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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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더듬더듬 만지며 그 안의 공간을 손으로 익히고 있다. 열병을 앓은 이후로 앞을 볼 수 없는 소녀를 위해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 스스로 집을 넘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방안으로 그녀만을 위한 세계를 구축해 준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소년은 광부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다. 그의 아버지와 같이 열 다섯 살이 되면 광부로서의 살아야 하는 삶이 정해져 있지만 그는 라디오를 듣고 기계를 만지는 것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면 이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의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현재는 아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이 소녀에게 그녀만의 희망을 가지고서는 거리를 활보할 수 있기를, 광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 정해져 있는 소년에게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삶이 주어지길 바랐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그들이지만 그들에게도 희망이라는 불씨가 내려질 수 있길 말이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속닥이길, 독일군이 중세 성벽 아래 2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 복도를 보수했다고 한다. 독일군은 새로운 방어 시설, 새로운 전선관, 새로운 탈출로,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복잡한 지하 단지를 지었다고 한다. 시테 요새 아래, 구시가에서 강을 건너면 붕대를 쌓아 놓은 방, 탄약을 쌓아 놓은 방이 여러 개 있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병원까지 있다고 한다. 아니, 그렇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20만 리터짜리 물탱크, 베를린 직결선도 있다고 한다. 불길을 내뿜는 폭탄이 숨겨져 이쏙, 사방 시야를 확보한 사격 진지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매일, 일년 내내 바닷속으로 포탄을 퍼뜨릴 수 있는 대포를 다량 비축해 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1000명의 독일군은 죽을 각오로 사람들은 속닥거린다. 5000명일지도 모른다. 아니, 더 될지도 모른다. –본문

 그러나 이 안의 책을 통해서 마주하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계가 아닌 이념의 상이가 불러온 전쟁의 시작으로 누군가는 가해자, 누군가는 피해자의 구도로 변모하게 되지만 실상 이 안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모두가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그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이 거대한 파도 속에 휘말려 버리게 되는 것인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측은함을 넘어 먹먹함이 밀려들게 된다.

독일군이 급습할 것이라는 소식에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자물쇠 담당으로 일하고 계신 아버지와 함께 그의 삼촌이 계신 생말로로 이동하게 되지만 그의 아버지에게 주어진 임무인 불꽃의 바다라는 다이아몬드는 그 다이아몬드가 품고 있는 전설처럼 이 부녀를 함께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 전설은 이 다이아몬드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상이자 룸펠과 같은 이들에게 펼쳐지는 현실이 만들어낸 환상이겠지만 그 불꽃의 바다는 전쟁을 넘어 또 다른 아픔을 마미로르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엔과 함께 하는 나날 동안에 에티엔마저도 전쟁의 아픔으로 인해서 집안에서만 생활하지만 마네크 부인을 통해서 그들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들과의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뢰델은 호스를 내려다본다. 검은색에 길이는 1미터 남짓하고, 추위에 뻣뻣하게 굳어 있다. 몇 초 지났을까 싶은 시간이 베르너에겐 몇 시간은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얼어붙은 잔디 사이를 바람이 가르며, 사이렌을 울려 대는 서풍과 눈발을 설원 너머로 몰아내자, 갑자기 졸페라인을 향한 그리움이 그의 마음속으로 파도쳐 흘러 들어온다. 오후가 되면 검댕으로 얼룩진 밀집 지역을 정처 없이 오가며, 어린 여동생을 수레에 태워 끌고 다니던 소년 시절의 오후. 뒷골목 쓰레기, 작업반 인부들의 목쉰 고함 소리, 벽에 코트와 바지가 걸려 있는 공동침실에서 완전히 곯아떨어진 소년들. 자정 녁 침상 옆을 천사처럼 지나가며 중얼거리듯 말하던 엘레나 아주머니. –본문

 그리고 그들과는 또 다른 전쟁의 가해국의 입장에 속해 있는 베르너는 작은 체구와 흰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다. 광부였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동생 유타와 함께 아이들의 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라디오를 듣고 세상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만큼 라디오를 고치는 대에도 으뜸이었던 베르너는 그가 가진 재주를 높이 사는 이를 만나게 되면서 광부가 아닌 군사 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만난 친구 프레데리크가 약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구타를 받으며 일어날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지는 것을 보고서는 끔찍한 학교의 현실과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살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르너는 나이를 속였다는 이유로 전쟁에 강제 징집 당하게 되는데 이 과정 속에서 프랑스의 소녀 마리로르와 독일의 소년 베르로가 만나게 된다.  

