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빛 -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임재희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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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던 그때가 기억난다. 우선 가해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이상한 감정을 느꼈고 피해자들에게는 말로 표현 못할 크나큰 미안함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에 가해자 청년이 남긴 동영상과 그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나서 그도 어쩌면 한 사회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총기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들 모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일종의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소설 [세 개의 빛]의 주인공 “노아”는 과연 어떤 감정을 느꼈던 걸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에게 버려지고 미국이라는 전혀 낯선 공간으로 입양이 된 노아. 그는 한창 예민한 시기인 유년 시절에 파양이라는 간접적인 폭력과 양부모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 그리고 학대를 겪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전쟁터같은 삶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 볼 수 있는데, 그 정신적 상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였을까?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일으킨 강렬한 감정이 하나의 계기가 되면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남겨진 미셸 은영 송.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을 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단계를 그녀도 거치게 된다. 분노, 부정, 슬픔 그리고 애도. 그녀는 심리치료사가 제안한 애도의 한 방법으로 노아와 함께 하기로 계획했으나 끝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 한국으로의 여행 ” 이었다. 은영은 미국 이민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중학교 동창 현진과 연락한 뒤 한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소설 [세 개의 빛]은 연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은영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폭력의 희생자이자 스스로 “ nobody ”라고 느꼈을 법한 노아의 삶과 이름을 대신 찾아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미국으로 입양되기 위해 비행기를 탔을 때 노아에게 붙여졌던 이름은 바로 “ 남자아이 – 1 ” 이었다. 소설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정말 가슴 아팠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면서 노아의 생물학적 부모와 그의 진짜 이름을 찾아주고자 하는 노력이 감사하게 느껴진 동시에 그의 뿌리를 꼭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은영의 노력 뿐 아니라 이 소설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혼혈인 리사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뇌과학에 바탕을 둔 그 프로젝트.. 사실 나는 인공 지능과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진 않지만, 가상 공간 속에서의 체험을 통해 실제 삶의 결핍을 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느꼈다. 은영과 사라가 “ 유년의 집 ” 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지점에서 문득 노아를 비롯한, 세상 모든 폭력의 희생자들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될 수만 있다면 그게 인공 지능이든 아니든, 그 무엇이 중요할까?

소설 [세 개의 빛]을 읽으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일 혹은 폭력의 희생자로 살아남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집단의 구성원으로 완전한 일체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서 고립감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삶은 도대체 어떤 무게로 개인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노아는 비록 그 무게를 다 견뎌내지 못했으나 남겨진 연인, 은영은 연인을 잃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노아에게 주어졌던, 혹은 그가 잊고 살았던 여러 이름들을 되찾아 주는 작업을 했다. 한국에서 그녀가 딛는 발걸음 걸음 마다 " 노아 " 라는 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환상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소설들을 통해서 어쩌면 세상의 모든 버려진 아이들과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이 조금은 위로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이 슬프고 아픈 이야기였지만 읽고 난 뒤 어쩐지 밝은 빛이 보이는 듯한 소설 [세 개의 빛]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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