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나무님의 페이퍼, 박노자의 '숫자력'을 보다가 제목이 떠올랐어요.

 다들 궁금하시죠. 21%가 뭘까. 이거 웃긴 얘기 한답시고 혼자 먼저 웃어버리는 짓 같단 생각이.

 목요일에 교육감 선거가 있었는데 저희 전북은 투표율이 21%였답니다. 점점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으니 곧 다른 지방에서 열리는 선거에도 높은 수치가 나올거라 생각해요. 비록 제가 투표한 사람이 안 되긴 했지만, 소중한 한표를 아낌없이 주고 와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더군다나 그런거 해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울 아부지가

어디 같이 나가봅시다 하면 족히 4-5번은 조르고 윽박지르고, 퍼졌다가 다시 일어나 졸라야 그럼 한번 가볼까가 되시곤 하던 울 아부지가

-아빠 선거하러 가게.

라는 한마디에 바람같은 속도로 옷을 챙겨입으신건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사건이었죠.

물론 제가 선거 전에 옆에서 뽐뿌질을 좀 하긴 했습니다.

 교육의 미래가 어쩌고 하는건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옥찌들이 나중에 학교 다니는게 정말 행복했음 좋을텐데란 얘기랑 예산이 엄청 많다는데 이상한 사람 뽑아놓으면 명박이때처럼 두고두고 후회하고. 이게 다 국민 세금인데 블라블라 얘기를 했더랬죠.

 투표가 끝나자, 뭔가를 부지런히 기다리다 끝나서인지 약간은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빠랑 같이 옥찌들 손을 나란히 잡았습니다. 시원한 수박이라도 달콤하게 쓱쓱 베어물고 싶을 정도로 무더웠지만 맘만은 정말 가벼운 하루였죠.

 전북 뉴스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 교육감 선거에 비해꾸준히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이 촛불집회로 시민의식이 향상된데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방향을 달리하는 지방의 고유 노선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논평이 나왔어요.

 다들 후보자 공약이나 면면을 잘 살피셔서 꼭 투표하세요. 평일이라고 아침 6시에서 밤 8시까지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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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도 아자아자예요! 제대로 된 교육감을 뽑아야 해요ㅠ.ㅠ

Arch 2008-07-26 23:15   좋아요 0 | URL
그럼요. 벌써들 말들이 많던데, 말 말고 실행으로. 아자아자! 마노아님은 따로 블라블라 필요없는걸요.
 


 이건 알라디너들도 많이 많이 올리시면 좋겠어요. 책이 꽂혀있는 어딘가, 사진이랑 같이-이건 좀 나중에-. 릴레이로 말이죠. 아마 울 웬디양님 슬쩍 먼댓글 달거라고 조심스레 점쳐보는데^^ 부지런한 순오기님도 잊진 않았어요.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보다보니 내겐 어떤 명품이 있나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찾아냈다. 내겐 몰스킨 버금가는 육심원의 바램이 있다. 하드커버이고, 다이어리용이라기 보다는 단순 노트. 동물원 옆 미술관에서 고르고 골라 산 것. 2년 넘게 사용했지만 심부분이 약간 흔들거리는거 말고는 튼튼한데다 종이도 여전히 붙어있다. 풀로 붙이거나 실로 꿰맨 종이들 중에는 뜬금없이 뜯어지거나 한번 뜯어지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놈들이 있는데 다행히 얘는 잘 붙어 있다. 거의 다 써가지만 아직 겉표지 그림만 다른게 하나 더 있다. 하나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줄 때 기를 쓰고 받아낸 것. 이럴때보면 참으로 집요해.



이 소녀, 뭔가 느끼는 표정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어쨌든 바램이다.



이곳엔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적거나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 이 유머를 나중에 써먹어야겠다는걸 주로 적는데 가끔은 저거 꼭 먹어봐야지거나 저 포즈 좋구려 싶은 것도 뜯어다 붙여놓는다.


옥찌는...
 옥찌가 그려준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곰돌이는 정성스레 오려서 살짝 내 손에 쥐어줘서 나도 살짝 붙여줬다.


영화에 나온 대사도 단골 메뉴. 어린 지희는 저랬어요.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다이어리 꾸미고 할때는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늙어서 주책은 아니고,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이 될줄이야. 글씨가 작은데다 빽빽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 좀 팍팍한 느낌이 들어 그림을 그려넣다보니 지희보다 못한 그림 솜씨가 날이 갈수록 날개를 다는 듯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거 아닌거 나도 다 안다. 그래서 차마 발로 그린 그림은 못올리겠다.