 전쟁터로 징집된 베르너는 주변에서 비밀리에 전해지는 송신들을 찾아내어 보고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 어린 현상이 그의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지게 된다. 독일군과 그들을 포위하려는 연합군과의 대치 속에서 어린 베르너는 호텔의 지하에 고립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어린 시절 그가 들었던 방송의 주파수를 들으며 마리로르의 목소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동료의 도움으로 겨우 호텔에서 탈출한 베르너는 마리로르의 목소리를 찾아 생말로로 향하게 되지만 마리로르 역시 롬펠의 포위망 안에서 점점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질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와 엔티엔 작은할아버지와 마네크 아주머니와 이름이 베르너 페닝이었던 그 독일 소년이 왜가리처럼, 제비갈매기처럼, 찌르레기처럼 무리 지어 다니며 하늘을 들쑤실지도 모른다는 것을? 영혼을 실은 그 거대한 셔틀이 주변을 날아다닐지도 모르며, 희미하지만 귀를 바짝 가져다대로 들으면 들을 수 있다는 것을?(중략)
 
그녀는 생각한다. 매시간, 전쟁을 과거의 기억으로 간직한 뿐인 누군가가 세상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 –본문

베르너와 마리로르가 마주할 수 있었던 그 짧은 찰나를 보며 그들의 바람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저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어느 한 장소에서 숨어서 지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니, 전쟁이 발발되지 않았더라면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물론 그랬다면 이 아련한 이야기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 먹먹함을 느끼기 보다는 당시의 수 많은 사람들의 웃음이, 그리하여 그 평범한 나날들의 그들의 앞에 펼쳐졌더라면 이 아득함은 애당초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마리로르는 그 나름의 삶을 아버지가 이끄는 손을 따라 지냈을 것이고 베르너 역시 광부가 되었던 아니면 또 다른 인생을 지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만났을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전쟁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의 자리에 서서 아련하게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랐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왜 이 시간 속에 그들이 있어야만 했는지 서글픔이 밀려든다.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 마리로르가 서 있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게 그저 역사 속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로만 들리고 있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그날들이 다시금 걸어오며 그 아득했던 시간을 건너 온 그녀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안의 이야기들은 한동안 오랜 여운으로 내게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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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 줄리 오린저 저

 

 

 

독서 기간 : 2015.07.2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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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미의 반딧불이 -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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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이 되면 늘 찾아가던 외할머니댁으로의 방문은 그 시절의 나로서는 기차를 타고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설렘과 무엇을 해도 지긋이 웃으시며 마음껏 밭을 뛰어놀게 해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마당 한 켠에 자리하고 있던 새끼염소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 무엇보다도 우리가 내려가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가득한 음식을 해주시던 외할머니를 뵈러 간다는 것이 마냥 설레기만 했다. 매년 여름 방학이 되면 바리바리 싸들고서 시골로 향하던 연례행사는 두 분이서 당신들만의 힘으로 움직이기 버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시골로의 귀향은 점차 횟수가 줄어들더니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나에게 더 이상 시골이란 곳도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시골이라는 장소를 기억 한 켠에 밀어 넣고서는 꺼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때나 ', 나도 어릴 때 그런 적이 있었지.' 라는 생각에 잠시 잠기곤 하지만 어느 새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런 요즘, 아주 오랜만에 그 때의 향수에 푹 빠져 보게 된 것이 바로 이 <나쓰미의 반딧불이>라는 책이었다. 아쉽다고 해야할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바깥에서 읽었던터라 마음껏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눈물을 머금으며 열심히 책을 넘기며 그들의 이야기를 넘어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토바이의 스피드를 즐기는 나쓰미와 조용조용 이야기를 건네는 싱고는 잠시 들린 '다케야'를 통해서 그들의 일상은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유치원교사인 나쓰미와 사진학과에서 졸업전을 준비하고 있던 싱고에게 이 다케야는 그들이 서 있던 바쁜 나날 속의 일상과는 다른, 이전에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또 하나의 세상이 나쓰미와 싱고의 눈 앞에 펼쳐지게 된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모래무지가 숨은 곳 부근을 위에서 꾹 눌러 보았다. 양손으로 모래째 살짝 들어 올렸을 뿐인데, 15센티나 되는 훌륭한 모래무지가 내 손안에 있었다. 그 순간 느꼈던 궁극의 희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강을 즐기고 있었다. 이 모래무지도 황어처럼 잉엇과에 속하는데, 소금구이로 먹으면 꽤 맛있는 흰 살 생선이다. 특히 껍질이 별미다. 지장 할아버지는 이 껍질을 대꼬챙이에 뱅글뱅글 감아서 소금을 뿌리고 불에 구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적지만 술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안주가 되었다. -본문

