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생각해.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책임감은 어떻게 기르고, 인성은 어떻게 쌓아가고, 삶의 기쁨을 어디서 찾게 해야할지.
그런데 당신들과 다른건 난 좀 모질지 못하고, 입성 역시 바르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순간 순간의 판단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거야. 그럼 당신은 또 그러겠지? 큰 줄기가 있어야 한다고. 일관성을 지키는게 뭐 그리 어렵겠냐고. 그런데 정말 난 모르겠어.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알겠냐고.
게다가 얘넨 옥찌들이라고. 탱탱볼처럼 튕기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갇힌 물처럼 조용한. 조용해졌나 싶어 책을 꺼내들면 당장 달려들어 책 읽을 시간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라고 날 찌르고 똥치라고 놀리는 옥찌들이라고. 바짝 열이 나서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치면 당장 얼굴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표정은 없지 싶은걸 말갛게 띄워놓는데 이럴 때도 화를 내야하는거야? 일관되게 엄숙한, 혹은 일관되게 다정한, 어쩌면 때에 따라 바꾸고, 큰 맥락은 유지하라고? 대체 콩을 넣고 밥을 지으면서 팥죽이 되어 뭉글뭉글 끓이라고 하는건 아닌지,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지난번 일요일이 그랬지.
아침에 밥을 먹고나서,
-옥찌야, 오늘은 날이 흐리니까 놀이터엔 못갈거 같아. 대신 이모 해야할거 조금만 하고 울 옥찌들이랑 노는건 어때?
-그래, 그런데 약속 지켜. 나 이모꺼 뭐 쓸거 있는데 그때 같이 하게.
-그래, 그럼. 대신 옥찌랑 민이도 이모방 왔다갔다하지 말고 너희들끼리 안 싸우고, 잘 놀아야해.
사인에 복사까지 거쳐서 손으로 합의를 본 우린 각자의 방에 들어갔는데,
2분마다 들리는 큰소리와 울음소리, 울음소리 끝에는 어김없이 내 방문 앞에 둘 중 하나가 엉망인 얼굴로 상대방의 죄상을 낱낱히 고하고, 뒤이서 고발을 당한자가 자신은 전혀 잘못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사나운 눈으로 둘을 쳐다보면 티격태격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긴 하는데 다시 우당탕. 대체, 뭘 하는건지.
앉은지 몇분 되지도 않았는데 엉덩이가 들썩들썩, 혼내켜 줄까, 약속한걸 얘기하고 협상은 무효가 됐다고 버럭버럭 화를 낼까.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할까. 의외의 수법으로 살살 얼러볼까. 하는 일에 집중을 못하고 그놈의 큰 틀을 구상하고 있는데 웬지 수상한 조짐. 아이들 방에서 별다른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이다. 알겠지만, 이건 소란스러울 때보다 몇배는 의미심장한 메시지. 그래서 가만 들여다봤더니

이젠 몸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기가막혀 멍하니 지켜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왔는데 간헐적으로 엄마,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결국은 아빠까지 부르는 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서 중재를 해야할까 아니면 싸움을 부추길까. 일도 못하고, 어떻게 개입해야할지 선도 못그으며 애먼 머리카락만 쥐어 뜯고 있었다. 그런데 민이 목소리도 안 들리고, 아이들 방이 또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무슨 사단이 났구나. 내가 이럴줄 알았어. 씩씩대며 아이들 방에 갔는데,


웬지 세상사 구비구비 많이 겪은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화해를 하고, 기차를 태워준다며 민이를 자기 무릎에 앉히는 지희가 보였다. 태연하게 무슨 일 있었냐는 표정이다.
아직은 뭐가 옳은건지 어떤게 아이들을 위한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아닌 길에서의 개입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 안에도 자신들을 지키고, 자신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돛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그 돛대가 간만에 순풍을 맞아 망망대해에서 제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