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양 인형, 3년 세계여행 후 돌아와
[팝뉴스 2004-11-15 11:17]









3년 전 도둑맞은 양 인형들이 먼 나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노포크주의 뉴스 사이트인 EDP24의 지난 주말 보도에 따르면, 제시 리(63) 할머니는 3년 전 도난당했던 양 인형 2마리가 최근 집 현관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양 인형 옆에 인도의 각지에서 촬영한 스냅사진 16장도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사진 봉투에는 "래리와 숀의 휴가 사진들"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었다.

사진 속에서 양 인형들은 정말로 여행을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인도 고아주의 아라비아해 바닷가에서 양 인형들이 로맨틱하게 석양을 즐기고 있었다. 또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후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제시 리 할머니는 2001년 4월 홀트 인근의 별장 시골집 정원에 있던 흰털을 씌운 장식용 목재 양 두 마리를 잃고 크게 서운했었다. 그런데 다시는 못 볼 거라고 생각했던 양 인형들이 여행 사진과 함께 현관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살펴보니 양 인형들은 털이 약간 낡고 찢어졌지만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도난 당했을 당시 경찰에 신고까지 했는데 지금 보니 젊은 도보 여행가들이 뭔가 재미있는 일을 계획하고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제시 리 할머니 이전에 양을 소유했던 스티븐 스콧포셋은 “양 인형은 패션 디자이너인 내 동생이 직접 만든 것인데 양 인형들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대단히 실망했었다”고 말했다. 그는“양 인형은 2년 동안 우리 시골집 정원에 있었고 가족이나 다름없었다”며 “양들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데 인도를 다녀오고 사진까지 찍었다니 너무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스콧포셋은 “양 유괴범들은 유머감각이 넘치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제시 리 할머니의 시골집은 도보 여행가들이 지나다니는 조용한 오솔길에 옆에 있는데 유괴범들도 여행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말 낭만적인 도둑들! 근데 가져가는것보다 돌려주는게 더 힘들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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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ne Duyser holds a 10-year-old grilled cheese sandwich that she says bears the image of the Virgin Mary, Nov. 12, 2004, in Hollywood, Fla. Duyser put the sandwich up for sale last week, drawing bids as high as $22,000 before eBay pulled the item Sunday night. (AP Photo/Miami Herald, Joe Rimkus Jr.)


(AP)12일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의 다이안 듀이서(Diane Duyser)가 10년된 치즈 샌드위치를 들고 있다. 샌드위치 표면이 성모마리아 모양 같다고 말한 다이안은 지난주 이 샌드위치를 판매에 내놔 eBay社가 채택하기 전까지 2만2천달러를 호가하는 입찰가를 불러냈었다. <AP연합 2004-11-17 16:00>


~~~~~~~~~~~진짜 웃긴다 10년된 샌드위치조각이라니...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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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에게 트래버 받아서 현옥 빌려줌

*트래버의 별명이 생겼다-"착한 일 다단계 또는 피라미드 착한 일...ㅋㅋㅋ

국주에게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추천하려다가 SF처음 읽는다고 해서

베르나르의 "나무"를 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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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바인 2004-11-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주 '나무'회수-'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빌려줌
 

예수 크라이스트가 결혼을 했고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아서 현재 '유럽'의 귀족들 중에 그 후손이 살아있다는 주장을 책으로 펴내 지난주 '런던'에서 발매되자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뉴스위크'지(誌)도 이 책의 주장과 반응을 종교면에 다루며 관심을 나타냈다.  이 책의 제목은 「성혈과 성배」 '성혈(聖血)'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흘린 피를 뜻하고 '성배(聖杯)'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고 그 뒤 십자가 밑에서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컵을 말한다.

 성혈과 성배 책사건  이후로 예수를 믿고 있는 수많은 목사나 신부, 수녀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독교와 천주교 등 모든 종교단체들이 이 저자들을 허위와 사기죄로 고발하였고, 결국 이 세기의 재판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의 관심을 받으며 3년간의 법정 투쟁을 거쳐 영국 대법원에서 그 사실여부가 결판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계속해서 기사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물이 나오고, 여러 사람들이 예수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족보를 가지고 증인으로 나서게 되면서 재판이 심상치 않게 나가자 재판장이 3개월 동안 재판을 중단하고 몸저 눕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의 담당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여러 목사님, 신부님, 그리고 수녀님들 죄송합니다... 저의 집안은 3대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집안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을 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로 망명해서 84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하 생략).  

