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중(愼重)이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지도(指導)하지 않고, 정의가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모든 위험한 게임들 가운데서 가장 불평등한 게임을 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으로서, 그가 장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피루스(Epirus) 국왕의 총애하는 신하가 국왕에게 말한 것은 인생의 일상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왕은 그 신하에게 자신이 예정하고 있는 모든 정복 계획들을 차례대로 설명해 주었는데 그 최후의 정복계획에 이르렀을 때 그 신하가 말했다. "그런 다음에 폐하께서는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러자 국왕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 나는 나의 친구들과 더불어 즐겁게 지낼 거야.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과 사귀도록 노력할 거야 ······ ." 그 신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폐하께서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275쪽∼276쪽)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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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의욕

물론 오래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78쪽)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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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1-12-19 16:07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은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든 마찬가지다. 이런 준비를 시작하며 사람들은 완벽한 삶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완벽한 삶에 이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그 계획에 비하면 삶은 너무나 짧다. 그런 계획을 실행하는 데는 짐작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또 그런 계획은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자주 좌절을 겪고 장벽에 부딪혀 목표한 대로
 
 
마녀고양이 2011-02-2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를 옮겨놓고 다시 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를 방해하는 것은 어떤 녀석일까 생각합니다.

오렌님, 오랜만이셔요.... 늦었지만 새해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oren 2011-03-01 17:33   좋아요 0 | URL
마고님의 댓글 보면서 또다시 읽어봐도 애덤 스미스의 말은 '명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많음(혹은 높음)과 적음(혹은 낮음)의 차이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은 나이를 먹는 데 따라 점진적으로 줄어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조금만 회상해 보더라도, 내 옆 짝궁이 가졌던 조금 더 멋진 많은 것들(옷,가방,신발,장난감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연필과 지우개, 딱지와 구슬까지도)에 대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정도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주위를 살펴보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혹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 갈수록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걸 훨씬 더 자주 보게 됩니다. 살면서 나이를 먹다보니, 수백억 혹은 수천억이나 수조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과도 가끔씩(혹은 자주) 만나서 어울릴 기회가 있는데, 그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오히려 각자의 건강에 대한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하고, 각자의 자식에 대한 문제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오고,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누구나 완전히 똑같게 된다는 사실 등)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는 것 같아요.

역설이긴 하겠지만, 그런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이 그만큼 젊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