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어떤 위대한 인물들은 다른 인물들보다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경우란 대개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 사람이 쓴 책을 감명깊게 읽었거나, 혹은 그 사람의 발자취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거나.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내가 직접 그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을 정도로 가까이 찾아간 최초의 인물이 바로 갈릴레이였다. 2001년에 난생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이었던 두 아이들은 이름난 여행지마다 끊임없이 마주치는 비둘기떼 꽁무니만 좇을 뿐, 엄마와 아빠의 설명은 들은 체 만 체 했다. 비싼 경비 들여서 큰 맘 먹고 열흘 이상 짬을 내어 멀리 유럽까지 장거리를 떠나 온 데다, 로마 시내를 비롯한 여러 관광지마다 뙤약볕 아래 하루 온 종일 걷다시피 했던 터라, 도무지 애들한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 고생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었다.

 

피렌체에 갔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렌체 시내에 있던 단테의 생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피렌체 대성당 앞 세례당에 청동으로 조각된 '천국의 문' 등등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딱 한 번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피렌체 산타클로체 성당 안에서 마주친 갈릴레오의 무덤 앞에서였다.

 

"아빠! 사진 한 장 찍어줘요!"

 

과학자가 꿈이라던 아들 녀석이 어떻게 갈릴레이를 알았는지, 그의 무덤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느닷없이 자청해서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도 사진을 찍기 싫어 하고, 곳곳에서 마주치는 온갖 이름난 명소와 예술 작품들에 대해선 도무지 아무런 관심도 없던 녀석이 갈릴레이의 무덤 앞에서는 전혀 뜻밖의 반응을 나타낸 것이었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그 동안 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겪었던 고생들이 한 순간에 싹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 때 내 마음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었던 (아들 녀석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갈릴레오는 그 후 좀처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명저인 『대화_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라는 책이 과학 분야의 탁월한 명저라는 사실을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책은 국내에선 번역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은 원래부터 어렵사리 쓰여진 책이었고, 갈릴레이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결코 쉽사리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건 물론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로마 교황청에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장을 금기시했고, 책의 유통을 아예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1559년에 교황 파울루스 4세는 교회 전체를 상대로 「금서목록」을 발표하고, 여기 수록된 책들을 읽으면 영혼이 위험해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에라스무스의 모든 책이 목록에 올랐고, 코란도 포함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1758년까지 목록에 남아 있었고, 갈릴레오의 『대화』는 1822년까지 금서로 묶였다.(674쪽)

 

 * * *

 

"사제, 수사, 고위 성직자들도 암시장에서 갈릴레오의 『대화』를 구입하려 했다. 이탈리아 전역의 암시장에서 책값은 원래의 반 스쿠도에서 4∼6스쿠도로 크게 뛰었다.(675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Ⅰ』

 

 

갈릴레오 이전에도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가 있었다. 폴란드의 의사였던 코페르니쿠스(1473∼1543)였다. 그는 일찌감치 1513년에 지동설을 발표했지만 교회의 반대를 고려해 자신의 이론을 담은 저술인『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일부러 죽기 직전에 출간했다. 그는 단지 지구보다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것이 천체의 모델을 훨씬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고, 궤도 주기의 수학적 계산을 더욱 간편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은 '단지 하나의 이론'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 책이 출판된 이래 천문학자들은 차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타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확고하게 믿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철학자들과 카톨릭 교회 성직자들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갈릴레오는 바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과학자였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굳건하게 진리로 인정받아 온 사실이 한 순간에 엉터리로 뒤바뀌고, 전혀 새로운 세계관이 마침내 확고한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가 도리어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는 유명한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으나 곧바로 수학에 흥미를 느껴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피사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지내던 갈릴레오는 천문학에 뛰어들기 전부터 물체의 온갖 운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느껴 온갖 실험과 관찰에 몰두했다.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쇠공을 떨어트린 실험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 실험을 통해 물체의 자유낙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2,000년 가까이 인정받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틀렸음을 증명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피사 대학에서 쫒겨났다. 1592년에 베네치아 공국의 파도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거기서 18년 동안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면서 물리학 연구에 온전히 매진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의 삶을 획기적으로 뒤바꾼 사건은 파도바 대학으로 옮긴지 18년째 되던 해인 1609년에 일어났다. 160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의 안경 제작자들이 발명한 망원경을 손에 넣고 나서 무려 30배나 성능이 확대된 망원경을 손수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망원경을 통해 갈릴레오는 말 그대로 인류 최초로 천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광경들을 목격하게 된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들이 갈릴레오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달은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있어서, 그 험준한 지형은 마치 지구와 비슷했다. 금성은 마치 달처럼 그 모습이 변했다. 어떠한 별자리를 살펴보더라도, 기존에 알려진 것들에 비해서 수십 배 더 많은 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발견은 목성에 딸린 4개의 위성들이었다. 그것들은 목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목성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지구가 우주의 회전의 중심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9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옮긴이의 글>

