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4. 5. 1(목) ∼ 5. 3(토)

이동 경로
 
    일산 → 변산반도 국립공원 → 남여치통제소 → 월명암 → 직소폭포 → 원암통제소 → 내소사
→ 곰소 염전
    → 채석강, 격포항(1박) → 새만금방조제 → 성주사지 → 성주산 자연휴양림(2박) → 보령댐 → 일산




 - 변산반도 국립공원 안내도




 - 현위치는 남여치통제소.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고개를 넘어 내소사 쪽으로 넘어가는 데 4시간이면 충분하다.





 - 봄빛 따사로운 월명암.
   (월명암은 쌍선봉 정상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신라 신문왕 12년(692년)에 부설거사가 창건하였다.)





 - (이때만 해도)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에 있었다.





 - 월명암을 지나 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눈 앞이 탁~ 트이고 까마득히 저 멀리 호수가 반짝 빛난다.





 - 호수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는 '곰소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앞바다이자 줄포만일 듯.



 - 초록빛 숲에 둘러싸인 호수가 봄 햇살에 에메랄드처럼 빛난다.





 - 산 속 깊숙한 곳에 핀 붉디붉은 철쭉엔 호랑나비들이 연신 자리를 옮겨 앉느라 바쁘다.





 - 새봄을 맞아 온갖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서로 노래하며 화답하듯 재잘거린다.




 - 직소보에 가득 담긴 물 덕분에 숲들이 더욱 울울창창한 듯...




 - 저 계곡 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나 맑고 깊은 샘이 나올까.





 - 호수를 지나 얼마 안 가니 어김없이(?) '선녀탕'이 나타난다.




 - 과연 선녀탕은 '나뭇군'이 금새라도 훌렁훌렁 옷을 벗고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을 만큼 물이 맑았다.



 


 - 가파르게 이어지는 산길 옆으로는 크고 작은 폭포가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기 바쁘다.





 - 직소폭포.
(변산 8경중 2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30m 높이에서 힘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이 압권이다. "직소폭포와 중계 계곡을 보지 않고서는 변산에 관해 말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 내소사(633년 백제 무왕 34년에 혜구두타가 창건)



 -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600m 전나무숲길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 대웅보전.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문화재.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토막을 끼워맞춘 것으로 유명하다.



 - 대웅보전의 문살 문양. 연꽃·국화·모란 등의 꽃문양이 새겨져 있는 문살을 보면 마치 '꽃밭'을 연상케 한다.




 - '대웅보전의 문살문양은 원래 채색이 돼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벗겨져 나뭇결만 남았다'고 한다.
(대웅보전 문살에 새겨진 모란·연꽃·국화 등의 문양에는 청빈과 절개, 평안을 기원하는 목공의 소박한 희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고, '꽃공양'을 하려 했던 목공의 깊은 불심을 엿볼 수 있다'고.)





 - 늦은 오후의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소사에 핀 꽃과 나뭇잎과 연등까지 온통 환하고 비추고 있다.





 - 절 뒷편으로 보이는 산이 관음봉(433m)인 듯하다.





 - 며칠쯤 더 여유가 있다면 '승복'으로 잠시 갈아 입고 좀 더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곳이다.





 - 곰소항 주변은 온통 '젓갈' 간판들로 가득하다. 알고 보니 '염전'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이 큰 역할을 맡은 듯하다.





 - 여기가 바로 '소금밭'이로구나.





 - 오늘은 마침 '노동절'이다. '염전 노동자'도 오늘 하루만큼은 '노동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듯.



 - 격포항 앞바다에 닿고 보니 서녘 바다 위에 뜬 해가 바다와 개펄을 구분없이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적잖이 뜨겁게 느껴지던 태양의 열기도 바다로 가까이 내려서자 금새 서늘하게 식는 듯하다.




 - 성주사지 석불입상. 부처님이 언뜻 소박한 여인네로 보인다.
(성주사지내 강당지 동편에 있는 석불입상으로 얼굴이 타원형으로 인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굴부위, 목부위,
 가슴부위가 일부 훼손되어 있으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 중·후반기에 조각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 성주사지 석탑.
(『승암산 성주사 사적』에 성주사의 규모가 불전 80칸에 행랑채가 800여 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는 1,000여 칸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산파의 총본산으로 크게 발전하였던 이 절에서 한때 2천 5백 명가량의 승려들이 도를 닦았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중건하지 못하여 폐사지만이 사적 제307호로 지정되었다. 성주사가 번창하였을 때는 절에서 쌀 씻은 물이 성주천을 따라 십 리나 흘렀다고 하는데, 오늘날 절은 간 데 없고 석조물만이 절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중에서)





 -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과 8각 석등.
   (통일신라(統一新羅) 성주사(聖住寺) 창건기(創建期)에 세워진 신라양식(新羅樣式)의 석등(石燈)이다.)





 - 성주산 자연휴양림 내, 서정주 시 『추천사(鞦韆詞)





 - 성주산 자연휴양림 내, 조지훈 시 『완화삼』





 - 성주산 자연휴양림 내, 유치환 시 『바위』





 -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았는데 운좋게 방을 얻어 편히 묵었던 '성주산 자연휴양관'





 - 보령호.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코스였던 곳.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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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4-05-1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사진을 보면 꼭 자리를 박차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그림을 보면 그림에 빠져들 듯, 올려주신 멋진 사진을 보니 사진에 마음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씩 더워지는 오월에 푸른 하늘이 느껴지는 사진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

oren 2014-05-19 13:32   좋아요 0 | URL
계절마다 자연은 늘 저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그런 자연을 늘 제쳐두고 끊임없이 바쁜 일상에 내몰리는 현실이 늘 미워질 때가 많아요. 늘 더 자주 대자연의 품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들고픈 욕망은 가득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약함에 스스로 서글퍼 질 때, 그 때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때인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