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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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맘껏 읽고 싶다는 욕심 앞에서 언제나 게으름이 방해꾼이다. 이 명백한 사실이 부끄러워 ‘바빠서 못 읽는다’ 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슬쩍 갖다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급기야 어렵고 두꺼운 책보다는 쉽고 간편한 책을 찾기에 이르렀다. 못 읽는 것보다는 그래도 읽는 게 낫다는 허영이 그런 타협을 불러왔다. 그 타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필요에 의해서든, 한 박자 쉬어 가고 싶은 마음에서든, 집어 들게 되는 어린이 도서들에서 의외의 책 맛을 발견한다. 

  이영서 작가의 ‘책과 노니는 집’(문학동네, 2009)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한 편의 동화가 그 어떤 읽을거리보다 많은 것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주인공 장이는 유일한 가족인 필사쟁이 아버지마저 잃는다. 금서인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관아에 끌려가 산송장이 되도록 맞아 장독이 올라 앓다 죽는다. 천애고아인 장이가 만나는 주변인들 덕에 장이는 몸과 맘이 한 뼘씩 커간다. 

  양아버지 역할을 해주는 최 서쾌의 엄격함과 단호함도 미덥고, 다사롭고 이해심 많은 홍 교리의 심성은 죽은 아버지를 닮아 있어 독자로서 감정이입이 금방 된다. 대상에 대한 연민과 다정이 넘치는 기생 미적이가 장이 곁에 있는 것도 다행이고, 못생기고 당돌한 낙심이의 동심은 순수해서 정감이 간다. 똑부러지고 야무진 여동생 같은 낙심이에게 장이는 한없는 우애를 보여준다. 남동생 백일 값을 대신해 팔려온, 가난한 딸 부잣집의 낙심이. 상처를 꽁꽁 동여맨 낙심의 존재를 장이만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장이는 낙심을 동생처럼 끌어안는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적극 추천해준 이가 낙심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주영이었다. 주영이는 내가 진행하는 어린이 독서교실의 회원이다. 야무지고 당찬 주영이는 ‘책과 노니는 집’을 꼭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장이와 낙심이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책이 현실보다 훨씬 좋아요.” 책을 권하면서 주영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현실에서는 홍 교리 같은 어른이 없잖아요. 미적 언니 같은 고운 사람도 만나기 힘들고요.”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서 그런지 쉽게 마음 문을 열지는 않았다. 사람에 대한, 특히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말 속에 장전되어 있었다. 뭔가 모를 뜨끔함이 가슴을 후렸다. 주영이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내뱉는 말들은 희망적이기 보단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주영이처럼 자신이 관심 있게 읽은 책 이야기를 할 때는 확실한 자기 의견을 말할 줄도 알았다. 양반이면서도 하찮은 필사쟁이 아들인 장이와 깊은 대화를 주고받는 홍 교리, 낙심이 같은 천덕꾸러기를 상대해주는 기품 있는 기생 미적이 같은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기쁘지만 책 속에서 벗어나면 이건 현실이 아니야, 라고 슬퍼진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환경적 요인으로 마음을 다친 아이들은 현실보단 책이란 도피 속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내겐 다행이자 안타까움으로 비친다. 책이 있어서, 좋은 동화가 있어서 자신들의 감정을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현실을 부정하는 기제가 되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책을 사 모으느라 몰골이 누추하다. 책이랑 정분이라도 난 것인지 읽고 싶은 책을 못 얻으면 안절부절못하지.> (85쪽) 책을 좋아하는 홍 교리의 말처럼 아이들이 책 속에서라도 위안을 얻고, 나아가 현실에서도 그런 위안을 고스란히 얻어갈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홍 교리처럼, 미적처럼 장이를 챙기는 어른이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 책을 통해 동심을 열게 하는 시중이야말로 큰 보람 중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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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2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영주라는 아이 말에 참 미안해지는... 품격있는 리뷰에요.

