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종의 관능적인 탐욕

 

나는 다시 한 번 집을 옮길 작정이다. 내 주위로는, 가구가 빠져 나온 구석의 은밀한 먼지 속에 쓰러질 듯 쌓인 책더미들이 마치 사막 한가운데의 풍화에 깎인 바위 모양으로 불안하게 서 있다. 눈에 익은 책들을(어떤 책은 색깔로 알아보고, 어떤 책들은 모양으로도 무슨 책인지 알고, 대다수는 표지에 쓰인 세부 사항을 읽어야 알지만 이런 책들은 거꾸로 놓였거나 비뚤게 놓여 있기 십상이어서 제목을 읽으려면 거꾸로 혹은 기묘한 각도로 봐야 한다) 한 권 한 권 쌓아올리면서 나는,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이 뻔한 데도 그렇게 많은 책을 간직하려는 이유는 대체 뭘까 궁금해한다. 책 한 권을 뽑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혼자서 이렇게 말한다. 며칠 후면 그 책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또 어느 책이든 지금까지 나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던 책은 한 권도 없었다고. 그리고 이 많은 책들을 집으로 가져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그 이유란 것이 장래 어느 날 다시 한 번 유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철저함과 희귀함, 그리고 얄팍한 학식을 구실로 내세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계속 늘어만 가는 이 책 무리들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종의 관능적인 탐욕이라는 사실을.(342쪽)

 

 

거의 잊혀진 책 속에서 한때 그 책의 독자였던 나의 흔적을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책으로 흘러 넘치는 서가를, 다소 익숙한 이름이 꽂혀 있는 그런 서가를 보기를 즐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목록이랄 수 있는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에게 넌지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또 거의 잊혀진 책 속에서 한때 그 책의 독자였던 나의 흔적을-갈겨쓴 글자나 끼워 놓은 버스표, 이상한 이름과 숫자가 적힌 종이 쪽지, 책의 앞뒤 여백에 적힌 날짜나 어떤 장소, 이런 것들은 아주 오랜 옛날 어느 여름날의 머나먼 호텔방이나 어느 카페로 나를 데려다 주는데-발견하기를 좋아한다. 책을 꼭 포기해야 했다면 그렇게 했을 테고 또다시 어느 책을 시작으로 책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 몇 차례 필요에 의해 책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때는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책을 포기할 때는 무엇인가가 죽어 가고 있다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고, 나의 기억은 슬픈 향수처럼 끊임없이 그 책으로 되돌아가곤 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세월이 흘러 기억력도 쇠잔해지고 과거를 떠올리는 힘도 점점 약해지는 마당에 그 책들은 이제 약탈당한 도서관처럼 느껴진다. 많은 열람실은 굳게 닫혀 버렸고, 아직 들락거릴 수 있도록 개방된 열람실의 서가에는 거대한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나는 남아 있는 책 중에서 한 권을 끄집어내고는 책장 몇 장이 파괴자에 의해 찢겨 나간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희미해질수록 내가 읽었던 책들의 창고를, 텍스트와 목소리와 향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 수집품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 더욱 간절해진다. 이제 이 책들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일이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과거에 대한 질투 때문이 아닌가 싶다.(342∼343쪽)

 

(나의 생각)

오래된 책, 더 이상은 '함께 하기에 지친' 책들과 마침내 결별하는 순간은 늘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오래된 책들과 결별할 때라도 그냥 단칼에 헤어질 수는 없다. 혹시라도 그 책 속에서 '뭔가' 나와의 인연을 끊기 어려운 '지푸라기 하나'라도 발견하게 될지, 혹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중한 옛 추억'으로 이끌 끄나풀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지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별의 순간'에 오랜 과거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그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시간의 황홀함이 그립다.