 그리고, 오늘 옥찌가 앞으로 쭈욱 생활명품이 될 듯한걸 짊어지고 오셨다.


이 시계

 분명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반경 50m안에 다 들릴게 분명하지만 옥찌가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했을텐데 어떻게 장식으로만 놔둘 수가 있겠는가. 잘때만 건전지를 살짝 빼놓을 생각.

 생활명품은 결국 쓰면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육심원의 하드커버 노트를 볼때마다 괜히 므흣한 상상도 되고, 견고해서 그동안 노트에 쌓였던 불신감도 달아나 더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처럼. 옥찌의 작품이 심플하고 멋스러운 명품 시계보다 낫진 않다. 그런데 난 이 시계가 자꾸 좋아진다. 저렇게 붙어있는게 떨어지는건 시간문제겠고 굳이 시계를 안 보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란 시계 존재론적 고민까지-엄살은- 할 정도로 소리가 크겠지.

 그치만 좋은걸 어떡해. 자꾸 조물조물 옥찌 손이 눈에 선한걸.

그리고 하나 더!


바로 요놈

 여유돈이 있을때마다 자전거를 사야지 사야지 했었는데 동생이 먼저 질러버렸다. 내 인생에서 자전거는 두개였는데 두개 다 도난을 당하는 바람에 살 때 제일 염두해둔 부분이 디자인이나 무게보다 남들이 눈독 안 들일만한거였는데. 이 놈은 좀 무겁고, 다른 기능 전혀 없이 그저 산뜻하고 이쁜게 다긴 하지만 자전거 도난의 표적인 청소년용이 아닌데다 눈에 쉽게 튀니 훔쳐갈 일은 없지 않을까라고 점쳐보는데. 아마 입방정 때문에 곧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고.

 자전거를 탄다.

내리막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다리에 들어간 힘을 온몸으로 전달하며

자전거를 굴린다.

바람은 자전거의 은밀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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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7-2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아 멋져요!

Arch 2008-07-26 19:39   좋아요 0 | URL
와아아, 도넛공주님도 멋져요.

웽스북스 2008-07-2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자전거 나도 사고싶어요 그런데 안탈게 너무 분명!
생활명품은 따라하고싶긴 한데, 제가 물욕이 없는 편이라 (어머?) 물건에 잘 집착을 안해요- 뭐 굳이 있다면 얼마 전 샀던 명품노트? ㅎㅎㅎ

Arch 2008-07-27 23:32   좋아요 0 | URL
혹시 그 명품 아저씨께 산거 아니에요? ^^ 나름대로 추측하고 앉았음
 

 군산에는 월명산 중간쯤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과 시내 외곽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월명산으로 오면 월명 작은 도서관과 수련원을 지나치게 된다. 그날 그날의 입맛에 따라 한군데를 정하거나 두군데를 거쳐서 집에 오기 마련인데 오늘, 작은 도서관에 신착 도서가 있어서 입맛을 다시며 책을 살펴봤다. 내가 희망한 도서가 몇권 있어서 눈대중으로 점을 콕콕. 꼭 애인을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처럼 괜히 들떠서 어쩔줄 모르겠다.

<하얀 가면의 제국>2003년에 나온건데 이제서야 눈에 띄었다. 눈에 늦게 띈게 아니라 내가 역시 뒷북임을 밝혀야겠지. 박노자의 책을 보면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여타의 책으로 타자의 시선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다른 나라의 삶의 방식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 책은 부제에도 나와있 듯이 서구 중심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 서양 위주 담론의 문제점에 대한 얘기를 할 것 같다.

67p에 섹스의 낙원, 연애의 낙원! 챕터에 당연히 눈길이 가서 읽어내려갔다.

