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태풍 마법의 시간여행 지식탐험 9
메리 폽 어즈번 지음, 장석훈 옮김 / 비룡소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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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서관 어린이 독서교실에서였다. 한 녀석이 손바닥에 볼펜으로 쓴 `ㅂ, ㄹ, ㅂ` 세 글자 초성을 몰래 보여준다. `초성 게임`에 쓸 자음을 준비해온 것이다. 초성 게임이란 각 낱글자의 자음 초성 정보만으로 출제자가 의도한 낱말을 유추해서 맞히는 게임이다. 수업 막바지는 언제나 이 게임을 하는데 서로 답을 맞히려는 아이들은 저마다 `브라보`라거나 `보리밥`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녀석이 무슨 단어를 말하려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태풍, 이라고 녀석이 힌트를 주었을 때도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다.

저학년인 아이가 일주일 내도록 고심해 태풍 이름 `볼라벤`을 초성 게임으로 준비해 왔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아직 볼라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이라 사람들 관심 밖일 때였다. 하지만 아이는 초성 게임 하나를 위해 눈과 귀를 온통 뉴스에다 고정시켰던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에 대비해 자신만의 준비를 철저히 한 셈이다. 그날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으므로 풍선껌 상품은 녀석 차지였다.

초강력 태풍 볼라벤이 북상 중이다. 한반도를 향해 북진 중인데 강풍반경이 500km에 달한단다. 보도 매체들마다 앞 다퉈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남쪽 지방에선 피해가 속출하고 휴교령도 내려졌다. 몇 년 전 전 국토를 휩쓸었던 `매미`보다 위력이 세다는데, 동해안 쪽은 살짝 비껴가려는지 아직은 잠잠하다. 수치화된 정보보다 심각하지 않으니 호들갑 떤다고 넘겨짚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자연 재해 대비 앞에서는 차라리 호들갑이 괜찮다. 준비하지 않고 당하는 것보다 부산떨다 다행인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태풍 볼라벤, 동심을 들뜨게 한 단어 정도로만 만족하고, 현상에서는 적당한 비바람으로 그 소임을 다하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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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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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죽란시사 (新 竹欄詩社)

 

나이와 우정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소통이 되고, 공감하기 쉬우며, 연대하기 좋은 성향끼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연꽃 피고 비오는 날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모임 이름도 고상하여라. 죽란회. 다산 선생이 주도한 친교 모임인 죽란시사를 빌린 것이다.

 

 

정조 때 젊은 학자시절 정약용은 ‘죽란시사’(竹欄詩社)란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술 마시고, 시 지으며, 꽃 감상하는 풍류 모임이었다. 딱딱한 학술 단체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친목 서클답게 모임이름이 시적이다. 죽란은 다산 집 뜰의 화단 난간을 이르는 말이다. 지나다니는 하인들의 옷깃에 꽃이 다칠세라 대나무 난간을 꽃밭에 설치했는데 그것을 모임 이름으로 삼았다.

 

 

십여 명이 넘는 당대의 엘리트 회원들은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그 규약 또한 참으로 독창적이고 시적이다. 살구꽃 처음 피면 모이고, 첫 복숭아꽃 피면 모이고, 참외 익으면 모이고, 서쪽 못에 연꽃 피면 모이고……. 물론 비정기적 모임도 있었다. 아들 낳거나, 승진하거나, 자제가 과거 급제할 경우였다. 올곧고 치열하게 살았던 다산의 생애에 죽란시사 같은 젊은 날의 삽화가 있었다는 건 큰 위안이었을 게다.

 

 

다산 선생의 낭만성을 높이 산 지인의 주도로 모임을 가진 지 제법 되었다. 앞선 성현들이 네 살 차 전후의 동년배 모임이었다면 뒤따르는 이들의 나이엔 경계가 없다. 뜰 갖지 않았으니 꽃 망칠까 드리울 대나무 울도 없다. 죽란 없는 죽란회는 죽란시사의 얼을 좇을 뿐이다. 연꽃 흐드러지고 비 스치는 날, 술과 시 대신 커피와 수다가 있었지만 자연 더불어 교감하는 그 정신만은 오롯이 닮고 싶은 것이다.