이 판결문이 나오자 법정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일부 신부와 목사, 수녀 등은 입고 있던 옷을 찢어 버리며 울부짖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 재판의 결과가 매스컴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영국전체 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예수에게 속았다는 비통의 성토와 함께 자살하는 종교인들이 속출하고 전국이 충격에 빠지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결과의 국외 전파를 금지하고 판결문에 대해서는 함구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영국 국민의 대다수가 다른 종교로 바꾸었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등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으며, 이 여파로 기독교의 신자가 극감하고 교회가 술집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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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몇 장면에는 특이한 점들이 있다. 우선, 인어공주 아리엘이 범선에서 찾아낸 그림이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쥬 드 라 투르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도판 24)라는 점이다.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왕자와 인어공주가 결혼하는 해피엔드다. 인어공주의 소망은 바다에서 나와 그와 결혼하는 것이다. 사악한 바다 마녀와 아리엘의 자비로운 아버지 트라이튼 왕은 인어공주와 왕자와의 결합을 막으려 한다.

마녀는 그녀의 목소리를 훔쳐 왕자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민다(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이교적이라고 선언되고 그녀의 혼인사실이 부정되었을 때 '신부의 목소리'는 빼앗긴 것이 아니었던가?). 동화의 모티브는 남성의 진정한 짝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완성시키고자 깊은 어둠 속에서 분연히 일어서는 여성이다. 폭풍으로 배가 난파돼 거의 죽음에 이른 왕자는 아리엘의 구조를 받게 된다. 또한 사악한 마녀에게 속은 자신의 잊혀진 신부를 필사적으로 찾는 이는 왕자이다. 그의 슬픈 처지는 사랑하는 여인과 분리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인어공주가 자신의 동굴에 걸기 위해 가져온 그림을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로 설정한 것은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작가가 인어공주와 막달라 마리아를 의식적으로 연관시킨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안데르센 판에서와 달리,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점도 수상하다. 왜냐하면 아리엘은 이사야서에서 '진(陣)친 성읍'의 동의어로 사용된 예루살렘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레미아 애가의 '황폐한 과부 시온'과 미가서의 '막달레더(Magdal-der)'의 상징적 등가물이다. 아리엘은 '버려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타내고 있다.

아리엘의 진짜 정체는 잊혀진 신부이다. 그 '물고기 소녀'는 잘생긴 왕자의 짝이 되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고자 했다. 물고기좌 시대의 징표는 하나가 아닌 두 마리의 물고기인 것이다! 서로 반대 방향에서 헤엄치는 그 물고기좌의 점성학적 표시는 반대 극끼리의 조화를 상징하는 동양의 음양사상과 상당히 흡사하다.

프로방스의 문양들에서 인어는 그녀의 제2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의 거울을 손에 쥐고 있다. 라 투르의 그림 속에서(또한 <리코른느의 여인> 도판 26에도) 나타나는 거울은, 여성의 몸으로 구현된 물질('matter'는 '어머니'를 의미하는 라틴어 mater에서 기원)적 우주를 반영하고 있는 신성을 비추는 거울이며, 정신의 '다른 반쪽' 또는 짝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우주의 보이지 않는 창조적인 에너지는 '육체'에 구현된다. 이런 의미에서 물질 우주(고대 우주론에서 여성)는 그녀의 거울 속에서 '정신을 포착해' 보이게 한다. 마치 바다가 하늘을 비추거나 달이 태양 빛을 비추듯이. 아마도 이것이 사랑의 여신이 거울과 관련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하잘 것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우주의 보이지 않는 양(陽) 에너지의 거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디즈니 영화에서 거울을 들고 있는 인어공주는 바다의 여왕, 즉 원형적 여신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 이미지가 아니다. 그녀는 '다른 마리아', 누이-신부를 나타낸다.

─ 본문 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며 극적인 만남으로 꼽을 수 있는 예수의 재판 장면. 거기서 예수가 총독 빌라도에게 말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빌라도의 대답은 이러했다. "진리가 무엇인가?"

