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비극들 중 하나를 소재로 삼아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무척 낡아보이는 구식 탱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 탱크를 앞세운 채 일단의 군대가 전진해간다. 용감한 적군의 용사들 앞에 놓인 평지는 그냥 아무나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그 위에는 농부들이 한여름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제발 멈춰달라는 농부들의 하소연에도 군대는 이미 잡은 진로를 바꿀 줄 모른다. 농부들은 이 상황에서 어느 노인에게 달려간다. 상황을 바로 판단한 그는 말을 타고 달려와 지휘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진로정정을 명한다. 혁명전쟁의 영웅인 코토바 대령의 위세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위세 좋은 사람이 그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아찔함이 느껴진다. 이미 혁명에는 관료주의의 냄새가 짙게 배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단 조직에게 순간순간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순발력을 키우게 하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요구된다.

그냥 천천히 비추어 주는 화면은 정말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울리는 사이렌은 민방공 훈련을 나타낸다. 이 시점에서 피아니스트를 가장한 젊은 청년 하나가 나타난다.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이 사람이 가진 사연의 무게를 나타낸다.
이제는 대령의 아내가 되어버린 옛날 애인과 잠시 만남을 가지고 옛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나타난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대령과 사적인 대화를 얼마간 나누었고 처음에는 정중히 차로 모시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가 드러낸 정체는 정보부 요원이었다. 둘 사이의 갈등이 얼마간 나타났지만 저 건너편에 떠오르는 스탈린의 초상화는 잠시 침묵을 갖게한다. 둘 다 같은 초상화를 향해 경례를 붙인다. 한때는 대령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던 바로 그 스탈린이지만 이제는 냉혹한 독재자로 변모해서 자신의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존재들을 숙청해가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장면은 대령의 처형이었다.
어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어 영웅이 되었고 이제는 선량한 노인이고 마을의 어른인 그가 이렇게 죽어야만 했다.
이 때 단지 목격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죽어야만 했던 사람이 있다.
가끔 어떤 목적지를 찾아서 트럭을 몰고 헤매며 다니는 운전수가 있었다. 그에게는 분명 목적지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그곳에 대해서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는 누구의 상징일까? 그가 그렇게 안타깝게 가려고 했던 곳은 결국 아무도 모르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바로 이 사람이 여기서 같이 죽게된다.
이는 스탈린의 숙청이 기존의 당과 군의 관료 뿐만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 유토피아를 쫓던 무수한 평민층에까지 미쳤다는 점을 상징하게 된다. 아울러 한걸음 나아가 유토피아를 추구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위협을 받았다는 점까지도 나타낸다.
트로츠키주의, 개량주의, 인민주의 운동 등 같지 않은 모든 의견들이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인들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이 나타나게 되는 배경을 상징적인 기법으로 잘 표현해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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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보고나서 우선 머리에 떠오른 것은 작품들이 미국인의 시각을 뚜렷이 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퓰리처상의 다른 부문에는 "가급적 미국적 주제를 담은 최고의 소설", "애국심을 주제로 한 최상의 전기 또는 자서전" 등이 있을 정도니까 보도 분야 또한 창설자의 이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퓰리처상에 보도사진 부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2년이라고 한다. 이때는 2차대전의 중반 무렵으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 병사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담은 사진이 전시회의 시작을 장식하고 있다. 어쨌든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올라서서 냉전의 한축을 유지하게 된다. 나라밖으로 볼 때 국가의 위신이 크게 올라갔지만 산업화와 성장의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전시회의 시작 부분에 놓여있는 또 다른 사진 하나는 포드사에서 벌어졌던 파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던 폭력을 담고있었다. 산업사회의 풍요를 표현하는 예로서 전국민에게 차한대씩을 주게 만든 포드사의 위업이 종종 거론된다. 그 이면에는 이렇게 치열한 노와 사간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한 사회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진들은 이제 막 종결되려는 2차대전에 이어서 발생하는 한국전쟁을 담는다.

부서진 다리에 피란민이 가득 매달려 있는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밑에는 평양 대동강이라는 사진 찍은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전쟁의 비극은 무엇보다 모두가 생존의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등에 봇짐을 지고 손에 아이를 붙들고 하나는 또 등에 업고 그렇게 그 험난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은 전쟁이 남긴 비극에 대해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사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컷이다.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사진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쪽 편에 서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한컷으로 표현되는 사진을 통해 얼마나 공정한 입장을 견지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때도 있기 마련이다.

