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우타노 쇼고는 재밌는 작가이기는 했지만,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더랬다.
단순한 화법, 꽤 잘 읽히는 전개와 독특한 발상덕에 읽을 가치가 있는 추리소설 작가라는 생각은 했지만, 어딘가 몇%부족한듯한 느낌이 내내 들었다. 아마도 사람을 혹! 홀려버리는 뚜렷한 매력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멀리 가야할 때 충동적으로 산 이 책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이 책에는 수많은 클리쉐와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오랜동안 추리소설을 읽고 추리소설의 로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런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나는 그 로망들을 읽어냈고, 나와 비슷한 로망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또 있다는 사실에 일단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다.
눈 오는 산장, 외딴섬, 서양식 관-. 일명 밀실 살인.  또달리 표현하자면, 클로즈드 서클.
느닷없이 알수 없는 살인이 벌어지고, 어디선가 머리좋은 탐정이 나타나 기발한 추리를 보여주고, 외딴 섬에서는 반드시 한명씩 미스테리하게 사라지거나 죽어나가는 것이 정석이고, 서양식 저택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문의 비화와 음울한 분위기가 깔려있어야한다.
이것이 오래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이 뻔히 알면서도 즐겁게 보는 요소들이었다.
이 소설집은 밀실살인, 클로즈드 서클이 핵이 되는 단편들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에서의 밀실살인은 이야기의 주체를 꾸며주는 도구이자 표현방식이라 할수 있다. 내게 매력적인 것은 그점이었다.
본격 클로즈드 서클 소설을 표방하면서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클로즈드 서클 식이 아니었다.

첫번째 이야기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가게우라라는 명탐정이 등장해 명탐정의 허상을 보여준다.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비상해 어느 순간 명탐정이라 불뤼우게 되었고, 멋들어진 고가의 명품 양복을 입고 다니며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의 외향 뒤에 가려진 현실적인 고뇌와 짜증.
하는 일에 비해 벌이가 좋지 못한 편이고, 자주 구설수에 휘말리며, 여자한테는 인기없고, 본격적으로 나서면 명성도 얻을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신세.
이 단편의 초반은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머리좋은 명탐정의 허울을 벗기며 시작된다.
그리고 또 일어나버린 살인사건. 돈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외면해 버리는 명탐정과 속이 타들어가는 그의 조수의 모습도 어딘지 유쾌한 면이 있었고, 이런 저런 사건 뒤에 알려진 반전도 꽤 명쾌하면서도 깔끔했다.

두번째 이야기 <생존자, 1명>에서는 외딴섬에 갖히게된 남녀가 등장한다. 종교 광신도인 이 다섯명의 남녀가 섬에 갖히면서 한명씩 죽어가고 저마다 범인을 추적하지만, 범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죽어나가는 상황.
마지막 생존자 1명이 누구인지,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꽤 서늘하게 잘 써내려간 단편이다.
섬에서 갖힌 남져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사건과 함께 세상의 소식이 전해져오는데, 이 두가지를 이어 마지막에 내놓는 서술 트릭은 충분히 짜릿하고 흥미로웠다.