빌라도는 예수가 아무런 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십자가형을 구형했다. 예수의 결백한 '진실'이 빌라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애써 외면하였다. 대신 그가 직면하고 있는 세력(카이사르의 세력과 교회의 세력)에 시선을 돌렸다. 빌라도는 그를 위협하는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세력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예수의 생명과 진리를 희생시켰던 것이다

이 만남에서 배워야 할 지극히 중요한 교훈이 있다. 진리는 정치적인 힘이나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톨릭교회가 수 세기 동안 태양은 지구를 돈다고 규정해왔다고 해서,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 것은 아니었듯, 교회 권력과 빌라도가 그의 죄를 주장했다는 사실이 예수가 죄인인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도, 인간의 율법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 진리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조화 그 자체이다.

종종 권력과 대중의 의견, 그리고 관습이 진리인 것처럼 여겨졌다. 성가족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요셉은 그의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적이 없다. 마리아는 유일한 자식인 예수만을 낳았고,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처녀였다. 그리고 예수는 결혼한 적이 없다.

12 년의 가톨릭 학교와 고등학교, 23년의 예수회 및 사제 교육을 통틀어, 나는 성가족에 대해 이렇게 듣고 배워왔다. 이러한 전통적 교육과 "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절대적인 신념에 물들어 있던 탓에, 나는 그 가르침을 신의 계시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틀 속에서 나는 마리아나 요셉, 예수의 순결에 대한 어떤 이의도 심각한 불경으로 받아들였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명제를 접하고 혼비백산 충격을 받았을 만큼 교회의 가르침을 절대시했던 마가렛 스타버드와 마찬가지로, 나도 성가족의 순결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간주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사제의 독신생활에 관한 교회법의 역사적 근원을 10년간 연구한 끝에, 나는 부부관계를 바라보는 교회의 태도에 심각한 편견(노이로제라고까지 하지는 않더라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노시스주의와 마니교에 근원을 둔 이런 태도는 결혼을 통한 육체관계가 기껏해야 참을 만한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세상에서 악을 영속시키는 장본인이라는 편견을 널리 퍼뜨렸다.

그노시스주의 기독교도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마르시온은 세례와 성체성사를 오직 처녀들과 과부, 그리고 금욕하기로 동의한 부부에게만 허락했다. 마르시온주의자들은 자연을 악으로 간주했으며, 세상을 더 이상 악으로 채우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금했다. 다른 그노시스주의자인 줄리어스 카시아누스는 인간이 성교를 하는 순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으며, 예수는 인간들이 성교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성 암브로시아는 결혼을 '짜증나는 의무'로 여기고,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부부애의 속박과 예속을 상기시키려 애썼다. 타티안은 성교가 악마의 창조물이라고 생각하고, 기독교인의 생활은 "순결 범위 밖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거스틴은 "여자의 애무와 혼인하여 육체를 합치는 것보다 인간의 고매한 정신을 저속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결혼의 육체관계에 많은 의구심을 품었던 유스티누스는 마리아가 성적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대신 처녀로서 잉태했다고 주장했다. 예수가 완벽한 순결을 맹세했다고 믿었던 오리겐은 스스로를 거세했다. 결혼 후 갖는 육체관계를 매우 부정적으로 여겼던 설교가 만연했던 탓에, 4세기에 시작된 교회는 결혼한 사제가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또는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만일 결혼한 사제가 이러한 비기독교적이고 비윤리적인 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벌금이나 공개 태형, 감금, 사제직 면직, 모든 사제 결혼의 무효화 및 사제의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의 종으로 삼는 로마교황의 지령 선포와 같은 더 가혹한 형벌이 가해졌다.

교회의 가르침과 법령 속에 자리 잡은 이러한 성 노이로제를 깨달은 나는 심각하게 흔들렸다. 결혼에 대한 왜곡된 태도가 성가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성관계를 경멸하는 교회가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에 관한 진실을 조작할 수 있었을까? 만일 예수가 마리아가 낳은 유일한 자식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 독생자만을 낳은 동정녀로 여겨졌던 마리아의 신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그녀가 다른 자식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육체적 사랑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진리에 모욕을 주지는 않을까? 나아가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해가 되지는 않을까?