같은 시기에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미군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미군병사들이 한국양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여러 증언을 취합한 기록물도 나와있다. 이 그림은 한폭의 화면에 작가의 기준에 따라 간명한 주장을 상징이라는 형식을 통해 담고 있다.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시기에 전쟁의 미군측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아버지의 기도라는 감동적인 내용의 기도문을 만들어냈다. 이 문장들을 읽어보면 진실로 아들을 사랑하고 신앞에서 겸손한 인간의 애원이 절실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똑 같은 인간 맥아더는 중국 본토의 여러 도시에 핵폭탄을 사용할 것을 여러 차례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파면되었다. 당시 그의 핵투하 주장 또한 기도문을 만들던 것과 같은 심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한 생명을 위한 더할나와이 없는 진지함과 수백만의 목숨을 끊는 단호한 결정과의 모순은 없었을까?

이러한 모순은 2차대전을 통해 절대강자로 올라선 미국사회 전반이 고스란히 안고 있었던 것이다. 밋밋한 사진 한장이 이런 복합적인 문제까지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모순에의 탐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게 된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가 벌인 전쟁 중에서 국민 전체의 동의를 받지 못했던 최초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에 관한 보도가 일방적인 자국민 중심의 것이었다면 베트남전쟁이나 그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서는 자기비판적인 보도가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피난민이나 참전군인들의 고충에 대한 사진은 이전의 전쟁과 다들바 없지만 여기에 더해서 보도는 전쟁터보다는 홍역을 앓고 있는 국내의 사회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 당시는 직접 전쟁에 참전해야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반발이 가장 강했다. 사진에 나온 코넬대의 시위대는 직접 총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켄트대에서는 군인들이 직접 총을 쏘아 4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는 사건이 담겨있다.

반면 전쟁에서 돌아온 귀향군인들의 아픔도 적지 않았다. 기념일에 쓿쓿이 앉아있는 한 흑인 부상병의 모습도 애처롭고 더해서 한 귀향군인과 가족에 대한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정복을 입고 걸어오는 귀향포로를 맞이하기위해 가족이 환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실은 매우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다. 무려 5년 동안 고된 포로 생활을 했고 그 사이 가정은 아내의 불륜으로 파탄직전에 놓여 있었던 상태에서 누가 얼굴을 활짝 필수있을까? 기껏해야 <25시>에 나오는 안쏘니 퀸의 얼굴 정도가 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작가는 그의 얼굴을 가린채 뒤에서 앵글을 잡게되었고 결국 환히 웃는 가족들의 모습만 보도되었다.

이 당시 클린턴은 교묘한 수단으로 ROTC 징집을 기피하였고 나중에 대통령 선거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 원래 미국사람들은 세금을 빼먹거나 병역의무를 기피했다고 하면 무조건 탈락시키는 것이 투표관행이었다. 하지만 이 때 클린턴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투표성향을 보였던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동으로 이를 통해 우리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사회의 사후평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클린턴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는 통치기간 중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임기 초반에 소말리아의 내전을 해결하고자 직접 투입했던 군부대가 공격을 받아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때 소말리아의 성난 군중들은 미군시체를 줄에 묶어 거리를 끌고 다녔는데 이 장면을 잡은 사진이 크게 보도되었다. 자기는 베트남에 나가지 않아놓고 마찬가지로 그리 큰 명분이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행동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결국 이 보도는 미군의 조기철수를 유도해내었다.
얼마전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한 특집기사가 <한겨레21>에 실린적이 있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이 굳이 외인부대를 두는 이유도 국내여론과 무관하게 위험지역에 군사적 개입을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긴 보도가 만들어내는 논란과 더불어 미국의 국내문제도 많은 양의 사진과 보도, 논란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흑백차별은 미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퓰리처상도 여기에 대해서 적지 않은 할애가 있었다. 시작은 법률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는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흑인미식축구 선수가 경기장에서 의도적인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모습을 드러낸 사진이 첫작품이고 조금 지나면 흑백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도보행진을 하던 흑인젊은이가 거리에서 총을 맞는 모습이 그 다음이었다. 미시시피 주 최초의 흑인대학생이었다는 이 젊은이는 비록 쓰러져서 계속 걸음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가 내딛은 첫발은 곧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었다.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백인사회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백인들은 자신의 피부색말고 내놓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차별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학교가는 버스에 흑백 어린이들을 같이 태우자는 정부의 결정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경찰이 직접 개입해서야 질서가 잡혔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나 흑과백 사이의 긴장은 이어졌다. 보스톤에서 발생한 한 흑인 변호사에 대한 백인들의 집단린치를 담은 사진은 이런 단면을 잘 드러내 준 작품이었다. 특히 손에 자유를 상징하는 성조기가 달린 깃대로 흑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백인 젊은이의 모습은 뭔가 묘한 모순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투쟁은 순교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루터킹 목사의 장례식에 대한 사진을 통해 우리는 흑인들이 분노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같은 의지를 보게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통해 사회는 한발씩 움직여간다. 서구사회는 개인대 개인의 문제를 약속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계약을 통해 해결해나간다.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유태교에서도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통행적인 아니었으니까 이런 방식의 해결은 꽤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들을 통해 계속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들이 정당성을 갖게되면서 미국사회는 오늘의 모습으로 변화해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흑과백의 문제 말고도 소외와 가난에 대한 보도도 제법 많았다.
한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여자 노동자의 지친 모습은 아무리 일해도 그날의 삶을 연명하는 것이외에 돌아오는 것 없는 애처로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기회의 땅 미국으로 넘어오기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멕시코 노동자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보여준다.
장면이 조금 바뀌어 필라델피아의 홈리스(집없는 사람들)들이 사진에 나온다. 한남자가 따뜻한 가게안에서 식사를 하다가 창밖을 보니 길거리에는 또 다른 사람이 앉아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창을 사이에 놓고 서로 마주치는 두사람의 시선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외에도 값싼 마약에 푹빠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진도 사회적으로 마약퇴치 운동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보도는 종종 윤리의 문제를 야기시키곤 한다.
수단의 기아를 다룬 사진 중에 인상적인 것으로 굶주린 어린아이가 쓰러지려 하는 것을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대머리 독수리가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작가는 사진 촬영을 하고 아이를 구했다고 한다. 이때 보다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일정 시간을 지체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이를 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나 하는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여류 사진작가였던 당시 수상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비슷한 우려가 드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쿠데타와 혁명에 대한 보도다. 보통 이런 보도사진에 담긴 처형장면들은 대부분 이를 자행하는 사람들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전쟁이 두 주체가 맞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공간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양쪽 모두에게서 저질러질 수 있는 폭력을 어느 한쪽의 것만 끄집어내 공개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수 있을 것이다. 이란혁명 이나 엘살바도르 등에 대한 보도들은 이런 우려를 가지게 만든다.