마지막 이야기 <관이라는 낙원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어우르는 듯,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에 로망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평생 벌고 아껴서 "관"이라는 이름을 붙일 대저택을 건축한 한 남자는 대학시절 자신과 함께 추리소설 동호회에 들어있던 친구들은 새 관에 초대한다.
병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아내와 평생의 로망을 이제서야 실현하는 장난끼 넘치는 추리소설 애호가, 그리고 이제는 아저씨가 되어 추리소설에의 로망같은 건 잊고 살던 옛친구들은
이 "관이라는 낙원에서" 추리게임을 벌이게 된다.
앞선 두가지 단편에 비해서 임팩트가 좀 약한 단편이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추리소설에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 예전의 꿈과 로망같은 것은 다 잊고 살았는데도 또다시 빠져들게 되는 아저씨들의 동심 비슷한 것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세가지의 중단편들이 모여있는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추리소설의 역사를 바꾼다!같은 거창한 말로 수식할만큼 훌륭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짧고 소품적이면서도 충분한 톡쏘는 임팩트와 즐거움을 줄수 있는 중단편집임에는 분명하고, 개인적으로 우타노 쇼고의 책중에서 가장 재밌게 보게된 책이었다.
밀실 트릭과 클로즈드 서클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핵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더더욱 만족할수 있던 책이 아니었을까.
우타노 쇼고는 확실히 센스가 넘치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 음울해 보일런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나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추리소설을 탐독한 적이 있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며, 명탐정 홈즈며, 앨러리 퀸의 추리소설이며- 그때 읽은 소설들은 그때에도 이미 추리소설의 고전이었다.
범죄가 주종을 이루는 그런 책들에 빠져서 꿈을 꾸었다면 참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밤새워 책속에서 헤매며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왜 훔쳤고, 어떻게 훔쳤는가를 추리하고,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나는 그 세계속에 나 역시 가장 먼저 진실을 깨닫는 사람이기를 발랬던 것 같다.
명탐정이라는 존재는 내게 있어 히어로였는지도 모르겠고, 음울한 서양식 대저택은 내게 낙원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추리소설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로망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또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희한하게도 어쩐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추리소설을 읽으며 가슴 두근대던 수많은 밤들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일런지도 모르리라.
아직도 수많은 추리소설이 쓰여지고 있고, 나는 아직도 더 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
내가 버리고 싶지 않은 기이한 동심과 로망이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또 추리소설을 고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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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몇년전부터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딱히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일까요. 그냥 애정이 덜해졌나...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2011년의 계획중 첫번째로, 책을 더 많이 읽자!라는 걸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니 어쩐지 머리가 둔해진 것 같은 느낌은 저만 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는 그렇다는 걸 좀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 저를 즐겁게 해주었던 책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딱 10권만 선정해보았는데, 저는 미스테리 계라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이 역시 미스테리 소설이더군요..-_-;허허...



기리노 나쓰오- 메타볼라

 

올해의 시작을 기리노 나쓰오의 <메타볼라>로 시작한 애플양.-_-; 올해가 꼬인 이유는 바로 여기있는거냐며!!!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작가중의 하나일 것 같은 기리노 나쓰오의 가장 최근작 <메타볼라>는 간단히 말해 암울한 청춘기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기리노 나쓰오의 작풍이 조금 바뀐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전에는 마음속의 악의라던가 기이한 심리를 난도질하며 보여주었더라면, <다마모에> <메타볼라>로 이어지는 최근작들에서는 마음의 이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기억을 잃은 채 산을 내려오던 한 청년이 다른 청년을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꼬이고 흘러가는지 보여주고 있는 소설인데,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이 언제나 그렇듯 추리소설의 카테고리로 들어가기엔 뭣합니다만,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에 무엇이 있었는가에 은근한 미스테리 비슷한 것을 느낄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두 청년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이야기해주며, 사회가 청춘을 어떻게 갉아먹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쉽사리 깨어지는 허상들과 그후에 남겨지는 무력감들.
타인보다 조금 더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냈더라면 조금 더 잘 이해할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감할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세상에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흔치 않을 테니까요.
이전작들과는 다르게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전작들에서는 읽으며 공감을 하면서도 주인공들이 모두 엄청 싫었습니다;;;)
지나온 청춘을 돌아보면서 굉장히 마음 아파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희망따위 없는 책이지만, 뜬구름잡는 희망을 주느니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저는 더 좋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작년에 영화로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원작 소설도 읽어보리라 생각했는데 제 마음을 알고 애인이 이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영화보다 100배쯤 더 재밌었습니다.
아련하고 서걱거리는 문장속에서 헤메이다보면 주인공이 한나를 만났던 어느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미하엘이 열다섯이 되던 어느 해 만났던 한나라는 여자.
간염에 걸려 거리에서 구토를 하고 있던 미하엘을 무뚝뚝하게 돌봐주던 손.
뭔가에 홀린 듯, 그 여자의 집으로 걸어가면서 보았던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들, 망설이던 생각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이런 것들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질기도록 평생을 가슴에 품어야하는 것인지, 그녀와 헤어진 후에도, 다른 사람을 만나도 이런 기억들은 미하엘을 과거의 어느 귀퉁이에 머무르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한나와 말할수 없는 비밀과 그로 인한 여러가지 도덕적인 고민까지 안겨주는 소설이지만, 책속의 주인공들의 태도처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냥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사랑이야기이고,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 소설은 오래도록 기나긴 먹먹함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과 겹쳐보인 것은 저뿐만은 아닐거예요.
 



