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을 보는 지혜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밑줄긋기)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605
내가 스토아학파의 윤리학 정신을 이해한 것에 의하면, 그 근원은 다음과 같은 사상에서 나오고 있다. 이성은 인간의 커다란 특권이며, 간접적으로 계획적인 행동과 거기에서 생기는 결과에 의해 인생과 그 무거운 짐을 현저하게 가볍게 하는 것이지만, 이 이성은 또 직접적으로, 즉 단순한 인식에 의해 인생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고뇌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구출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이성을 부여받은 인간이 이성으로 무한한 사물이나 상태를 포괄하고 전망하면서도 현존에 의해 아주 잠시 동안, 불안한 인생의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다거나 격한 욕구나 도피에서 생기는 큰 불안과 고뇌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이성의 장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성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인간은 틀림없이 이러한 고뇌를 초월하고 불사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안티스테네스는 "이성과 목을 맬 밧줄,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플루타르코스, 《스토아학파의 모순에 대하여》, 제14장)고 말했다. 그 의미는 인생에는 실로 많은 괴로운 일과 번거로운 것이 있기 때문에 사상을 정돈하여 이것들을 초월하거나, 인생을 버리는 것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결핍이나 고뇌는 직접 또는 사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핍을 느끼게 하고 고통을 일으키게 하는 유일하고 필연적인 조건이다. "가난함이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고통을 가져온다."(에픽테토스, 《단편》, 제25)
희망을 낳고 키우는 것은 기대나 요구 606
그뿐만 아니라 희망을 낳고 키우는 것은 기대나 요구라는 것이 경험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은 많은 사람, 또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피할 수 없는 악도 아니고, 도저히 수중에 넣을 수 없는 재물도 아니며, 인간이 피할 수 있는 것이나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많으냐 적으냐 하는 문제이다. 또 절대적으로 수중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수중에 넣었을 때나 절대적으로 피하기 힘든 것을 피할 때만 우리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수중에 넣기 힘든 것을 손에 넣고 상대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것을 피할 때도 우리의 마음은 아주 평안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성에 이미 깃들어 있는 악과 그 개성이 단념해야만 하는 재물과는 상관 없이 고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희망도 만약 그것을 기르는 기대가 없다면 곧 소멸하고 더 이상 고통도 생기지 않는다.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606
이 모든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행복은 오직 우리의 요구와 우리가 얻는 것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 관계는 둘 다의 양을 감소하는 것으로도 다른 쪽의 양을 증대하는 것으로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고통은 본래 우리가 욕망하고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과의 불균형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불균형은 확실히 인식에 존재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으며, 더 높은 식견이 생기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시포스는 "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한 경험에 따라 살아야 한다"(《스토바에오스 선집》, 제2권, 제7장, p.134)고 했는데, 그 의미는 세계 속에 있는 사물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어떤 일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불행을 당해 실신하고 화를 내고 기가 꺽이는 일이 종종 있다. 그것은 사물이 자기의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가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무생물은 우연에 의해, 생물은 반대로 목적이나 악의에 의해, 어떠한 개인의 의지도 매사에 방해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의 인생은 이러한 상태를 일반적으로 알기 위해 그의 이성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대체로 알고 있어도 하나하나에 관해 자세하게 재인식하지 않아서 이에 놀라 마음의 평정을 잃는 경우 판단력이 부족했거나 어느 한쪽이다.*
* "일반적인 개념을 개별적인 것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인간 악의 원인이므로"
(에픽테토스의 《논문집》, 제3권 26장)
큰 기쁨이라는 것도 오류와 망상이다 607
따라서 큰 기쁨이라는 것도 오류와 망상이다. 왜냐하면 희망이 성취된 만족은 결코 영속하는 것이 아니며, 소유와 행복이라는 것은 모두 우연에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빌려온 것이며, 따라서 다음 시간에는 다시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은 이러한 망상의 소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고통도 망상도 불완전한 인식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현자에게는 고통도 항상 멀리 떨어져 있고 마음의 평정을 방해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좌우할 수 있는 것과 좌우할 수 없는 것 607
스토아학파의 이 정신과 목적에 따라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좌우할 수 있는 것과 좌우할 수 없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여 구별했다. 그리고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기대해서는 안 되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고통, 고뇌, 불안 등을 모면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하고, 또 이것을 지혜의 핵심으로 하여 쉴 새 없이 이에 마음을 집중한다. 그런데 우리가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의지뿐이다. 그리고 이 의지에서 서서히 덕론에 옮겨 간다. 즉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외부 세계가 행복과 불행을 규정한다고 하면, 우리 자신이 마음속으로 만족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 의지에서 생긴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스토아학파의 윤리학은 전체적으로 볼 때 실제로 인간의 커다란 특권인 이성을 중요시하고 행복을 가져오는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중대하고 존경할 만한 시도이다.
어떻게 하면 평안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을까,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언제나 너를 혼란에 빠뜨려 괴롭히지 않도록,
별로 이익이 되지 않은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갖지도 말라.
- 호라티우스, 《서간집》, 18의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