미국적인 관행 덕분에 사진 중에서 유럽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뚱뚱한 옐친이 락밴드와 같이 춤추면서 지어낸 듯한 웃음을 보이는 것이나 무너진 동상에 모여있는 동구권 사람들의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작가들 중에 아마추어도 꽤 많았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꼭 전문가들에게만 이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 중에 일본 사람이 몇 있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자기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보도 이외에도 멀리 베트남의 밀림을 누비다가 포화의 와중에서 희생되었던 작가도 있었다 한다. 물론 한국사람은 없다. 오랜 식민지 생활에 눌려있다 잘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한민족에게는 아직 세계인들의 보편적 가치에 호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만한 여유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여기 나왔던 작품들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에는 역시 영화라는 텍스트가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올리버 스톤이 만들어낸 일련의 작품들은 사진이 가진 한사람의 시각이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것이다. 다른 작품을 젖혀놓고도 최소한 <7월4일생>과 <살바도르>, <하늘과 땅>은 꼭 보아야할 작품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진들이 담고 있는 갈등, 생각, 욕망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포드사의 노동자가 두들겨 맞는 장면이 노사정위원회가 깨져나가려는 지금 이순간의 우리사회와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흑백의 처절한 갈등도 외면적인 봉합으로 이끌어내는 미국인들의 정치기술은 동서간의 치열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민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동서화합도 못하고 남북통일을 꿈꾼다는 것이 우스운 것처럼 남과북이 함께하지 않고서야 공멸을 맞을 것이라는 것도 자명한 이치다. 그런 상념들을 안고서 천천히 전시장에서 발길을 돌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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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Deep impact와 엇비슷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이쪽이 더 길고 더 유명한 배우를 주연으로 썼고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재미있다.

브루스 윌리스는 드릴을 이용해 땅을 파는 사람이다. 땅을 파서 기름을 찾는 고된 작업을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이론적으로도 많은 것을 알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활용하는 측면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드릴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처음 부분은 그런 생각이 편견일 뿐이라고 관객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여러 장면을 할애한다.

성격적으로 볼 때 브루스 윌리스는 매우 직선적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기도 하고 바꾸어 말하면 순수하게도 볼수 있다. 부하직원 AJ의 침대에서 딸을 발견하고서는 곧바로 총을 찾으러간다. 거의 좌우를 고려하지 않고 쏘아대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얼마전 한국에서도 어느 아버지가 딸의 침대에서 발견한 외간남자를 방망이로 두들겨팼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딸이 이렇게까지 아버지의 뜻과 어긋나게 나가게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아버지에게 있다. 브루스 윌리스는 일찍 이혼했고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해서 항상 딸을 작업장에 데리고 있었다. 자신의 죄가 있기 때문에 딸에게만 나무라지 못하지만 지금은 무척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딸의 애인에게 처음에는 총질을 했지만 다음에는 가만 놔두었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밟아나간다.