노리즈키 린타로-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감각적이고 애잔한 필체나 감상보다는 (일본식의 감상주의는 저는 못봐주겠습니다;;) 흥미진진한 트릭과 기가막히게 꼼꼼하게 연결해놓은 유기적인 관계가 중요한 일본 추리소설에 있어서 합이 맞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래요.)
뿌려놓은 떡밥을 제대로 회수해가지 못한다면, 그건 즐거운 일본 추리소설은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이 저의 의견!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합이 맞는 꼼꼼함을 느낄수 있었던 즐거운 소설이었습니다.

천재조각가의 유작이 되어버린 딸을 모델로한 조각상의 머리가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이와 연계된 조금 더 알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라진 조각상의 머리는 앞으로 일어날 어떤 사건들의 예고장이 되지 않을까 모두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조사하던 중, 모델이 된 조각가의 딸이 사라지고 맙니다. 

의심과 오해, 오랜 증오와 잔혹한 이기심.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수 있는 이런 감정적인 문제들이 꼼꼼하게 만들어진 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성과 공정하게 주어지는 복선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소설로, 원래 평론가였던 작가의 풍부한 예술적 견해도 놓칠수 없는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리처드 매드슨-더 박스

반전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느낄수 있는 건 장편에서보다 단편에서인 것 같습니다. 정말 한방에 끝나버리니까요!
리처드 매드슨의 <더 박스>는 그런 느낌으로 재밌게 볼수 있는 단편집인데, 대부분의 단편들이 아주 짧은데 비해 임팩트도 확실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해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어라?"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한번 생각해볼 여지까지 주는, 참 즐거운 반전들이 이 책에는 가득합니다.
이야기 읽듯이 읽어나가면 분명 재미를 느낄만한 책이 될 거예요.

단편에는 익숙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읽을수 있는 단편집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소공녀

전 또 소녀심을 간직하고 싶은 여자이거든요-_-*
올해 펭귄 클래식에서 <소공녀>가 다시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동심을 떠올리며 읽어보자 싶어서 샀었더랬죠.
사실은 프랜시스 버넷을 엄청 엄청 좋아합니다!
<소공녀> <소공자> 그리고 <비밀의 화원>까지 이어지는 소설들은 저에게 초초초초초초 낭만주의 소설이거든요!!!
(이런 소설들 덕분에 저에게는 어린 시절에 고아에대한 환상까지 있었다구요..ㅎ)

어른이 된 후 이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섬찟한 느낌도 들더군요.
상상으로 도피하는 수 밖에는 아무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속에 어린 아이가 내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섬찟했어요. (심지어는 <판의 미로>같은 암울한 영화도 겹쳐보이고...) 그리고 "세라"라고 각인되어있던 이름이 "사라"라고 씌어져있을 때의 문화적 충격이란...!!!!!
어쨌거나 다시 읽어도 너무 재밌는 소설입니다. 저에게는 이게 로망이예요, 로망!

빨리 빨리 제일 좋아하는 비밀의 화원이 펭귄 클래식에서 발간되었으면!!!!!
 



앤절라 카터-피로 물든 방 

올해 읽은 가장 기이한 책입니다. 결코 재밌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책인데 뭔가 굉장히 인상적이라 자꾸 기억에 남습니다.
"피로 물든 방"은 동화 푸른 수염에 등장하는 아내들을 모아 놓은 방을 표현해놓은 제목인데, 이것만 봐도 알수 있게 이건 동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동화를 각색해서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잔혹동화류의 소설들이 인기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을 "잔혹동화"라고 부르기는 뭣합니다만, 누군가 설명해 달라고 하면 간단하게 잔혹동화라고 말할수 있을 것만도 같습니다.(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들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뻔히 있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면서 또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림동화를 보고 들으면서 알수 없이 찝찝했던 느낌, 뭔가 야하고 무서운 느낌, 그것이 어디서 근거했는가를 조금 생각해본다면 이 책이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실수 있을거예요.
책소개에는 패미니즘과 연관지어서 설명해놓았던데, 개인적으로는 패미니즘보다는 소녀가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여자라는 소녀와 마녀가 공존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여자작가가 썼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기묘하고 날것의 냄새가 나는 면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런 여자작가들이 좋아요.



