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업 - 법륜 스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 지혜롭게 키우는 법
법륜 지음, 이순형 그림 / 휴(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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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엄마 수업>을 선물받았다. 평소 법륜스님의 활동을 좋아하고, <스님의 주례사> 같은 책의 어떤 부분은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엄마 수업>도 뒤에 적힌 '세 살까지는 헌식적 사랑, 사춘기에는 지켜봐 주는 사랑, 성년기에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에 절대 동감한다.


그런데도 쉽게 책에 손이 안 갔다. 우선 엄마 수업, 이라는 제목. 요새 세상은 엄마들에게 예전 엄마들의 희생뿐 아니라 엄마로써 갖춰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당연히 부모가 되는 것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가 되는 일이 한 인간이 완성되어 가는 길과 다른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과 엄마가 따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글로 읽는 것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또 스님에게 주로 고민상담을 해오는게 여자, 엄마들이기에 이렇게 엄마들한테 하라는 게 많은 것일 게다. 아빠 수업이 나온다면 비슷한 말을 아빠들에게도 해야 하겠지.


하지만 우선 읽을 때 그냥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게 또 사실.


인간은 기본으로 참회해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게 불교 사상이지만, 또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바람을 펴서, 그것때문에 아이가 삐뚤어졌다면 남편에게 참회하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은 공감할 수 없다. 차라리 바람 피는 것이 뭐 그렇게 죽일 일도 아니고, 신의를 저버린 일에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내 마음을 돌이켜보고, 왜 그게 아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남편은 왜 바람을 폈는지 살펴보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싶다.


세 살까지 엄마의 희생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 세 살까지 엄마들이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다른 사람 손을 빌려 아이를 키우는 현실을 그냥 엄마들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물론 나도 세 살까지 아이가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자기한테 집중된 관심을 받으면서 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이를 품고 출산하고 젖을 먹이는 엄마이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물론 지금 현대 사회 사람들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성찰해 봐야 할 일이지만) 더 행복한 엄마가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젖을 먹이는 1년은 엄마가 육아휴직을, 2년째는 아빠가 일년 육아휴직을, 3년째는 맡기거나 탄력 근무제를 적절히 이용하는 거지만, 이건 뭐 엄마가 3년 키우기보다 더 어려운 환타지니.


그리고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세 살까지 엄마가 온전히 본 게 아니다. 집안에 어른이 많아서 엄마들은 들일 밭일 집안일하며 젖먹이고, 애는 이손저손 타면서 자랐다.
현재 육아는 역할이 딱 지워져버린 가족 구성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스님의 말은 청소년기에 좀 놔주는 사랑 부분에서부터 공감이 간다. 그런데 이때도 엄마는 눈물로 참회하는 존재보다, 엄마 역시 자기 삶에 치열하고 열정있게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된다면 그게 훨씬 아이들을 잘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부모가 아이들을 돕는 기간이 있어야 하지만, 부모이자 인간이 공존하고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노릇과 인간 노릇이 합체되어야 부모도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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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델의 소년 카르페디엠 21
제임스 램지 울만 지음, 김민석 옮김 / 양철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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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말,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뻔한 말 같지만, 또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말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알프스 최후의 산, 시타델을 날마다 마주하는 루디는 그 산을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산에 갈 때면 정상을 다녀온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물론 히말라야나 알프스 산들은 다르겠지만) 힘들어죽겠는데도, 정상을 꼭 밟게 된다. 그냥 느긋하게 갔다오는 거야, 해도 꼭대기가 있는 것은 정상을 오르는 맛이 있다. 정상을 가기 위해, 정상만 바라보며 하는 등산은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산을 타는 데 정상을 가지 않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정상은 누구에게나 허락하는 게 아닌 곳.
그래서 산악만화가, 산악소설이라는 장르가 나온다.
산에 가는 것만큼 산에 관한 책이 좋다. 산 아래 머무는 밤이 설레고, 힘든 한 걸음에 감동한다.
특히 산에 관한 이야기만큼 청소년 소설에 맞는 주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만났다.
루디가 너무 쉽게 정상을 올라가버릴까봐, 처음 알프스의 아무도 오르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게 될까봐, 그러면서도 오르길 기대했다. 하지만 앞으로 미래가 더 넓게 펼쳐진 루디의 앞날처럼 루디에게는 또 기회가 있다.
'처음'이라는 것에 세상은 목매지만, 사실 자신에게는 언제나 처음 아닐까. 산에서 보냈을 하얀 밤이 느껴진다. 그리고 창문 너머 시타델 산이 보이는 쿠르탈 마을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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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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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온 에세이 책들은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기 보다는 중간중간 읽어도 상관없는 병렬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긴 에세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라는 부제는 매력적이다.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국어 참고서에는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박스로 처리되어 종종 실리곤 했는데, 학기 초가 되어 참고서를 사면 가장 먼저 그 이야기들부터 찾아서 읽었다.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 작품의 뒷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참고서에 실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그런 이야기가 학생들이 작품에 관심을 폭넓게 갖게 만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자체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내가 읽은 작품 뒷이야기에 더 눈이 간다. 

