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화창한 하루였다. 장 뜨기 딱 좋은 날이었다.

원래는 내 나름대로 4월 5일 식목일을 장 뜨는 날로 잡곤했는데

올해는 여느 식목일 같지 않은 날씨라 미루다 보니 오늘 뜨게 되었다.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여

간장은 냄비에 끓여서 식혔다.

 

된장은 입자가 풀리게 부수고 치댔다.

그리고는 생간장을 적당히 부어서 알맞게 촉촉히

섞은 후 다시 단지에 담았다.

그렇게 해서 두어달 더 햇볕에 쪼이면

맛있는 된장이 될것이었다.

 

아이들은 장 냄새가 코를 찌른다며 원성이 자자했다.

냄새 맡긴 싫으면 빨리 놀러가라며 이른 점심을 주었다.

 

..........

 

아무튼, 그렇게 진한 장냄새와 함께 눈부신 4월의 하루해가 저물었다.^^

 

연일 목사아들 돼지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차기 대선 주자인줄 알겠다.ㅋㅋ

~돼지는 개신교의 위신을 추락시키지 않았다고 본다.

나는 그가 무슨 틀린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김용민 후보를 신뢰한다고 말한 통합진보당 이정희대표가

크게 보였다. 유시민의 말도 조금 부족하지만 대체로 만족~

노회찬의 '같이 비를 맞겠다'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 조차도 심심한 위로가 되었.....^^

때문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에서 싹쓸이 하는것 아닌가 몰라.ㅋㅋ

 

그제 경향신문이 김용민 사퇴하라 사설쓰고 녹색당이 똑같은 말해서

실망했는데 한겨레도 앵무새처럼....ㅠㅠ 딱도해라.

다행히 누리꾼들의 의견은 그게 아니라 안도.^^

 

그래도 씨 뿌리는 의미에서 나는 원래 생각했던 대로 녹색당을..^^

(통진당은 주변에 권유함으로써 나의 한표보다 더 많은 표를 몰아줄~~ㅋㅋ)

우좌간 투표만이 살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조기숙 교수가 명쾌히 정리 하셨네. !

즐감하시길~~

 

<뉴스페이스>에서 펌

 

적반하장당, 새누리당은 변하지 않았다

 

[칼럼]나꼼수팬들이 희망, 조중동 프레임에 짱돌 던지자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
12.04.07 20:52 | 최종 수정시간 12.04.07 21:30
 
새누리당과 조중동은 김용민후보의 8년전 18금 성인방송에서 한 발언을 쟁점화해 후보를 사퇴하라며 연일 공격하고 있다. 조중동이 덫만 놓으면 걸려드는 진보언론도 먹이를 덥석 물었다. 물론 그들의 입장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김용민의 사퇴를 촉구한 사설이 과연 공명정대한지는 의문이다.

진보언론의 사명은 우리 편에 더 가혹함으로써 공정한 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편을 감싸는 진영 논리에 있지도 않다. 단지, 목숨보다 소중한 진실의 추구에 있다. 그게 진보언론 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의 사명이고 목표이다. 여론이 나쁘다고 여론에 편승하는 언론은 자격미달이다. 여론에 상관없이 논리와 팩트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

일부 언론은 김용민을 문대성과 싸잡아 사퇴하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성희롱 발언이 문제되자 새누리당을 탈당해 경북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석호익과 비교하기도 한다.

나는 김용민은 문대성이나 석호익과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비교를 한다면 김용민은 현직인 노무현대통령에게 온갖 욕설과 성희롱을 해댄 한나라당이 만든 ‘환생경제’라는 연극에 출연한 새누리당 현역의원들과 이를 즐겁게 관람한 박근혜대표라고 생각한다. 성희롱의 대상은 여성이라는 편견도 깨야한다. 노대통령은 현직대통령 신분으로 이들에게 성희롱을 당했으니 말이다.

애정교의 김용민 문대성 비교

애매한 걸 정해주는 교수로서 세 사람의 차이를 비교해 보겠다.

우선 나는 김용민후보의 발언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고 만일 공인으로서 했다면 당연히 공직을 떠나야 할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후보공천 전에 이런 발언이 알려졌다면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천에 반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18금 성인방송에서 공자왈 맹자왈하기를 기대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정옥임의원은 김용민의 발언으로 전국민이 상처받았다고 하는데 이건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성인방송을 보는 국민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민에게 상처를 준건 소수에게 공개된 방송내용을 전국민에게 중계한 수구언론이다. 나는 성인방송에 관심도 없기에 상처받을 일도 없다.