 

 

다산 선생의 규약에 나오는 다음 정기모임은 국화꽃 필 무렵이다. 마음 앞서 기다려지는 건 달력을 대신한 선생의 낭만적 화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리뷰 상품은 이 글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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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29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죽란시사라... ㅎㅎ

다크아이즈 2012-08-30 07:48   좋아요 0 | URL
샘님 다산 흉내 내 죽란회 결성한 지 제법 되었는데 이거 은근 재밌어요. 배롱꽃 보러 가고, 아카시 따러 가고, 숨은 문화재 찾아 가고(그래 봤자 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ㅋ) 샘님도 책만 파지 마시고 꽃 보러 댕겨요. 저 말고 신죽란시사 결성해서요~~

글샘 2012-08-30 08:14   좋아요 0 | URL
제가 책만 파는 걸로 보이시죠? ㅎㅎ
전 죽란시사 같은 거 만들 무리는 없고, 아내랑 꽃보러 또는 맛있는 음식 먹으러 툭하면 전국 투어 하러 다닙니다. ^^

다크아이즈 2012-08-30 08:48   좋아요 0 | URL
헉, 글샘님 염장 지대로시다~ 전,실은 남편과 노는 게 별 재미없어서(제대로 안 놀아줘서) 친구 따라 강남 다니는 스따열~이거든요. 남편보다 친구가 더 재미 나는데 이거 문제 많은 거 맞지요? 왠지 불쌍 모드ㅠ

순오기 2012-08-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어요, 잘 지내시죠?
엊그제 8월 24일 비오는 금요일에 백련사에서 만덕산 오솔길을 걸어 다산초당에 가면서 죽란시사가 오늘처럼 비오는 날 모였겠다 생각했어요. 다산은 풍류를 아는 멋쟁이였나 봐요.^^

2012-08-30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08-30 07: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연꽃 필 때 정기 모임이니 비가 왔으면 금상첨화였겠지요. 근데 카톡도 전화기도 없던 시절 그분들 연락은 어찌 하셨을꼬? 서쪽 연못에 연꽃 피는 날이 한 두날 이간디? 아마 죽란 설치의 원인 제공자들이었던 하인들이 사방팔방 뛰어 다니면서 연락책을 했겠지요. 상상할수록 재밌네요.

2012-08-31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2 0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메라 루시다 - 열화당미술선서 56
롤랑 바르트 지음, 조광희 외 옮김 / 열화당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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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 식구 모였다. 아들 기숙사가 있는 학교 근처에서 소박한 외식을 한다.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는 아들을 따라 사진관에 들른다. 간 김에 가족 이미지 컷도 덤으로 찍기로 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에 관한 노트 덕분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 읽기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책이다. 그 중 ‘스투디움’과 ‘푼크툼’에 대한 잔상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 한 컷은 객관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험의 산물이다. 특정 사진에 대해 떠오르는 공통된 심상, 작가의 의도 등을 스투디움이라 한다면 구경꾼 개별자의 폐부를 찔러대는 정서적 감흥을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평면적이고, 대중적이며, 이해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입체적이며, 개별적이며, 은밀해도 좋은 것이다.

 

 

단순히 보여 지는 것 이상인 푼크툼은 심연의 창고에서 꺼내는 숨은그림찾기와 같다. 옛날 사진 한 장을 꺼냈을 때 오롯한 나만의 내면 풍경이 떠오르는 상태가 푼크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금파리로 팔뚝을 문질렀을 때 생기는 상처 같은 기억들. 서늘하고 아름다운 그 푼크툼의 세계를 떠올리기 위해 우리는 한 컷의 사진을 간직한다.

