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부지런히 녹화하던 sex and the city와 friends테잎을 다른 방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옥찌들 물건을 넣을 수 있게 하는 대대적인 정리를 하느라 몸이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는김에 양말 정리며 기타 등등 정리로 정리 의욕을 고조시키다 그만 한밤의 청소까지 손을 뻗친 상태. 엄마가 너무 힘들다며 전기구이 통닭에 맥주 한잔을 제안하셨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집 근처에 있는 신토불이에 가서 닭을 사가지고 오는데 닭구이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에 '어, 오늘 닭이 안 땡기나'했는데 안 땡기기는!  앉은 자리에서 모두들 배부르다며 물어날 때까지 가슴살을 맥주에 살살 녹여가며 먹어댔다. 이러면서 볼록 솟은 배를 귀여워해줄 누군가가 안드로메다에서 날아올거란 앙큼한 생각을 하다니!

 울산에서 일하시던 아빠도 돌아오고, 옥찌들도 안 자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던지라 온가족이 맛있게 통닭을 먹는  자리려니 했는데 웬걸, 다 먹고 난 뒤에 안 자고 계속 장난만 치는 옥찌들에게 양치질을 시키느라 알딸딸한게 깬데다 민이가 비데 리모컨을 자기도 갖고 놀아야하는데 못갖고 놀았다며 울어버리는 바람에 고함과 협박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됐다. 그래도 이를 닦다가 화해를 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웬걸. 요새 밤에 쉬아를 가리고 있어서 웬만하면 밤에 물을 안 먹는 민이가 양칫물을 먹는 바람에 다시 상황이 악화됐고, 민은 고함을 지르며 울고, 옥찌는 옥찌대로 왜 비데 리모컨을(여기서 노래가 나온단다) 선반 위에 뒀냐며, 그러면 자기가 의자를 받치고 올라가야하는데 그 불편함을 이모가 아냐며 나를 윽박질렀다. 정신 상태가 좀 온전했다면 사정 얘기를 했을텐데 취한데다 다른때와 다르게 할아버지 할머니 빽 믿고 더 말을 안 듣는 옥찌들이 미워서 그만 소리를 빽지르고 말았다.

 아빠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벼르고 있던 옥찌들이 단번에 달려들어 나의 죄상을 낱낱히 조아리기 시작했고, 아빠는 시늉으로나마 절대악인 나를 때리는척 했다. 솜방망이 주먹이 아플리야 없겠지만 서운한 맘도 있었고, 억울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그만 맥주가 점점 몸의 곳곳을 휘돌 즈음엔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말았다. 내가 옥찌들의 맘의 모든 부분을 아우를 수 없음에도 아우를 수 있다는 자만이, 내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의 답답함이 좀 해소되었다고나 할까. 전처럼 민이랑 싸우시기만 하지 않는 아빠며, 든든히 옥찌들의 서포트가 되어줄 엄마를 보며 책임감이 덜해서라기 보다는 옥찌들이 편향되지 않고 두루두루 맘을 줄 대상이 있다는게 맘에 들었다. 아, 무슨 말을 하는거지. 제이드님이 가끔 하시곤 하던 음주 페이퍼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딱 한잔 반이면 충분할 알딸딸한 느낌. 조금 서둘러 먹었던가? 알 수가 없다. 2PAC의 changes를 듣고 있다. 뜬금없이 즐겁다가 불현듯 침체되기도 했다가 다시 다른 음악에 업되고. 아 짜릿해. 나름 자족하는 음주의 맛을 점점 알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의 말미는 개선문.

그들의 여행 중에 라빅의 말,

-당신은 나의 뿌리가 없는 행복이 아니었던가. 구름 속에 있는 나의 행복, 서치라이트의 행복이 아닐까? 자, 키스라도 한번 해주지. 생명이 오늘처럼 귀중했던 때는 한번도 없었지. 생명같은 것은 조금도 가치가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나의 하루를 그야말로 뜬금없이 들뜨게 하는 것들을 난 알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08-10-2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술을 마시면 시니에님 같은 그런 '짜릿한' 느낌의 단계는 그냥 뛰어 넘어 바로 인사불성 단계로 가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음주페이퍼도 못쓴답니다.
개선문, 라비크 (제가 읽었던 책에는 라비크라고 써있었거든요 ^^), 그 책을 고등학교때 읽고서 얼마나 좋았던지, 그리고 또 얼마나 뭔가 아는 체 하고 다녔던지~ 오랜만에 기억을 불러일으키시네요.