다크아이즈 2010-07-23 04:24   좋아요 0 | URL
뭔, 품격씩이나~ 숱한 주영이들이 우리 언저리에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충격으로 몇 달 심란했지요. 순오기님이라면 이런 혼란을 미리 겪었을 것 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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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지인들과 영화를 봤다. 두 팀으로 나눠졌다. 각자의 취향 또는 사정에 따라 관람한 뒤 ‘헤쳐모여’ 하기로 했다. 내가 속한 쪽 영화가 조금 빨리 마쳤다. 나중 팀이 나오려면 일이십 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내 기준으로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정이 빠듯한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도 아까웠으리라. 먼저 점심 먹으러 가잔다. 내 맘이야 조금 기다리고 싶다. 하지만 다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바쁜 사람들도 있고, 감기 걸린 이도 있어 따뜻한 곳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급히 식당으로 옮긴다. 거기서도 기다렸다 같이 주문하자고 말하지도 못한다. 다들 사정이 있으니. 시킨 음식을 먹고 있는데 늦은 일행이 들어온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부러 늦은 것도, 긴 시간도 아닌데, 좀 더 기다리자고 말할 걸. 내가 뒷팀 멤버였더라도 기분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오묘한 게 인간이라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맘 상하기 쉽다. 작은 것부터 역지사지하는 게 원만한 인간관계의 기본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 비겁을 탓하며 삼키는 비빔밥이 계란껍질 섞인 것처럼 껄끄럽기만 하다.

  불편한 맘을 걷어내고, 혹 맘 상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커피집에 들른다. 기분 좋게 커피 한 잔씩 마셔도 되는데, 커피 값 지불하는 입장을 생각하는 아줌마표 배려가 발동해 사람 수에 못 미치는 커피를 시킨다. 카운터의 기꺼운 동의를 구했음에도 ‘어딜 가나 아줌마들 매너 없다’라는 책잡힐까 또 맘이 불편하다. 가장 꼴불견 손님들 중 하나가 자리 값 안 내고 커피 마시는 사람이라고, 커피숍 하는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숍은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여타 다른 서비스(이를 테면 안락한 의자, 커피 향, 분위기, 음악)를 제공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곳이니 일행 중 누군가 커피 안 마시고 자리 차지하는 것은 내 생각에도 결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 수대로 커피 값을 다 받지 않은 주인의 영업 마인드에 감격까지 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어컨 바람에 노출되니 콧물이 난다. 구석진 자리라 다른 일행을 지나 냅킨을 가져오기가 영 불편하다. 마침 냅킨 코너에서 정리하는 종업원이 보인다. 휴지 좀 주세요, 했더니 바로 자신의 코앞에 있는 냅킨을 턱으로 가리킨다. 셀프 서비스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셀프서비스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해석한 어린 종업원이 괘씸하기만 하다. 바로 앞에 있는 냅킨 한 장도 손님에게 갖다 줄 수 없는 게 셀프 서비스의 기본 정신인가 하는 서운한 맘이 생긴다. 사람 머릿수대로 시키지 않은 커피 때문에 이런 불친절을 당하나 싶어 괜히 소심해진다. 

  역지사지해서 종업원 맘이 되어본다. 우루루 몰려온 아줌마들, 커피는 사람 수 반 만 시켜놓고, 쓸 데 없어 뵈는 수다만 늘어놓는다. 남편 흉, 음담패설, 자식자랑 등 뱉어내는 얘기마다 뼈와 살이 되는 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교양 없는 저 아줌마들에게 불친절로 응대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맘이었을까. 이십대 초반엔 결코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는 아줌마들의 세계가 있으니 그 종업원을 이해하도록 하자. 아줌마가 될 것 같지 않은 어린 아가씨도 언젠가는 제 엄마가 걸었던 아줌마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영입된다. 그 때, 지금은 추태로만 보이는 아줌마들의 절절한 일상을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 