내가 공인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원칙이 있다. 첫째는 사람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평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은 잘못 하나에 사형언도를 내리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공익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는지 플러스 마이너스를 감안해 최종 점수를 매긴다. 즉, 대체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의 작은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하는 편이다. 둘째, 의도하지 않은 실수엔 관대하고 의도된 잘못은 엄격히 대한다. 셋째, 말에 관대하고 행동엔 엄격하다. 말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도 있을 수 있고 남에 의해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은 의도를 파악하는 게 훨씬 용이하고 본의가 아니더라도 남에게 해를 끼친 행동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잘못된 말과 행동의 맥락을 따져 잘못의 경중을 가린다. 우리언어는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할 만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했는지에 따라 말의 선의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다섯째, 진보와 보수 인사를 공정하게 대한다. 진보인사에 대해선 기대가 높으니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보수인사에겐 기대할 게 없으니 문제 삼지 않는 태도는 우리나라에만 특이하게 존재하는 수구언론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수에겐 엄격한 도덕성이 진보에겐 자유로운 영혼이 기대된다.

공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그 사회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며, 같은 수준의 도덕성이 진보, 보수 공인에게 공정하게 요구되어야 한다. 법에 의하면 공직자는 3만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받을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우리사회에서 그 법을 지키는 공직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한국사회 통념에 맞는 도덕성이 요구돼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공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공적인 파급효과를 따져야 한다. 가령,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거짓말을 한 닉슨대통령은 탄핵 위기 앞에서 하야를 택했지만,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해 거짓말을 한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투표에서 살아남았다. 도덕성에 엄격한 미국사회이지만 사적인 거짓말에 대해선 비록 공인이라 하더라도 너그러웠던 것이다.

원칙있게 비교해야

내가 김용민을 용서하면서도 문대성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원칙에 기초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김용민을 석호익씨와 비교하며 사퇴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석호익도 의도치 않은 말실수로 인한 희생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그를 희생시켰으니 똑 같이 김용민도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그건 새누리당이 공천 전체의 그림을 위해 무소속 당선도 가능한 지역에서 택한 전략적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김용민과 석호익을 비교하는 건 부적절하다. 발언의 수위만 보면 석호익이 훨씬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으로 재직하던 석호익은 지난 2007년 5월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조찬회’에서 ‘우리나라 IT의 현황 및 2007년 전망과 당면과제’를 주제로 21세기 성장동력 중 하나로 여성인력 활용을 강조하던 과정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화했다"며 "여성은 구멍이 하나 더 있지 않냐"고 말했다. 전체 내용을 보면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석호익은 단국책연구원의 장으로서 매우 공적인 자리에서 한 발언이었던 만큼 그의 무심한 성적 감수성에 대해 여성단체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김용민은 8년전 18금의 성인용 인터넷 방송에서 B급 개그맨겸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던 중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그 방송의 목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인을 저질스럽게 웃기는 데에 있었다. 방송 목적에 맞게 대본이 준비되어 있었을 것이니 자신의 철학을 발휘해 걸러내지 못한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공인의 꿈을 꾸었다면 그는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진화하고 발전한다. 김용민이 나꼼수에서 보여준 정의감과 공익성을 본다면 공인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클린턴대통령도 후보시절 대학 때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공격에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핀 건 사실이지만 들이마시지는 않았다고” 변명한 그를 유권자들이 용서하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건 과거 공인으로서의 철학이 제대로 정립되기 전의 일이기에 관대하게 용서해 준 것이다.

나는 김용민이 한 때 18금 성인방송에서 낄낄대며 했던 발언이 그의 공직자로서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라이스국무장관에 대한 그의 발언이 여성 전체를 비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잔학한 범행을 저질렀고 명분 없는 이 추악한 전쟁의 당사자 3인 중 한명으로 부시, 럼즈펠드와 함께 라이스가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서 라이스는 무례하고 전투적인 세계 초강국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일 뿐이지 소수자로서의 여성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 그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약자로서의 여성의 지휘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의 횡포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발언을 여성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도 맞지 않는 프레임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발언에 변명도 하지 않고 사과한 김용민을 논문을 거의 복사하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은 문대성과 같은 수준으로 비교한 논리적 일천함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문대성은 논문표절의혹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타까지 복사했으며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강변한 자료의 일부를 보니 통계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조작한 의혹마저 든다.