72p  ...침실을 같이 쓰는 상대를 끝까지 타인으로 봐야 하는 스칸디나비아 성생활의 현실에서는, 부부를 '일심동체'로 보는 비서구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사창가에서 '총각 딱지'를 떼고 부인을 가사 노동자쯤으로 보는 한국 풍토를 이상으로 보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관계. 결혼의 상대자를 남이 아닌, 자신이 평생 돌보아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책임감에도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딷스한 무언가가 들어 있지 않을까? 사회 발전의 화려한 이면에는 따뜻함을 잃어버린 고독한 삶이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내용은 쉽게 진행되지만, 생각할거리가 많아질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분, 매번 느끼지만 참 잘 생겼다. ㅡ,.ㅜ

<몸으로 하는 공부> <주제> 누구의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A가 0.1초도 안돼 말한 강유원이란 사람. 철학을 공부했고, 직장을 다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번역이며 글쓰기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인물이란 부연 설명이 있었다. A의 말에 혹해 신청한 도서. 목차와 내용을 보니 그렇게 꼭 '그'여야할까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열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긴 했지만 기껏 몇장으론 A의 몰입에 이르지 못하겠나보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철학서가 아니라 그러겠지만 좀 더 읽어봐야겠다. 서문에 씌인 글귀가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중에서

'잡문'이라는 단어는 논쟁들, 지엽말단의 문학, 지나친 자유, 언어의 가치 하락에서 유래하는 폭력들로 이루어진 무질서한 총체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의 인격이 자신을 드러내고 활짝 피어나는 것은 오직 비정상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그 사회와의 대립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잡문의 시기에는 천재성과 범죄성 사이에 불가피한 친화력이 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우선은 제목과 을유문화사라는 것, 저자는 그 다음에 보였다. '잘 찍은 사진 한장'을 재미있게 봤는데도 저자보다는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는 것 정도가 보였다면 이 책은 아마 '윤광준'이란 사람의 취향과 대면할듯.

 처음 나온 물건부터 관심집중이다. 몰스킨. 문구류에 환장하는 취미가 아니더라도 그 수첩이라면 옛 사람들의 아우라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로 꿰맨 종이, 묵직한 느낌-무거운게 싫은데도 이 느낌은 좋다- 적당히 두꺼운 종이에 슥슥 연필이나 볼펜이 굴러가는 소리. 비싸서 명품이 아니라 오래두고 쓰며 물건 자체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명품이란 말이 허투로 나온 소리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물론 그 다음, 다음 물건들에 아. 이걸 어쩌나 싶은 참으로 안달나게 하는 힘들이 다 있는건 아니었지만.

 <섹슈얼리티와 공간>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쓰신 꼭지에 여성과 공간에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여성의 몸이나 여성이 점하는 자리가 공간과 연결되고, 이게 정적이고 수동적인 습성을 못박는 것 뿐만 아니라 공간의 근거지를 잃어버렸을 때는 여성 존립조차 어려워진다는 말씀.

 예전에 어떤 분이 자신은 죽었다 깨나도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없는게 '여성이 정치를 하면 세상이 지금같지 않을 것이다'란 말이 너무 과하단 식으로 트집잡는걸 들은적이 있다. 누구 말이 옳은건지 몰라 이곳저곳을 쑤시다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

 만약에 여자 건축가가 많았다면 말야. 특히나 휴게실 같은데서 여자 줄만 오뉴월 개혓바닥처럼 늘어지지는 않았을거야. 

 두개의 측면에서 고른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심리학 책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일러스트와 다양한 사례가 나와서 읽기엔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재미있으면 좋겠는데.

 

 

 <한달 후, 일년 후>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단지 그 이유였다. 그런데 같이 읽는 인간 실격과 겹쳐지면서 묘하게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들의 집합소 같다는 느낌이. 다 살아가는 기술이고, 누군들 안 그러겠어 싶지만 두곳의 인물들이 겹치고 서로 짐짓 모른척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까. 영화 속 조제는 소설 속 조제의 어떤점이 좋았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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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27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버색스책이 원하시는 심리학책의 범주와 맞아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그야말로 독특한 케이스들 중심이어서) 저도 나름 신선하게 읽긴 했었어요 (저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말구, 화성의 인류학자 읽었었다는 ㅎ 슥삭슥삭 찾아보면 리뷰도 있을텐데 ㅋㅋ)

Arch 2008-07-27 23:33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특이한 짓을 종종 하는지라 혹시나 사례를 찾을까하고. 여러모로 똑소리나는 웬디양님^^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생각해.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책임감은 어떻게 기르고, 인성은 어떻게 쌓아가고, 삶의 기쁨을 어디서 찾게 해야할지.

