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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1-5권) / 막스 갈로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영원히 살아있는 나폴레옹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나폴레옹이 험난한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한 이 말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말들 중 하나일 것이다. 7-8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그마한 위인전에서 읽었던 이 말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에 적잖은 동요를 일으켰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쾌재를 부르며 즐거워하고, 그가 마지막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생을 마감할 때는 눈물을 참으며 슬퍼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후로 나폴레옹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7-8년이 지난 시절의 감동으로 돌아가게 했다.  

  ‘나폴레옹’, 항상 그를 따라 다니는 부정적 수식어들. 독재자! 내가 그를 존경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 점을 이 책을 불식시켜줬고, 또 그로 하여금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시켜줬다. ‘독재자’, 과연 그는 독재자였을까? 우선 이책은 나에게 이 점을 불식시켜줬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코르시카’라는 섬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프랑스에 있는 군사학교에 입학하여 동료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고독과 열등감을 이겨내에 황제에까지 이르는 그의 삶을 뒤돌아보면 어쩌면 그의 독재자적 성향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민중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을 겪으며 몇 백년간 유지되어온 전제 군주제를 타파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였기에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가 평생동안 민중의 의견, 즉 ‘여론’을 가장 중요시했던 좀을 생각하면 그가 독재자가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귀족을 상징하는 흰색기를 내리고 자유, 평등, 박애의 삼색기를 내 건 그의 모습에서 그의 이러한 점을 더 잘 알 수 있다. 어느 주간지에서의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막스 갈로는 “나는 감히, 나폴레옹은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지나친 비약일는지는 모르지만 국립 학교의 설립, 이혼할 권리 주장 등 그의 행동은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수긍이 가게도 한다. 어쨌든 이 책은 그가 독재자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진정한 애국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프랑스의 속국인 한 섬에서 태어난 그였기에 유년 시절 그는 프랑스를 자신의 고향을 정복한 나라, 반드시 자신이 정복해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커가면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프랑스는 그가 성장하게끔 한 나라라고, 그가 사랑하고 이끌어가야 할 나라라고. 이후로 그는 프랑스의 명예와 행복을 위해서만 살게 된다. 그가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 민중이었다. 민중은 그를 존재하게끔 해주고,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유일한 대상이라며. 이러한 그의 민중, 즉 조국 사랑은 한 가지 행동을 통해 절실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모두들 사리사욕을 취하고 있을 때, 그는 황제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돈, 즉 재물에 초연했다. 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라며.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두 전직 대통령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 형성으로 구속되었던 사실은 나폴레옹의 행동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작금의 현실은 반성하게끔 해주었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애국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진정한 애국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꼈던 그의 새로운 면모는 그가 죽은 지 약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그의 영향력이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봤던 기사가 생각난다. 최근 영국 총리 관저로 파리 시의회 의원으로부터 편지가 배달됐다. 내용은 이렇다. 파리 시의회 의원이 영국 총리에게 유로스타 기차의 런던 종착역인 워털루 역을 개명해주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워털루! 나폴레옹군이 영국군에게 격파된 곳. 나폴레옹, 그의 찬란했던 업적이 순식간에 무너졌던 곳. 그곳에서의 전투가 끝난 지 1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건이 양국간의 미묘한 감정대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해 나는 그의 힘, 영향력을 느꼈다. 약 200년 전 인물의 업적이 지금까지도 문제시되고 있다니! 이 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나폴레옹, “그는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업적으로. 작가의 글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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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1-15권) /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1995-2007
  

  팍스 코리아나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 한길사 / 1999년 / 314-316면 수록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긴 노력의 과정이 필요한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경구처럼 사용하는 이 말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로마하면 떠오르는 것들 중 나는 우선 천년제국이 떠오른다. 도대체 로마는 어떤 나라이기에 1천 년 동안이나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되어 융성의 세월을 누렸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강한 군사력, 아니면 경제력? 누구나 그 나라의 융성을 논할 때는 군사력 아니면 경제력 등의 외적 요인에서 그 이유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그러한 외적 요인에서 로마 융성의 원인을 찾고 있지 않다. 바로 개방성이라는 내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작가의 이러한 의견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개방성이 무엇이기에 로마 융성의 원인을 그 한마디로 단정 짓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차츰 책을 읽어가면서 로마인들이 개방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과는 다른 타문화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나도 작가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얻었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개방성과 결단성의 중요성이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는 로마 융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개방성과 관용성에 두고 있다.

  타문화의 이질적인 요소를 받아들여 발전함으로써 오히려 타문화를 가진 사람들까지 동화시키는 그들의 개방성에 로마 융성의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개방성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로마의 시민권’이라고 생각한다. 어제의 적장도 내일이면 로마의 시민권을 얻어 아군의 장군으로 기용하고 타국의 노예도 로마에 들어오기만 하면 시민권을 얻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로마의 시민권은 그들의 개방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소”라 하며 남의 인권을 존중해준 행동과 항복한 마르세유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지 않고 독립국으로서 존속하는 것을 허용해 준 행동에서는 로마인들의 관용성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마인들의 이러한 성향을 보며 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요즘 왕따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너는 우리가 아냐”하며 자신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이면 따돌리는 배타적 성향 때문에 왕따 문제도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로마인들의 개방성과 관용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마인들처럼 좀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로 어떤 일에 임한다면 왕따 문제 같은 배타적 성향에서 야기되는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사회문제에 앞서 나 자신도 많이 변화된 것 같다.

   다음으로 이 책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결단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브루투스, 스키피오, 옥타비아누스 등 이 책에는 로마를 이끈 수많은 지도자가 있다. 이들은 모두 정치 체제 등의 개혁을 통해 로마 융성의 시대를 이끈다. 요즘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개혁일 것이다. 정치 개혁, 경제 개혁, 교육 개혁 등 일련의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점에서 로마 지도자들의 개혁과 지금의 개혁을 비교해보았다. 어느 책에서 개혁은 위로부터의 변혁이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지도층으로부터의 변혁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같지만 로마의 개혁과 지금의 개혁 사이에는 뭔가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지도자의 결단성의 차이이다. 한 가지 실례로 카이사르는 원래 귀족 출신이지만 귀족들이 대부분을 이루는 원로원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그 원로원이 부패했다고 생각하여 쇄신을 위해 루비콘강을 건넌다.

  그에 반하여 우리 현실에서의 개혁은 어떠한가? 목표만 거창할 뿐이지 개혁이 진행되다보면 학연, 지연, 등 사적 이익에 얽매여 처음의 개혁 목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만다. 카이사를 보라! 자신과 같은 신분인 귀족들의 이익보다는 로마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루비콘강을 건너는 그의 행동에서 나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결단성의 중요성을 느꼈다. 나 자신부터도 이제는 어떤 일에 임했을 때 좀 더 결단성을 갖고 행동해야겠다. 
  

  그리스인보다 못한 지력, 켈트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한 체력,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한 기술력,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경제력으로도 로마인들은 천년제국을 이루었다. 바로 개방성과 관용성, 그리고 지도자의 결단성으로 그들의 단점을 보완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가 로마인들에 비하여 모자란 게 무엇인가? 우리도 로마인들처럼 자신의 단점을 선각하고 그 단점을 보완해갈 자신만의 장점을 깨달아 활용한다면 우리도 21세기에는 로마 못지 않은 번영을 누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21세기는 분명 팍스 코리아나의 세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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