 

 

갈릴레오는 이 놀라운 발견들을 정리해서 1610년에 『별들의 소식』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유럽의 지식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2,000년 가까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는 모든 게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제작하기 바빴고, 갈릴레오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갈릴레오는 이 덕분에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고, 자신의 고향인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는 태양의 흑점들을 관찰한 결과들에 대해서도 책으로 출판했다. 갈릴레오가 점점 더 지동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로마 교황청의 입장을 옹호하는 여러 성직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갈릴레오는 직접 로마를 방문했다.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승인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616년에 로마 교황청의 종교 재판소에서는 도리어 갈릴레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지 말라는 선고를 내렸다. 그만큼 기존 관념에 대한 뿌리깊은 확신은 강고했다.

 

종교 재판소에서는 "태양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어리석고 터무니없으며, 신학적으로 이단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여러 구절들과 명백하게 어긋나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갈릴레오에게 판결문을 전달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지구가 그 둘레를 움직인다는 이론에 대해, 이 이론과 견해를 가르치거나 변호하거나 논의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며, 차후 이에 관하여 그 어떠한 방법으로든, 말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지지하거나 가르치거나 변호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한다."(12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옮긴이의 글> 

 

 

판결문이 전달된 이후 교황을 알현하게 된 갈릴레오는 다행히 교황으로부터 신병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간신히 화를 면한 갈릴레오는 천문 관측을 통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온갖 증거들을 무수히 발견했지만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책으로 출판할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공식적으로 논쟁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620년대가 되면서 로마의 분위기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한 갈릴레오는 『시금저울』이라는 책을 출판해서 새로운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게 헌정했다. 그 책은 주로 천체들의 움직임, 고체와 유체의 회전 등을 다루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천문학자나 철학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이 들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교황은 갈릴레오의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했고, 갈릴레오는 1624년에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을 알현하고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교황은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론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이론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책을 써도 좋다고 친히 허락했다. 그러나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을 한다는 게 사실인 것처럼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피렌체로 돌아온 갈릴레오는 일생일대의 위대한 작품을 쓰기로 즉시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해서 로마 교황청의 검열을 거쳐 출판을 허락받은 책이 『대화』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이 유명한 책은 1632년 2월에 피렌체에서 1,000권이 인쇄되어 나왔다.

 

이 책이 출판되자 갈릴레오의 친구들은 경탄을 쏟아 냈고, 갈릴레오와 격렬한 논쟁을 벌여 왔던 숱한 적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책 속에서 우둔한 바보로 묘사된 샤이너는 갈릴레오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다. 그는 제수이트 신부이자 수학, 광학, 천문학을 두루 연구하면서 갈릴레오의 『대화』를 비판하는 책인 『태양 운동 입문』을 저술하기도 했다. 샤이너는 갈릴레오를 종교 재판에 회부하는 데 앞장섰고, 교회의 입장에서 갈릴레오를 공격하는 이론을 제공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갈릴레오가 책을 쓰도록 허락했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마저 『대화』를 읽고 나서 격노했다. 지동설을 하나의 가설로서 다룬다는 조건으로 책의 출판을 허락했지만, 책의 내용은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지동설이 실제 사실이라는 점을 너무나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교황이 스스로 강조했던 말이 책 속의 등장 인물인 머리 나쁜 심플리치오의 입을 통해 버젓이 발설된 점을 특히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건 마치 교황 자신을 (천동설을 믿는) 어리석은 심플리치오에 직접 빗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의 이상한 상상을 갖고 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제한하려 하는 것은 참람한 짓이다."