Arch 2008-10-24 10:02   좋아요 0 | URL
hnine님! 그러니까 막 허겁지겁 먹은 다음에 페이퍼를 쓰기 시작하는거죠. 페이퍼 말미엔 사실 눈도 침침해 뭔소리 썼는지도 잘 몰라버린답니다. hnine님도 그 맛을 아시는군요. 라빅의 독백과 조앙을! 라비크란 이름도 좋은데요.
 


제 1장, 만남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도 가봐야 하는데, 반디 앤 루니스에 계세요.

 잠시 후, 아프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서성이고 있는게 보였다. 전화를 했지만 제발, 저분이 받지 않기를 바랬다. 무슨 소개팅 모드도 아니고. 아, 다행히 저분이 아닐까로 추정되는 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 통화로 모두들 11번 출구에 모여있다는 말을 듣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어색하게 썬글라스를 끼고 있는 아프님과 푸하님이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승주나무님이 반갑게 웃으시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승주나무님 머리가 너무 업스타일이신데.

 조금 늦은 사람들에게 장소를 알려주기로 하고 민들레 영토로 자리를 옮겼다. 지하철이 밀려서 늦으신 멜기님과 씩씩한 렌초님이 오셨다. 기억나는 몇가지. BT논쟁의 비유와 푼수대가리란 신조어. 분위기를 못타는 내게 쏟아지는 질문들. 질문에 답하고 있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승주나무님과 로렌초님의 말과 말로 혼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각자 읽고 있는 책들을 얘기하기도 하고, 다시 내 성분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승주나무님의 살신성인 정신으로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웬만하면 승주나무탓'이란 패러디까지 툭툭 튀어나왔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건 멜기님이 '자기가 멋있다고 그러면 뭐하냐'는 나르시즘적인 발언에 종지부를 찍는 말이었는데 명쾌한 여운 끝에 쓸쓸함이 묻어나는건, 나, 지금, 멜기님을 조금 알아버려서가 아닐까란 생각. 옆에 앉으신 승주나무님의 열정에 찬 책 추천을 듣다가도 멜기님이 기회만 되면 '그럼 5위부터'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푸하님의 나 못지않은 뜬금없음과 로렌초님의 방대한 지식, 아프님의 의외의 모습(난 이분이 말이 별로 없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 서재 이미지가 어땠길래!)을 보자니 먼길이었지만 참 잘왔단 생각이 들었다.

 많은 얘기들이 오간 가운데 아이의 자율성과 규율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편에선 아이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하고, 어른은 큰 아웃라인만 잡아줘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반면 그 입장에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과연 이상주의란게 현실 안에선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하는건지, 현실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이상이란건 이상 자체로 의미가 있는건지, 현실과 발맞춰가야하는지에까지 논의가 진행됐다. 이건 차후에 더 얘기할거리가 많을 것 같다. 게다가 너무도 당연하게 '청소년은 담배를 못피우게 강제해야한다'는 생각에도 많은 논란거리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접하면서 머릴 띵하게 만들었다. 물론 건강에 나쁘니까 담배를 피지 않도록 권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흡연을 금한다는게 과연 내가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흡연하지 않도록 강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자율성을 허용하는 범위라는게 매끈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첫 자리의 분위기가 사그러질 즈음 우린 거리로 나왔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하는 분들에게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제 2장 이동 및 부딪힘
 

 근처로 이동해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본격적인 음주를 시작할줄 알았는데 아프님이 정말 잘 아는데가 있다며 대학로까지 걷자고 했다.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라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지만 종로에서 대학로까지의 거리가 가늠이 안 됐다. 가보고나서야 걸을만하다는걸 알았지만 처음엔 걷다가 날 저무는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겁을 냈다. 촌스러운건 어디가나 마찬가지.

 주말, 종로의 보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쉬이 피로해지는 다리 때문에 빠르게 걷다가 사람들에 부딪히자 남자분들이 통상적인 배려차원에서 날 안쪽으로 걷도록 해줬다. 그 전에 가방까지 선뜻 들어주신터라 황망한 기분이었는데 이런 배려를 해주자 괜히 아까 말한 자율성 얘기가 하고 싶어서 목구멍이 간질간질. 이것도 받아봐야 맛이란 말이지.

