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다녀와 오랜만에 옥찌들을 봤다.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요녀석들을 지켜봤다. 옥찌들은 잘 놀다가 가끔씩 내가 눈에 띄면 왜 좀 더 재미있게 놀지 않냐고 날 타박했다. 이제는 알아서 숙제도 하고, 손이랑 얼굴도 잘 씻는다. 옷도 개워놓을줄 알고, 내가 옷 안 갈아입고 있으면 제대로 하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뭘 묻거나 왜 그런지 따져묻지 않고 옥찌들을 바라보니 맘이 편해졌다.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아이들을 잘 봐야해' 강박은 물론 괜히 욕심내다 일을 더 망치는 우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옥찌들은 한번씩 내게 몸을 부딪히고선 앞구르기를 하고, 나는 나대로 작은 발들이 허벅지를 밟는게 간지러워 혼자 자지러졌다.

 12월에 있을 재롱잔치를 준비한다고 SO HOT을 연습하는 옥찌와 산타 할아버지 노래를 제법 잘 따라부는 민. 둘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선 보여주니까 카메라를 밀치며 자꾸 웃는다. 고함을 지르고 싸움을 하다가도 금세 화해하고, 화해했나 싶어서 흐뭇해하고 있으면 곧 다시 싸운다. 민이가 날 때려서 같이 때렸더니 옥찌가 이모가 그러면 안 된다며 그럴땐 계속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지 같이 하면 같은 사람 된다고 말해줬다. 계속 때려서 그냥 말만 해야하냐니까 그렇단다. 그건 내가 한 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내가 그렇게 자주 한 말이었다. 우는 민과 화해를 하고서 책을 봤다. 옥찌는 자기 전에 민이 쉬아를 밤에 네법 보게 하면 이불에 안 싼다고 하지만 자신이 없는걸. 지희도 같이 하자니까 자긴 피곤하댄다.

 옥찌들 돌보기가 아니라 이모 돌보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많이 든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입 아프도록 뭘 해야한다고 잔소리를 하고 다녔다. 잔소리 뿐이면 다행이겠지만 목소리가 커졌고, 맴매한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럴때면 그나마 이모 말은 들으려고 애를 쓰다 그만 모르겠어서 옥찌들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얼마나 몰아세웠던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잘 하고 있는데... 민이는 그 흔한 짜증 한번 안 내고 도리어 은하차차 999를 불러주며 애교까지 피웠다. 민이가 내게 감겨 날 꾹꾹 안아줬다. 내 몸이 크니까 구석구석을 안아준거겠지? 화날때면 이모 밉다고 고함을 질러대던 녀석이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간에 썼던 페이퍼들을 둘러보니 옥찌들과의 관계는 늘 비슷했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말을 잘 들었다가 다시 제멋대로였다가. 그런데 그건 옥찌들 뿐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정맞다가 센치해졌다, 진지해졌다가 흥분했다, 야했다가 의뭉스럽기도 하고. 그저 친구 두명이랑 같이 지내는 것처럼 옥찌들을 바라보자니 얘네들이 말을 잘 듣고 안 듣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랑 얼마나 잘맞는지, 내 어떤점이 어필하고, 이 아이들도 내게 어떤걸 보여주려고 하는지가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두명의 친구는 내게 어떤 의미가 되어갈까, 난 이 친구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기억을 타고 생각이 쑥쑥 자라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도 점점 따뜻해지겠지? 암, 다시 또 다르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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