 

교황은 갈릴레오를 로마로 압송해 종교 재판에 회부하도록 명령했고, 종교 재판소는 갈릴레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으며, 갈릴레오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다음과 같은 참회 성사를 읽어 내려갔다. 1633년의 일이었다.

 

 

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고 빈첸초 갈릴레이의 아들이며, 나이 일흔이며, 여기 재판정에서 이단 행위에 대한 재판을 맡으신 대주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 눈앞에 성경을 놓고 거기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대, 저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로마 교황청과 가톨릭 교회가 믿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모든 조목을 믿어 왔으며, 앞으로도 믿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이 종교 재판소에서 제게 해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이런 틀린 개념을 절대로 갖지도, 옹호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했으며, 이 생각은 성경과 어긋남을 알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써서 출판한 책에서 이 저주받을 개념을 다루었으며, 거기에서 이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 많은 이유들을 꿰어 맞추고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런 행동이 이단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해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움직이지 않고, 지구는 중심에 있지 않고 움직인다고 제가 믿고 있다는 오해와, 제게 정당하게 쏠리는 이 강한 의혹을, 대주교와 모든 교인의 마음에서 없애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런 틀린 개념과 이단,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다른 어떠한 실수든 포기하고, 저주하고, 혐오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다시는 입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이와 비슷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단 행위를 하면 저는 그를 이 종교 재판소에 고발할 것이며, 제가 지금 있는 이 위치에 놓이도록 만들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정에서 제게 요구하는 어떠한 속죄 행위라도 지키고 따를 것임을 맹세합니다.

 

하느님에 맹세코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제가 만에 하나 이 약속과 맹세와 언명을 어길 때에는, 이 판결문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 성스러운 교회법과 다른 일반법 또는 특별법의 규정에 따른 모든 처벌과 고통을 감수할 것을 맹세합니다.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성경에 손을 얹고 위와 같이 맹세하고, 서약하고, 약속하고, 다짐합니다. 증인들 입회하에 제 손으로 이 맹세를 쓰고 이것을 읽습니다.

 

1633년 6월 22일, 로마 미네르바 교회에서

저 길릴레오 갈릴레이는 위와 같이 제 손으로 이 맹세를 썼습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옮긴이의 글> 

 

 

이 재판이 끝나고 나서 갈릴레오가 재판정을 나서는 동안에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 유명한 일화가 탄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갈릴레오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설마 이토록 엄중하고도 가슴 아픈 참회 성사를 하고 나서 곧바로 저런 말을 감히 입밖으로 낼 수 있었을까 싶지만, 뒤바뀔 수 없는 진실에 대한 과학자의 참을 수 없는 확신을 이토록 간단명료하게 웅변하는 말도 구경하기 어렵다.

 

이 유명한 종교 재판에서 갈릴레오가 남긴 참회 성사는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도그마에 갖힌 종교적 세계관과 엄밀한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적 세계관과의 충돌 문제뿐 아니라, 천재 과학자가 발견한 새로운 진리가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격렬한 저항과 맞닥뜨려야 하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남겼다는 '진실'에 관한 다음 명언은 언제 들어도 갈릴레오를 떠올리게 만든다.

 

모든 진실은 세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첫째, 조롱받는다.