 바람은 선선했고, 종로를 지나자 사람들도 별로 눈에 안 띄자 정말 걷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묵묵히 걷기만 하는 것도 때론 많은 말들의 공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막연히 몇 번 노선의 대학로가 아니라 종로와 이어진 대학로라고 하니 머릿속에 지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멜기님의 너무 멀단 말에 굳이 100m를 강조하며 모든건 100m로 통한다는걸 보여주는 아프님의 캐릭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가만보면 길을 잘 모르는 것도 같다. 아프님의 말인즉, 랜드마크가 있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푸하님이 소싯적 기억을 되살려 어찌됐든 도착하긴 했다.

 다시 민들레에.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10-22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10-2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푸하님이 시니에님 재밌다고, 완전 좋아하시던데요 ^_^

Arch 2008-10-23 00:2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웃겨드린적이 없는데... 푸하님은 당황하시면 재미있어 하시나? 혹시 숨겨진 BT?

2008-10-23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3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3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3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8-10-2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이리 다들 비밀스러우실까...

Arch 2008-10-23 22:3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저야 볼 수 있다지만 다른분들은 좀 답답하겠다 싶죠.

마노아 2008-10-23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로 민토에서 대학로 민토까지 걸어간 거예요? 다리 아팠겠다.^^

Arch 2008-10-23 22:31   좋아요 0 | URL
아니요. 다른 민들레였어요^^ 전 다리 안 아팠는데 비밀스럽다고 의문 기호를 떠올리신 분이 좀 그러셨죠^^

마늘빵 2008-10-23 23:54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투어해도 저는 환영. 이번엔 저 혼자서 찾아갈 수 있어요. (정말?)

Arch 2008-10-24 10:21   좋아요 0 | URL
아프님 과연 정말? 입니다. 아프님은 긍정적인게 참 좋은데... 참 좋다구요^^ 저는 아프님 혼자서 찾아갈 수 있다는데 돈 안 겁니다. ㅡ,.ㅜ

순오기 2008-10-2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남녀들끼리 뭉친거예요? 좋다~ 부럽다!!^^

Arch 2008-10-24 21:59   좋아요 0 | URL
헤~ 순오기님의 왕성한 활동을 보면 가장 청춘 같은데요 뭘.
 

 문제 하나 낼게요.
전국에 934개가 있습니다. 혹시 뭔줄 아시겠어요?

 바로 시,군을 가리지 않고 난립해있는 축제의 수입니다. 10월 17일, 참여자치시민연대 주최로 군산축제발전토론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난 그렇게 많은 축제가 있다는걸 처음으로 알았다. 물론 이런 축제가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시민들의 즐거움을 준다면야 문제될건 없다. 하지만 앞서서도 말했듯이 거의 난립 수준에 지자체의 장이 바뀔 때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탓에 축제 본래의 기능은커녕 예산 낭비와 시민소외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세분의 교수님이 발제를 했다. 군산 축제인 진포 문화제, 자동차 부품 엑스포, 오성문화제, 세계철새관광축제, 군산벚꽃축제, 쭈꾸미축제, 새만금해맞이축제의 문제점과 성과에 대한 내용과 축제의 의미와 문광부의 정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른 시.도의 축제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훌륭한 선례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변별성이 없는데다 단순하게 이벤트로 그치기 때문에 관광효과도 시민들이 어울려서 즐길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예산확보의 어려움과 관주도형 축제 만들기, 지역인사나 시장 군수의 생색내기로 인한 철학과 스토리의 부재로 집약된다. 다른 시.도의 평창효석문화제나 진주위등축제, 춘천마임축제를 소개하며 그 축제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법과 다른 사람들이 다시금 찾을 수 있게 하는 동력의 내용을 소개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론쪽에 가까운 발제이다보니 지루한감이 있었고, 군산축제발전토론회인지 한국의 축제 난립의 문제와 대안제시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물론 개론은 필요하고, 축제란 사안을 큰 틀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군산의 축제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었다.

