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비공개 카테고리'를 살필 때가 있다. 몇 년 만에 거길 다녀왔다.

온갖 '정리되지 않은 글'과 '미완성 리뷰'들이 거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간혹 '오래된 사진'도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고, '온갖 스쳐가는 상념들'도 태연히 거기서 잠자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 보낸 후 비통한 눈물을 쏟아내며 아주 길게 썼던 '추모의 글'도 오랜만에 다시 봤다. 그 글을 쓰면서 눈물을 한참이나 쏟아낸 것 같았는데, 그런 흔적은 이제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이렇게 세월이 가는구나... 싶었다.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히말라야에 갔을 때 찍었던 동영상이 '거기'에 떡하니 있었다. 나는 그게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많은 것들을 새까맣게 잊고 살아왔구나 싶었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겠지...





사진으로 되돌아본 2013년






아... 이제야 또 생각났다. 내가 왜 이러는지를.

오늘 모처럼 술을 과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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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제, 오늘, 그리고' 라는 제목으로 쓰다 만 글에 담았던 '니체의 글'을 엉뚱하게 여기다 덧붙인다. 덧붙이는 건 내 마음이다. 그리고 하나의 습관이다. 그리고, 오늘은 어쨌든 취했으니까, 뭔가 약간 뒤죽박죽이어도 그리 나쁠 거 없다. 그리고... 그리고... 이제 오늘을 마무리하자...)



너는 왜 너의 행복에 대해 내게 말하지 않고 그저 나를 쳐다보기만 하는가?

 

풀을 뜯어먹으며 네 옆을 지나가는 가축 떼를 한번 보라. 그들은 어제가 무언지, 오늘이 무언지 모르고 그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먹고 쉬고 소화하고 다시 뛴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 자신들의 호불호(好不好)에, 다시 말해 순간의 말뚝에 묶여 있으며, 그래서 우울함도 권태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 이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인간임을 동물 앞에서 자랑하면서도, 동물의 행복을 시기심 어린 눈으로쳐다보기 때문이다 ㅡ 그는 동물처럼 권태도 없이, 고통도 없이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의 바람은 헛될 뿐이다. 인간은 동물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너는 왜 너의 행복에 대해 내게 말하지 않고 그저 나를 쳐다보기만 하는가? 동물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야 ㅡ 그러나 동물은 이 대답 역시 곧 잊어버렸고 침묵했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망각을 배우지 못하고 항상 과거에 매달려 있는 자신에 대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무리 멀리, 아무리 빨리 달려도, 사슬은 함께 따라다닌다. 어느 순간 여기 있다가 휙 지나가버리는 순간, 그 이전에도 무였고 그 이후에도 무인 순간이 유령처럼 다시 오고, 나중에 어느 순간의 휴식을 훼방한다. 시간의 두루마리에서 한 장씩 끊임없이 풀려서 떨어져 나와 훨훨 날아간다 ㅡ 그리고 갑자기 다시 훨훨 날아든다. 인간의 품속으로. 그런 다음 인간은 "기억이 난다"라고 말하면서, 곧 잊어버리고 매 순간이 정말 죽어서 안개와 밤 속으로 가라앉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보는 동물을 부러워한다. 이렇게 동물은 비역사적으로 산다. 기이한 분수(分數)를 남기는 어떤 수처럼 동물은 현재에 완전히 몰두하며, 꾸밀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감추지 않으며, 매 순간 진정 있는 모습 그대로다. 다시 말해 동물은 정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인간은 과거의 커다란 하중, 점점 더 커지는 하중에 저항한다. 이 과거의 하중은 그를 짓누르거나 옆으로 휘게 만든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짐으로 그의 앞길을 힘들게 한다. 그는 이 짐을 겉으로는 부인할 수 있고 자기 또래들과 교제하면서, 이들의 부러움을 사려고 곧잘 부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풀을 뜯는 가축을 보거나 가까운 주변에서 과거를 부인할 필요도 없고 과거와 미래의 울타리 사이에서 행복한 맹목성 속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마치 잃어버린 낙원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는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놀이도 방해를 받고야 만다. 너무 일찍 아이는 망각으로부터 불려 나온다. 그리고 아이는 "그랬다"라는 말을, 투쟁, 고통, 권태와 함께 인간에게 다가와 그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ㅡ 결코 완성되지 않는 미완료 과거임을 상기시켜주는 저 암호를 배운다.


 - 니체, 『반시대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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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3-3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 님의 이런 글 정말 너무 좋으네요. 술 좀 더 드시고 이런 글 또 써주세요.ㅋㅋㅋ
동영상 《랑탕계곡에서 다시 카트만두로》는 정말 진귀한 동영상입니다.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가 너무나 맑고 정겹게 들립니다. 인사를 건네는 것일까요? 귓가에 남아 계속 맴도네요~. 험준한 산악 풍경도 우리 한국 풍경보다 훨씬 더 장대하긴 한데요. 비포장 산길은 어린 시절 다니던 옛 시골 산길을 연상케 하네요. 그래서 동영상 속 풍경이 무척 친근해 보입니다. 근데 화질도 음질도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카메라가 어떤 기종인지도 궁금하네요. oren 님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진귀한 동영상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oren 2017-03-30 12:18   좋아요 0 | URL
qualia 님 말씀처럼, 제게도 산골마을 아이들의 목소리가 정말 정겹게 들리네요. 네팔 사람들은 인사할 때 ‘나마스떼!‘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 어렵네요. ‘과자나 초콜렛‘ 등을 좀 달라고 조르는 듯하기도 하구요. 저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저런 풍경들이 그리 낯설지가 않더군요. 저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검정고무신에 책보자기를 등에 매고 먼지투성이, 자갈투성이 신작로길로 등하교를 했으니까요.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바뀌는 산골 풍경들을 벗삼아, 신작로를 벗어나 지름길로 다닐 땐 징검다리도 건너고 논둑길, 밭둑길로도 다녔지요. 따스한 봄날엔 참꽃도 따먹고 보리둑도 실컷 따먹었고요. 마을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면서 먼 데 읍내까지 학교를 다니던 그 때 그 시절이 가끔씩은 눈물겹도록 그리울 때도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