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구판절판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22쪽

생김새도 아주 귀엽다. 볼도 동글동글, 곱슬머리도 동글동글, 눈도 동글동글. 아이를 와락 껴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그랬다간 그 애의 위엄을 얕잡아보는 게 될 것 같아 감히 도전할 수 없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빤히 쳐다볼 때 킷의 눈빛은 메데아조차 움츠러들 정도야. 이솔라 말로는 킷이 그런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두 명 있었대. 자기 개를 때리는 잔인한 스미스 씨, 그리고 줄리엣더러 오지랖 넓은 참견쟁이라며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악마 길버트 부인. -293쪽

요즘 나는 화가들이 그리고 싶은 대상을 어떻게 찾아내는지에 관한 책을 보고 있다. 예컨대 화가가 오렌지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치자. 그럴 때 오렌지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화가는 자신의 눈을 속이고 그 옆에 있는 바나나를 응시하거나, 머리를 숙여 다리 사이로 거꾸로 관찰한다. 오렌지를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관점 구축’이라 부른다. -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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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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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40대 중반에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얼마나 춥게 살았으면 우선 따뜻한 것이 가장 좋다 하였을까. 한갓져서 조용하고 마음껏 외로울 수 있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마음대로 아플 수도 있고 하염없이 생각에 젖어 들어도 누가 뭐라 않는 곳이어서 좋다는 마음을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은 적이 있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선생은 비로소 스스로를 스스로답게 부리며 살아 냈던 것이다.
-5쪽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가장 인간스럽게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내가 사람답기 위해 또 한 사람을 찾고 있다. 나는 여지껏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태까지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외로운 만큼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46쪽

옛날 어느 며느리가 보리방아를 찧는데 시어머니가 쓸어 넣어 주지 않아 고생스럽기 짝이 없었다. 본래 보리방아는 마른 보리에 물을 줘서 찧어야 껍질이 벗겨지는데, 확에다 물을 부으면 보리가 한데 엉겨 붙어 계속 쓸어 넣어야만 한다. 그러자니 며느리 혼자서 디딜방아를 찧다가 확으로 내려와 빗자루로 쓸어 넣고 엉겨 붙은 보리를 우겨 넣고, 다시 방아가랑이로 올라가 찧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혼자서 찧자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결국 며느리는 여름내 혼자서 보리방아를 찧다가 쓰러져 죽어버렸다. 죽은 며느리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그게 금빛 꾀꼬리인 것이다.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한풀이를 하느라 "보리방아 쓸어 넣어 주소." 하면서 운다.
물론 꾀꼬리는 이렇게 길게 사설을 읊조리며 울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동 달아매용!’이라는 소리는 틀립없이 들린다.
이곳 안동 지방에서는 꾀꼬리를 ‘달아매용새’라고 하는데 그런 사연이 있고, 울음소리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135쪽

괴인테마을 아주머니는 뻐꾸기가 ‘볼걸! 볼걸!’ 하며 운다고 했다.
옛날, 어느 곳에 산을 하나 사이에 두고 처녀 총각이 혼약을 했다. 다가오는 가을이면 혼례를 치를 텐데 갑자기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총각이 싸움터로 가 버렸다. 3년을 기다려도 총각이 돌아오지 않자 처녀는 그만 몸져눕게 되었다. 분명 총각이 싸움터에서 죽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누워 있던 처녀는 점점 야위어 죽고 말았다.
그런데 처녀가 죽은 다음 날 그토록 기다리던 총각이 천신만고 끝에 싸움터에서 돌아온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처녀가 바로 전날 그만 죽었다는 것을 알자 총각은 대성통곡을 하고 역시 그도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았다.
죽은 두 사람은 새가 되었다. 그래서 구슬프게 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볼걸! 볼걸!
-136쪽

돌아가신 박실 어르신네는 제비 울음소리를 재미있게 흉내 내셨다. 제비는 벌레만 잡아먹지 절대 곡식은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울 넘어 담 넘어
콩 한 쪼가리 집어 먹었더니
비리고 배애리고!

옛날, 어느 멍청한 제비 한 마리가 배고푼 것을 참지 못해 콩 한 조각을 집어 먹고 죽을 애를 먹었다. 어찌나 쓰고 비리던지 새끼들한테는 절대 먹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할아버지, 할머니 제비와 아버지, 어머니 제비는 빨랫줄에 새끼들을 줄지어 앉혀 놓고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비리고 배애리고!
비리고 배애리고!
-137쪽

할미꽃은 이른 봄부터 진한 자줏빛 족두리 같은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꽃잎이 떨어지면서 머리칼 같은 텁석부리가 다시 피어난다. 아이들은 그 머리칼 같은 털씨를 잔뜩 뜯어 모아 손아귀에 가볍게 놓고 두 손으로 조심조심 비빈다.