 그런데 당신들과 다른건 난 좀 모질지 못하고, 입성 역시 바르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순간 순간의 판단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거야. 그럼 당신은 또 그러겠지? 큰 줄기가 있어야 한다고. 일관성을 지키는게 뭐 그리 어렵겠냐고. 그런데 정말 난 모르겠어.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알겠냐고.

 게다가 얘넨 옥찌들이라고. 탱탱볼처럼 튕기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갇힌 물처럼 조용한. 조용해졌나 싶어 책을 꺼내들면 당장 달려들어 책 읽을 시간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라고 날 찌르고 똥치라고 놀리는 옥찌들이라고. 바짝 열이 나서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치면 당장 얼굴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표정은 없지 싶은걸 말갛게 띄워놓는데 이럴 때도 화를 내야하는거야? 일관되게 엄숙한, 혹은 일관되게 다정한, 어쩌면 때에 따라 바꾸고, 큰 맥락은 유지하라고? 대체 콩을 넣고 밥을 지으면서 팥죽이 되어 뭉글뭉글 끓이라고 하는건 아닌지,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지난번 일요일이 그랬지.

 아침에 밥을 먹고나서,

-옥찌야, 오늘은 날이 흐리니까 놀이터엔 못갈거 같아. 대신 이모 해야할거 조금만 하고 울 옥찌들이랑 노는건 어때?

-그래, 그런데 약속 지켜. 나 이모꺼 뭐 쓸거 있는데 그때 같이 하게.

-그래, 그럼. 대신 옥찌랑 민이도 이모방 왔다갔다하지 말고 너희들끼리 안 싸우고, 잘 놀아야해.

 사인에 복사까지 거쳐서 손으로 합의를 본 우린 각자의 방에 들어갔는데,

 2분마다 들리는 큰소리와 울음소리, 울음소리 끝에는 어김없이 내 방문 앞에 둘 중 하나가 엉망인 얼굴로 상대방의 죄상을 낱낱히 고하고, 뒤이서 고발을 당한자가 자신은 전혀 잘못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사나운 눈으로 둘을 쳐다보면 티격태격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긴 하는데 다시 우당탕. 대체, 뭘 하는건지.

 앉은지 몇분 되지도 않았는데 엉덩이가 들썩들썩, 혼내켜 줄까, 약속한걸 얘기하고 협상은 무효가 됐다고 버럭버럭 화를 낼까.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할까. 의외의 수법으로 살살 얼러볼까. 하는 일에 집중을 못하고 그놈의 큰 틀을 구상하고 있는데 웬지 수상한 조짐. 아이들 방에서 별다른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이다. 알겠지만, 이건 소란스러울 때보다 몇배는 의미심장한 메시지. 그래서 가만 들여다봤더니


이젠 몸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기가막혀 멍하니 지켜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왔는데 간헐적으로 엄마,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결국은 아빠까지 부르는 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서 중재를 해야할까 아니면 싸움을 부추길까. 일도 못하고, 어떻게 개입해야할지 선도 못그으며 애먼 머리카락만 쥐어 뜯고 있었다. 그런데 민이 목소리도 안 들리고, 아이들 방이 또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무슨 사단이 났구나. 내가 이럴줄 알았어. 씩씩대며 아이들 방에 갔는데,



웬지 세상사 구비구비 많이 겪은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화해를 하고, 기차를 태워준다며 민이를 자기 무릎에 앉히는 지희가 보였다. 태연하게 무슨 일 있었냐는 표정이다.

  아직은 뭐가 옳은건지 어떤게 아이들을 위한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아닌 길에서의 개입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 안에도 자신들을 지키고, 자신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돛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그 돛대가 간만에 순풍을 맞아 망망대해에서 제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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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24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찌들이 아니었으면 생각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시니에님이 옥찌들 덕에 느끼고 있나봐요
흣, 근데 나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잖아요, 애들 눈빛이 아주 그냥 너무 사랑스러워요

Arch 2008-07-24 10: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웬디양님. 제 눈빛만 하겠어요? 이건 또 무슨

웽스북스 2008-07-25 02:08   좋아요 0 | URL
슥삭슥삭 뭐라고요? ㅋㅋㅋㅋ

Arch 2008-07-25 11:21   좋아요 0 | URL
그냥 넘겨요. 넘겨. 난 아직 자뻑 초보라구요.
 