 다케야에서의 시간이 점점 흘러갈수록 나쓰미와 싱고는 그 안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 이 곳에 들린 그들은 지나가는 여행자의 느낌이었다면 하루하루를 지내며 강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장할아버지와 야스할머니, 히토미와 다쿠야와의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동안, 그들이 걸어둔 달력은 점차 날씬해지지만 그들의 웃음 소리는 점차 깊어져만 간다.

 그렇게 점차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은 이제 서로가 가슴 속 깊이 숨겨 놓았던 아픔들도 서로에게 꺼내어 보여주게 된다. 그리하여 지장 할아버지에게 아내와 헤어져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는 것도, 그가 왜 그토록 민들레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싱고와 나쓰미에게 차갑기만 했던 운게쓰가 품고 있던 아픔은 무엇인지, 지장 할아버지가 쓰러진 이후 이들은 더욱 서로를 위로하며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시간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추억이라든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 아무리 튼튼한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접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 내 안의 '생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겠지. -본문

 이제 지장할아버지와 야스할머니가 안계시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나날은 나쓰미와 싱고를 넘어 나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의 추억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울컥하며 눈물을 쏟으려 했던 그 순간은 활자를 넘어서 오랜 동안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다. 지장보살이 자리를 다해 그 곳을 지키는 동안 이 따스한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휴식과 같은 위안을 전해다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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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 모리사와 아키오저

 

 

 

독서 기간 : 2015.07.31~08.0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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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 -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는 일상의 질문들 문득, 묻다 1
유선경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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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연하기에, 때론 그저 스쳐 보내면서도 구태여 그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적이 없던 것들을 이 책 안에서 만나면서 왜 한 번도 이런 것들에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왜 하늘이 파란 것인지, 녹색 신호등을 보면서 파란 불일 때 건너야 한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파란색을 엄연히 다른 것임에도 파란색과 녹색을 모두 파랗다고 말하는 그들을 이야기에 대해서 갸웃거리면서도 그저 그것이 하나의 정형화된 것이려니 생각하고서는 그 이상의 물음은 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렇게 지내온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별달리 궁금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이 안에서 마주하는 순간, 그 동안 왜 나는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이 안의 것들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인지, 라며 스쳐 지나갔던 찰나의 시간들이 아쉽게만 느껴져 그 여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이 안의 이야기들을 탐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김유정은 소설에서 노란 동백꽃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백꽃은 붉은색입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동백꽃이 맞을까요?
 
붉은 동백꽃에 아무리 코를 바짝 대고 맡아봐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냄새는 도무지 나지 않습니다. 그런 희한한 냄새를 풍기는 꽃의 이름은 생강나무꽃입니다. 잎이며 꽃을 비비면 생각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생강나무. 그래서 김유정이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냄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동백꽃을 사진 혹은 그림으로만 보았던 나로서는 동백꽃이 붉은 색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종류의 동백꽃, 그러니까 예쁜 노란색의 동백꽃이 또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을 한 것도 이 책을 보면서 한 것이지 그저 동백꽃이라는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의미나 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문학의 문제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을 뿐인데 동백꽃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꽃이 아닌 생강나무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동백꽃의 진짜 주인공은 생강나무꽃이었다니. 그것이 강원도의 기후와 그가 자랐던 동네의 특색이었다니, 이것을 알고 나니 소설 동백꽃이 또 다르게 전해지게 된다.