  기분 좋은 아줌마표 수다가 끝나고 나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내일 행사 관련 차편 문의 전화다. 모일 장소가 정해졌는데도 자신이 있는 곳을 버스가 경유해갔으면 하는 논의를 해온다. 정해진 몇몇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지점에 차가 서주기를 바란다. 전혀 악의 없는 그 문의를 운전하는 사람 입장 생각해서 거절해야 하는 맘 역시 불편하다. 봉사차원에서 운전해주는 분더러 우리들의 고용인이 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 하루 잘잘한 일과에서 책 한 권 보다 귀한 것을 얻는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헤아리는 것. 그것만이 사람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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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꿈꾸는 집 - 제6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08
정옥 지음, 정지윤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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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진진을 위한 책




  오랜 만에 반가운 이를 만났다. 독서 클럽 모임에 예의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그미가 들어왔다. 그미는 우리 독서 모임의 초대회장이었다. 모임에 뒤늦게 합류한 나는 그미의 다사롭고 정감어린 성품에 매료되는 중이었다. 천성이 무미건조하다 못해 시니컬한 쪽인 나는 그미의 살뜰함을 벤치마킹해야지, 하면서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한데 채 정도 들기 전에 이별이란다. 구상 중이던 사업을 펼치게 돼 그미는 더 이상 독서 모임에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슴팍으로 싸한 바람 몇 겹이 지나갔다. 모두들 그미를 보내고 싶지 않아했다.

  서운함을 삼키며 송별회 점심을 같이 하던 날이 떠오른다. 아직 모임에 적응이 덜 된 나는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어리바리 눈치 없이 구는 동안, 도리어 그미가 사주는 점심을 얻어먹기만 했다. 그미가 떠나고도 한동안은 내 센스 없음을 후회했다.  

  인사차 들른 그미는 책 한 권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정옥 동화작가의 ‘이모의 꿈꾸는 집’(문학과 지성사, 2010)이다.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제 6회 마해송 문학상>을 탄 작품인데 그미의 동생이 쓴 장편동화라고 했다. 대구에서 글 쓰는 동생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귀한 상(자그마치 상금이 일천만원이란다)을 받고 출간까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아직 작품집 한 권 없는 나는 뭐했나, 하는 반성도 잠시, 나는 책 속으로 금세 빠져버렸다. 

  똑똑하고 야무진 진진이는 특목고 가는 것이 꿈이다. 어릴 때부터 입시 경쟁이 전부인 세상을 경험한 진진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꿈의 울타리에 갇혀, 그것이 족쇄달린 제자리걸음인지도 모르고 부지런히 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진진이는 ‘이모’란 이름을 가진 아줌마의 캠프에 참가하면서 진짜 자신의 꿈이 뭔지를 알게 된다.

  진진처럼 모범생일수록 공부 지향적이다. 이 세상에 공부 말고도 할 것이 많다는 건 인정하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건 모범생 진진의 잘못이 아니라 규정된 틀에 익숙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엄마 말 잘 듣는 진진, 공부에 도움 되지 않는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진진, 특목고 가고 서울대 가서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인 진진. 하지만 그런 진진의 꿈은 온전히 진진의 것이 아니다. 엄마의 꿈이 고스란히 진진의 꿈이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모라는 아줌마가 연 꿈꾸는 집 캠프를 통해 자신의 꿈이 뭔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서서히 깨달아가게 된다. 이모 아줌마가 말한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책’이라고. 단 자존심 강한 책이란 걸 강조하면서 이렇게 충고한다. <진심일 때만 읽어야 해. 여기 있는 애들은 자존심이 높아서 진심이 아니면 놀아 주지 않는단다. 진심이 아닐 때 책을 펴 봤자, 아무도 안 나올 걸?>(27쪽)