 알라디너분들에게 시원한 풍경을 선사하고 싶어(누가 받는대?) 이리저리 서재 배경을 바꾸다 자전거 있는 풍경도 올리고, 바다도 올리다가 마침 들르셨던 hnine님께 딱 걸리고 말았다.

-저기 어디에요. 이쁜데요.

 서재 이미지는 바다로 바꾸었지만, 그 말에 또 잘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페이퍼를 쓰게 되는 요 팔랑귀는 누구한테 물려받은건지.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미루다 미루면 자판칠 힘이 조금 남아있을 어느 노년의 날쯤 올리게 되었을지 모를 페이퍼인 것이다.

 이주 전에 선유도를 다녀왔다. 차근차근 서재에 올릴 생각에 야무지게 사진도 찍고, 어떤 말을 남길지도 다 생각해놨지만 이놈의 게으름병이 도져 서재를 피하고, 아냐, 아무도 선유도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거라는 별로 납득 안 되는 이유까지 붙이며 브리핑 올리오는 것만 쓱쓱 다 보고선 서재를 모른척 해뒀다. 그러다 오늘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이러다 또 페이퍼 못쓰고 사설만 늘 것 같아 바로 시작한다.

 친구랑 같이 갔는데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냥 좀 쉬고, 또 쉬고, 맛있는거 먹자. 이게 다. 그래서 동선은 최소한으로. 한곳에서 모든걸 다 해결하기로 했다.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몇몇 아저씨들이 예약한 손님을 태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인상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자연산 광어를 오늘 갓 잡았다며 미끼를 던지셨다. 친구와 상의하고 말것도 없이 우린 차에 올라탔다. 문득 새우잡이 배가 생각나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콧방귀도 안 뀌었다. 도착한 민박집겸 식당은 선유3리로 선착장에선 좀 멀었지만,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물론 주말이지만 비수기라 어느 곳이든 사람이 없었지만.

 짐을 정리하고, 근처를 돌아보다 애초에 우릴 데려다주신 아저씨네 집과 가격 차이는 조금 나는데 방도 방이지만 창 밖으로 조그만한 바다가 보이는 다른 민박집을 발견했다.



 친구는 단번에 이 집으로 옮겨야한다며 옮겨야하는 이유를 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아무데서나 자도 상관없다주의였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차를 태워다준 아저씨에게 죄송했고, 어차피 귀찮아서 퍼져 있었다면 몰랐을텐데 단박에 맘이 바뀔게 뭐있냐 싶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친구의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눈을 흘기며 혼자 착한체 한다고 몰아대서 착하지 않은 내가 그런 소릴 들을 수 없다며 발끈한게 컸지만.

 

 민박집 앞에 있는 작은 바닷가에서 낙조를 보고,



 산 위로 안개가 피어나는 것도 지켜봤다.

 시간은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흘러갔다. 파도 소리가  일정하게 솨솨, 파도가 자갈들을 반질반질. 바람이 귓가를 말끔하게 닦아줬다.



 그, 회를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섰는데 검은개가 몸이 찌뿌등하니 좀 밟아주란 포즈로 저러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저게 꼭 식당에 들어와야 잠이 든다며 아무리 쫓아내도 다시 여시같이 들어온다고 지청구를 줬다. 아주머니가 하는 소리는 귓등으로 흘리고 태연하게 기지개까지 피는 검은개. 맛있겠다, 웬지 이런 말이 생각이 났지만, 다행히 난 보신탕을 못먹는다. 그게 뭐 다행까지겠으나.

 저녁상은 상다리 부러질만한건 아니었고, 음식을 막 찍고 이러는거 좀 쑥쓰러워 따로 사진은 없다. 다만 친구랑 피곤한 몸에 괜히 술을 들이부어 티격태격 싸우다 급기야는 노래방 기계를 쓴다는 아저씨들에게 자리를 양보 하냐마냐의 문제에서 시작해 왜 자신의 권리를 버리는지, 자존감이 있느냐 어디다 엿 바꿔먹었느냐는 문제로 첨예하게 날이 서선. 회가 어디로 들어갔는지, 자연산인지 따져봐야한다는 처음의 맹세는 파도에 실려 바다 멀리 보내버렸다. 다행히 뒤탈이 많은 둘의 성격상 내내 궁시렁대다 술이 깨고, 파도 소리가 계속 들리고, 방안에 계속 들이닥치는 다리 많은 곤충 덕에 은근슬쩍 화해는 했다.