<아폴로 13>에서 보여주는 NASA의 모습은 매우 합리적이고 유능한 인재들의 집단이다. 우주 공간에서 부딪힌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해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보면서 완전치는 못하지만 충분히 자기 교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주 아주 영웅적 역할을 한 개인에게 양보하고 가슴을 졸이면서 쳐다만 보는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브루스 윌리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몇몇 동료들이 카지노장에서 도박에 빠져있다가 도로에서 질주하다가 혹은 젊은 여인을 유혹하다가 잡혀온다. 이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 보자. 대부분 덩치크고 외골수로서 "머리보다는 몸을 주로 사용해온" 백인 블루칼라들이다. 이들의 속내를 잘 드러내주는 면모는 역시 생명 수당 대신 내건 조건들이다. 카지노 숙박권, 경찰에게서 떼인 교통위반 딱지를 면해줄 것 등 개성에 따라 나오는 여러가지 조건이 내걸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생동안 세금을 면제해달라는 조건이다. 세금에 대한 양적인 고민과 함께 이런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세금을 거둬갈 명분은 또 무엇이냐는 반문이 스며인는 듯한 말이다.

고된 훈련을 받으며 다들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가 된 이들이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자 브루스 윌리스는 하루의 휴가를 요청한다. 엄청난 대사를 치르는데 하루라는 시간이 귀중하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왜 죽으러가느냐하는 존재의 이유를 각자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희생이다.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큰 작업에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 동참한다. 역사적으로 보여준 자기 희생의 좋은 예 하나는 데르모필라에서 보여준 스파르타 인들의 행동일 것이다. 위기에 빠진 그리스 전체를 구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이들은 데르모필라라는 좁은 계곡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진격을 막으러 나간다. 몇백 정도의 군사로 수십만 대군에 맞서러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지만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모두의 안위를 위해 자기 헌신을 하게된다. 단 이들 자원자의 조건은 아들을 둔 남자들이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존재가 혈육을 통해 승계될수 있을 때 자기 희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짧은 휴가를 통해 찾으려는 가치는 다양하다. 사채업자에게 거금을 빌려 카지노에서 마음껏 뿌리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가족을 찾아나선다. AJ는 물론 브루스 윌리스의 딸을 만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가지 대화를 한다. 또 한명의 예비 우주인은 작고 하얀집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노는 아이는 실은 그의 아들이지만 법원의 판결은 냉혹해서 접견의 권리까지 금지되어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이 사람을 "외판원"이라고 둘러대면서 즉시 물러나 줄 것을 요청한다. 어쨌든 이들이 보낸 시간들은 희생이 이루어져야하는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급조된 우주인들은 모험을 떠났다. 이들이 우주로 떠나는 장면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중간에 구 소련의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연료보급을 받는 것부터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이 닥친다. 미르의 다 낡은 시설은 보급과정에서 폭파되 버리지만 대신 경험많은 우주비행사 한명이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행동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되는 복선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이 소행성에서 벌이는 활약은 결국 모험 드라마들의 패러디다. 이런 형태의 드라마의 구조는 장소만 바뀔뿐 대체로 일정한 편이다. 보통사람들이 가보고 싶지만 자주 경험하기는 어려운 공간이 선택되고 주인공은 여러가지 난관을 초인적인 노력과 운을 적당히 결합해가며 해결하게 된다.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런 장소로 기차가 선택되었고 점차 비행기가 많이 나오다가 이제는 우주선이 활약하는 시대가 되었다.

폭파 과정에서 역시 우리의 영웅 브루스 윌리스의 개성이 드러난다. 본부의 유유부단하고 맹목적인 지시에 대해서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이 결코 주어진 목표를 채우지 못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저항한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자기의 전문 영역 - 바꾸어 말하면 밥줄 - 에 대해서 남이 터치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쨌든 구멍파기 작업은 성공하였는데 문제는 한 사람이 남아서 폭파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비뽑기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 선택된 영웅은 딸의 연인 AJ다. 흔쾌히 그 역할을 맡겠다는 이 친구 대신에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을 희생한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아주 아주 막바지까지 시간을 소모해가면서 그는 폭파에 성공한다.

살아남은 영웅들이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역시 또 하나의 가족 회복 드라마가 된다. 아버지 대신 애인을 맞게된 딸의 희비가 교차되는 모습이 먼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어서 외판원으로 취급되었던 또 하나의 가족상실자가 이제 존경받는 영웅으로 변신해서 떳떳이 아들을 품에안게 된다. 한가지 더하자면 늘 도박과 여자를 좋아하던 놈팽이조차 자신을 마중나온 스트립걸을 만났다.

