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뷔블리스, William Adolphe Bouguereau, 1884

 

 


뷔블리스는 아폴로의 손자인 자기 오라비에게 걷잡을 수 없는

연정을 품었으니, 뷔블리스야말로 소녀들은 허용된 것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오라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오누이간의 사랑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

그녀는 혈족이란 말을 싫어했으며, 어느새 그를 여보라고 부르며

그가 자기를 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뷔블리스라고

불러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마음속에 감히 불순한 욕망을 품지는 않았다.

하나 부드러운 잠에 사지가 풀리게 되면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가끔 보았다. 그녀는 오라비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잠들어 누워 있는데도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꿈에서 본 것을

되새기며 갈팡질팡했다. "아아, 나처럼 불쌍한 애가 있을까!

이 고요한 밤의 환영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런 일은 얼어나지 말았으면! 왜 나는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그를 곱지 않게 보는 눈에도 그가 미남인 것은 사실이야. 나도 그가

마음에 들어. 오라비만 아니라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테지. 그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였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의 누이야.

내가 깨어 있을 때 그런 짓을 하려고 시도하지만 않는다면야,

가끔 잠이 그와 비슷한 꿈과 함께 돌아왔으면 좋겠어.

꿈에는 증인도 없고, 그렇다고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오, 베누스여, 그리고 부드러운 어머니와 함께하는

쿠피도여,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실감나는 쾌락에

나는 사로잡혔던가! 누워 있었을 때 나는 골수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생각만 해도 나는 즐거워.

비록 그것이 짧은 쾌락에 지나지 않고,

밤은 우리가 시작한 일을 시기하여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말이야.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454∼486행

 

 

 

그녀는 시작하다가는 망설였고, 쓰다가는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적다가는 지우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녀는 손에 쥐었던 서판을 놓는가 하면 놓아둔

서판을 다시 쥐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지 못했으니,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담성과 부끄럼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그대의 누이가"라고 적었다가 누이란 말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고 밀랍 표면을 문지른 다음 이런 말들을 적었다. "여기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가 안녕하기를 빌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그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녕하지 못할 거예요. 아아, 그녀는

이름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대가 물으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 용건을 말하고, 내 희망이 확실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내가 뷔블리스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대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창백하고 마른 내 얼굴,

가끔 눈물이 글썽이는 내 두 눈, 뚜렷한 이유도 없는 내 한숨,

잦은 포옹, 그리고 그대가 알아챘는지 몰라도 도무지 누이가

하는 것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내 입맞춤이 그 증거예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523∼539행

 

  


노인들이나 법도를 알고,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묻고, 법규를 따지며 지키라 하세요!

경솔한 사랑이 우리 또래에게는 어울려요. 우리는 무엇이

허용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며,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어요.

그 점에서 우리는 위대한 신들의 본보기를 따르고 있지요.

엄하신 아버지도, 소문에 대한 거리낌도, 두려움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은밀한 사랑의 즐거움을 남매라는 이름으로 가리게 될 거예요.

그러면 나에게는 그대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눌 자유가

주어질 것이며, 우리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포옹하고

입맞추어도 좋을 거예요. 그만하면 부족한 게 뭐죠?

그대는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하지만 극단적인 정염이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고백하지 않았을 여인을 불쌍히 여기세요. 그대는

내 무덤에 내 죽음의 원인으로 그대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게 하세요!"

그녀가 아무 소용없을 이런 말을 적어 넣었을 때

서판이 가득 차 맨 마지막 줄은 가장자리에 매달렸다.

그녀는 지체 없이 사실상 자신의 범죄를 고발하는 이 편지에다

이름을 새긴 보석 반지로 도장을 찍었는데, (입에 침이 말라) 눈물로

그것을 적셨다. 그리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하인 한 명을 부르더니

소심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가장 충실한 하인이여, 이것을 전하게,

내" 라고 말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오라버니께!" 라고 덧붙였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551∼570행

 

  


그는 정복될 거야! 다시 해보아야 해. 내가 일단 시작한 일에

나는 결코 싫증내지 않을 거야. 내 몸에 숨결이 남아 있는 한 말이야.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 최선책이겠지. 하나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 최선책이겠지. 하나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구애를 그만둔다 해도 그는 내 다담한 행동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거야.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면 그 때문에

오히려 나는 경솔하게 변덕을 부렸거나 그를 시험해보았거나

그에게 덫을 놓은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내 마음을

부추기고 불태우는 것은 사실은 사랑의 신인데도

그는 틀림없이 내가 애욕에 제압되어 그러는 줄 알겠지.

간단히 말해, 죄를 짓고도 짓지 않은 것으로 할 수는 없어.

나는 편지도 썼고 구애도 했어. 나는 내 욕망을 드러냈어.

더 이상 아무 짓도 않는다 해도 나를 죄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앞으로 남은 일은 희망은 키울지언정 죄는 별로 키우지 않겠지."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녀는 시도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다시 시도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절도를 잃었고, 불행히도 거듭해서 퇴짜를 맞았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616∼632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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