스로를 딱하게여겨 한 번 더 절망의 노래를 부르게 되지요. 이런 류의 사람은 아우슈비츠를 들어가기도 전에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사는건....어찌되었든 살아가는 사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요근래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면 좀 더 멋지게 사는것이 좋지 않겠느냐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려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여 지금 내게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갖춰야 하는 덕목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본뒤 준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적능력을 높이고, 기획력을 동반한 따스한 인간적 매력이 있어야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않는 자기관리 능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선생님이 그래서 저는 참 부럽습니다.
레비와 선생님은 닮은 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선생님과 어울리는 책 한 권으로 골라보았네요.
며칠 전 기전대학교 시간강사 모집에 응시하여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