진행상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먼저 과학적인 차원인데 소행성의 중심을 폭발해서 거의 비슷한 크기의 둘로 나누어 지구를 벗어나게 한다는 해결책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과학적이지 못한 것 같다.
또 지구 곳곳이 파괴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닥치는 위험을 모른채 정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70년대에 뉴욕시가 잠시 정전되었을 때 엄청난 폭력이 발생했던 것이나 LA의 흑인폭동때 난장판이 되었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굳이 이런 면을 배제시키는 것은 역시 영화는 사실성보다는 오락과 교훈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가지 유념해서 보아야할 것은 영화에 나온 주인공이나 일반 사람들이 거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더기로 몰려나와 자신이 믿는 신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오직 이슬람 밖에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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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라는 정치 경제 공동체를 만들면서 벌어진 일 중의 하나에 각국의 역사학자들을 한데 모아 공동의 역사책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다. 한 민족에게 영광을 안겨준 영웅이 다른 민족에게는 잊기 어려운 고통을 남겨준 침략자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시각의 불일치를 하나씩 교정해가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키워가자는 것이 이 작업의 취지였다. 이제 한반도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화해의 시대에도 그런 교정작업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보는 중이라 유럽사회의 이와 같은 노력은 꽤 부러운 일이다.
그런 역사적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간에는 꽤 오랫동안 대립되어오던 해석의 문제 하나가 남아있다. 바로 잔다르크라는 여인이 만들어간 역사적 행위에 대한 부분이다.

잔다르크의 행위를 그냥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쭉 추적해본다면 사실들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한적한 농촌에서 평범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고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읽고 쓸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무척 특이한 종교적 체험이 있었다.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왕태자와 국민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왕태자가 머무르는 곳으로 왔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영국의 왕은 자신에게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며 프랑스에 들어와 파리 등 여러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군림하였다. 귀족이나 왕가의 결혼에 의해 국경의 모양새가 바뀌는 당시 풍토에서 이런 주장이 그리 부자연스러운 것은 없었다. 원래 영국의 당시 왕가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 머물던 군사집단이 건너가서 정복을 해 세웠던 관계로 두 나라 사이에는 복잡한 영토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섬나라에서는 왕노릇하지만 바다 건너로는 신하의 모습을 하는 이중적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년전쟁은 이런 식으로 왕과 왕의 부자연스럽고 긴장하던 관계를 가지던 양측이 결국은 무력으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바다를 건너온 영국군은 숫자로도 1만5천 내외의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이었고 출신도 대부분 기사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경멸스러운 농부들이 많았다. 몇백년 전에는 프랑스의 기사들이 바다 건너가 영광스러운 승리를 쟁취했기에 귀족들이 가소롭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 여전히 갑옷입고 말탄 기사들은 용감하고 충실히 싸웠지만 전쟁의 양상은 무척 바뀌었다. 영국의 시골 농부들에게 장궁이라는 무기를 쥐어주어 맨 앞의 대열에 배치했는데 이들은 150M 정도의 거리에서 자신에게 돌격해오는 기사들의 값비싼 갑옷을 꿰뚫어버렸다. 당시에 기사 하나를 완전히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수십 마리의 말에 해당하는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귀한 존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땀흘려 농사짓는 농노의 신세가 되어야 했다. 그게 바로 중세의 봉건사회였는데 이제 그런 귀한 존재들이 천하디 천한 농노 출신들이 날리는 화살에 마구 거꾸러지는 것이다. 도저히 체면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라 기사들은 분개했고 계속 더 큰 용기를 내어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전투 마다 많을 때는 1만명에 달하는 프랑스 군이 무모한 돌격으로 희생되었지만 전술을 바꾸는 지혜를 발휘한 것은 한참뒤였다.
하지만 영국군도 약점이 있었다. 영국이 원래 가난했고 군주의 권력이 강하지 못했기에 본국으로부터 충분한 보급을 받아서 전쟁을 유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원래 출신들이 농부였기에 정복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무차별적으로 약탈을 하고 다녔다. 그 장면의 하나가 바로 영화 처음에 나오는 잔다르크 마을의 학살이었다. 덕분에 농민들은 영국군이라면 이를 갈았고 종종 힘을 합쳐 봉기해가지고 후방을 습격했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용맹을 발휘할 공간과 정복자의 권리행사 정도로만 간주했던 당시의 한계였다. 그래서 영국군도 프랑스의 기사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농부들과 겨루고 싶지는 않았기에 물건을 빼앗는 자는 죽인다는 강력한 군율을 내세워서야 간신히 통제를 할 수 있었지만 이건 전쟁의 거의 막바지 이야기였다.