문대성이 논문대필은 체육계의 오래된 관행이었다며 진솔한 사과를 한다면 그의 교수직, 박사학위는 박탈되어야 하지만 그가 유권자로부터 심판을 받는건 반대하지 않겠다고 나는 밝힌 바 있다. 적어도 그가 공인이 되기 위해 진솔함을 보여준다면 교수자격은 없지만, 그의 잘못이 관행이라면 한국사회 도덕수준에 맞게 유권자로부터 공인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공인으로서의 그의 거짓말은 거짓 논문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생각된다. 그는 표절논문으로 교수가 됨으로써 수많은 동료교수와 학생을 속였다. 그처럼 논문을 조작하지 못해 교수가 되지 못한 정직한 수많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었다. 박사학위, 교수채용의 공정한 시스템을 망가뜨린 장본인으로서의 죄는 아무리 물어도 용서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만회할 마지막 기회마저 거짓으로 일관했고 그의 사퇴를 요구한 학술단체협의회를 친목회수준으로 폄훼했다.

문대성은 후보로서도 사퇴해야 하지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해도 국민들이 나서 그의 국회입성을 끝까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박사학위는 물론이고 교수직도 박탁되어야 한다. 끝까지 국민을 기만한 문대성에 대한 용서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김용민과 비교할만한 대상은 현재 후보로 출마한 박근혜, 송영선, 정두언, 정호영, 이혜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연극에 대한 비난여론에 한나라당은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고 답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이들에 대해 일체의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이들이 비난대상이 되고 인터넷에 동영상이 급속히 퍼지는 이유는 그들의 김용민에 대한 적반하장적 행태 때문이다. 김용민이 발언을 이유로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면 당시 공인의 자격으로 저질 발언을 했던 새누리당 후보들이 먼저 사퇴해야 한다.

종이짱돌 던져 민주주의 지키자

새누리당은 변하지 않았다. 간판과 로고와 상징색만 바꾸면 새로운 정당이 되는가. “새정당되기 참 쉽지요 잉~”하며 아이들이 배울까봐 두렵다. 자신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만 공격해대는 새누리당의 전략은 민주통합당이 반격하면 서로 이전투구하는 가운데 유권자의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그래서 투표율을 낮추려는 의도이다. 참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민간인사찰을 통해 인권을 침해한 MB정부와 닮은 일란성 쌍둥이 반민주주의 정당다운 행태이다.

이들이 해묵은 전략을 매번 반복하는 이유는 그 전략이 먹히기 때문이다. 일단 덫을 놓으면 야당은 그 덫에 걸려들어 꼼짝 못하고, 진보언론은 먹이를 덥석 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승리해왔다. 여기에 홀로 맞서 보수가 승리하는 메카니즘을 폭로하기 위해 오래 전 <마법에 걸린 나라>를 썼던 나는 조중동과 진보언론의 협공에 말실수나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고 비호감 인사가 되어 신뢰도 추락을 경험했다. 언론의 가공할만한 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요즘 겨우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조중동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고 그들의 의도를 꿰뚫는 나꼼수와 그의 팬들이 주인공이다.

이름만 바꾼 적반하장당 한나라당에 대한 평가와 심판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간단 말인가. 과거에 대한 평가 없는 미래의 개선이 가능이나 하단 말인가? 내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은 과거의 잘잘못을 복기, 성찰함으로써 미래에 어떻게 고칠 것인지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다.

4.11총선, 과거심판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위기에 처한 오늘의 젊은이들은 과거 선배들처럼 심각하게 짱돌이나 화염병을 던질 필요는 없다. 이제는 즐겁게 웃고 춤추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하나씩 주어진 종이짱돌, 한 표를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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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이런, 이런! 이렇게 위안을 주는 말이 다 있었네. 사람들의 호감이 다 제각각이니 설마 나를? 하며 겸손을 떨지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적어도 한 사람 쯤은 나를 첫사랑으로 바라봤을 확률, 확률적으로 가능하겠다. 아흐, 심심한 위로가 된다.^^

 

<시사인> 236호에서 김세윤씨가

 

"보고 나면 술 좀 당길 거다. '기억의 습작'을 틀어놓고 후우~괜히 한숨 한번 쉬게 될 거다. 이 아저씨들아!"