할망이 할망이 꼭꼭 숨어라
뒷집 영감
도끼로 네 머리 쪼로 온다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그렇게 살살 쓰다드듯이 비비면 동그란 할미꽃 공이 된다. 어떤 애들은 탁구공만 하게 만들고 재주가 좋은 아이는 테니스공만큼 크게 만들기도 한다. 풀꽃으로 만든 공이니까 풀 향기가 물씬 나는 살아 있는 공이다. 말랑말랑해서 망가지기 쉬우니 살살 던지면서 논다.

질경이 줄기-풀싸움
왕골 잎-시계 만들기
보릿짚 대궁-여치집 만들기
무릇 뿌리-풀각시
댕댕이덩굴-바구니
-139쪽

누군가가 말하길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수많은 목숨들의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일이다. 이 세상에 절대 강자는 있을 수 없듯이 어느 하나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모두 죽여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모두 제거해 버리면 결국 나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도둑놈도 씻나락은 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남의 것을 훔쳐 먹는 도둑이지만 씨앗까지 훔쳐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도둑만도 못한 인간이 다 되었다. 1년에 5만종 이상의 씨를 말리고 있는 삶을 예사로 살고 있지 않은가.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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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구판절판


힘들다고 더 이상 못 쓰겠다고 말하는 건, 타이페이를 갔더니 너무 더워서 호텔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타이페이를 다시 방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더위보다는 경험에 집중하게 되겠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지금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고통이 아니라 지금 소설을 쓰는 일에 몰입한다면 결국에는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끝이 있는 여행이지만, 그 사실을 매 순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24쪽

매일 달리는 일…
보통 1시간 안팎으로 달리는데, 그 시간이 모두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물론 달리기를 하다 보면 마치 근육이 아니라 의도만으로 몸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면서 고통 없이 속도감을 만끽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인다는, 그러니까 내 육체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건 전체 달리기 중에서 극히 짧은 순간이다. 많은 시간, 나는 내 생생각보다 몸이 무겁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 그렇지 않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
-25쪽

아무리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비디오로 촬영해도 한 번 지나간 뒤의 일들은 더 이상 내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삶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나는 날마다 익혀야만 한다. 그럴 때, 내게 학교가 되는 건 숲이다. 숲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나무와 새 들은 영영 맑은 날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자연적인 사실이 있어서 세찬 바람과 축축한 둥지를 견딜 수 있었으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고, 모든 일은 지나간다는 그 자명한 사실 덕분에. 나무와 새 들은 그 사실로 이뤄진 나날을 그저 겪을 뿐이다. 맑은 날에는 맑은 날을, 흐린 날에는 흐린 날을 겪는다.

나는 매 순간 변하는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그날의 날씨를 최대한 즐기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40쪽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일어난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넘겨짚고, 현지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사람이다. 우린 애당초 그렇게 생겨 먹었다. 내게 여행이란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이 태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118쪽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결승점에 들어가서 어떻게 달렸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늘 고통의 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놀란다. 매번 그렇다. 달릴 때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았는데, 달리고 나면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달리기의 고통이란 앞면은 거울이고 뒷면은 유리로 된 이중창 같은 것이라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두 번째로 달린다면 아마도 고통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경험 할 것이다.

지금 내가 더 많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고통은, 고독은, 절망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여기에서 내 자원을 100퍼센트 점유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제 100살의 눈으로 그 고통을, 고독을, 절망을 노려보자. 그렇다면 뭘 생각하고, 뭘 할까?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142쪽

내가 생각하는 인과관계란, 노력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즉석복권과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그 보답이 즉각적으로 내게 찾아온다. 서른 살이 넘으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해 봤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면 먼 훗날 큰 보답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부록 같은 것이다. 진짜 최선을 다하면 그 순간 자신이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95쪽

달리기를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일들은 수없이 많다. 뛰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 달리기를 하기에는 제일 좋은 때다, 아무리 천천히 뛴다고 해도 빨리 걷는 것보다는 천천히 뛰는 편이 더 빠르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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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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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금 네가 읽고 싶은 책이냐?

 

처음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책을 받고 떠오른 것은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시였다.