당시의 시대가 마지막 십자군 전쟁의 열광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았기에 사회는 종교적 분위기가 꽤 강했다. 물론 이런 열광은 종종 토속적인 미신과 혼합되어 기복적인 성격을 띄는 경우가 많았기에 여기저기서는 마녀사냥이 성행했고 교회는 이단 논쟁도 쉬지 않고 이어갔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그려내는 세계를 생각해보면 이 시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잔다르크가 처음 왕태자를 만나게 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당시 궁정의 지도부는 백성들이 기적을 기대하는 분위기를 고려해 평시라면 있기 어려운 잔다르크의 접견 의뢰를 받아들였다. 당시 프랑스에게는 실은 상대를 물리칠 잠재력은 충분히 있었다. 전술적인 교정과 함께 새로운 군사들을 무장시켜 영국과 비슷한 방식의 싸움을 전개하며 상대의 보급을 끊는다면 본거지에서의 싸움은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도부의 자신감의 부족이었다.
당시 왕태자의 아버지 샤를 6세는 정신병자였고 어머니는 미모였지만 매우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반국민이나 왕태자 주변에서는 그가 정말 아버지의 아들인지를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이 여인은 어느날 본인의 입으로 왕태자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고 공개적인 선언을 해버렸다. 사정이 이러하니 왕태자 자신도 항상 출신에 대해서 자신 없어 할 수 밖에 없었고 왕위를 둘러싼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별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잔다르크가 보인 몇가지 신기한 일도 인상적이다. 군중속에서 왕을 알아본 것이나 곧장 달려가 신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놀랍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궁정 카톨릭 사제들과의 논쟁이었다. 지식의 많고 적음을 놓고 씨름을 하려는 유식한 분들이 계속 무엇인가 놀라운 징표를 보여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여기에 대해 잔다르크는 딱 잘라서 “왜 내가 험난한 적진을 뚫고 무사히 이곳까지 온 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유식한 여러분들은 왜 오를레앙의 시민들이 받는 고통을 외면한채 편안히 호의 호식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까?”라는 답변을 던져버린다. 이는 예수가 당대의 바리새인들에게 대하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신앙을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으로 계속 이끌어던 제도권 교회에 대해서 내면의 믿음을 더욱 강조하며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개혁자의 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 잔다르크는 오를레앙의 싸움터로 나간다. 당시 이 도시는 군주가 이미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중세에는 이런 행위는 매우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포위전 또한 매우 치열했지만 왕태자는 그동안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벌인 잔다르크의 활약은 매우 대단했다. 영화는 그런 전투장면을 다양하게 재현시킨다. 여러 차례 놀라운 예지를 발휘하며 처음에는 시종 회의적이던 지휘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며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덕분인지 요즈음 전쟁영화는 무척 사실적으로 바꿔 말하면 여과없이 잔인한 장면들을 내보인다. 목이 날라가고 팔이 잘리고 돌을 맞아 으깨지는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진 유머스러운 장면도 하나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긴팔을 가지고 있는 무기가 나온다. 트레부쉐라고 불리우는 이 무기는 성을 향해 돌을 날리는 도구로 긴팔만큼이나 꽤 먼 거리를 공격할 수 있다. 여기서 날라오는 돌을 지켜보던 성주의 부하가 돌이 날라옵니다, 그래 어디냐, 바로 여기요라고 말하는동안 벌써 돌은 성주의 머리 위 벽을 무너뜨린다. 한국의 어느 지방에서 “아버지 돌 굴러와유”하고 느릿 느릿 말하는 습성을 농담으로 만든 것들과 엇비슷하다.