 

라며 목 놓아 부르짖었기에 아저씨는 아니었지만 호기심 급상승하여 <건축학 개론>을 보게 되었다.

 

 

 

어느 날, 통 기억에 없는 삼십대의 여인이 동창이라면서 승민의 일터에 나타나 반가운 척을 했다.

 

 
  
늙은~

"그런데 누구세요?"

"건축학 개론 같이 들었던 서연이야. 음대의..."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승민, 용건을 물었다.

 

"내가 살 집을 지어줘."

 

그리하여 승민(엄태웅 분)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첫사랑 서연(한가인분)의 집을 짓게 되었다. 건축의 건자도 모르는 의뢰인에게 일일이 설명과, 때로는 설계변경까지 들어주며 집을 지어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티격태격 두 사람은 과거의 추억과 만나게 된다.

 

승민이 보통의 서른 중반에 비해 조금 더 싹아 보였다면 서연은 역시 여느 보통의 서른 중반에 비해 얼마간은 복부인의 느낌이 났다. 그간의 삶에 대한 쓸쓸한 반증인 듯 한쪽은 수수했고 다른 한쪽은 도도했다. 그러나 늙은 현재의 그들과 달리 젊은 날의 그들은 풋풋했다.

 

어린 승민(이제훈분)과 서연(배수지 분)이 워낙 청초해서 그들을 바라보자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늙은 우리 모두 저마다 그런 한때가 있었을 터인데 영화완 달리 증명할 방법이 없네.~

 

아무튼 이 영화는 없던 첫사랑도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 또, 비단 첫사랑이 아니어도 청춘의 한때를 스쳤던 이런저런 얼굴들,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있겠지?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는 그런 영화다.

 

나는 무엇보다 뜬금없이 빛바랜 순댓국 집 전경이 가슴을 후렸다. 승민 엄마(김동주 분)의 억척스런 성정을 보자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그런 정서, 우리네 시장 통의 일상이었다.

 

작은 물건 하나 사면서도 사는 사람은 다만 일 이 백 원 혹은 일 이 천원이라도 깎아야 직성이 풀렸다. 장사꾼은 장사꾼들대로 일지감치 가격을 올려 불러 놓고는 깎아주는 척, 이러면 밑지고 파는데 하면서 오만 생색을 다 내었다.

 

그 속엔 유쾌한 시끌벅적함도 있었으나,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고성이 오갔다. 내 가족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악다구니 좀 쓴들 어떠리. 목소리 큰사람이 제일. 때로는 손님이 왕.

 

그렇게 억척으로 아끼고 모아서 결국에는 또 자식에게 다 헌납하고 자신은 그제 것 살던 대로 하루세끼 풀칠만 겨우 하면서 쪼그랑 할망구로 살다가 가고 말.... '백 말'이 필요 없는 승민 엄마의 그 자글자글한 주름과 푸석이는 머릿결에서 지난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 겹쳐져 짠하면서도 고맙고 아름다웠다.

 

  
젊은~

 

 

청춘 남녀라면 어린 승민과 서연에 감정이입이 될 것이다, 라고 쓰려다 문득, 흐미,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스마트폰으로 시공에 구애받지 않고 카카오 톡을 날리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아빠, 그리고 엄마! 그 시절엔 다들 그런 식으로 연애 했나벼? 푸훗~아이구, 답답해. 쯧쯧. 뭘 그리 끙끙 앓고 난리야.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오케이?"

 

하지 않을까 몰라.

 

때문에 이 영화는 지금의 청춘보다 한때 청춘이었던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무게에 낭만은 개뿔! 혹은 그날이 그날인 지루한 일상의 배 나온 아저씨들, 혹은 독 오른 아줌마들.