 당 태종이 보냈다는 나비가 없는 모란도에 대한 일화가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넘어 생채기가 있어야만 발아할 수 있는 연꽃의 생애를 바라보며 진흙에서 한 평생 지내고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청아한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며 우리 내 생애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가은 공식문서에 영조가 직접 탕평채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탕평채라는 음식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이 영조 때인 것은 사실이고 다음 왕인 정조 때 사람, 유득공이 봄철 음식으로 추천한 것인데요. 음식 이름에까지 탕평, 즉 공평하게 고루 인재를 등용하는 뜻이 담긴 걸 보면 역설적이게도 당쟁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또 그로 인해 한 정치적인 비극을 막고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짐작할 수 잇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당쟁에 희생당한 사도세자의 아들 정도의 염원이 담긴 음식이 있습니다. –본문

 탕평채라는 음식에 대해서 들어보았으면서도 그 음식이 정조의 정치적 바람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던 비극적인 참사를 회고하며 올린 음식이라는 것 역시 이 안에서 처음 배우게 된다. 그러니까 이전에 내가 알던 탕평채는 그저 하나의 요리였다면 이 책을 통해 알고 난 탕평채는 그저 한 접시의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가슴 어린 사연이 담긴 음식으로 애잔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제대로 된 의미를 배우게 되면서 흘려 보냈던 것들 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마누라라는 어감이 왠지 가벼워 보여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여보, 라고 불러주기를 바랐던 나로서는 마누라의 어원이 마노라로 조선시대의 궁중에서 사용했던 극존칭의 호칭이었다는 것에서 새삼 다르게 전해지며 마누라가 낮게 부르는 것이 아니었구나, 도 배우게 된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그저 전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단편의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는,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을 넘어선 숨겨진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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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 앤서니 그레일링

 

   

 

독서 기간 : 2015.07.15~07.1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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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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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라는 이 책을 이전부터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은 늘 상 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다음에, 다음에, 를 외치다 이번에서야 제대로 만나보게 되었다. 앵무새 죽이기는 제목을 보면서 대체 앵무새를 왜 죽이려는 것인지, 동물 학대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그 어떠한 내용도 모른 채 막막하게 이 책을 펼친 나로서는 성경 이후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이제서야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에 내심 밀려드는 죄책감 같은 것을 안고서 조심스레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보통의 책들이 서문을 시작으로 저자가 이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는 별도의 서문이 없다. 서문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등을 가지지 않고 이 책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한번 서문을 읽어보면서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우리가 처음에 만나게 되는 이 메시지가 사실 저자가 전해지기 바라던 모든 것의 압축이었구나, 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야말로 그녀가 바라는 대로 충실한 독자였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앞서 도무지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던히 높은 철장 속의 우리네 세상을 보며 이제 어린 아이처럼 울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이 안에 있는 어른들의 모습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서글픔을 먼저 밀려들게 된다.

내가 1학년을 마칠 때쯤엔 젬 오빠가 듀이 십진법이라고 말한 그 교수법이 학교 전체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른 교수법과 비교해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저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지요. 집에서 공부한 아빠와 삼촌은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르면 다른 한 사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빠가 지난 몇 해 동안 한 번도 낙선하지 않고 주 의회 의원으로 뽑혀 일 하시고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 선량한 시민이 되는 데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는 가보 그 적응이라는 것도 거치지 않고 말이지요. –본문