오를레앙의 승리 다음으로는 내친김에 아예 랭스까지 손에 넣었다. 이 곳의 성당은 원래 대대로 카톨릭 교회가 프랑스의 왕들의 대관식을 거행하던 장소다. 그래서 더욱 정통성 싸움을 놓고 중요한 공간이 된 것이다.
여기서 성유가 들었던 병이 비자 자기 화장품에서 꺼내어 채우는 왕비의 말과 행동을 눈여겨보자 나중에 잔다르크를 사로잡은 부르군드 공도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시 사회는 벌써 십자군 전쟁의 패배 후유증과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신의 지배를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중들은 달랐다.
겉으로 보면 무척 약해서 칼든 군인들에게 끌려가던 사제들도 대관식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무척 화려했다. 정말로 신이 그자리에서 왕을 축복하듯이 보였고 왕을 따라 여기까지 왔던 많은 신하들에게도 같은 감정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왕을 왕답게 만들었다면 이제 잔다르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물론 영국군을 남김없이 몰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중간 목적지까지 올라선 왕은 좀 더 차분하게 전쟁을 수행해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잔다르크를 계속 군사적인 영웅으로 만들 경우 발생할 사태 또한 염려했다. 그래서 더 이상 잔다르크에게 많은 군사를 주지 않았고 결과는 패배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잔다르크가 포로로 잡히게 된다.
잔다르크 자신도 이런 운명을 알았다고 전해진다. 항상 나에게는 수명이 일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다녔고 그래서 더욱 자신의 할일을 서둘렀다.
잔다르크를 잡아들인 부르군드 공은 꽤 많은 돈을 받고 그녀를 영국군에게 넘겨주었다. 이 과정에서 샤를 왕은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잔다르크를 구하는데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이대목에서 “배은망덕을 왕자들은 미덕으로 여겼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어쨌든 성녀인가 마녀인가를 놓고 재판을 벌이려는 영국군의 의도는 명백했다. 상대편에게 성녀가 있다면 자신들이 악마의 군대가 되기 때문에 이 싸움은 더 이상 끌어가기 힘들것이었다. 그렇지만 재판은 무척 길었다. 교육도 받은 바 없는 어린 처녀가 교회의 유식한 심문관들을 상대로 한 문답에서 놀라운 답변들을 하는 것에 모두들 놀랐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일부 내용들이 나오지만 즉흥적인 답변을 그렇게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한번 예수가 수많은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지혜가 보이는 듯 했다.
어쨌든 결론은 심문관들의 트릭속에서 잔다르크는 한번 자신을 유죄라고 시인하고 목숨을 구원받았다가 다음날 이를 철회한다. 그리고 화형에 처해진다. 이 장면은 아주 짧고 간략하게 영상처리된다.
잔다르크가 죽고나서도 전쟁은 계속 되었다. 많은 전쟁영웅들이 나타나 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무엇보다 잔다르크의 선행 행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년 남짓의 활동만으로도 그녀는 역사의 진로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엄청난 기적을 발휘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왜 이렇게 기적이 없습니까”하고 묻는 사람에게 카톨릭의 신부는 “겸손히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결코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잔다르크가 들은 목소리가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왔는지를 과학으로 입증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여지는 것만 믿으려 하는 현실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이루어낸 일을 부정하며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농부의 딸로 돌아가 여생을 다 보내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면 후대인들이 그녀를 아쉬워했을까 생각해보자. 거기에 죽음이 있었기에 그 삶이 더 극적인 것 아니었을까? 결국 예수, 베드로, 바울이 걸어갔던 순교자의 길을 다시 한번 발견했기에 인상적인 것이다. 보이는 대로 믿는답시고 이들을 목수, 어부, 무두질쟁이라고만 보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마찬가지로 잔다르크를 농부의 딸로만 보려한다면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자기 확신을 가진 존재가 얼마나 위대해지는가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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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s fool