 

일단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술보다 더 위로가 되는 친구가, 젊은 날의 한 때가 거기 있음에 모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알싸한 추억의 순간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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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3-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정말 스맛폰에 카톡에 지금 세대의 친구들은 그런 애틋함을 잘 모를지
몰라요. 아주아주 오래전 지금처럼 폰도 없고 삐삐도 없을 때 제게도 대단한 사건이
있었지요. 연락이 안 되니 약속장소가 어긋나도 서로 어쩔 도리 없이 어긋날밖에요 ㅎㅎ

폭설 2012-03-29 09:08   좋아요 0 | URL
어머, 대단한 사건? 살짝 궁금해지네요. ㅋㅋ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나만이 아는 은행 적금통장처럼 든든한...^^ 세련된 영화도 아니고
곳곳에 하자가 보이는데 누구에게나 있을 첫사랑에 대한 공감을
자아내게 한게 흥행요인인듯하네요.^^

너무 흥행해도 감독이 차기작에 부담을 갖지 않을지요...ㅋㅋ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뭐가 다르단 말이지? 뭘 체크하라는 거야?'

 

지금은 확실히 이해를 하지만 몇 년 전엔 지인이 몇 번을 설명해줘야 '아하!' 했다.

 

"왜 헷갈리게 이름을 다르게 쓰냐고. 둘 다 카드만 주면 물건살수 있잖아. 똑같은 것 아냐?"

"쉽게 말해 신용카드는 외상카드고, 체크카드는 통장에 돈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서비스야. 체크카드는 통장에 돈이 없으면 그어도 결제가 안 된다고요."

 

"오호, 그러니까 현금은 쓰자면 1, 2주에 한 번씩 통장에서 돈을 뽑아야 하는 귀찮음이 있고, 체크카드는 값을 지불 할 때마다 '사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거네."

"굳이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지. 호호."

 

"그렇다면 나는 돈 뽑는 귀찮음을 택할래. 체크카드는 신용카드만큼은 과소비를 조장하지 않겠지만, 통장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현금을 찾을 때처럼 요량하지는 않을 것 같아."

 

아무튼 나처럼 물정 어두운 사람은 모르던 체크카드란 말이 지난 연말부터 부쩍 많이 들렸다. '체크카드 쓰고 연말정산 혜택보자'는 뉴스들이 무슨 캠페인처럼 퍼지곤 해 도대체 얼마나 혜택을 보나 궁금하여 알아보려니 그 셈법이란 게 복잡난해했다.

 

그러던 차, 어느 경제기사를 보니 연봉 4천만 원 정도인 사람이 3천만 원을 체크카드로 결제하면 대략 45만 원인가 환급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들이 누구인가. 화려한 미사여구로 소비자가 엄청나게 이득 볼 것처럼 얘기해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별로 혜택이랄 것도 없는 것이었다. 기껏 45만 원정도 환급받고자 3천만 원을 쓰나. 그냥 2천5백만 원쯤 쓰고 45만원 환급 안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이 아닐까.

 

은행이나 정부가 체크카드를 장려하는 것이 순전히 우리네 이용자들을 위해서일까. 말로는 이용자들의 편의 어쩌고 하지만 결국은 쉽게 이용하면서 돈 많이 쓰게 하되 미납연체 사태는 당하고 싶지 않다는 속셈 아닐까. 

 

언제는 신용카드 쓰자고 마구 홍보하더니. 그에 소비자들이 너무 호응을 하다못해 연체사태가 또 문제가 되니 정부고 은행이고 체크카드로 선회한 모양이다. 필요에 따라 카드를 쓰기는 써야겠지만 연말 정산 환급 많이 받으려고 무조건 쓰고 보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현금 영수증 카드를 권장해야

 

지난해 말, 어쩌다 그간 사용하던 현금영수증 카드를 잃어버렸다. 차일피일하면서 몇 달을 미루다 얼마 전 재발급 받았다. 현금 영수증 카드는 국세청 누리집에서 누구나 간단히 신청 할 수 있다. 카드도 초기에 비해 훨씬 튼튼하고 세련되기까지 하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편리한 듯하지만 매번 이용할 때마다 사인하는 일이 귀찮지 않은가. 드드득 영수증이 긁혀 나오는 그 몇 초가 지겹지 않은가. 그에 비해 현금 영수증 카드는 현금과 함께 주기만 하면 되고 분실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재발급 받으면 그만이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자칫 잃어버릴 경우 여차하면 손해가 막심이다.

 

무엇보다 식당에서 1, 2만원 점심 밥값마저 일일이 카드로 계산하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 하는 사람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그분들의 카드수수료 부담은 덜고 세금은 확실히 내게 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소비자인 우리가 현금영수증 카드만 내밀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체크카드니 혹은 각종 카드보다 현금영수증 카드가 서민들에겐 가장 이로운 카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금융사들은 더욱 편리하고 간편하게 어디에서든 쓸 수 있는 카드라며 각종 최신 카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지만 결국은 다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가는 수작이 아닐까. 