마태복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가복음 3장 31절에는,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누가복음 8장 19절 말씀에는,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마태복음 13장 55-56절 말씀에는,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라고 했다.

그리고 마가복음 6장 3절 말씀,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고린도전서 9장 5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말했다. 성서에 나온 이런 증거들을 볼 때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 말고는 자식이 없었으며,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결했다는 교회의 비성서적인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주저된다.

교회의 가르침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마리아가 독생자의 동정녀 어머니는 아니다. 그녀의 자식 및 요셉과의 부부관계에 관한 진실이 있다. 그 진리를 고백하는 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만일 정말로 마리아에게 성서가 확실히 증언한 것처럼 몇 명의 아들과 딸들이 있었다면, 오직 독생자만을 낳고 평생을 처녀로 살았다고 믿고 주장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그렇게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예수가 독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는 예수가 결혼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지만, 그가 결혼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맹세를 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유대교 학자인 벤 코린은 예수가 결혼했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간접적인 증거들의 고리'를 제시했다. 예수가 이 땅에 있었을 때, 유대교는 결혼을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신의 명령을 완성하는 의식으로 간주했다. 누가복음 2:51-52는 부모의 권위 하에 살았던 예수가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전한다. 벤 코린은 예수의 부모가 관습에 따라 예수를 위해 적합한 신부를 찾았을 것이며, 예수도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특히 토라를 공부한 자들처럼 결혼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만일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를 대적했던 바리새인들이 이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독신의 가치를 믿었던 성 바울은 분명히 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예수가 독신이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 바울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므로 벤 코린은 예수가 결혼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만일 예수가 결혼했다면 왜 그 결혼에 관해 또는 아내의 이름이 성서에 언급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마가렛 스타버드는 그 당시 모든 기록에서 예수의 아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까닭은 그녀의 생명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 설명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마가렛 스타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가 결혼했다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신부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것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되었던 이교의 교의이고, 그 이교의 흔적을 수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것이 로마교회의 제도에 의해 심하게 공격당했고, 아울러 그것이 냉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

누구라도 신앙의 교의에 의문을 품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성가족의 성적 정체성과 같은 민감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관습적인 가르침과 전통을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비록 가톨릭교회가 영성과 교화에 수많은 긍정적인 기여를 한 점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성에 관한 태도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만일 이러한 결점들이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에 대해 거짓된 이미지를 조작했다면, 성가족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양심적인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다. 그러한 책임 뒤에는 말할 것도 없이 희생과 욕, 그리고 조롱이 따를 것이다. 용기와 진실에 대한 깊은 신념이 위협, 현혹이 따르는 순례 여행에서 필수 덕목이다.

이 책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에 대한 용기 있는 탐구이다. 성배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도이며, 예수의 잊혀진 신부를 회복시키려는 시도이다. 예수가 결혼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여전히 증명이 필요한 문제이다. 내 자신이 찾아낸 결과가 정보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명제를 증명해주지는 않는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독신이었다는 진정한 증거를 교회가 제시할 때까지, 예수와 그 가족에 대한 진실을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다하여 찾는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크게 칭송되어야만 하는 자들이다.

들어가며

거의 2천 년간 서구 문명화를 주도한 제도적인 기독교는 거대한 결점이 있는 교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신학에서 말하는 '성 안드레의 잘못', 다시 말해 여자에 대한 부정이 그것이다. 몇 년간 나는 세상이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우리 문화 속에서 너무나도 오랫동안 여성이 경멸되고 평가절하 되어왔다는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1985년이 되어서야 기독교 이야기 속에 있는 파괴적인 틈에 관한 증거를 발견했다. 유대-기독교 성서와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나의 지대한 관심을 알고 있던 가까운 친구의 추천으로, 나는 1985년에 미국에서 《성혈, 성배 Holy Blood, Holy Grail》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질겁하고 말았다.

