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디너분들에게 시원한 풍경을 선사하고 싶어(누가 받는대?) 이리저리 서재 배경을 바꾸다 자전거 있는 풍경도 올리고, 바다도 올리다가 마침 들르셨던 hnine님께 딱 걸리고 말았다.

-저기 어디에요. 이쁜데요.

 서재 이미지는 바다로 바꾸었지만, 그 말에 또 잘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페이퍼를 쓰게 되는 요 팔랑귀는 누구한테 물려받은건지.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미루다 미루면 자판칠 힘이 조금 남아있을 어느 노년의 날쯤 올리게 되었을지 모를 페이퍼인 것이다.

 이주 전에 선유도를 다녀왔다. 차근차근 서재에 올릴 생각에 야무지게 사진도 찍고, 어떤 말을 남길지도 다 생각해놨지만 이놈의 게으름병이 도져 서재를 피하고, 아냐, 아무도 선유도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거라는 별로 납득 안 되는 이유까지 붙이며 브리핑 올리오는 것만 쓱쓱 다 보고선 서재를 모른척 해뒀다. 그러다 오늘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이러다 또 페이퍼 못쓰고 사설만 늘 것 같아 바로 시작한다.

 친구랑 같이 갔는데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냥 좀 쉬고, 또 쉬고, 맛있는거 먹자. 이게 다. 그래서 동선은 최소한으로. 한곳에서 모든걸 다 해결하기로 했다.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몇몇 아저씨들이 예약한 손님을 태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인상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자연산 광어를 오늘 갓 잡았다며 미끼를 던지셨다. 친구와 상의하고 말것도 없이 우린 차에 올라탔다. 문득 새우잡이 배가 생각나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콧방귀도 안 뀌었다. 도착한 민박집겸 식당은 선유3리로 선착장에선 좀 멀었지만,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물론 주말이지만 비수기라 어느 곳이든 사람이 없었지만.

 짐을 정리하고, 근처를 돌아보다 애초에 우릴 데려다주신 아저씨네 집과 가격 차이는 조금 나는데 방도 방이지만 창 밖으로 조그만한 바다가 보이는 다른 민박집을 발견했다.



 친구는 단번에 이 집으로 옮겨야한다며 옮겨야하는 이유를 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아무데서나 자도 상관없다주의였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차를 태워다준 아저씨에게 죄송했고, 어차피 귀찮아서 퍼져 있었다면 몰랐을텐데 단박에 맘이 바뀔게 뭐있냐 싶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친구의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눈을 흘기며 혼자 착한체 한다고 몰아대서 착하지 않은 내가 그런 소릴 들을 수 없다며 발끈한게 컸지만.

 

 민박집 앞에 있는 작은 바닷가에서 낙조를 보고,



 산 위로 안개가 피어나는 것도 지켜봤다.

 시간은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흘러갔다. 파도 소리가  일정하게 솨솨, 파도가 자갈들을 반질반질. 바람이 귓가를 말끔하게 닦아줬다.



 그, 회를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섰는데 검은개가 몸이 찌뿌등하니 좀 밟아주란 포즈로 저러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저게 꼭 식당에 들어와야 잠이 든다며 아무리 쫓아내도 다시 여시같이 들어온다고 지청구를 줬다. 아주머니가 하는 소리는 귓등으로 흘리고 태연하게 기지개까지 피는 검은개. 맛있겠다, 웬지 이런 말이 생각이 났지만, 다행히 난 보신탕을 못먹는다. 그게 뭐 다행까지겠으나.

 저녁상은 상다리 부러질만한건 아니었고, 음식을 막 찍고 이러는거 좀 쑥쓰러워 따로 사진은 없다. 다만 친구랑 피곤한 몸에 괜히 술을 들이부어 티격태격 싸우다 급기야는 노래방 기계를 쓴다는 아저씨들에게 자리를 양보 하냐마냐의 문제에서 시작해 왜 자신의 권리를 버리는지, 자존감이 있느냐 어디다 엿 바꿔먹었느냐는 문제로 첨예하게 날이 서선. 회가 어디로 들어갔는지, 자연산인지 따져봐야한다는 처음의 맹세는 파도에 실려 바다 멀리 보내버렸다. 다행히 뒤탈이 많은 둘의 성격상 내내 궁시렁대다 술이 깨고, 파도 소리가 계속 들리고, 방안에 계속 들이닥치는 다리 많은 곤충 덕에 은근슬쩍 화해는 했다.