둘째, 격렬한 저항을 받는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순교를 하더라도 자신이 애써 발견하고 실증해 낸 과학적 진실을 끝까지 지켰어야 옳았던 게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형식적으로나마 교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을 두고 굳이 비겁한 행동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갈릴레오는 이미 1616년에 종교 재판소로부터 지동설을 유포하지 말라는 판결을 받은 상태였지만, 스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로마 교황청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별다른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나자 더욱더 연구에 매진한 끝에 미리 교황청으로부터 '출판 허가'까지 받은 뒤 『대화』를 출판했던 터였다. 갈릴레오는 아마도 자신의 저서 때문에 나중에 종교 재판소에서 크나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관찰하고 추론해 낸 온갖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숨기거나 축소하거나 적당하게 얼버무리지 않고 옹골차게 끝까지 밀어부쳤다. 비록 그 주장들이 아무리 우리의 감각이나 일반 관념에 어긋나고, 또한 로마 교황청에서 한사코 금기시하는 지극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마치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갈릴레오의 문학적 재능이 번뜩이는 매우 수사적인 작품이다.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 자체도 너무나 흥미로운 데다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뿌리 깊게 박힌 고정 관념을 절묘하게 타파해 나가는 갈릴레오의 이야기 솜씨는 그 어떤 과학서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하다. 더군다나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법한 천체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음에도, 갈릴레오가 문재(文才)를 발휘하여 곁들여 놓은 르네상스인 특유의 유머와 해학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교황마저도 갈릴레오의 글솜씨에 탄복해서 결국 이런 책을 쓰도록 허용했다고 하는 말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화를 직접 나누는 인물들은 셋이다. 천동설 및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이론을 신봉하는 심플리치오, 심플리치오가 옹호하는 이론의 헛점을 파고들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온갖 과학적 증거와 수식을 설명하는 살비아티,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의 균형을 잡으면서 대체로 살비아티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그레도가 그들이다. 갈릴레오 자신은 아주 가끔씩 제3의 인물로만 등장한다. '우리의 절친한 동료 학자에 따르면' 하는 식으로.

 

대화는 모두 나흘 동안 진행된다. 첫째 날의 대화는 우주의 일반적인 구조와 그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험적, 논리적 과정을 담고 있다. 망원경을 통해서 관측한 달의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낮달과 구름과의 비교,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골고루 환하게 빛난다는 사실, 초생달일 때 낫 모양의 달 모습 뒤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둥근 모양이 지구에서 반사된 빛 때문이라는 이야기 등등은 현대인이 들어도 신기하기만 하다.

 

둘째 날의 대화는 지구의 자전에 관한 내용으로, 갈릴레오의 관측 결과뿐만 아니라 그의 천재성에 빛나는 독창적인 추론이 얼마나 예리하고 탁월한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그토록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면 땅 위에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구름들은 왜 그토록 고요한지, 땅 위에 지어진 숱한 건물들은 왜 휩쓸려 쓰러지고 바람에 날라가지 않는지 등등에 대한 온갖 비유와 설명들은 누구에게라도 다시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셋째 날의 대화는 지구의 공전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새로 발견된 별과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다소 복잡한 계산식도 등장하고, 수학이나 삼각함수를 이용한 설명들도 적잖이 포함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지구의 공전을 이용해서 외행성(화성, 목성, 토성)의 역행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태양의 흑점들이 태양의 표면에서 움직이는 궤적을 이용해서 지구의 공전을 설명한다.

 

넷째 날의 대화는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을 다룬다. 갈릴레오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일어난다는 잘못된 추론을 펼치지만 '갈릴레오의 실수'로부터 배울 점도 아예 없지는 않다. 갈릴레오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이라는 사실까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공전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한다는 점은 추론해 냈다. 갈릴레오는 중력이나 관성의 법칙은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달이 바닷물을 잡아당긴다는 만유인력의 개념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이 끝나고 나서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교유는 허용되었다. 차츰 동료 학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유럽의 먼 나라에서 갈릴레오를 만나려고 찾아오는 학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그럴 때 갈릴레오는 동료 학자들에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을 법하다. 왜냐하면 갈릴레이의 명언은 훗날에 일부러 지어낸 게 아니라, 갈릴레오가 생존해 있을 당시에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니 말이다.

