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이건 백 프로 공감한다. 내가 아닌 타인과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지속한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일단 칼로리 소모 대단하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혹은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정보의 공유 측면에서도 대단히 유용하다. 더불어 스트레스도 풀린다. 가뜩이나 개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남과 나누는 담소는 그래도 우리가 피가 흐르는 인간이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말이지....
공공장소에서 지나치게 시끄럽게 떠드는 분들은 좀 아니올시다. 이다. 특히나 버스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지나칠 만큼의 dB을 자랑하는 수다는 소음을 능가하는 공해로 자리 잡는다. 아쉽게도 이런 사람들은 은근히 자주 만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탑승한 두 번의 버스에서 어김없이 이런 인간형을 마주치게 되었다.
금요일 퇴근길 버스.
- 금요일 서울바닥은 길바닥이 막히는 건 이제 고정사실이나 다름없다. 길거리에 사람도 넘쳐난다. 버스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집으로 오는 버스가 알게 모르게 연착을 해서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한 정거장이 지났을까 묘령의 여인이 버스에 올라탄다.(뒷모습만) 어찌하다 사람에 밀리다 보니 바로 옆에 위치하게 되었다. 버스 중앙차선을 벗어난 후 어김없이 막히기 시작한다.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무료하셨는지 그 묘령의 여인은 전화기를 꺼내든다. 그리고 바로 수다 시작한다. 하지만 목소리가.........TV 예능 프로에서 자주 들려주는 애교 형 목소리. 다시 말해 밑에 받침 빼고 발음하는 주먹을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오빠. 나....버스가 마켜....히잉... 어...그런데 오빠 아까...나 버스 태우고....왜 뒤도 안도다보고 거러가떠...힝..오빠는 나...그더케 보내놓고 친구드다고...당구치고시퍼떠...? 아라쏘아라쏘 내일 몇 띠에 보자고...아잉...나 바쁘꺼가튼데.....그래도 시간내보께...아쏘아쏘......’
급발진과 급정거를 반복하는 사나운 버스기사양반의 운전패턴 때문에 버스 손잡이를 최대 악력으로 부여 잡았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내 손가락과 발가락은 오글오글 오그라들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MP3 이어폰으로 귓구녕을 막고 겨우겨우 안정을 취했다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MP3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시야의 ‘ 그놈 목소리’ (혹은 그X 목소리) 근래 가장 괴로운 퇴근길이었다.
일요일 귀가길.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나는 닉네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교회에 다녀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는 일요일의 한가로움을 대변해주기나 하듯 그리 북적거리지도 않고 한산하다. 빈자리도 드문드문 나있길래 마님과 주니어를 앉히고 마당쇠는 당연히 서서 가는 형태를 취하였다. 아뿔싸. 이런 평화로운 버스 안, 제일 뒷자리에 수다맨이 앉아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요즘 버스 에너지절약 차원인지 일정시간 정차하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시동이 꺼졌다 다시 켜진다. 내가 탔던 버스가 그런 버스였고 비교적 수다맨과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이런 시스템 탓에 신호에라도 걸리기 시작하면 유난히 도드러지는 그의 음성이 고막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러니까말이에요그집형이여차저차에서그집동생이란이런저런일이있었는데말이죠아이고그러니까그동생은또어떠냐하면말이죠형이그런말을한다고가만히있을사람이아니고요그형수라는사람도어쩌고저쩌고그러자그제수씨도그냥넘어길리는없고말이에요어쩌고저쩌고이렇고저렇고...’
누가 수다를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내가 목격한 장년의 그 아저씨는 옆에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귀만 열어 논 모습과는 상반되게 숨은 쉬는지 의심스러울정도로 수다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엔진이 꺼진 차 안에서 독보적인 소음을 제공해주기에 이르렀다. 버스를 같이 타고 있던 인간들 이마에 점점 짙어지는 川 (내 천)자가 도드라져 보이고 있을 때 겨우겨우 내릴 정거장이었기에 부리나케 주니어를 데리고 하차하였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원인모를 환청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사랑타령도 좋고 뒷다마도 좋지만 공공장소에서 만큼은 평소 목소리 반만큼만 볼륨 다운하는 센스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지금 버스니까 내가 이따 전화 걸게’ 같은 멘트는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버스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그놈 혹은 그X 목소리는 어쩌면 화학병기를 능가하는 친환경적인 대체무기로 각광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