로버트 K. 레슬러-살인자들과의 인터뷰 


5,6년전에 교보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거의 절반을 읽어버린 책인데;; 올해에 세일 하길래 하나 사서 봤습니다.-_-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범죄학서는 나오는 대로 읽는 편인데, 게중에서 가장 자극성에 치우치지 않고,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과 사실들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연쇄살인(serial killer)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저자의 인생 역경(?)을 따라가며 읽는 범죄와 범죄자들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습니다.
중간중간 저자의 자뻑도 보이니 그것도 참!!!!(물론 그만큼 잘난 사람이기도 하더군요.)

  





 

오리하라 이치-원죄자 
 

올해의 저의 마지막 베스트 책 오리하라 이치의 <원죄자>.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교살해서 불에 태운 사건들이 이어지고, 용의자로 지목받던 남자는 감옥에 갖힙니다. 그리고 그는 원죄(죄를 뒤집어 씌인 것)라고 주장합니다. 이 원죄 사건을 조사하고 나선 사람들과 밝혀지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책입니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잘 씌여진 일본 추리소설에서 느낄수 있는 합이 딱딱 들어맞는 쾌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원죄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것이 오리하라 이치는 원래 그쪽 방면으로 잘하는 작가가 아니라 현란한 서술 트릭을 구가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니까요. 따라서 깊이감은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오리하라 이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딱 찾을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에게 놀아나는 기분으로 읽으면 무척 즐거운 소설입니다.




마이클 코넬리-시인

아마도 양들의 침묵 이후였을까.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데, 중요한 건 얼마나 잔인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 얼마나 스릴있느냐, 얼마나 악의 심연으로 파고드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재밌는 스릴러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식 스릴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명성만큼 재밌더군요.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더불어, 주인공의 결점또한 가리지 않는 냉철함같은 것이 가장 매력적인 스릴러로,장 크리스토퍼 그랑제나 막심 샤탕, 또는 필력내공 100%의 유럽스타일의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분명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시리즈 소설이기 때문에 단품(?)으로 끝나지 않는 찝찝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만, 다음권을 바로 구매할 정도로 소설은 매력적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놓고 읽지도 않고 있다능...........;;;;;

 
 



 
쿄고쿠 나츠히코-철서의 우리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교고쿠도와 친구들(?)! <광골의 꿈>에서 엄청나게 실망을 했고, 책 출간이 너무 늦어져서 슬슬 교고쿠 나츠히코를 놓아버릴까...싶었는데, 오랜만에 등장해서 또 재미를 주셨지요...-_-
하코네로 여행을 간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와 그들의 아내들)은 승려 살인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일본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나칠 정도로 깔끔떨고 결벽스러울 정도로 예의를 중시하는 반면에 뭐라 말할수 없는 짐승의 본성이 함께 섞여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일본 특유의 기묘한 감성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묘하게 어떤 부분에서는 책임감이 희박한 점과 핑계대고 회피하려는 느낌이 강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들이 주구장창 등장해 한자를 읊어대고, 낭비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움직이고 자시고 해도,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
우리를 벗어날수 없는 쥐의 꼴을 하고, 그들은 그 긴긴 시간동안 각자 무엇을 품고 있었을까요.
고인 물은 썩는다더니, 그 말이 딱 알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뭐에 씌인 것 뿐일런지도 모르지요. 그 "씌인 것"은 언제나 욕망과 집착으로 귀결되게 되어있고요.
집착의 정서에서 멀어져야할 스님들이 가지고 있던 욕망들은 인간이라 추했고, 인간이라 인간답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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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눈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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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 노블스 50주년 기념으로 나온 50을 주제로한 이색적인 단편 모음집 <도박눈>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잘알려진 (적어도 책이 한권 이상은 출간된) 작가들의 50에대한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엿볼수 있는 책이다.
다나카 요시키(은하영웅전설 시리즈), 시마다 소지(점성술 살인사건 외 미타라이 시리즈), 오사와 아리마사(신주쿠 상어), 아야쓰지 유키토(십각관 살인등 관시리즈) 미야베 미유키(모방법, 화차 등등),요코야마 히데오(제3의 시효), 아리스가와 아리스(외딴섬즐), 미치오 슈스케(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모리무라 세이이치(고층의 사각)- 이상 9명의 저마다 빵빵한 이력을 가진 작가들이 뭉쳐 만든 50을 테마로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일까?
희한하게도 이야기의 주제가 한가지도 겹치는 점이 없었고, 저마다 작가색을 아주 잘 살린 단편들이었던 데다가, 무엇하나 딱히 굉장히 재밌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뒤떨어지는 단편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어느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단편들이라, 읽는데도 편하고 즐거웠다.