사실 초, 중반을 넘어서는 동안에도 이 안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스카웃이 말하는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도무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 아저씨에 대한 수수께끼를 탐험하고 그의 집 근처 나무에서 발견하게 되는 스카웃과 젬에게 주어지는 작은 선물과 같은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함께 설레였고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발생하게 되는 사소한 문제들을 보며 그 당시의 내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뿐만 아니라 두 남매가 거리에 나타나게 되면 불만 섞인 이야기로 꾸지람을 늘어놓던 듀보스 할머니의 모습 등 처음에 읽었을 때는 이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의 연속을 담아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톰 로빈슨의 사건을 넘어 재판의 결말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 안의 이야기들이 그저 한 마을에서 생겨난 일의 회고가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자부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 있는 나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듯 하여 마지막을 향해 가면 갈수록 세상을 향한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배심원 여러분들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흑인은 거짓말을 한다는 가정 ㅡ 물론 그건 잘못된 가정이지요 ㅡ 모든 흑인은 기본적으로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가정, 모든 흑인은 우리 여자들 주위에 믿고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가정, 우리가 그들의 정신과 관련짓는 그런 가정을 따르리라는 확실을 갖고 말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톰 로빈슨의 피부처럼) 새까만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지적할 필요조차 없는 거짓말이지요. 배심원 여러분은 진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흑인은 거짓마을 하고, 또 어떤 흑인은 부도적하며, 또 어떤 흑인에게는 여자를 ㅡ 백인이건 흑인이건 말이지요 ㅡ 옆에 맡겨 둘 수

조용하게만 보이던 마을, 물론 그 안에는 집 안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은연중에 서로 알고 있는 이 마을 안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피해자는 메이엘라 유얼로 백인이자 유얼 집안의 장녀였고 가해자는 톰 로빈슨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며 흑인이다. 이 한 줄의 사실을 가지고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과 그들의 피부색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건의 결말이나 판결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의 시대상 안에서는 이 한 줄의 이야기로 세상은 모든 것을 결론지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아무리 애써도 항상 공정할 수 많은 없는 거야. 우리 법정에서 백인의 말과 흑인의 말이 서로 엇갈리면 이기는 쪽은 언제나 백인이지. 비열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쩌니
 
그건 옳지 않아요.” 젬 오빠가 주먹으로 무릎을 가볍게 내리쳤습니다. –본문

아마도 어른들의 시선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았다면,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결론이라고 말했을 지 모른다. 이 사건을 바라보던 딜과 스카우트만이 눈물을 머금었으며 젬은 이렇게는 끝나서는 안 된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원래 세상은 그렇단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는 것이 참담하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서 애티커스 핀치 이외의 소수의 사람들은 검둥이의 애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 해 나아가고 있고 진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들 세대에서는 비록 성공하지 못한 이 참담한 역사를 보며 그럼에도 이 일련의 시도를 통해서 조금씩 변모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던 앵무새, 벌레를, 죄책감도 없이 그저 방아쇠를 당겨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수 많은 앵무새를 죽이는 누군가와 앵무새가 되어 죽어야만 했던 누군가가 존재했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와 스카웃이 말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있는 곳에 서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 작은 변화가 우리 안에 오랜 동안 관철되어 있는 편견을 무너뜨리는 틈이 되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책을 덮었다. 우리 스스로 양산해 놓은 과거의 늪이 누군가를 헤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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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2 / 캐스린 스토킷저

 

 

 

독서 기간 : 2015.07.20~07.2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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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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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살면서 내가 만약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어떠한 상황 속에서 곰곰이 생각하고서는 결단을 한 후 그 일을 행했다기 보다는 무심코 한 행동이 지나고 나면 나를 진창으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때론 저 높이 날아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나비효과는 우리네 인생에서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사람들은 죽어, 당연하지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물건이 사라지는 건 참 가슴이 아프고 불가피한 게 아니지 싶어. 순전히 부주의 때문이거든. 화재, 전쟁, 파르테논의 화기 저장고로 쓰였지. 내 생각엔 우리가 과거에서 뭔가를 구해내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아.” –본문

대부분의 경우, 지난날에 대한 회상을 하며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이 달라졌다면, 이라고 바라는 것은 그 때의 순간이 현재의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못 미치거나 현재의 내가 놓쳐버린 무언가를 그 때는 가지고 있었기에 과거의 시간에 대한 상념에 빠지는 것일 게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아쉽게 다가오는데 그 대상이 하나의 사물을 넘어선 누군가라면, 우리에게 드리우는 감정은 아쉬움을 넘어 먹먹함으로 드리우게 된다.