  처음엔 흰 종이만 보이던 진진의 눈에 차츰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책과 진심을 나누는 친구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레박과 거위와 개의 꿈을 이해하게 되고 진심으로 친구가 된다. 공부만을 위해 읽었던 책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의 캠프 동안 책 속의 모든 사물, 사람과 진심어린 교감을 나누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꿈이 뭔지를 알게 된다. 엄마(어른)의 바람대로 살아온 자신을 벗어나 진진 자신이 되는 것. 이런 의미에서 서점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고 건네는 마지막 한 마디 <안녕, 나의 진진, 나의 꿈>이란 말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껍데기인 나를 버리고 온전한 자신을 찾기 위한 구실로라도 이 책은 나 같은 이가 읽어도 좋겠다. 물론 책을 선물해준 독서회 초대회장을 위해서라도 나는 다음 번 토론 목록에 이 동화를 기꺼이 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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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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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하나 큰 이야기




  책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다르다. 심금을 울린다고 광고하는 책도 내겐 데면데면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무슨 재미로 읽는지 모르겠다고 남들이 말하는 책도 내겐 흥미를 끄는 경우도 흔하다. 경험 다른 게 사람이니 공감의 진폭도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책 한 권에서 느끼는 감동 지수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취향’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에 다시 꺼내든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범우사, 2000)도 딱 내 취향이다. 처음 읽었을 때처럼 주책없이 눈물 나진 않지만, 찔레 순을 씹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나도 모르게 장면 장면을 곱씹게 된다. 

  간결한 문체와 소박한 이야기. 별 것 없는데 별 것으로 다가오는 것은 작가네 가족의 거짓 없는 인품 덕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시종 잔잔하고 포근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극동의 소년이 어떤 과정을 겪어 독일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잔물결 위의 나뭇잎이 되어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작가는 개화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의학 공부를 하다 3.1운동에 연루돼 압록강을 건넌다. 만주와 중국을 거쳐 멀고도 낯선 독일 땅으로 망명하게 된 학자의 자전적 성장기는 드라마틱하다 못해 구구절절해야 소설적 기능을 다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런 기법을 쓰지 않는다. 그저 작가는 주변인을 섬세하게 챙기고 따뜻한 시선으로 품을 뿐이다. 마치 작가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사촌인 수암과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구월이까지 개성을 불어넣어 포근히 보듬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도피성 외유를 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이 너무 담담하게 그려져 심심하게 느껴질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마도 강요된 휴머니즘이 아니라 책 속에서 절로 우러나는 인간 본연의 감흥 때문에 자꾸 책을 들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정갈한 내용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내뿜는 자연발생적 휴머니즘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순간순간 깨치게 된다.    

  신식 공부를 하라고 배려하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 삼일 만세 운동에 연루되어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 미륵에게 주는 어머니의 강단 있는 충고 등에서 절로 공감이 간다. 이토록 온화하고 정갈한 이들에게 시대적 정치적 격랑이라니!

  자전 소설인 이 책은 개인적이고 가족사적인 동시에 향토적이고 사회적이다. 독일식으로 봤을 때 이국적이고 낯선 이야기가 그들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라면 그 안의 정서는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타당한 것이리라. 단순한 향수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이 문학적 성과를 담보하였기에 감흥도 따라온 것일 게다. 완전한 정신적 성장을 거치기도 전에 어머니를, 조국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복잡했을 작가를 연민하는 것은 암울한 시대를 헤쳐 나갔던 작가에 대한 가장 큰 응원이다.  

  작품 발표 당시 유럽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폭풍전야 시기였다. 혼란한 이념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순수성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눈길을 끈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단순해지고 소박해져야 답이 보인다는 것을 독일 사람들도 알아챘을 것이다.

  흔히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한다. 향토적 서정은 물론이고, 자애 가득한 동양적 훈육관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미덕으로서는 손색이 없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144쪽) - 포근하나 크게 이야기 하는 작가를 키운 것은 그의 부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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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륵, 지금까지 독일 내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작가였지요.