 발제가 끝난 후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진 뒤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다른 분들 발제도 인상 깊었지만 정말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분으로 청소년문화의집 관장인 정건희씨를 꼽고 싶다. 정건희씨는 축제의 중요한 의제를 가치와 참여, 평가라고 설정한 후 지역, 관광의 문제로 축제를 한정시켜서 지역민은 객체로 보고선 외부인사의 수로만 축제의 성패를 가르는 현 축제평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민간축제는 언급을 안 하는데다 시민참여가 아닌 단순히 먹고 마시기만 하는 동원이 되어선 안 된다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만한 조직 구조가 매우 취약한건 사실이지만 연예인 불러놓고 몇만명 동원하는게 축제는 아니다란 너무 뻔한데도 사람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적확하게 짚어냈다. 군산시의원인 강성옥씨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춘천의 마임축제는 축제의 내용이 난장과 먹거리에 가려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축제의 내용에 참여와 학습, 컨텐츠가 확보되야할 것을 당부했다.

 전주삼천문화의집 관장인 이준호씨의 경우 전주 사례를 말하며 6개동에서 주민참여로 축제가 진행됐고, 군산시에선 인력풀을 관리함으로써 충분히 시민의 힘으로 축제를 치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했다. 토론자의 발언이 끝난 후 호원대 관광학부 교수인 심인보씨는 세계철새축제가 교육적 목적이란 이유로 전망탑을 110억에 지어놓고선 전혀 효과를 못보는 문제를 제기하며 군산의 자연적 환경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홍보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전군도로의 벚꽃축제의 경우에도 신작로 1호라는 특수성이 사라진 후에 지속되는건 문제가 있고, 지금으로선 교통량으로 봐서도 의미가 없다는 말로 지금과는 다르게 군산축제에 접근할 것을 당부했다.

 그 밖에도 각자의 입장에 충실한 고민과 군산이란 의제를 바탕으로한 얘기들이 오갔다. 성실한 기록자는 못되는 편이라 이쯤에서 그날의 분위기 스케치를 마친다. 사실 나는 축제토론회에 참여하기 전에는 축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만 몇 번 축제에 참여하면서 불편한 느낌이 들곤했다. 그건 축제로서 즐겁다기 보다는 생색내기 혹은 전시용 축제란 느낌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축제다운, 모두가 즐겁고 축제 기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축제는 정말 요원한걸까?

 고은과 채만식의 생가가 있는 군산, 고군산 군도가 있고, 내항의 야경이 아름다운 군산, 월명산의 산책로와 늪지, 은파의 고요한 호수와 연꽃, 히로쓰 가옥 등 찾아보면 군산의 매력은 많다. 그게 꼭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유입시켜서 경제부양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군산 시민들이 축제를 기다리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축제기간에는 2-3일 직장인은 휴무를 갖고 학생은 등교를 안 하는 방법은 어떨까. 굳이 군산에 대해서 알음알음 한 전문가가 아니라 군산에서 터를 닦고 살며 군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이 주축이 된 축제발전위원회를 운영해보면 어떨까. 매번 무슨 행사에서 느낀 것이지만 꼭 외부의 시선으로 지역문제를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다. 물론 필요한 일이고, 사안에 따라선 시사하는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틀 안에서 전문가의 도움이 되는 것이지 시작에서부터 외부 시선을 상정하는건 문제적이란 생각이다. 왜 무슨 기획특집때처럼 전혀 한국에 관심없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느낌이다. 영화동쪽의 히로쓰 가옥지구를 바탕으로 일제시대를 재현해보거나, 지금은 폐쇄된 군산역 철도길을 축제구간으로 삼거나 축제기간에는 군산통화를 상품권처럼 구입해서 거래해보는건 어떨까. 지역화폐는 화천산천어 축제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군산축제토론회에 대한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가 아주 멋진 제안을 했다. 자신이 촛불집회를 할 때 차를 막아놓고 대로를 걸어보니까 단순하게 어디에서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길이 아닌,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걸어다녔겠구나, 이 정도의 거리면 어떤식으로 물자가 교환이 됐겠구나란 지도가 그려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가 아니라 어느 날을 정해서 도로 위에 모두가 몰려나와 각자가 말하고 싶은걸 발언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피켓을 들어도 되고, 구호를 외쳐도 되고, 희안한 복장이나 공연을 해도 되는 날. 누군가를 초빙하거나 누군가의 조언이 아니라 관과 축제관련위원회은 아웃라인만 잡아주고 한번 신나게 놀아보는 축제 말이다.

