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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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한 아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더듬더듬 만지며 그 안의 공간을 손으로 익히고 있다. 열병을 앓은 이후로 앞을 볼 수 없는 소녀를 위해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 스스로 집을 넘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방안으로 그녀만을 위한 세계를 구축해 준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소년은 광부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다. 그의 아버지와 같이 열 다섯 살이 되면 광부로서의 살아야 하는 삶이 정해져 있지만 그는 라디오를 듣고 기계를 만지는 것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면 이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의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현재는 아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이 소녀에게 그녀만의 희망을 가지고서는 거리를 활보할 수 있기를, 광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 정해져 있는 소년에게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삶이 주어지길 바랐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그들이지만 그들에게도 희망이라는 불씨가 내려질 수 있길 말이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속닥이길, 독일군이 중세 성벽 아래 2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 복도를 보수했다고 한다. 독일군은 새로운 방어 시설, 새로운 전선관, 새로운 탈출로,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복잡한 지하 단지를 지었다고 한다. 시테 요새 아래, 구시가에서 강을 건너면 붕대를 쌓아 놓은 방, 탄약을 쌓아 놓은 방이 여러 개 있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병원까지 있다고 한다. 아니, 그렇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20만 리터짜리 물탱크, 베를린 직결선도 있다고 한다. 불길을 내뿜는 폭탄이 숨겨져 이쏙, 사방 시야를 확보한 사격 진지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매일, 일년 내내 바닷속으로 포탄을 퍼뜨릴 수 있는 대포를 다량 비축해 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1000명의 독일군은 죽을 각오로 사람들은 속닥거린다. 5000명일지도 모른다. 아니, 더 될지도 모른다. –본문

 그러나 이 안의 책을 통해서 마주하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계가 아닌 이념의 상이가 불러온 전쟁의 시작으로 누군가는 가해자, 누군가는 피해자의 구도로 변모하게 되지만 실상 이 안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모두가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그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이 거대한 파도 속에 휘말려 버리게 되는 것인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측은함을 넘어 먹먹함이 밀려들게 된다.

독일군이 급습할 것이라는 소식에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자물쇠 담당으로 일하고 계신 아버지와 함께 그의 삼촌이 계신 생말로로 이동하게 되지만 그의 아버지에게 주어진 임무인 불꽃의 바다라는 다이아몬드는 그 다이아몬드가 품고 있는 전설처럼 이 부녀를 함께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 전설은 이 다이아몬드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상이자 룸펠과 같은 이들에게 펼쳐지는 현실이 만들어낸 환상이겠지만 그 불꽃의 바다는 전쟁을 넘어 또 다른 아픔을 마미로르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엔과 함께 하는 나날 동안에 에티엔마저도 전쟁의 아픔으로 인해서 집안에서만 생활하지만 마네크 부인을 통해서 그들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들과의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뢰델은 호스를 내려다본다. 검은색에 길이는 1미터 남짓하고, 추위에 뻣뻣하게 굳어 있다. 몇 초 지났을까 싶은 시간이 베르너에겐 몇 시간은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얼어붙은 잔디 사이를 바람이 가르며, 사이렌을 울려 대는 서풍과 눈발을 설원 너머로 몰아내자, 갑자기 졸페라인을 향한 그리움이 그의 마음속으로 파도쳐 흘러 들어온다. 오후가 되면 검댕으로 얼룩진 밀집 지역을 정처 없이 오가며, 어린 여동생을 수레에 태워 끌고 다니던 소년 시절의 오후. 뒷골목 쓰레기, 작업반 인부들의 목쉰 고함 소리, 벽에 코트와 바지가 걸려 있는 공동침실에서 완전히 곯아떨어진 소년들. 자정 녁 침상 옆을 천사처럼 지나가며 중얼거리듯 말하던 엘레나 아주머니. –본문

 그리고 그들과는 또 다른 전쟁의 가해국의 입장에 속해 있는 베르너는 작은 체구와 흰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다. 광부였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동생 유타와 함께 아이들의 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라디오를 듣고 세상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만큼 라디오를 고치는 대에도 으뜸이었던 베르너는 그가 가진 재주를 높이 사는 이를 만나게 되면서 광부가 아닌 군사 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만난 친구 프레데리크가 약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구타를 받으며 일어날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지는 것을 보고서는 끔찍한 학교의 현실과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살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르너는 나이를 속였다는 이유로 전쟁에 강제 징집 당하게 되는데 이 과정 속에서 프랑스의 소녀 마리로르와 독일의 소년 베르로가 만나게 된다.  

 전쟁터로 징집된 베르너는 주변에서 비밀리에 전해지는 송신들을 찾아내어 보고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 어린 현상이 그의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지게 된다. 독일군과 그들을 포위하려는 연합군과의 대치 속에서 어린 베르너는 호텔의 지하에 고립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어린 시절 그가 들었던 방송의 주파수를 들으며 마리로르의 목소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동료의 도움으로 겨우 호텔에서 탈출한 베르너는 마리로르의 목소리를 찾아 생말로로 향하게 되지만 마리로르 역시 롬펠의 포위망 안에서 점점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질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와 엔티엔 작은할아버지와 마네크 아주머니와 이름이 베르너 페닝이었던 그 독일 소년이 왜가리처럼, 제비갈매기처럼, 찌르레기처럼 무리 지어 다니며 하늘을 들쑤실지도 모른다는 것을? 영혼을 실은 그 거대한 셔틀이 주변을 날아다닐지도 모르며, 희미하지만 귀를 바짝 가져다대로 들으면 들을 수 있다는 것을?(중략)
 
그녀는 생각한다. 매시간, 전쟁을 과거의 기억으로 간직한 뿐인 누군가가 세상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 –본문

베르너와 마리로르가 마주할 수 있었던 그 짧은 찰나를 보며 그들의 바람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저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어느 한 장소에서 숨어서 지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니, 전쟁이 발발되지 않았더라면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물론 그랬다면 이 아련한 이야기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 먹먹함을 느끼기 보다는 당시의 수 많은 사람들의 웃음이, 그리하여 그 평범한 나날들의 그들의 앞에 펼쳐졌더라면 이 아득함은 애당초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마리로르는 그 나름의 삶을 아버지가 이끄는 손을 따라 지냈을 것이고 베르너 역시 광부가 되었던 아니면 또 다른 인생을 지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만났을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전쟁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의 자리에 서서 아련하게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랐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왜 이 시간 속에 그들이 있어야만 했는지 서글픔이 밀려든다.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 마리로르가 서 있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게 그저 역사 속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로만 들리고 있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그날들이 다시금 걸어오며 그 아득했던 시간을 건너 온 그녀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안의 이야기들은 한동안 오랜 여운으로 내게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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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 줄리 오린저 저

 

 

 

독서 기간 : 2015.07.25~08.0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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