이 시는 읽기 시작하면 구부정한 등이 펴지고, 졸린 눈에 힘을 주게 되고, 배도 안 고파지는 그런 시다. ‘칭찬도 듣지 않고 걱정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진다.

 

산문집은 한 자리에 앉아 작정하고 읽지는 않는다. 어디 나가기 전 잠깐, 화장실에 들어가서 잠깐, 잠자기 전 잠깐. 회사 동료인데다가, 동네 친구이기까지 한  친구처럼 짬날때마다 한 편씩 본다. 그래서 책의 자리는 식탁 위, 또는 침대 머리맡. 그 끝을 지금까지 못본 산문집도 많다. 계속 그 위에 새로운 책이 쌓여서 어느 대청소날, 그냥 책꽂이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김연수 산문집은 어떨까? 한 편, 한 편 울림이 크다. 그래서 한꺼번에 읽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또 기억에서 묻힐까봐 그냥 침대 머리맡에 둘 수는 없다. 아껴가며 가지고 다니며 한 편, 한 편 읽는다.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말이다.

 

달리기를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일들은 수없이 많다. 뛰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 달리기를 하기에는 제일 좋은 때다, 아무리 천천히 뛴다고 해도 빨리 걷는 것보다는 천천히 뛰는 편이 더 빠르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얼마전에 런던올림픽이 끝났다. 초등학교 때를 제외하곤 올림픽 경기를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같이 사는 사람 덕택에 여러 경기를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림픽은 인간 세상의 도리나 진리에는 어긋나는 것 같다. 몇 년의 노력이 단 두 세번의 경기 로 판단되는 것, 같은 금메달을 따도 어떤 이는 묻히고, 어떤 사람은 크게 주목받는다는 것. (이것 역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딱 떨어지는 사연이 중요하다.)아무리 봐도 잘 사는 나라, 계속해서 금메달을 많이 딴 나라 선수가 유리한 것 같은데, 자꾸 공정하다고 광고하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 철들 무렵부터 인생의 대부분을 그 운동에 받쳤는데, 기껏 올림픽 2,3번밖에 기회가 안 돌아간다는 것도.

그런데, 김연수의 말을 듣다보니 이것도 금메달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생각인 것 같다.

분명 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이 그 종목에 최적화된 몸이 순간이나마 중력을 이겨내는 모습, 대다수의 국민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김연수에게 환호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환호를 보여주고 박수를 쳐줄 거라는 것그리고 금메달을 따지 못해도 사실 본질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는 것.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면 운동을 하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

,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 올림픽은 그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중간에한 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 있다.

글의 첫 시작은 이제 이 글을 다시 읽어 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리라. ' 뭔소린가 싶다. 글을 읽을 때는 뭔가 아리송. 그러다 글 마지막 문장은 이 글은 마지막 문장부터 한 문장씩 다시 거꾸로 읽어야만 뜻이 통한다는 걸 먼저 말해야겠다.’이다. 그렇게 다시 읽어보면 대략 이런 이야기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결승점에 들어가서 어떻게 달렸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늘 고통의 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놀란다. 매번 그렇다. 달릴 때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았는데, 달리고 나면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달리기의 고통이란 앞면은 거울이고 뒷면은 유리로 된 이중창 같은 것이라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두 번째로 달린다면 아마도 고통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경험 할 것이다.

지금 내가 더 많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고통은, 고독은, 절망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여기에서 내 자원을 100퍼센트 점유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제 100살의 눈으로 그 고통을, 고독을, 절망을 노려보자. 그렇다면 뭘 생각하고, 뭘 할까?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김연수 산문의 전체 주제는 지금 깨어있으라!’

 

내가 생각하는 인과관계란, 노력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즉석복권과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그 보답이 즉각적으로 내게 찾아온다. 서른 살이 넘으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해 봤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면 먼 훗날 큰 보답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부록 같은 것이다. 진짜 최선을 다하면 그 순간 자신이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의 인과관계에 대한 글은 나한테 축의금이나 생일 선물에 대한 마음과 같다. 나중에 내가 받을 돈을 생각해서 축의금을 내거나 선물하지 않고, 그냥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고 그 날을 즐기는 것, 잊어버리거나 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에 굳이 봉투를 부탁해서 보내거나 내가 받았기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선물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지금 꼴리는대로 한다. (뭐 사람 마음이 받은 게 있으면 더 많이 꼴리는 게 사실이긴 하다.)