아야쓰지 유키토-<절단>
50번의 칼질, 그리고 50개의 절단난 사체.
여기서 수상한 점이 무엇인지 눈치 채셨는가?
아야쓰지 유키토가 보여주는 50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것인데, 끝까지 다 보고나서 굉장히 서늘한 느낌이 드는 단편으로, 꿈같은 몽환적인 느낌도 드는 단편이었다. 이런 느낌까지는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아야쓰지 유키토는 나와 잘 궁합이 맞지 않는 작가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녀의 이전작 <키리고에 살인사건>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지나치게 일본적인 어법들이 내게는 낯설고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진실을 알필요 없는 주인공에게 강매하듯 진실을 알고싶지 않냐고 되묻는 의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끝까지 알수 없었다. 나는 추리소설에서 이해할수 없는 행동들이 나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눈과 금혼식>
사이좋은 부부의 금혼식.
집에 더부살이하고 있던 홀아비 매제가 금혼식 이후로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탐정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나타나 그 미스테리를 푸는 내용으로, 쉽게 잘 읽히기는 하지만 이렇다할 트릭은 그닥 존재하지 않았다.
소품격의 단편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느낌인데, 개인적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장편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약간 지나치게 이야기스러운 면이 있다는 느낌이랄까.

미치오 슈스케-여름의 빛
감도 50의 필름에 담겨진 이야기.
어느날 동네 개가 사라지고, 그 개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초등학생이 있고, 들개의 죽음의 진실을 쫓는 이야기.
주제에 끼워맞춘듯한 작위적인 느낌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뒷마무리 스킬은 조금 더 늘었으면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미치오 슈스케의 책을 읽어본 건 <섀도우>가 다 였는데, 다 좋다가 꼭 끝에서 망쳐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단편도 초중반은 괜찮다가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사와 아리마사-50층에서 기다려라
도시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미스테리.
개인적으로 제목의 어감도 주제와 잘 어울리게 좋았고, 단편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이것밖에 읽어본적이 없긴 한데 <신주쿠 상어>도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표현력이나 주제 선정에 있어서 자기만의 코드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신주쿠+하드보일드+마초조폭+휘둘리는 청춘 이런것이 섞여있는 느낌이랄까.
하드보일드는 하드보일드인데, 다분히 일본적이고 적절히 경박하고 저속한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나름 매력적이었다.

시마다 소지-영국 셰필드
IQ 50의 감동적인 성공기.
시마다 소지의 책을 보다보면 영국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느껴진다. 전혀 필요없다 생각하는데 이야기를 영국 셰필드까지 끌고갈 필요가 있었을까?싶으니.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IQ가 50밖에 되지 않는 한 소년이 역도선수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야기자체는 그렇다 치고 이거, 미스테리 단편 모음집인데? 미타라이는 탐정이 왜 역도선수 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다나카 요시키-오래된 우물
50대를 이어온 거대한 가문의 마지막 미스테리.
독특하게도 19세기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오래된 우물>은 50대를 이어온 거대한 가문이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반부가 약간 질질끄는 면이 없지 않아있지만, 결말이 괜찮았다.

미야베 미유키-도박눈
50개의 눈을 가진 도박눈을 50개의 강아지동상으로 무찌르다.
<50층에서 기다려라><절단>과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주제를 잘 살리고 있는 단편이 아닐까 싶다. 최근 이어져 오는 미야베 미유키의 기담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도박눈>은 작품 자체에서 대단한 미스테리를 찾을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옛날에 있었던 기담을 듣는듯한 재미를 안겨주는 단편으로, 역시 괜히 미야베 미유키가 아니군!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괜찮은 단편이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하늘이 보낸 고양이
50엔짜리 우표가 알려주는 진실.
50과는 그닥 상관없지만,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본 것 같다.
돈을 벌러 상경했다가 짐을 도둑맞고 갈데없는 청년, 페티시즘에 대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속옷 도둑, 우연히 줏어기른 고양이를 주인에게 돌려주어야하는 노숙자. 세명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한 여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해지는 내용인데, 결말이 너무나 작위적이라 실망했다. 개인적으로 모리무라 세이치를 좋아하는데도, 초반, 중반까지 긴장감넘치게 이끌고 나가던 기괴한 인연의 곡선들이 결말에 와버리면 뚝 끊겨버린 느낌이다. 으아..중반까지는 진짜 재밌었는데....아쉽다.