폴 뉴먼이 정말로 나이에 걸맞게 늙은 노친네의 역할을 담당한다. 공간은 뉴욕 북쪽의 어느 조용한 시골이다. 식당도 하나 술집도 하나 순찰차도 동일한 차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 정말 작은 동네다. 배우가 많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그 중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도 특이하게 느껴진다. 정말 미국의 시골 촌구석의 전형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동네였다.
이곳에 살고 있는 설리는 나이 육십이 다되었지만 하숙하면서 하루 하루 벌어야 근근이 살아가는 날품팔이 노동자다. 그는 얼마전 일을 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쳐서 수십개의 병원을 왔다갔다 해보았지만 돈만 많이 쓰고 완치되지 않았다. 더욱 큰 불행은 고용주가 약간의 서류상 착오를 이유로 치료비를 대납해주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억울해서 재판까지 가보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영화의 제목에 ‘바보’라는 단어가 들어갔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설리는 화풀이를 하기 위해 고용주의 사무실에 갔지만 여전히 고자세인 고용주는 법률상의우위를 활용해 치료비 지불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설리가 하루를 벌어야 하루를 살수있다는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새로운 일거리를 떠맡게 한다. 참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게 일하러나간 설리는 차에 블록을 내던지는 자신에게 고용주를 던져버리는 용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현실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꿈이다. 더해서 짐을 다 싣고 몰고가던 차가 갑자기 펑크가 난다.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저렇게 낡은 차도 굴러갈 수 있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할수없이 길가에서 태워줄 사람을 기다리다가 세워진 차에서 아들이라는 사람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장면이다. 몇 년만에 처음 서로 만났지만 결코 반갑다는 환영의 제스처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보니 설리는 아들이 육개월밖에 안되었을 때 집을 나와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설리의 불행은 그가 스스로 가정을 나옴으로써 하나의 결손가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 그가 아버지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집을 나온 과거에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받지 못한 사랑을 남에게 베풀지도 못할 것 같이 느꼈을까?
이런점은 특히 그가 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완전히 내팽겨쳐버린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금만 수리해서 세를 주거나 아니면 팔아도 꽤 괜찮은 수입이 되었을 그런 집을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완전히 방치해버린 것은 그의 고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고 그의 전부인은 누누히 강조한다.
이런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하숙집 여주인의 아들로 성공한 은행직원인 그는 이제 마을옆에 대규모 위락시설단지를 꾸미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수억불이 투자되는 돈벼락 프로젝트를 끌어들이는 그의 눈에 하루 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육체노동자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집에서 내보내달라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만 답은 노우다.
이런 무시를 받는 설리에게도 긍정적인 면들이 있다. 마을의 조금 정신이 어지러운 노친네가 추운 겨울에 길을 가겠다고 나섰을 때 그는 자신도 허겁지겁 나오느라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였지만 잘 유도해서 가게로 돌려보낸다. 무척 발이 차가왔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남을 위해 베풀줄 알고 있었다. 하숙집의 주인 아주머니를 위해서도 어려운 일이 있다면 나서서 도와드린다. 아주머니가 가장 곤란함을 느끼는 순간에도 아들은 없다. 가장 어려운 고민을 하는 순간에도 아들에게는 그말을 하면 안된다. 이렇게 빡빡해진 미국 가정의 모습의 단면이 잘 보여진다. 물질적 욕구속에 매몰되어 정말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 아닐까하는 물음을 성공했다고 혹은 성공하려고 노력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 아닐까? 하지만 설리는 반대다. 비록 삶이 고달프더라도 그의 마음은 결코 메마르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 여럿 이어진다.
그는 새로 만난 손자에게는 뭔가 다른 새로운 애정을 느끼게 된다. 아직 여리게 느껴지는 소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감싸안고 돌봐주려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왜 아버지 노릇은 거부했으면서 할아버지 노릇은 하려고 드시죠”하며 묻게된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손자에게 애정을 쏟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들과도 점차 화해를 하게된다.
그에게는 어느 정도 현명함도 있다. 용기가 부족한 손자에게 용기를 키워주기 위해서 몇가지 교육을 시키는데 제법 요령이 있었다. 손자에게 처음에는 시계를 쥐어줘서 일정 시간 버티도록 만들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의족을 들고 곤란을 겪고 있는 변호사 양반에게 갔다주는 험난한 임무를 수행시킨다. 어린 아이의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은 교육아닐까? 한편으로는 아들의 문제도 해결한다. 서로 고집을 세우며 평행선을 긋고 맞서던 아들 부부를 보면서 반은 강압적으로 아들에게 먼저 전화연락을 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본래 그럴 자격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결국 아들도 부인과 화해를 하게된다.
영화 막판에는 그의 곤란이 극에 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늘 자신에게 시비걸던 동네 경관이 그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차를 인도로 몰고 있는 것을 보더니 느닷없이 체포하겠다고 나섰다.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계속 차를 몰고가는 그에게 총알이 발사된다. 물론 위협사격이었지만 화가난 그가 나가서 경관의 코를 쥐어박아버렸다.
유치장에 갖히는 신세가 되다보니 다 부질없이 보인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신은 한 가난한 남자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하지만 이 순간부터 그에게 상황이 바뀌어나간다. 먼저 영화시작에 나왔던 법정이 다시 등장한다. 법정은 개인과 사회가 가장 곤란한 얼굴로 만나서 결정적 방향을 결정짓는 장소다. 영화의 시작에서 법정은 설리에게 제법 가혹한 판결을 내렸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나이 지긋한 판사는 경륜을 담은 판단력으로 상황의 불가피성을 인정해 간단한 처벌로 설리를 놓아주고 요령없고 단순한 경관을 나무라게된다. 나가는 경관의 입에서 “미국이 어떻게 되려고 이 따위 판결이 나오게 되나”하는 소리가 튀어나오지만 반대로 판결이 나왔다면 아마 설리를 비롯한 관객의 입에서 똑 같은 소리가 나왔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영화에 푹 빠지지는 말아달라. 요즘도 뉴욕에서는 총을 들지도 않은 용의자를 경찰이 마구 쏴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니까.
어쨌든 돈없고 삶이 고달픈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행운이다.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않는 행운이 설리에게도 차례대로 찾아온다. 첫번째 행운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그에게 도주여행에 같이 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말 남자로서 이렇게 감격스러운 순간은 없었을 것이지만 그는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지만 사양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다음은 그가 세금을 내지 못해 억류당했던 집을 하숙집 여선생님이 대납해준덕에 되찾게 된것이다. 물론 앞서서 그가 친절과 애정으로 가족같이 살아온 보답이다. 가족을 찾아도 머무를 집이 없다면 곤란할 것이지만 이 문제도 해결된다. 마지막으로 경마에 걸었던 행운의 수가 통해서 육천불 정도의 배당금을 받게되었다. 육만불도 육십만불도 아닌 육천불 정도의 돈도 주머니에 단돈 40불 밖에 남지 않았던 그에게는 정말로 크게 느껴졌다. 갑자기 모두가 그의 존재를 보다 소중히 여기게 되면서 그에게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풍족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정말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착한 마음을 지켜나가다보면 무엇인가 돌아올 것이다.

관객으로서는 결국은 앞서 떠올렸던 바보라는 영화제목에 “아무도 아니라” 수식어가 붙어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나는 어렵고 이는 몇가지 조건과 나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삶의 즐거움이 쏟아질 수 있는 그런 행운들이 밀려올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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