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로드무비의 엽서] 내가 탄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는데...
기다리셨죠? 네무코님. 우리가 처음 인사를 나눈 게 2월 18일인가? 뻔뻔스럽죠? 님이 제 방명록에 인사 남겨주셔서 겨우 알게 됐으면서......그리고 뭐 두세 번 댓글을 달았을까, 그리 돈독한 정을 나누지도 못한 사이에 어느 날 '지병 도지다'라는 님의 페이퍼 밑에 '이벤트나 벌이시죠?' 하고 이벤트를 부추기지 않았겠습니까?
며칠 후 이벤트를 하겠다는 페이퍼를 올리셨을 때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많은 서재 주인들이 몰려와 인사를 남기시는 모습을 보고 제 일인 듯 즐거웠고요. 그런데 이벤트 마지막날인 오늘 어째 님의 서재가 조용하네요. 나중에 한꺼번에 나타나시려는 걸까요?
사실 저는 내일까지 무슨 일 하나를 끝내주지 못하면 약속을 어긴 죄로 벌금 십만 원을 물어야 합니다. 아예 알라딘 로그인을 안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겠으나 어디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어야 말이죠. 네무코님 이벤트의 바람잡이로서 저는 오늘아침 아무런 얘기나 주절주절 좀 해볼까 합니다.
어제 저녁엔 친구 부부가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놀러왔습니다. 예쁜 원피스와 가디건을 딸아이 입학선물로 사가지고 왔더군요. 식당에 가서 사온 장어구이와 회, 매운탕, 아무려나굴전으로 저녁을 잘 먹었습니다. 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우리집 행주보다 깨끗한 걸레가 경이롭던 친구였습니다. 한 시간 이내에 뚝딱뚝딱 깔끔하게 상을 차려내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야길 나눠보니 요즘 그 친구도 많이 변했더군요. 청소나 음식 준비가 귀찮아진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커피 직접 타서 마시는 게 귀찮아 100개들이 맥심을 사다놓고 먹는 것도 저와 똑같았습니다. 내가 탄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즐거움 중의 하나를 스스로 내팽개친 것입니다.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볼까나?" 하면서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타는데 가까이 있는 머그잔 두 개와 받침이 있는 커피잔 두 개에 커피를 탔습니다. 친구의 신랑과 내 남편에게 받침 있는 커피를 먼저 내밀려다가 흠칫했습니다. 왜 오랜만에 온 친구에게 받침도 없는 머그잔을 내밀려는 거지? 나는 커피잔을 바꾸었습니다.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내 맘에 드는 잔에 마신다, 라는 나의 그 개똥철학은 도대체 언제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커피 따위는 조그만 예에 불과하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부턴 제일 좋은 잔에 커피를 타서 그 향을 음미하며 마셔야겠습니다. 요즘처럼 숭늉 들이키듯 하지 말고요. 그러면 제 인생에도 다시 봄이 찾아올까요? 그럴까요, 네무코님?
(조금 전 작년 여름에 올리신 님의 페이퍼들까지 찾아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님께 이런 하소연이 하고 싶은 겁니다.)
(네무코가 잠탱이라는 뜻이라면서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놈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