넌 누구니? 네, 전 검은개 친구에요.
 

 아침에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바닷바람을 듬뿍 섭취한 몸을 하나씩 주섬주섬 챙겨 기어나고 있는데 요 녀석이 보였다.

 
쟨 누구야? 응, 내 친구. 그런데 왜 혀를 내밀고 있어? 너도 이 날씨에 털옷 입어봐.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얘... 쌍꺼풀 있다. 친구가 어제의 과음으로 정신 못차리고 화장실 들락날락 하는 동안 난 얘네들하고 놀았다.


뭐하려고? 응, 먹을만한지 보려고. 너 혹시 개풀뜯어먹는? 여시네.

 배도 든든하고, 어제 아무데도 가보지 않은게 귀차니스트들에게도 꽤 아쉬웠는지 우린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선착장까지 걸어가기로. 아마 우리가 그곳이 어디이고, 날씨가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면 쉽게 결정을 내렸을까? 단순해서 그랬을지도.


책 보기 딱 좋을듯. 수다는 양념









 갯벌에서 갯벌 냄새를 맡고,

그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생명들을 지켜보고,

그 곳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이 녀석. 이 섬엔 쌍커플 개만 있는거냐? 이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하는 짓을 저지르는건 무슨 속셈이냐.

다시 갯벌이 있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 있다. 다정한 저 부부는 오르막길에선 같이 걸으셨다. 아주머니께서 무슨 얘긴가를 하자, 아저씨가 껄껄 웃으시는데 참 좋아보였다. 문득 이외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부는 전우애로 뭉쳤다란 얘기도 생각이 나고.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뭔가를 잡는다고 했는데.

점처럼 점처럼. 내가 그곳에 선다면 나도 점처럼.


나무 아래 자전거. 선유도엔 원래 차가 잘 안 다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데 이번엔 차들이 좀 많았다. 이인용으로 선선한 저녁에 같이 타고 다니면 좋겠지?

 뭔가 마구마구 털어놓을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잘 시간을 훌쩍 넘긴데다 여행의 말미에선 우리 둘 다 좀 조용해진 탓에 페이퍼에도 쓸 말이 생각이 안 난다.

 길은 가도가도 계속됐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손바닥만한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산에 올랐을 때도 이만큼 힘들었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니 부실 체력으로 오죽했을까. 약수터만 나오면 정상이고 뭐고 내려가겠다는 심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약수터가 어디냐고 물었었다.  아저씨들은 나를 아래위로 쑥 훑더니  나라면 20분인데 아가씨 폼으론 어림도 없겠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불치병이란 진단을 내리듯이 말이다. 그땐 약수터는 나와는 안 통하나보다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다행히 선유도에서는 선착장 전 마을에서 길을 묻자, 아저씨 한분이 태워다주셨다.

 선유도. 관광지이고 그게 또 이 동네분들의 일년 벌이이다보니 바가지도 많다하고, 인심도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섬에는 사람들이, 옆을 돌아보면 부러 환하게 웃진 않더라도 이것저것 재미있는걸 알려줄, 내 아빠같고 삼촌같은 분들이 많다는걸 여전히 난 기억한다. 예전에 왔을 때도 경찰 오토바이로 친절하게 섬을 알려주신 아저씨를 만났을 정도였으니.


 사람을 피해 쉬러 간 곳에서 사람을 만났다. 선유도에서 난 인상깊은 개들을 봤고, 풍경처럼 흐릿하게 있다 나 여기 있어요하며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선뜻 웃음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다 호출하지 못한건 조촐한 글탓 때문이다. 가끔은 졸필을 핑계로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아, 눈을 감으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얼굴들을 그려보며 심호흡으로 가슴을 한껏 부풀릴지도.

 충만하다, 충만하다. 거기 있을 당신들 덕에 충만하다. 



다시 바다. 그리고



안녕,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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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24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그 약한 펌프질에 딱 걸린 1인. 가보고 싶다 선유도에......

hnine 2008-07-2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마지막 사진이 뽑혔군요.
잘 쓰시네요 글...

Arch 2008-07-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추천을 누르셨다고 맘대로 상상하고, 순오기님. 성수기때는 너무 복잡하니까 휴가철 좀 지나면 설렁설렁 들리셔요. 이틀 정도 시간 잡아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1cm정도 행복해질거에요. hnine님 내 뽐뿌질의 장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