 

갈릴레오의 『대화』를 읽고 나서도 기존의 철학자들과 성직자들은 고집불통으로 갈릴레오의 주장과 증거들을 부인했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잊지 못할 망언을 남겼다. 피사 대학의 키아라몬티는 갈릴레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동물들은 팔다리와 근육이 있어서 움직이지만, 지구는 팔다리와 근육이 없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라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로마 교황청에서 금서로 판결한 이후 인쇄소까지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이미 다 팔려 나갔고, 몇 년 뒤에는 라틴어 번역본까지 출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600년에 있었던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과 1633년에 있었던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과학 연구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대화』를 저술한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한 끝에 1638년에 『새로운 두 과학 : 고체의 강도와 낙하 법칙에 관하여』를 출판했다. 갈릴레오는 그 책에서 물체의 낙하 법칙뿐 아니라, 뉴턴의 운동 법칙 중 제1법칙과 제2법칙을 거의 완벽하게 제시해 놓았다고 한다. 갈릴레오는 출판 금지령 때문에 그 책을 멀리 네덜란드에서 출판했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출판된 후 200년 가까이 금서로 묶였지만, 과학자 갈릴레오가 공식으로 복권되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79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갈릴레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 실수였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특별위원회를 소집했다. 1992년에 이르러 마침내 갈릴레오는 복권됐다. 특별위원회가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 최종 보고를 한 뒤였다.

 

갈릴레오는 『대화』의 첫째 날에 '망원경을 통해 본 달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대화를 남겼다.

 

살비아티

…… 이것을 보면, 달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한 면만 지구를 향하고 있으며 이 이상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어.

 

사그레도

이 신기한 발명품 덕분에 온갖 희한한 것들을 관찰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군.

 

살비아티

다른 위대한 발명품들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러면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될 거야.(123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영면에 잠긴 갈릴레오가 어느 날 문득 피렌체의 무덤에서 깨어나 단 하루 동안이라도 '오늘날의 세계'를 슬쩍 엿보았다면 과연 얼마만큼 많이 놀랄까? 자신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장비와 고도의 계산 능력을 갖춘 인간이, 온갖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들이 가득 담긴 '별들의 고향' 구석 구석을 아주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만큼 놀랄까? 설마 지금도 여전히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담담하게 중얼거리지는 않겠지? 더군다나 나처럼 감상에 빠져 어줍잖은 글월을 두 줄씩이나 꾸며내는 일은 더더욱 없겠지?

 

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총총히 빛나건만,

별빛을 찾는 인간들의 눈동자는 날이 갈수록 더 큰 놀라움으로 가득찬다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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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2018-09-10 0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 잘 지내셨나요?
언제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그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자료,함축적이며 정성들인 리뷰와 글에 감동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면서 지금처럼 귀한 글을 남겨주세요^^

oren 2018-09-11 22: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랜드슬램 님.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선들선들한 공기가 느껴지는 가을이네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어느 정도 습관을 들이긴 해도, 막상 어떤 글이든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늘 주저되곤 합니다. 괜히 어줍잖은 글 하나 보태서 글 읽는 분들께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여기 저기 뒤져 보고,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들을 소신껏 하나의 글로 정리하고 마무리하고 나면 보람도 느껴집니다. 늘 잊지 않고 찾아주시고 분에 넘치는 성원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화 -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6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이무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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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살비아티

 

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어. 하도 한심한 이야기라서, 내가 여기에서 그걸 소개하고 싶지도 않네.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의 체면이 문제가 아니야.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으면 되지. 이건 인류 전체에 대한 모독이 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겠네.

 

내가 오랜 시간 관찰해 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앞뒤가 뒤바뀌게 추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먼저 마음속으로 어떤 결론을 내려.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또는 그들이 전적으로 믿는 사람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어. 그 결론을 뼛속 깊이 새겨 놓아서, 도저히 제거할 수 없어.

 

그들이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논리는, 어떤 것이든 무조건 손뼉 치고 환영을 하지. 그들이 스스로 발견했든 남이 제기했든, 아무리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논리라도 말일세. 반면에 그들의 결론에 어긋나는 것이면, 아무리 정교하고 확실한 것일지라도, 경멸을 하고 화를 벌컥 내. 덤벼들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나서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상대방을 억눌러 침묵을 강요하려고 음모를 꾸미기를 서슴지 않아. 나는 이미 여러 번 당했네.