어느 호텔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시오의 이야기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만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만약 그 때 시오가 월반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톰 케이블과 함께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 날의 면담이 다른 일자로 아니 시간이 달랐더라면,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만났던 택시가 상쾌한 느낌의 것이었더라면, 선생님과의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내지 않았더라면 시오의 나날을 달라졌을 것이다. 계속된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일들은 마치 일련의 조각을 따라가는 것처럼 순간순간의 변화들이 모인 것임에도 꼭 그렇게 흘러가야만 했던 것처럼 냉담한 운명이 되어 시오에게 다가오게 된다. 몇 시간 전만해도 엄마에게 들을 꾸지람을 걱정하고 있던 그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미술관에서 바라보았던 발에 달린 족쇄 때문에 세상으로 날아갈 수 없던 황금방울새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시오의 삶은 꼭 그와 같이 흘러가게 된다. 그의 조부모마저도 홀로 남겨진 시오를 반기지 않았던 그때, 앤디네 가정을 지나 웰티가 남겨준 단서를 따라 호비를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서 우연치 않게 피파를 마주하게 되며 시오는 피파와의 재회를 조심스레 그려보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운명이 우리네 바라처럼 되지 않듯이 피파는 그 곳을 떠나 있었고 갑작스레 등장한 아버지를 따라 라스베가스로 가게 되면서 시오의 인생의 제 2막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뉴욕에서 나는 속물적인 아이들 틈에서 자랐다.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고 서너 가지 언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 하이델베르크의 여름 프로그렘에 참가하고 리우데자네이루나 인스부르크, 앙티브에서 휴가를 보내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보리스는 나이 많은 선장처럼 그 아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본문

 보리스를 만나며 시오의 내면의 갈등은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세상은 시오를 폭발 사고에서도 살아남은 아이이며 그 사고로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일 뿐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그의 아버지 역시 그를 찾은 것이 아내가 시오 앞으로 남겨 놓은 유산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다시 세상에 혼자 남겨 지게 된다.

불안한 마음.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ㅡ나처럼ㅡ영혼의 뒷골목을, 속삭임과 그림자,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가는 돈, 암호, 신호, 또 다른 자아, 평범한 삶을 한껏 드높이고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숨겨진 위안을 알았다. –본문

그렇게 다시 뉴욕으로 오게 된 시오는 그의 지난 날의 유일한 기록이자 증거인 황금방울새 그림 때문에 다시 숨막히는 일화들로 빠져들게 되는데, 호비의 가게에서 이제 어엿한 가구 판매원이 된 것처럼 보인 그는 사람들을 속여 가품을 진품으로 파는 일을 벌이게 되고 이 일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그 동안 숨겨 왔던 비밀이 밝혀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까 시오는 뉴욕-라스베가스-다시 뉴옥으로 오는 동안에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그의 삶에 대한 위안을 받은 적 없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가 되어 모든 것이 이전의 정상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종용하고 있고 수 많은 이들의 암묵적인 요구에 시오는 위태위태하게 약물에 의존하며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있어 한 줄기 인생의 달달함이 전해지기도 하련만, 그의 약혼은 물론 피파와의 만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그 뒤에 이어지는 황금 방울새의 원작을 쫓는 이들로 하여금 그는 계속해서 쫓기게 되는 것이다.

삶은ㅡ그것이 무엇이든ㅡ짧다고 말이다. 운명은 잔인하지만 제멋대로는 아니라고. 자연(, 죽음)이 항상 이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삶에 몰두하는 것, 눈과 마음을 열고서 세상을, 이 개똥밭을 똑바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본문

결국에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 상태가 되어서야 시오는 자유로워지게 된다. 황금방울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며 고군분투했던 시간들도, 왜 그 그림에 대해 월티는 그토록 집착했던 것인지, 피파는 왜 시오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 등 수 많은 사건들이 그저 다 놓아버린 마지막에서야 이 모든 이야기는 평화롭다고 느껴질 만큼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황금방울새라는 과거의 족쇄를 스스로 끊어 나온 후에야 평이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시오의 이야기는 때론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설에만 존재하는 운명의 굴레 속 황금마차가 아닌 평이한 이들의 삶을 압축해 놓은 것만 같아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부디 그의 앞날에는 웃음이 잔잔히 흘러나오는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아르's 추천목록


살인자의 딸들 / 랜디 수전 마이어스저

 

 

 

독서 기간 : 2015.07.09~07.1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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