 

 

아득한 과거 속에 살고 있다는 꿈

 

발터 벤야민은 "수집가들은 자신들이 아득히 먼 곳이나 아득한 과거 속에 살고 있다는 꿈을 꿈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 필수품조차 제대로 손에 넣지 못해 허덕이는 마당에 자신들은 장당의 필요성에는 초연하며 좀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고 쓰고 있다.(344쪽)

 

 

개인 서재야 말로 대를 이어 더욱 넓혀야 하는 가보(家寶)

 

18세기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는 개인 서재야 말로 대를 이어 더욱 넓혀야 하는 가보(家寶)로 통했다. 서재에 꽂힌 책들은 화려한 의상과 품행 못지않게 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우리는 18세기 상반기에 가장 유명했던 애서가의 한 사람이었던 호임 백작(그는 1736년에 마흔 살을 일기로 사망했다)이 책으로 가득한 서가 하나에서 키케로의 『웅변집』한 권을 뽑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그는 그 책이 수많은 도서관에 흩어져 있는 수백 권 혹은 수천 권의 똑같은 책 중 하나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 제본되고 자신의 손으로 해설도 적고 가문의 문장까지 금박으로 새긴 자기만의 책으로 간주했을 것이다.(344∼345쪽)

 

책 도둑에 대한 경고문

 

아니면 이런 위협은 어떤가. 바르셀로나에 있는 산 페드로 수도원의 도서관에 적힌 것이다.

 

책을 훔치거나 빌려 가서 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손안에 든 책을 뱀이 되게 하여 그 사람을 갈기갈기 찢게 하여라. 그 사람의 전신을 마비시키고 육신을 시들게 하여라. 자비를 구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게 하고, 죽을 때까지 절대로 고통을 멎게 하지 말라. 절대로 죽지 않는 버러지라는 증거로, 책벌레로 하여 그의 내장을 갉아먹도록 하라. 마침내 그가 마지막 처벌장으로 향하면 지옥의 불길이 그를 영원히 삼키게 되리라.


그렇지만 열정적인 연인 사이처럼, 그 어떤 저주의 말도 특정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독서가들을 망설이게 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어떤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그 책의 유일한 소유자가 되겠다는 욕망은 다른 욕망과는 달리 탐욕스런 면을 지니고 있다. 리브리의 동시대인인 찰스 램도 "한 권의 책은 그것이 나의 소유가 될 때, 그리고 얼룩이 어디에 묻어 있는지 또 어느 책장이 접혀 있는지를 잘 알게 될 때, 그래서 그런 얼룩을 보면서 버터를 바른 머핀을 앞에 놓고 차를 마시던 그 어느 날을 추억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질 때 더 잘 읽힌다"고 고백했다.(352∼353쪽)

 

 

사랑에서의 정절만큼이나 지키기 어려운 것

 

독서 행위는 신체의 모든 감각이 개입하여 친밀한 육체 관계를 구축한다. 두 눈은 책장에서 단어를 끌어내고, 두 귀는 읽는 소리를 듣고, 코는 종이와 잉크, 접착제, 판지나 가죽 냄새를 맡고, 손으로는 거칠거나 부드러운 책장, 아니면 부드럽거나 딱딱한 표지를 어루만진다. 심지어 독서가의 손가락이 혓바닥에 닿을 때에는 간혹 미각까지도 독서 행위에 동참하기도 한다(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살인자가 사람들을 독살하는 것도 이런 방식이다). 이 모든 것들을 독서가들은 다른 사람들과 나눠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다른 사람의 소유로 되어 있을 경우, 소유권법은 사랑에서의 정절만큼이나 지키기 어려운 것이 된다.(353쪽)

 

이 모든 책이 나의 것이로구나

 

또 물리적 소유는 때때로 지적 이해와 동의어가 된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책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경향이 강하다.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재에서도 마치 가진 사람이 임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는 책의 등짝을, 그것도 방의 사방 벽을 따라서 나를 지키려는 듯 얌전하게 쭉 서서 책장을 넘겨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책의 등을 흘끗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입에서는 이런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이 모든 책이 나의 것이로구나." 그럴 때면 내용을 들추며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책에 담긴 지혜가 우리를 충만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브리 백작 못지않은 죄를 짓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같은 제목으로 똑같이 찍히는 책이 수천 부에 이르고 판도 수십 개가 될 텐데도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책만이, 다른 어느 책도 아니고 바로 그 책만이 '책'이라 믿고 있다. 주석(註釋), 얼룩, 이런저런 표시, 어떤 특정한 순간과 장소, 이런 것들이 그 책에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가치, 필사본과 같은 성격을 부여한다. 우리는 리브리의 도둑질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위의 밑바닥에 깔린 갈망, 이를테면 한순간이나마 한 권의 책을 '나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충동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정직한 남성이나 여성에게도 흔하게 나타난다.(353∼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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