 

사그레도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런 사람들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추론을 통해 결론을 확립하는 게 아니고, 이미 확고하게 내려놓은 결론에다 전제와 추론을 꿰어 맞추고 있어. 그러니 전제와 추론이 뒤틀리게 될 수밖에 없어. 그런 사람을 가까이해 봐야 득이 될 게 없네.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 불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위태롭게 될 수도 있어.(430∼431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기대해 보게. 자신이 남들보다 학식이 뛰어남을 보이려는 욕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자신의 권위에 대한 확신과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과장해 말하게 되는지, 자네들이 들으면 놀랄 걸세.(442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심플리치오, 이 사람의 교묘한 잔꾀를 자네가 알아차렸군. 뭐 그렇게 대단한 꾀는 아니었지만 말일세. 이 사람의 정체를 알아야 하네.

 

자네를 비롯해 다른 단순한 철학자들의 순진함으로 자신의 교활함을 가린 다음에, 자네의 환심을 사려고 교묘하게 아첨하고 있어.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네의 야망을 부추기고 있어. 소요학파의 절대 불변인 하늘을 공격하려고 덤비는 귀찮은 천문학자들을 잠잠해지도록 만들었다고 뻐기면서, 더구나 그들의 무기를 써서 그들을 공격해 꼼짝못하게 만들었다고 떠들거든. 이 사람의 정체를 깨닫게 되면, 자네는 놀라고 분개하게 될 걸세.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443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 그러나 이 사람의 실수는 그런 식으로 덮을 수가 없네. 이 사람은 모르는 척 하고 있어. 우리 모두와 자신이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네. 우리의 무지를 이용해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자기 이론의 주가를 높여 선전하고 있어.(454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실수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자 온갖 시시껄렁한 핑계만 댄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고 비웃지. 지금 이 사람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톱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네.(481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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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2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도 그렇지만, 대화체로 구성된 작품들은 독자들을 보다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됩니다^^:)

oren 2018-08-24 00:57   좋아요 1 | URL
갈릴레이는 수학, 기하학, 물리학, 천문학만 잘 했던 사람이 아니라, 진리와 허위를 가려 내는 대화법에 아주 통달한 사람 같아요. 말을 어찌나 조리있게 잘 하는지 거듭 감탄하게 됩니다.^^
 
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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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이런 상념들은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그를 괴롭히고 지치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그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읽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읽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최근 그는 모스크바에서나 시골에서나 유물론으로부터는 해답을 발견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플라톤, 스피노자, 칸트, 셸링, 헤겔, 쇼펜하우어 등 삶을 윰물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철학자들의 책을 다시 읽어 보거나 처음으로 통독을 하곤 했다.

 

그들의 사상은 그가 책을 읽거나 다른 학설, 특히 유물론에 대한 반박을 찾으려 할 때는 유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책을 읽거나 직접 문제의 해결을 찾으려 할 때면, 언제는 곧 똑같은 것이 되풀이되곤 했다. 정신, 의지, 자유, 본질 같은 모호한 말들의 정의를 따라가는 동안, 철학자들이나 그 자신이 그에게 쳐 놓은 말들의 덫에 일부러 빠지는 동안, 그는 마치 무언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인위적인 사유 과정을 잊은 채, 삶에서 벗어나 그저 주어진 실을 따라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만족을 준 것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카드로 만든 집 같은 그 인위적인 구조물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그 구조물은 삶에서 이성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와 상관없이 그저 치환된 것에 불과한 똑같은 말들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곤 했다.