요코야마 히데오-미래의 꽃
다가올 50년에도 축복을!
참 안정적인 필체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가이다. 이 단편집을 마무리 짓는 단편으로 제격인 단편이 아니었을까?
나이 50이 된 검시관과 그에게 붙은 고쥬(50)라는 별명. 경찰이 건네준 자료를 받아들고 미스테리한 사건을 밝혀내는 검시관이 등장하는데, 이런 코드는 뻔한데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단서들만으로 추적하는 본격추리소설과는 달리, 인물의 마음과 그에 따른 행동을 예측하며 결론을 내놓는 검시관의 태도가 참 따뜻하게 느껴지면서도 설득력있었다.

개인적으로 <미래의 꽃><50층에서 기다려라><도박눈>이 이 책에서 가장 재밌었던 단편들이다.
단편들마다 호불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뒤떨어지는 면은 없는 단편들이었고, 기본적으로 편안하게 읽을수 있는 가독성의 갖춘 단편들이었기 때문에 이 책 자체의 느낌은 무척 좋았다.
이런 깜찍한 기획 단편집이 또 있을라나. 잘 만들어진 기획물을 읽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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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레오라는 청년이 있었다.
자신의 동성애 성향때문에 청년은 자유를 찾아 그 골무같은 소도시를 언제든 떠나고 싶었단다.
그리고 그는 떠나게 되었다. 소련으로. 강제노역을 하러.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자유를 갈구하던 한 청년이 강제수용소에 들어가면서 눈으로, 감각으로 적어내려가는 일기이다.
이차대전 이후 황폐해진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 소수민족들을 잡아들여 동물만도 못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시키다니,  악행에 악행으로 답하는 참 유치하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역사에 휘말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고픔에 지고 만다.
먹기전에도 배고프고, 먹어도 배고프고, 다 먹고 나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 책의 수많은 단어들은 어쩌면 그 "배고픔"을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언젠가의 희망을 품기전에 살아있어야하고, 살아있기 위해서는 먹어야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누군가의 죽음이 더이상 슬픔이 아니게 될 때에도 배고픔은 여전히 함께 있고, 배고픈 천사는 그들을 조롱한다. 공기속에 배고픔이 머물고, 그들은 그 배고픔을 매일같이 들이마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이성과 한조각의 희망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게 의미 있을지 없을지, 수없이 번민하고 고민하면서도.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받은 레이스 손수건. 다시 돌아오게 될거라는 할머니의 말.
그런것들에 기대어, 레오는 배고픔의 연속이던 5년간의 수용소생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강제수용소를 다룬 책들은 참 많았고, 저마다 비극적이고, 괴롭고, 잔인하기 그지 없지만, 이 책은 그 수많은 괴로움들을 현실로 이끌어오고 있다.  어쩌면 단지 5년뿐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청년은 수용소에서 젊음을 빼앗기고 평생을 굶주림속에서 헤메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가 고프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무엇에 굶주려있는지 알수 없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괴롭고 배고프던 상황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사악하게도 길들여져 또 다른 추억처럼 기억되는 것이다.
늘 허겁지겁 먹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레오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을 느끼면서 레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돌아온 고향은 또다른 의미로 낯설고 고통스러운 곳이 되어버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레오는 또다른 굶주림에 시달리며 또다른 향수를 놓치 못한다.
참으로 참혹한 일이다. 지옥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지옥을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과거에서도 존재할수 없는 슬픈 존재감과 돌아갈 곳이 없어진 비참한 현실속에 놓인 한 인간의 끝을 알수 없는 영혼의 굶주림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진짜 주제였다. 그래서 수용소생활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 현실의 연장선으로 끌고 와 한없는 고독과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어버린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자유롭게 변형되고 엉기는 단어들을 통해 수용소의 참상과 그로인한 평생의 상실감과 갈망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들숨과 날숨이 오르락 내리는 숨그네(숨+그네)처럼 몇가지 단어를 엮어서 함축적이고 개성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겉돌지 않고, 글에 착 달라붙어 고통스러운 비극을 아름답게 장식해준다.
아름답기 떄문에 더 비참하다. 자유는 빼앗기고 옷은 비루하고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할수 없는 현실은 감옥인데, 그 감옥마저 추억처럼 되뇌이며 자신을 그 감옥속에 가둬버리는 남자는 슬프고 가여운데, 단어는 아름답고 문장은 우아하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참혹하다.