 그런 축제라면
 리오카니발을 위해 일년의 반을 준비하는 브라질 사람들처럼, 마쯔이의 인력거를 끌어보는게 영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나도 나의 일상을 쨍하게 비춰줄 축제만을 기다리게될텐데. 그렇다면 단순히 경제적인 효과나 관광효과 등등의 효과로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축제가 아니라 행복 에너지가 쑥쑥 올라갈 수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할텐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에 다녀와 오랜만에 옥찌들을 봤다.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요녀석들을 지켜봤다. 옥찌들은 잘 놀다가 가끔씩 내가 눈에 띄면 왜 좀 더 재미있게 놀지 않냐고 날 타박했다. 이제는 알아서 숙제도 하고, 손이랑 얼굴도 잘 씻는다. 옷도 개워놓을줄 알고, 내가 옷 안 갈아입고 있으면 제대로 하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뭘 묻거나 왜 그런지 따져묻지 않고 옥찌들을 바라보니 맘이 편해졌다.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아이들을 잘 봐야해' 강박은 물론 괜히 욕심내다 일을 더 망치는 우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옥찌들은 한번씩 내게 몸을 부딪히고선 앞구르기를 하고, 나는 나대로 작은 발들이 허벅지를 밟는게 간지러워 혼자 자지러졌다.

 12월에 있을 재롱잔치를 준비한다고 SO HOT을 연습하는 옥찌와 산타 할아버지 노래를 제법 잘 따라부는 민. 둘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선 보여주니까 카메라를 밀치며 자꾸 웃는다. 고함을 지르고 싸움을 하다가도 금세 화해하고, 화해했나 싶어서 흐뭇해하고 있으면 곧 다시 싸운다. 민이가 날 때려서 같이 때렸더니 옥찌가 이모가 그러면 안 된다며 그럴땐 계속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지 같이 하면 같은 사람 된다고 말해줬다. 계속 때려서 그냥 말만 해야하냐니까 그렇단다. 그건 내가 한 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내가 그렇게 자주 한 말이었다. 우는 민과 화해를 하고서 책을 봤다. 옥찌는 자기 전에 민이 쉬아를 밤에 네법 보게 하면 이불에 안 싼다고 하지만 자신이 없는걸. 지희도 같이 하자니까 자긴 피곤하댄다.

 옥찌들 돌보기가 아니라 이모 돌보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많이 든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입 아프도록 뭘 해야한다고 잔소리를 하고 다녔다. 잔소리 뿐이면 다행이겠지만 목소리가 커졌고, 맴매한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럴때면 그나마 이모 말은 들으려고 애를 쓰다 그만 모르겠어서 옥찌들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얼마나 몰아세웠던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잘 하고 있는데... 민이는 그 흔한 짜증 한번 안 내고 도리어 은하차차 999를 불러주며 애교까지 피웠다. 민이가 내게 감겨 날 꾹꾹 안아줬다. 내 몸이 크니까 구석구석을 안아준거겠지? 화날때면 이모 밉다고 고함을 질러대던 녀석이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간에 썼던 페이퍼들을 둘러보니 옥찌들과의 관계는 늘 비슷했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말을 잘 들었다가 다시 제멋대로였다가. 그런데 그건 옥찌들 뿐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정맞다가 센치해졌다, 진지해졌다가 흥분했다, 야했다가 의뭉스럽기도 하고. 그저 친구 두명이랑 같이 지내는 것처럼 옥찌들을 바라보자니 얘네들이 말을 잘 듣고 안 듣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랑 얼마나 잘맞는지, 내 어떤점이 어필하고, 이 아이들도 내게 어떤걸 보여주려고 하는지가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두명의 친구는 내게 어떤 의미가 되어갈까, 난 이 친구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기억을 타고 생각이 쑥쑥 자라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도 점점 따뜻해지겠지? 암, 다시 또 다르게 시작이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지막에 잔여물을 한번 쭉 핥는 꼼꼼함. 어묵, 핫도그 기타 등등 나무젓가락에 꽂혀있는 무언가가 먹고 싶은 밤이에요. 괜히 저녁에 죽을 먹어가지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스탕 2008-10-1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오늘도 아침에 봐서 다행입니다. ㅎㅎㅎ
민, 가슴의 몽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요 :)

순오기 2008-10-1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러워라!!
저렇게 먹던 시절이 언제였던고~~ 아, 옛날이여!! ^^

Arch 2008-10-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몽키는 바나나^^

순오기님, 맘만 있으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