 

 

목덜미에 내려앉던 도시 뒷골목의 후텁지근함, 숯불 연기가 눈을 찔러대던 삼겹살집, 밤이슬 피해 나온 지렁이를 밟아 미안해하던 멈칫거림. 헤어지기 아쉬워 깍지 낀 손을 죄던 힘, 아득한 계단 위로 일렁이며 멀어져가던 실루엣, 그 적막한 밤을 깨워주던 날짐승의 울음소리. 오늘 찍은 한 컷 사진 속에서 이 정서들은 나만의 푼크툼이 되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찰나가 포착한 숨은 풍경을 찾기 위해 지금도 누군가는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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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냄새
이충걸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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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침이 그치지 않는다. 마른 콧물에도 휴지는 쌓이고, 간헐적인 재채기엔 진저리가 따른다. 들숨과 날숨의 콧김 어디에도 냄새가 섞여들지 못한다. 안과 밖을 드나드는 저 도저한 호흡 주기에 내 후각의 기미는 희미해져만 간다. 잊혀가는 전설처럼 냄새는 코끝에서 아련하고, 비염의 온갖 낌새는 끝내 후각상실이란 후유증으로 수렴되는 중이다.

 

  빗님 오신다. 공중을 떠도는 습기는 떼로 몰려 호흡기에 달라붙는데 비릿한 혐의를 품은 그 어떤 냄새도 내 후각을 풀어놓진 못한다. 무취의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건 중증 비염의 가장 큰 형벌이다. 향을 못 맡으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은 비염을 악화시키고 악화된 비염은 다시 향기를 앗아가고.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이 몸과 마음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책으로라도 품새를 다잡는다.

 

 

  잘못 고른 책일까. 엉너리로 가득 찬 문장은 넘치도록 진열된 청과전의 과일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과잉된 비유야 개성으로 치부하더라도 그 불분명한 문장 앞에서는 실소가 인다. 한데 어느 순간, 주관적이고 불가해한 이미지들이 주는 마력에 이끌려 책장 넘기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진열대에서 떨어진 석류 서른 개쯤 훔쳐 먹은 듯한 불안한 새콤달콤함이 책 속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불협화음이 내는 그 청량감은 감각적이고 부조리한 날 것들을 직감으로만 바라보려는 작가의 뻔뻔하고 자유로운 자의식 덕이었다. 그 뿌리를 헤집느라 데우려던 김치찌개를 다 태워버렸다.

 

 

  가스레인지 위 두 시간의 최강 불꽃에 코팅된 냄비가 주저앉고 온 집안엔 그 청량감의 백만 배나 되는 연기 자욱했다. 일층까지 누린내 진동했다는 누군가의 초인종이 있기 전까지 내 시야는 온통 혼돈 속에 갇혀 있었고, 후각 안테나는 그 어떤 냄새도 감지할 수 없었다. 비염 앓는 우기에 읽는 책 한 권은 내면의 혼란과 동시에 일상의 두려움을 환기시킨다. 이래저래 심란한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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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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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은연중에 그곳으로 관심이 쏠린다. 새누리당은 느긋하게 후보를 확정지었고, 민주당도 싱겁긴 하지만 막바지 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장외 후보인 안철수 교수도 공식 선언만 하지 않았다 뿐 어떤 식으로든 이번 레이스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눈과 귀도 조금씩 예민해져 간다. 이렇다 할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한 긴장과 느긋한 시선으로 이번 레이스를 관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직 어느 후보도 완결판 공약이나 깔끔한 정책으로 유권자들을 매혹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검색 논란이 진행 중이다.

 

 

  박근혜, 안철수 두 후보에 대한 민망한 검색어가 실시간 일위로 오르내리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성인 인증을 받아야 검색이 가능한 특정 단어가 대선 후보 이름과 연결되면 그 절차 없이도 곧바로 검색창에 뜨는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특정 후보를 물 먹이기 위한 네이버 측의 꼼수라 여기고, 그 쪽에서는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일축한다. 이슈화 된 검색어 수치가 일정 이상 올라가면 성인인증이 해제된다는 해명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네티즌이 몇이나 될까. 그간 상위에 오른 검색어를 그들 입맛대로 삭제한 경우가 없지 않은데다,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그 문구에 대해서 검색 필터링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불필요한 검색어가 뜨지 않게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하나 만으로도 네거티브 전략에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장난질에 의해 민심이 흔들릴 수 있다면 이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검색 필터링에 대한 네이버의 명확한 기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야 막론하고 인터넷 상에서 피해보는 후보자는 없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하고 대선 레이스를 지켜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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