 

언젠가 그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의지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에 사랑을 넣어 보았다. 그러자 그 새로운 철학은 그가 그 철학을 벗어나기까지 이틀 동안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삶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자, 그것 역시 와르르 무너지며, 몸을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하는 모슬린 옷이었음을 드러냈다.(501∼50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559∼560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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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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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를 쓰다 멈춘 아이에게 하는 말

 

'잘했어!' 라는 그의 말에는 뭔가 모욕적인 것이 있었다. 마치 떼를 쓰다 멈춘 아이에게 하는 말 같았다. 더욱더 모욕적인 것은 죄를 지은 듯한 그녀의 태도와 자신에 찬 그의 태도 사이의 대조였다. 그래서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기 안에서 투쟁의 욕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그것을 억누르고 똑같이 밝은 태도로 브론스키를 맞이했다.(40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녀는 첫 번째 객차의 중간 지점과 자신이 나란해진 순간 그 아래로 몸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팔에서 끌어내리던 빨간 손가방이 그녀를 붙드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다. 기차의 중간 지점은 그녀를 지나쳐 버렸다. 수영을 하러 물 속에 들어갈 준비를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십자가를 긋는 친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속에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던 암흑이 찢어지고, 일순간 과거의 모든 눈부신 기쁨과 함께 삶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객차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중간 지점이 그녀와 나란히 온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빨간 손가방을 내던지고는 어깨 사이에 머르를 푹 숙인 채 객차 밑으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는 마치 곧 일어날 자세를 취하려는 듯 경쾌한 동작으로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한 짓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덪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소한 농부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 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455∼456쪽)

 

(나의 생각)

소설이 창조한 인물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인정받는 안나 카레니나가 이토록 안타까운 모습으로 투신 자살하는 모습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혼란스런 감정을 일으킨다.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다 싶기도 하고, 오죽 힘들었으면 기차에 몸을 던졌을까 싶기도 하고, 자살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안나의 모습을 보고 말렸더라면 그 후로는 또 어떤 드라마틱한 삶을 이어나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독자들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안나의 마음 속에는 (그 짧은 순간까지도)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갔을까, 작가 또한 이 대목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들을 고치고 또 고쳤을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거듭 음미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기차역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래서 그는 그녀를 자신의 뇌리에 떠오르던 마지막 순간의 그녀같이 잔혹하고 복수심에 찬 모습이 아니라, 기차역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신비롭고 매혹적이고 사랑 가득하고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남에게 행복을 주던 그 모습으로 기억하려 애썼다. 그는 그녀와 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그러한 순간은 독에 오염되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그러나 씻을 수 없는 회한을 남긴 채 실현되어 버린 그녀의 의기양양한 협박만을 기억했다.(486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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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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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의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곳

 

"그 애는 모든 걸 자네의 관대함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어. 그 애가 자네에게 구하고 간청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 애가 처한 그 참기 힘든 처지에서 그 애를 끌어내 달라는 거야. 그 애는 이미 아들도 바라지 않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잠시만이라도 그 애의 입장이 되어 봐. 그런 처지에 있는 그 애에게 이혼의 문제는 삶과 죽음이 달린 문제야. 만약 자네가 예전에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그 애도 자신의 처지와 타협하고 시골에서 살았을 거야. 하지만 자네는 이미 약속을 했고, 그래서 그 애도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거야. 그리고 벌써 여섯 달 동안 그 애는 매일같이 자네의 결정을 기다리며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의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곳에서 말이야. 그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죽음을, 혹은 자비를 약속하면서 그 목에 몇 달 동안 계속 올가미를 씌워 두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 애를 불쌍히 여겨 줘.(365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화합과 불화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396쪽)

 

(나의 생각)

이 대목은 이 소설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문장과 서로 묘하게 호응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래서 안나는 질투하면서 그에게 분개했고 모든 것 속에서 분개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놓인 모든 괴로움에 대해 그를 비난했다. 그녀가 모스크바의 하늘과 땅 사이에서 기다림으로 보낸 그 고통스러운 처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꾸물거리고 주저하는 것, 자신의 고독,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처지에 놓인 모든 괴로움을 이해하고 나를 그 속에서 구해 줄 텐데……. 그녀가 시골이 아닌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 것도 그의 잘못이었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시골에 파묻혀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교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그런 끔찍한 상황에 몰아넣고도 그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39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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