 

아무리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비디오로 촬영해도 한 번 지나간 뒤의 일들은 더 이상 내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삶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나는 날마다 익혀야만 한다. 그럴 때, 내게 학교가 되는 건 숲이다. 숲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나무와 새 들은 영영 맑은 날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자연적인 사실이 있어서 세찬 바람과 축축한 둥지를 견딜 수 있었으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고, 모든 일은 지나간다는 그 자명한 사실 덕분에. 나무와 새 들은 그 사실로 이뤄진 나날을 그저 겪을 뿐이다. 맑은 날에는 맑은 날을, 흐린 날에는 흐린 날을 겪는다.

나는 매 순간 변하는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그날의 날씨를 최대한 즐기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

 

그날 그순간을 겪기에 날마다 새롭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순간순간 깨어있을 수 있는 건 여행을 할 때이기도 하다. 여행은 매순간을 깨어있게 한다. 그런데 그런만큼 더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내 목숨과 지갑을 위해 마구 현지인들을 의심하는 시간이고, 민족성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 사람을 개인으로 안 보고 민족으로 분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연수에게 여행은 그 태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작업.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일어난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넘겨짚고, 현지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사람이다. 우린 애당초 그렇게 생겨 먹었다. 내게 여행이란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이 태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

 

그리고 달리기는, 인생은 언제나 즐거운 일.

 

힘들다고 더 이상 못 쓰겠다고 말하는 건, 타이페이를 갔더니 너무 더워서 호텔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타이페이를 다시 방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더위보다는 경험에 집중하게 되겠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지금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고통이 아니라 지금 소설을 쓰는 일에 몰입한다면 결국에는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끝이 있는 여행이지만, 그 사실을 매 순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매일 달리는 일

보통 1시간 안팎으로 달리는데, 그 시간이 모두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물론 달리기를 하다 보면 마치 근육이 아니라 의도만으로 몸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면서 고통 없이 속도감을 만끽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인다는, 그러니까 내 육체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건 전체 달리기 중에서 극히 짧은 순간이다. 많은 시간, 나는 내 생각보다 몸이 무겁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 그렇지 않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 ’

 

 

이것이 지금 네가 읽고 싶은 책이냐는 글이 있다.

지금 내가 읽은 <지지 않는다는 말>은 알라딘에서 리뷰를 쓰라고 보내준 책이니, 이 책은 내가 고른,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읽길 잘한 책이긴 하다. 지금 리뷰를 쓰기 위해 읽지 않았다면 아마 읽더라도 한참 뒤에 읽었을텐데, 그렇다면 좀 아쉬웠을 책.

 

김연수의 글에, “맞아요, 저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혹은 너무 개인의 삶의 의지만 강조하는 거 아니에요?” 혹은 소설가가 넘 긍정적인 거 같아 좀 매력이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위로는 되네요.” 같은 말을 건네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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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의 눈물 - 세 개의 조국을 가진 이 남자가 사는 법
정대세 지음, 한영 옮김 / 르네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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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학생모임에서 만든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남한 국적을 가지고 북한 대표팀에서 뛰는 정대세 선수의 눈물이 평화라는 주제를 가진 동영상에 나왔다. 서경식 선생이 말한 디아스포라, 경계인에 이렇게 딱 맞는 사람이 있을까?

일본 영화 ‘GO’를 보고, 원작 작가인 재일조선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들을 읽고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보고, ‘맨발의 겐을 번역하신 김송이 선생님을 뵙고,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에 관련한 사진집, 책들을 보고 야끼니꾸 드래곤이라는 연극을 봤다. 이것들은 모두 재일조선인을 다룬 것들인데, 이런 것을 통해 나는 재일조선인의 삶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난 여전히 현실적인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 지금은 없는 나라 조선에 매이는 것 역시 국가주의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정대세의 눈물>을 보다보니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지만, 제 홈이 어디냐고 한다면 역시 재일입니다. 재일이라는 입장도 복잡해서, 일본인도 아니고 완벽한 조선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해집니다. 재일 사람이란 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실체를 나타내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존재를 지워서는 안 되고, 뿌리를 소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자이니치를 목표로 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선택이 아니고,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그냥 재일, 자이니치가 그 정체성인 것이다. 이 존재를 모두가 인정하는 말이 없다고 해도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 이름인 것이다.

축구에 도통 관심이 없는데, <정대세의 눈물> 대부분 내용은 축구 이야기다. 그러나 축구 이야기를 하든, 어머니 이야기를 하든, 장난꾸러기인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든 솔직하고 눈물많고 진지한 정대세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가 이해한 만큼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자기 정체성, 재일의 정체성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정대세의 현재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정대세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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