 

부자들이야 뭔들 상관이겠냐 마는 서민인 우리들은 이런 유행에 속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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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아침마당>을 보다가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김용숙 대표의 주장에 공감했다. 매주 수요일은 부부간 혹은 가족 간 갈등의 사례자에게 정신과 의사, 변호사, 개그맨 김학래, 그리고 김용숙 대표와 시민 아줌마대표단이 종합 처방을 내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아무튼 그날의 상담에서도 다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들을 하였는데, 말끝에 김용숙 대표가 부부간 호칭을 언급하였다.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호칭을 바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남편을 오빠라고 하는 것을 고쳤으면 해요. 특히 이런 방송이나 드라마에서 왜 그 오빠라는 호칭을 허용하는지 모르겠어요. 말 따라 행동도 나옵니다. 말이 바로 서야 가정의 행복도 있다고 봅니다."

 

김 대표의 말을 듣고 나는 마침내 구원 투수를 만난 듯 손뼉을 쳤다. 평소 드라마나 방송에서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말을 들으면 저게 아닌데 하며 불편해했다. 부부간 호칭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결혼 생활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준다. 결혼 전에는 그 "오빠" 소리 듣는 남자들이 간이라도 빼 줄지 모르지만 결혼하고 나면 '오빠'라는 호칭은 계급 성을 띈다.

 

부부는 나이 차가 많든, 적든 일단 부부가 되면 서로 평등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에게 남녀의 평등을 알려줄 것 아닌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남편은 '갑'이고, 부인은 '을'이 되기 쉽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오빠가 "시끄러!"라도 하게 되면 대번 기가 죽기 십상이다.

 

결혼 초, 쑥스럽더라도 서로 호칭을 정하자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배려할 것 같은 신혼의 달콤함이 몇 년이고 이어지면 뭐든 문제이겠느냐 마는 인간사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저 요르단 시인의 말처럼 가정의 평화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고, 그 거리는 예(배려)를 통해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정선이 유지되는 것 같다.

 

아무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예를 지키기 가장 좋은 방법은 호칭이다. 호칭이 평등하다면 남편은 "이게 어디?" 같은 위압적인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다. 또는 남편이 약자면 오빠에게 생떼 쓰는 듯한 부인의 비난을 면할 수가 있다. 주변이나 TV 속 상담 프로에서 "오빠가 이렇게 못살게 굴었어요. 저렇게 나를 힘들게 했어요"라며 오빠가, 오빠가 하면서 훌쩍이는 젊은 아내들을 보면 속상하다. 그렇게 힘들게 하는 오빠는 더이상 연애 시절의 그 오빠가 아니다. 오빠가 아니고 남편이다. 남의 편일 수도 있는 남편이다. 냉정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여간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결혼생활에서 이 호칭은 기계의 윤활유처럼 결혼생활을 매끄럽게 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쌍방 다같이 존대하며 이름을 부르든가, 아니면 다같이 반말을 하든가, 또 아니면 서로 별칭을 부르든가 해야지 남편을 오빠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부는 아이가 자라면 오빠라는 소리를 접고 대신 누구누구 아빠도 아니고 그냥 자녀와 똑같이 '아빠, 아빠'라고 부르던데 이 호칭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유머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애교 부리는 존재? 글쎄다. 자녀에게 물어보면 답 나온다.

 

"엄마가 아빠에게 애교 떠는 게 좋니? 유머로서 웃기는 게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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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가고 말았네
수많은 사연들이 내 마음을 울리네


 

인생이 무엇인가 사는 것이 무엇인가
욕망과 고통속에
인생이 늙어 간다.
명예도 좋다만은 친구가 그립구나.
..............> 

어느새 3월이 되고 큰애는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시절 거의 대부분 단추없는 옷으로 살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자니
아침마다 셔츠 단추 잠그는 일도 여간 일이 아닌듯하다.

게다가 바지에다 허리띠, 조끼, 넥타이, 상의등
옷한번 제대로 입는데 10분은 족히 걸린다. ㅋㅋ

수업은 얼마나 많은지 8시에 나가면 오후 5시나 되어야 돌아온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10분 거리니 말하자면 그 시간까지
계속 수업을 받고 오는 것이다.