다크아이즈 2010-07-23 04:28   좋아요 0 | URL
미륵님이 그렇든말든 저야 주드님이 댓글 남긴 게 더 영광인걸요. 가끔씩 서재에 오면 주드님처럼 한결 같이 서재를 지키고 계시는 분들 땜에 친정에 오는 것 같은 이 기분~ 바다는 많이 컸겠지요? 여름 잘 견디시길.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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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감옥




   때론 피곤한 게 인간관계이다. 핸드폰이 수갑이나 족쇄처럼 보이고, 잡은 약속은 무거운 거름더미 지게가 되어 어깨를 짓누르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관계의 피로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만만찮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것이 두려워 될 수 있으면 불필요한 만남을 미루고, 웬만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는 소통에는 끼지 않으려 한다.

  혼자인 자유는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고, 배달된 책을 순서 없이 읽거나, 베란다에 나가 풀죽은 로즈마리 화분에 물을 주는 것. 짧지만 짜릿한 쾌감을 보장하는 이런 순간은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상처를 충분히 위무하고도 남는다. 접대용 멘트도 필요 없고, 정돈되고 규격화된 언행으로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한 기꺼움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고 관계없는 일상이 가당키나 한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타인 없는 일상 또한 지옥이 아니던가. 시게마츠 기요시의 ‘허수아비의 여름휴가’(양철북, 2006)에 나오는 라이언 선생과 곤타 선생이 그걸 말해준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힘겹고, 일상은 따분하고, 관계는 피로하다. 그건 내 안의 감옥 못지않게 타인의 감옥 또한 작동하기 때문인데 어쩔까나, 그 감옥이야말로 삶의 진정성에 도달하는 과정이란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과도한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래와 안개의 집’ 비디오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고, 뒤이어 ‘허수아비의 여름휴가’를 읽었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화에서는 이란 출신 이민자 베라니 대령의 처연한 죽음 - 밀폐비닐 봉지를 덮어쓰는 자발적 죽음의 방식이 느꺼웠고, 예의 허수아비에서는 제 철 아닌 딸기를 사온 라이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내 미치코의 마지막 향연에서 울컥했다. 전자가 타인이 주는 지옥의 극한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타인 없는 지옥의 상실감에 대해 말해준다. 라이언 선생 같은 사람에겐 결코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없다. 아니, 모를 일이다. 타인이 이미 지옥인 것을 일찍이 알아채고 그것을 넘어선, 타인 없는 경지에 이르는 방식을 설파하고 있는지도.

  슈지(라이언 선생님) 혹은 가즈(허수아비의 여름휴가)는 타인이 곧 지옥인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 둘 다 그걸 넘어서, 각자의 대상에게 쏟는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돌이켜보건대 얼마나 학생 같지 않은 학생이 스승을 괴롭혀 왔고, 스승 같지 않은 스승이 우리들 곁을 스쳐갔던가. 애초에 그들은 인간적 고뇌조차 귀찮아한 부류였다. 하지만 라이언이나 허수아비 선생 같은 부류는 그 타인의 감옥들을 향해 최선을 다했다. 착한 사람에게 고통이 먼저 오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회한에 사무치는 게 삶이더라. 그리하여 너무 젊은 나이에 아내의 죽음이 기다리고, 예기치 않은 이른 탈모에 가발을 쓰게 되고, 스트레스로 두피 가려움증을 앓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가발을 벗어던질 수 있는 것도, 라이언 선생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거짓 없는 생일수록 불필요한 고뇌에서 빨리 자유로운 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중년의 삶은 이러이러하다고 작가 시게마츠 기요시가 말할 때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책에서처럼 제 삼자의 말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감정의 절제도 배울 때이고, 잡지에 실려 있지 않은 별자리 운세를 만나 광분하기도 하고, 타협과 굴종의 얼굴로 지리멸렬하게 살아있을 것을 주문당하기도 하고, 명퇴에 상처받아 소심한 뒷방 가장이 되어 자식에게조차 놀림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허수아비 신세가 되기도 하는 것이 중년이다.

  이 모든 것을 공감 가는 에피소드로 배치한 작가의 시선이 부럽다. 그렇다고 타인은 감옥이다, 라는 명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아직 더 많은 허수아비를 겪은 뒤에야   나는 천천히 타인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라이언 선생처럼 타인 없는 세상이야말로 감옥이라는 진정성에 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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