넌 누구니? 네, 전 검은개 친구에요.
 

 아침에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바닷바람을 듬뿍 섭취한 몸을 하나씩 주섬주섬 챙겨 기어나고 있는데 요 녀석이 보였다.

 
쟨 누구야? 응, 내 친구. 그런데 왜 혀를 내밀고 있어? 너도 이 날씨에 털옷 입어봐.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얘... 쌍꺼풀 있다. 친구가 어제의 과음으로 정신 못차리고 화장실 들락날락 하는 동안 난 얘네들하고 놀았다.


뭐하려고? 응, 먹을만한지 보려고. 너 혹시 개풀뜯어먹는? 여시네.

 배도 든든하고, 어제 아무데도 가보지 않은게 귀차니스트들에게도 꽤 아쉬웠는지 우린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선착장까지 걸어가기로. 아마 우리가 그곳이 어디이고, 날씨가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면 쉽게 결정을 내렸을까? 단순해서 그랬을지도.


책 보기 딱 좋을듯. 수다는 양념









 갯벌에서 갯벌 냄새를 맡고,

그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생명들을 지켜보고,

그 곳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이 녀석. 이 섬엔 쌍커플 개만 있는거냐? 이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하는 짓을 저지르는건 무슨 속셈이냐.

다시 갯벌이 있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 있다. 다정한 저 부부는 오르막길에선 같이 걸으셨다. 아주머니께서 무슨 얘긴가를 하자, 아저씨가 껄껄 웃으시는데 참 좋아보였다. 문득 이외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부는 전우애로 뭉쳤다란 얘기도 생각이 나고.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뭔가를 잡는다고 했는데.

점처럼 점처럼. 내가 그곳에 선다면 나도 점처럼.


나무 아래 자전거. 선유도엔 원래 차가 잘 안 다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데 이번엔 차들이 좀 많았다. 이인용으로 선선한 저녁에 같이 타고 다니면 좋겠지?

 뭔가 마구마구 털어놓을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잘 시간을 훌쩍 넘긴데다 여행의 말미에선 우리 둘 다 좀 조용해진 탓에 페이퍼에도 쓸 말이 생각이 안 난다.

 길은 가도가도 계속됐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손바닥만한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산에 올랐을 때도 이만큼 힘들었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니 부실 체력으로 오죽했을까. 약수터만 나오면 정상이고 뭐고 내려가겠다는 심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약수터가 어디냐고 물었었다.  아저씨들은 나를 아래위로 쑥 훑더니  나라면 20분인데 아가씨 폼으론 어림도 없겠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불치병이란 진단을 내리듯이 말이다. 그땐 약수터는 나와는 안 통하나보다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다행히 선유도에서는 선착장 전 마을에서 길을 묻자, 아저씨 한분이 태워다주셨다.

 선유도. 관광지이고 그게 또 이 동네분들의 일년 벌이이다보니 바가지도 많다하고, 인심도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섬에는 사람들이, 옆을 돌아보면 부러 환하게 웃진 않더라도 이것저것 재미있는걸 알려줄, 내 아빠같고 삼촌같은 분들이 많다는걸 여전히 난 기억한다. 예전에 왔을 때도 경찰 오토바이로 친절하게 섬을 알려주신 아저씨를 만났을 정도였으니.


 사람을 피해 쉬러 간 곳에서 사람을 만났다. 선유도에서 난 인상깊은 개들을 봤고, 풍경처럼 흐릿하게 있다 나 여기 있어요하며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선뜻 웃음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다 호출하지 못한건 조촐한 글탓 때문이다. 가끔은 졸필을 핑계로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아, 눈을 감으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얼굴들을 그려보며 심호흡으로 가슴을 한껏 부풀릴지도.

 충만하다, 충만하다. 거기 있을 당신들 덕에 충만하다. 



다시 바다. 그리고



안녕,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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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24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그 약한 펌프질에 딱 걸린 1인. 가보고 싶다 선유도에......

hnine 2008-07-2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마지막 사진이 뽑혔군요.
잘 쓰시네요 글...

Arch 2008-07-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추천을 누르셨다고 맘대로 상상하고, 순오기님. 성수기때는 너무 복잡하니까 휴가철 좀 지나면 설렁설렁 들리셔요. 이틀 정도 시간 잡아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1cm정도 행복해질거에요. hnine님 내 뽐뿌질의 장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