중1년생이 8교시가 왠말인가. 불과 몇년전엔 안그랬는데....
오후 두세시에 교복입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며
참 좋은(?) 학교라 생각했는데.... 이젠 꿈같은 시절이 되버렸다.

집단생활 하면서 음이탈을 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어서
다들 찍소리 안하고 순응하니 계속  시대부조화적 교육이
횡행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거 수업시간에 챙겨듣고 5시 지나면 공부는 완전히
잊어버려~"

공상많은 그 나이에 그게 될지. 8시간 앉아있는 것 조차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런 강제 공부가 싫었기에 자식에게 공부공부하기 싫다.
지금에 비하자면 그렇게 공부를 강제당한 시절을 산것도 아니나
그 정도로도 싫었기에..... ㅎㅎ

여하간 요며칠 부모로서 내 뱉은 말은,

"야, 8시간 노동이 보통일이냐. 빨리자라 빨리자. 아침에 일어날때
괴로워 하지말고. 잠을 푹 자둬야 맨정신으로 앉아서 공부할거 아니냐."

어제 도덕교과서를 슬쩍보니 우리가 예전에 공부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고등 대학 갈것 없이 중학교만 졸업해도 기본교양은 충분쌓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의 경우 도덕 교과서의 내용을 내면화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걸 외우고
시험치자면 공부맛이 싹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
우좌간 당사자는 아직 불만 같은것은 없는듯~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다는 것도 신기하고 , 교복까지 입으니
이제 내가 확실히 청소년이 되었나 싶기도 한듯~~

나의 3월은,
최재천의 '다윈 특강'을 보다가 과학과 종교, 생물과 진화, 지구의 종말,혹은 최초의 지구, 우주 등에 관한 책이 재미있어졌다. 최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이지
우리가 '다윈'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도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재천교에 빠져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다윈 선생님은 대단한 분 같다. 지금으로 부터 150년전이라면
<제인에어> 시절이기도 한데, 소설 <제인에어>에서 보면 기숙학교생활을 하는
제인은 동료원생들과 더불어
매일아침 7시인가 부터 1시간 가량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였었다.
기숙학교 수업의 첫시간이 성경수업이고
기숙학교의 저녁 마무리역시 간절한 기도를 끝내고서야  꿈나라로 들었다.

나는 그 대목을 보고 불과 150여년 전에만해도 이렇게 종교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음에 놀랐다.

아무튼 그러한 시절에 인간의 진화를 말했다니 놀랍고도 놀랍다.
150년 지나고 봐도 그의 말에 별로 틀린게 없다니...

최교수왈,
'이건 내가 최초로 생각한게 아닐까 자신만만하다, 혹시나 싶어 다윈선생의 책을
살피면 선생은 150전에 벌써 그런생각을 한 구절이 발견되어' 다시금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고 하였었다.

수염만 요란하게 긴게 아니고,
수염의 색깔만큼 오래살기만 한게 아니고,
그 수염의 길이와 색깔만큼 오래 생각하고 탐구하여
후손 생물학자들이 두고두고 참고할수 있는
책을 써놓고  돌아갔다는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학교때 '자연 도태'라고 배운 것은 잘못된 정의고
요새는 '자연 선택'인가 보았다.

아무튼 나에게 올 한해는 과학의 해가 될듯~~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은 더 신비롭다.

<만들어진 신>에 나오는 '수소'에 대한 한부분 을 옮겨보면,

'수소는 원소들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가장 흔하다. 우주의 다른 모든 원소들은 궁극적으로 수소로 부터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핵융합은 별의 내부라는 아주 뜨거운 조건에서 (그리고 수소폭탄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태양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별은 헬륨같은 가벼운 원소들만 만들수 있다............연쇄적인 핵융합 과정을 통해 더 무거운 원소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고온을 얻으려면 더 크고 더 뜨거운 별이 있어야 한다.

그런 큰 별은 폭발하여 초신성이 되면서 주기율표의 원소들이 포함된 물질을들 먼지 구름으로 흩뿌린다. 이 먼지 구름은 결국 응축되어 새별과 지구 같은 행성을 형성한다. 지구에 수소외에 다른 원소들이 풍부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 원소들이 없다면 화학작용도 생명도 존재할수 없을 것이다.'

시인들의 시도 아름답지만 과학자들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들도 시 못지 않게 아름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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