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3741.html
이 기사 하나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나는 그가 어려웠던 시절과 서울대 입학식과 결혼식도 지켜봤다. 맑고 쾌활한 사람이었으나 외로움을 숨길 수 없었던 이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사람이었다. 한 달에 30만 원 달라는 것을 깎아서 25만 원을 주고 달방을 얻었다. 나는 속초 어느 모텔에서 장기 투숙자로서 1년을 버텼다. 이곳에 투숙한 달방 거주자는 신분 노출을 꺼리는 지명수배자이거나 노래방 아가씨이거나 유사 성산업 종사자와 그들을 감시하는 포주가 대부분이었다.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은 하룻밤이 지나면 떠나거나 장기 투숙자도 계절따라 모두 떠나갔지만 나는 떠나지 못했다. 떠난다는 행위가 때로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Sara Bareilles의 << 그래비티 >> 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던 곳도 이곳 달방이었다. 그때가 3월이었다. 창문을 열자 폭설로 인해 속초 도시는 마비가 되어 도로를 지나가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눈길을 걸었다. 눈길에 빠졌다. 무릎 위까지 푹푹 빠지는 깊이는 아찔했다. 오늘 문득 이 노래를 듣다가 그때 썼던 글이 생각났다. 시를 쓰려고 행을 나누었지만 부끄러워서 행갈이를 하지는 않았다. 촌스러운 신파이기는 했으나 그때 내가 느낀 상실은 신파라는 감정의 잉여를 거치지 않고서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바람이 그녀의 소식을 전했다. 나는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기를 원했다. 그녀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할 테니까. 그리고는 이내 후회했다. 그 여자는 승객이 붐비는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운 좋게 얻은 좌석 끝자리'였다. 이토록 붐비는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한쪽 곁을 온전히 비울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축복이었다. 그 여자를 사랑했다. 이제 다 옛일이 되었다.
Sara Bareilles's official music video for 'Gravity'
나 죽어도 당신은 파릇파릇 꽃 피울 것이다 실뿌리 내리고 잎잎이 이슬 받으면 꽃 피어 열매 맺을 것이다 비록 손가락 걸며 맺은 사랑의 약속은 비열했으나 시계추처럼 당신에게 매달린 나의 신파를 비웃지는 마라 사람은 누구나 탯줄에 매달려 사랑을 구걸하던 生이 아니었더냐 어쩌면 미시령 고개 너머에 눈처럼 하얀 젖가슴을 가진 당신을 닮은 여자가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둠에서 절망을 읽으나 또 누군가는 어둠에서 낭만을 읽을 것이다 철없는 녀자 하나 있어 그 옛날의 당신처럼 내 옷자락 끝을 잡고 애원할 것이다 아, 이 세상 모든 꽃들이 시든다 해도 미시령 고개 아래 벌거숭이 빈집에서 병들어 죽어도 눈이 감기는 그 순간까지도 나의 검은 망막 속에 당신의 고운 얼굴 새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