처음에 《성혈, 성배》를 읽은 후, 나는 저자인 마이클 배전트(Michael Baigent)와 리챠드 레이(Richard Leigh), 헨리 링컨(Henry Lincoln)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책은 신에 대한 불경으로 보였다. 그 핵심은 예수가 복음서에 나온 '다른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주장이다. 그녀는 '막달라'라고 불리며, 서구 미술에서 석고 단지(옥합)를 든 것으로 묘사된 여자이다. 교회에서는 그녀를 참회하는 창녀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착상에 놀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혼비백산이 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교회가 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토록 중요한 주장은 2천 년 교회 역사에서 묵과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성혈, 성배》의 저자들이 수집한 증거는 수 세기 동안 종교재판이 진실을 무자비하게 억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실한 딸인 나는 즉시 그 이단적인 책의 저자들이 잘못된 해석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중심 명제, 즉 예수가 결혼했었다는 사실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나를 사로잡아버린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면 어떻게 될까? 예수의 아내인 막달라 마리아가 의도적으로 이야기에서 지워졌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초기 교회가 그녀의 존재를 묵살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라면?

교회와 인간성에 대한 그 끔직한 상실의 함축적 의미를 생각해보니 참을 수 없었다. 복음서에 대한 이 이단적 해석에 대해 눈물로 기도했다. 진실을 밝혀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비교문학과 중세연구, 언어학, 성서연구에 관한 학문적 배경을 갖춘 나는 눈물을 멈추고, 그 주장에 논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이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책은 종교, 중세사회, 예술, 문학, 상징 등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수년간 성서연구와 종교교육에 종사해 왔기에, 그 분야에 대해 익숙히 알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 이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저자들이 성배 전설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 예술가들의 그림이 보관된 곳으로 직접 가서, 그 작품들 속의 상징들을 조사했다. 몇 년 전에 《상징주의의 잊혀진 언어 The Lost Language of Symbolism》라는 해롤드 베일리(Harold Bayley)의 어려운 책에서 발견한 알비파(기원 후 1020-1250년경에 프랑스 남부에서 번성했던 이교도)의 종이 문양과 그림들을 참조하면서 나는 이 중세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성배 이설을 지지하는 명백한 상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그들의 작품을 근거로 삼은 그 이설을 반박하지도 못한 채 나는 연구를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연구가 계속 될수록 나는 유럽역사와 문장학, 프리메이슨주의, 중세예술, 상징주의, 심리학, 신화학, 종교, 구약 및 신약성서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유대-기독교 전통 속에서는 잊혀졌거나 부정된 여성성과, 한때는 귀한 존재였던 신부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료에 좀더 깊숙이 접근할수록 《성혈, 성배》의 이론에 사실적인 내용이 많다는 믿음이 명확해져 갔다. 그리고 점차 성배 이설, 내가 애초에 반박하고자 했던 바로 그 이론의 중심 교의에 경도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할 때, 나는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라는 속담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여러 다양한 자료로부터 많은 증거들이 모여 하나의 가설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2천 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소문들 속에 어떠한 진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 〈가스펠 Godspell〉,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예수의 마지막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등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가깝고 의미 있는 것으로 묘사한 뮤지컬이나 영화들을 통해서 그 진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나는 성배 이설의 교리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예수가 결혼했다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신부라는 사실 말이다. 심지어 나는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에서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옥합을 든 여인이라는 것조차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이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되었던 교리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 또한 그 이설의 증거들을 수많은 예술과 문학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로마교회의 제도에 의해 심각한 공격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냉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예수의 생애를 로마교회와 다르게 설명하는 이설은 가차 없이 박해받았으며 폐기처분되었다. 하지만 신성한 신랑(이스라엘의 왕) 이야기는 종교재판에서조차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것은 땅속으로부터 표면으로 뻗어나가는 억센 덩굴처럼 끈질기게 일어났으며, 종교재판과 교회가 뿌리 뽑을 수 없는 장소, 즉 유럽의 민간설화와 예술, 문학에 나타났다. 언제나 숨겨지고 상징화되긴 했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며, '포도나무'로 불리는 다윗의 혈통에 대한 희망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예수의 결혼을 다루고 있는 이설이 존재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확실한 가능성들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신봉자들이 그렇게 믿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기(아마도 유명한 '템플 기사단의 보물'과 같은 근거 있는 자료나 예술작품 형식의 증거를 통해)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아니면 명백히 남성주의에 우위를 두고 있는 기독교 교리에 맞서 잊혀진 여성주의를 복원시키기 위한 시도로써 세상에 퍼졌을 수도 있다.