인간이란 참 기묘한 존재이다.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는 겁에 질리고 숨이 막혀서 살아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는데, 그 지옥같은 시간들 마저 시간이 흐른후에는 추억하게 된다. 언젠가 꾸었던 기분나쁜 꿈들, 가지고 있던 아픈 순간들, 나를 지배하고 있던 나쁜 트라우마들이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잊어버려야 마땅한 것들을 왜 의도적으로 떠올려 자신을 기억의 감옥에 가둬버리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은 내게 그런 고독한 내면의 감옥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감히 그 누가 그걸 알수 있으랴.
삶이 대체 뭐예요? 라고 물어봐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써는 명쾌히 밝혀낼수 없는 이유없는 마음의 숨그네들을 감히 누가 규정할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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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자>시리즈는 현실적인 사건에 기반을 두고 쓰여진 시리즈 소설인데, 이번 <실종자>에는 소년 범죄를 모티브로 오리하라 이치 특유의 서술 트릭을 위한 떡밥을 계속 던지면서 진행된다.
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가면, 소년의 앞으로의 인생을 배려해 소년 A라고 칭하고, 성년이 될때까지 그의 모든 범죄들은 눈감아주는 것이 소년법의 정체.
15년전에 일어난 여성실종사건. 그리고 15년후에 비슷한 연쇄실종사건들이 겹치고, 15년전에 실종된 여성들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재, 여성실종사건의 범인인 소년 A는 소년원에 들어가있고, 어느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편지와 소년 A범죄와 더불어 소년범죄에 대한 책을 내 크게 이슈화된 논픽션라이터의 시선을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느순간 접점을 맞이하고, 오리하라 이치의 특출한 개인기라 할수 있는 서술 트릭으로 마지막을 마무리 하게되는 소설이다.

<원죄좌>를 재밌게 읽어서 기대해서 일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닥 재미를 느낄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니, 분명히 재미는 있지만, 무리수를 던져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서술 트릭을 위한 떡밥은 지나치게 늘어지고, 서술 트릭은 공감도 납득도 가지 않으며, 스릴은 훨씬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산만한 <행방불명자>와는 또다르게 곁가지 이야기가 너무 많고, 트릭자체가 기발하다거나 또는 감각적이라는 느낌 또한 받을수 없다.
특히 재미없었던 이유중 하나는 메인 주인공이라고 할수 있는 주인공들에게서 도무지 애정을 느낄수 없었던 탓도 큰 것 같은데,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에서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번만큼 비호감인적도 없었던 것 같다.
소년 A사건을 남몰래 쫓게된 여성 르포라이터 지망생은 그야말로 능력치 제로에, 괜히 오지랖과 자신감만 쩌는 민폐쟁이에다가, 게다가 무슨 운은 그렇게 좋은건지 길가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모든 것을 답해주고 마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저 얼굴이 예쁘다고만 나오는데, 그 이상의 어떤 캐릭터도 찾을수 없는 여자주인공이라 보는 내내 좀 짜증이 났다.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면 더 노골적이어야했고, 여주인공을 그리려 했다면 좀더 매력적이어야 했다.

오리하라 이치의 잘쓰여진 소설들은 소설을 마무리 하면서 열려있던 모든 가능성과 복선들이 한가지 사실로 연관되어 닫히는 느낌을 받는데, 이번만큼은 그 방식에도, 그 결말에도 동조할수 없었다.
소설이 이렇게 긴데도, 설명은 부족하게 느껴져서 결말은 어이없어지고, 트릭들은 감각이 떨어지고, 이야기는 밀도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오리하라 이치는 놓칠수 없는 작가.
소설마다 퀄리티의 갭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퀄리티 좋을 때는 정말 좋은, 그리고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을 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자>시리즈는 <도망자>를 남겨두고 있는데, 요건 조금 있다가 아껴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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