이 책은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알아서인지, 원작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짧은 뒷이야기 뒤로 짧게 요약한 책의 간단한 줄거리가 쓰여 있다. 원작에 나와있으면 몰라도 아니면, 보통 200쪽이 넘는 장편소설들을 한 두쪽으로 요약하는 일이 참 고생스러웠을텐데, 그 요약이 좀 별로다. 

갑자기 문학작품을 5지선다형으로 공부하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병렬식 구조로 된 책은 전체로 한 방향으로 가는 기분이 안 들어서 좀 소품느낌이다. 하지만 나름 이 책은 분류도 해놓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따금씩 내용이 뜬금없다. 어떻게 보면 그 나라에서는 너무 유명한 작품 이야기를 하는 거라 자세한 설명이 안 붙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령 모비 딕 설명에서는 268쪽에 허먼 벨빌이 포경선 선원 출신이라고 나오는데, 다시 270쪽에 '멜빌 자신도 잠깐이나마 포경선 선원 생활을 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사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이다. 포경선 선원을 하다 작가 생활을 하게 되는 것, 쉽지 않은 일 같은데, 너무 당연하게 다들 작가가 될 마음이야 품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것처럼 넘어가 버린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서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이 더 많아지는 작품도 많고 그런 부분에서는 편집이 놓친 것들이 많이 보인다. 

또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이런 책은 자기가 읽고 싶은 작품부터 찾아 읽는 경우가 많은데, 페이지가 가운데 그게 한꺼번에 짱박혀 있어서 안 그래도 잘 안펴지는 가운데 부분을 빡빡 눌러야 겨우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으로 그게 탐났어도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어떤 순서로 읽을지 자연스러운 흐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처음부터 유명했을 것 같은 작가들이 작품을 내려고 무수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대부분 작가 스토리에 그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우리 앞에 한 편의 문학작품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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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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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하응백... 세 명의 시인과 한 명의 평론가가 자신들이 사랑하는 시를 이야기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시를 통하면, 한겨울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만든 눈사람이 스르륵 녹는 순간 느낀...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한 받아들임 같은 감정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눈사람도 자연스럽게 녹지 못하고 자동차에 치여 죽어버리는 시대가 됐다니 씁쓸해진다.
아무리 시를 자유롭게 읽고 자유롭게 사고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시집을 들기까지는 오래 걸린다.
시집을 들고도 잘 몰입이 안된다. 그런 날은 나는 한 편씩 소리내서 읽어본다.
그럼, 묘하게도 시 한 편에 얽힌 이야기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여기 작가들이 보여주는 사랑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장석남의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라는 글에 나온 것처럼 '듣던 음악도 그전에 듣던 음악이 아니고 바라보는 책상 모서리도 예전의 책상 모서리가 아닙니다. 생전 처음 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많습니다'...하는 게 사랑이다.
이렇게 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들을 이야기해주는 어떤 날은 사랑하는 어떤 이처럼 내 속에 들어와 내 마음을 다 흔들어버리는 시가 있나보다.

 

한 편 한 편 길지 않은 시에 얽힌 글들을 시처럼 읽었다.
중간중간 흑백 사진도 글을 읽는 데 꼭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쉬운 점은 저작권 문제 때문일 것 같은데, 언급된 시들이 책에 다 실리지 않았다는 것.

 

이런 책을 읽을 때 컴퓨터를 같이 켜고 싶진 않은데(스마트폰도) 시인의 시가 많이 궁금해져서 힘들었다는 것, 책 만드는 이들이 좀더 부지런을 떨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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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게임 - 도다 세이지 단편선 2
도다 세이지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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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라는 작품을 인상깊게 읽은 작가의 다른 단편집이다. sf물을 묶은 단편. 그 가운데 '쿠바드 신드룸'이 가장 인상깊다.
아무래도 임신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겠지.


쿠바드는 남자가 여자, 산모의 고통을 분담해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아내가 출산 즈음해서 남편이 아내의 출산을 흉내내는 풍습으로 남아메리카에서는 남자의 몸에 일부러 상처를 내거나 고환을 묶어서 산모와 비슷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등의 행위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산하면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지붕지랄'과 문지방에 구멍 뚫어서 상투를 넣어두면 산모가 그걸 잡고 힘쓰는 '상투빌이'가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 블로그에서 본 내용인데, 다른 데는 이런 말이 별로 없네. http://blog.naver.com/parkleekim/140162082435)


요샌 드라마에서 잘 안보이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드라마에서 아기 낳는 장면에서 꼭 부인들이 남편 머리채를 잡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나보다.


이런 풍습이 있었던 걸 보니.

이런 풍습을 미래 남편이 임신할 수 있는 것과 엮고 부성까지 엮다니! 음, 이 작가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신선하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조건 긍정이 아니라 사람 본성에 숨은 작은 희망씨앗을 이야기하는 게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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