고전 철학의 근본인 남성과 여성의 균형을 회복하는 작업은 문명의 행복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다. 여성 숭배는 12세기에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에서 번성했다. 유대 신화 속의 '여신 매트로니트(Lady Matronit)'를 여호와의 잊혀진 아내로 복구하려는 유대 신비철학자들의 시도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은 여성성의 복구가 절체절명의 중요성으로 인식되었음을 증명한다.

비슷한 움직임이 오늘날 서방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심리학에서의 융의 연구와 아시아의 음양 및 여신 의식 등이 점차로 부각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기독교에서 인정한 유일한 여신상인 성모 마리아('성모 마리아, 평화의 여왕')가 눈물을 흘리며 전 세계 교회에서 수차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현상들은 최근 몇 년간 방송매체를 통해 보고 된 바 있다. 교회가 이런 현상에는 어떠한 메시지도 담겨 있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멸시받고 잊혀진 여성이 우리시대에 인정받고 포용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여성의 상실은 우리 문화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 두 번째 천년이 다가오면서 남성과 여성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여성의 재능을 완전히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못했다. 한편 여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좌절한 남성은 무모하게 무기를 휘두르거나, 폭력과 파괴를 일삼으며 칼의 정치를 해온 것이다.

고대세계에서는 대립 에너지들의 균형이 이해와 경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대세계에서는 남성성이 지배적이다. 남성(태양) 중심의 힘과 영광 숭배가 '남아선호 사상'으로 발전되어, 버릇없고 미성숙한 남성(분노하고 좌절하며 따분해 하고 종종 위험하기도 한)을 양산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의 '다른 반쪽'과 하나가 되지 못한 남성은 소진되고 만다. 여성성을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초래한 결과는 단지 환경오염이나 쾌락주의, 만연하는 범죄에만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인 결말은 몰살인 것이다.

이 책은 성배 이설에 대한 연구이자 중요한 정황적 증거를 바탕으로 예수의 아내를 복원하고자 하는 논증이다. 또한 그녀가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돌아와 우주만상이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황폐한 시대가 치유될 것이라는 바람으로, 인간정신 속에서 잊혀진 신부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기독교에서 잊혀진 신부를 찾는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물들을 기록하였다. 그녀가 어떻게 잊혀졌고, 이러한 상실이 서구사회를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만일 그 신부가 서구의 패러다임으로 복구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자료를 찾으면서 보낸 몇 년간은 그 만한 대가가 따른 기간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형식과 내용 모두를 갖춘 자료를 제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노고는 길고도 험난한 것이었다. 내가 믿어왔던 교리들은 뿌리째 뽑아버려야만 했고 새로운 믿음의 씨앗이 뿌리내리도록 해야만 했다. 내 어린 시절의 로마 가톨릭체제 전체는 해체되어 밑바닥부터 위험한 과오를 드러내야만 했고, 그 균열이 메워졌을 때, 신앙세계는 조심스럽게 재조립되었다. 이 과정은 7년이 걸렸다. 어떤 때는 교리의 변증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진실 탐구에 임했다. 나의 결론이 정통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현대 성경학자들의 발견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교리 간의 차이를 깨달아가고 있다. 나는 이 책이 그 간극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1988년과 1989년 테네시 내슈빌에 있는 밴더빌트 신학교의 학생이었을 때, 나는 성서학자들이 쓴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 그들의 무미건조한 스타일과 어법 때문에 한 번도 읽혀지지도, 눈에 띄지도 않은 채, 도서관 서고에서 썩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필요할 때는 각주를 달았지만 기본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써나갔다. 한번은 한 친구가 내가 곡물을 빻아 구워주는 대신, 통으로 사람들의 치마폭에 쏟아 붓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나는 곡식을 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영양가 있는 빵으로 굽고자 했다.

이 책을 쓸 때, 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어구를 고르기 위해 여러 버전의 성경 구절들을 비교하는 작업을 거쳤다. 나는 가장 익숙한 《성요셉 새 천주교 버전 Saint Joseph New Catholic Version》(1963)을 인용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뉴 인터내셔널 버전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1978)에서 채택한 원문을 인용하기도 했다. 개신교 성경이 가장 광범위하게 알려졌기 때문에 이름과 페이지 수를 그에 따라 일괄적으로 표시하고자 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가장 귀중한 기독교의 보물인, '귀중한 진주', 즉 성배에 대한 자신만의 탐구를 시작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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