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매드 시리즈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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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흔한 병맛 B급이 아닌 프리미엄 C급 소설이다. 교양과 기품이 전부인 영국인에게도 이렇게 확 깨는 감성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부디 앞으로도 이 스타일을 잃지 마시옵서예... 라고 하려다가 취소했다. 왜 그랬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일단 ‘왕자와 거지‘의 현대판 이야기이다. 물론 재해석도 이런 재해석이 없지만 말이다. B급은 좋아하지만 이런 막장 스토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가 미쳐버린 한 여자만을 다루고 싶었던 걸까? 독자들은 이 작품에 시간 쏟지 말고 다른 책 읽으시길 바란다.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이 언니를 시기 질투해 언니의 삶을 뺏는 내용이다. 인생 탄탄대로인 언니와 달리 막장 인생으로 세상만사에 불만 가득한 동생은 직장에서 야동 보다가 걸려서 퇴직한다. 마침 지내던 집에서도 쫓겨나 할 수 없이 이탈리아의 언니 집으로 간다. 언니는 잘생긴 갑부 남편을 만나 관리 잘 받은 귀부인이 돼있어서 동생의 자존심은 팍팍 깎였다. 언니는 자신의 좋은 저택과 돈도 다 제공할 테니 어느 한 날에 자신과 신분을 바꾸자고 한다. 잠깐 동생이 된 언니가 외출하고 와서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있었고, 동생과 옥신각신 다투다가 저택의 수영장에 빠져버렸다. 형부가 뛰어들어 구해냈으나 이미 언니는 죽은 뒤였다. 그리고 형부가 동생에게 하는 말. ˝여기서 처제를 죽이면 어떻게 해? 계획대로 했어야지!˝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된 주인공. 자신은 곧 죽을 입장이었던 걸까? 언니네의 원래 계획은 뭐였을까? 몰려드는 비구름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동생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낼까.


언니의 삶도 남편도 아이도 전부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며 그렇게나 증오하던 언니였는데, 막상 언니의 신분이 되고 나니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지다니. 복잡 미묘한 이 마음과 자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자신을 죽일 계획이었다는 걸 알고도 언니인 척을 하고 살아야 한다니. 그러나 이런 고민들은 잠깐일 뿐, 내가 이제부터 언니다! 라고 인정해버리니 모든 게 OK였다. 전개도 빠르고, 스릴감도 넘치고, 캐릭터 표현도 좋고,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밀당 스킬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느낌이 중반 이후로는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언니가 왜 신분을 바꾸려 했는지, 완벽한 생활에서 왜 도피하려 했는지, 자신이 왜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등등. 호기심 유발하는 스킬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그런데 비밀의 정체들을 너무 허무맹랑하게 드러내니까 이건 뭐 쫄깃쫄깃한 맛이 전혀 없다. 이 작가는 템포 좀 낮추고 적당한 무게함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


제목 그대로 동생은 미쳤다. 아니, 점점 미쳐간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죽은 사람을 보고 흥분을 하더니, 마침내 본인이 총질로 죽인 사람을 보며 쾌감을 얻는다. 심지어 마피아 집단의 오른팔을 죽여놓고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고 싶어 한다. 게다가 섹스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을 헤치려는 남자를 보고도 음란한 생각뿐이다. 등장하는 남자들하고 전부 잠자리를 가지는데 굉장히 적나라한 묘사의 문장들이 가득하다. 이쯤부터는 인물 설정에 지나친 무리수를 둔다고 느꼈다. 아무리 나사 빠진 사람이라도 이 정도로 무식하고 생각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반까지만 해도 나름 신선한 문화 충격의 스릴러라고 여겼는데, 이건 뭐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19금 장면만 정성을 쏟다가 끝난다. 언니 부부가 죽고 난 뒤에는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형부 집안에 마피아가 개입되어있다는 게 특별한 설정도 아니고 말야. 유쾌한 코믹 에러 스릴러 장르인 척하고 있지만, 이건 그냥 냄비 받침대로 써도 될 듯.


내가 만약 저 아이돌로 살았다면, 내가 만약 저 사업가였다면 하는 상상. 흔히 하는 상상이지만 그건 단지 상대방의 껍질만 보고 판단하는 것 밖에 안된다. 상대방이 어떤 환경과 생각, 입장, 고민 중에 있는지 알고도 그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내가 지금 당장 빌 게이츠가 되고, 정우성이 되고, 방탄소년단이 된다면 무조건 행복할까? 이 책은 그런 환상을 철저히 박살 내주는 작품이다. 남의 삶을 대신 산다는 건 강호동이 M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남의 삶을 탐내기보단 그냥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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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브라더 (특별판)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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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를 오마주한 현대판 디스토피아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앞전에 1984를 급하게 읽었더랬지. 전체주의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감시받는 1984와, 현대에서 사용하는 기계에게 감시받는 리틀 브라더. 두 작품은 분위기부터 소재까지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자유가 억압받는 세상과, 진실이 외면받는 과정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본 작품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있고 얼마나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지 알게 해주는데, 실제로 이런 세상이 온다면 전혀 살맛 나지 않을 것 같다. 1984를 읽으면서 북한에 안 태어나 감사감사 했는데 민주국가도 얼마든지 X될 수 있다고 말하는 떨떠름한 작품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대교 하나가 테러범에 의해 폭파되고 큰 인명피해를 입게 된다. 그 주변에서 놀던 마커스 일행은 의문에 집단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리고 국토 안보부 수사관들에게 억류되어 별별 심문과 고문을 받고 풀려난 친구들. 그러나 친구 하나가 끝내 풀려나지 못했고, 이어서 테러리스트를 적발해낸다는 명목하에 시민들은 국토 안보부에게 모든 동선과 일정을 감시받는다. 열 뻗친 마커스는 자신의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국가에 복수를 결심한다. 접속기록이 남지 않는 가상의 웹망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온/오프라인에서 교묘하게 반대 운동을 추진하는 마커스. 익명의 선동가인 그는 어느새 미국을 대표하는 범죄자가 되어있었고, 잡히면 평생을 감방 VVIP 고객으로 극진히 대접받게 생겼다. 자, 이제 미스터 해커씨는 이 국가 사태를 어떻게 회복하고, 자신의 누명을 어떻게 벗길 것이며, 붙잡힌 친구를 어떻게 구해낼 것인지요?


책 제목에서 1984의 빅 브라더와 연관이 있을 거 란 생각은 했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가 워낙 달라서 감이 오지 않았는데 곧 자연스레 알게 됐다.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과 도청장치로 사람들을 감시했다면 현대에서는 카드 사용과 휴대폰, pc 사용, 인터넷 등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기들이 사람들을 감시한다. 내가 어딜 가서 뭘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전부 기록이 남는 현대사회는 첨단 감시망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 앞에 슈퍼를 놔두고 옆 동네 슈퍼에 간 걸로 테러범 의심을 받는다 생각해보라. 그리고 테러범이 아님을 증명해보란 말을 듣는다면 어떨 것 같은가? 이게 나라냐 싶겠지. 자유 국가에서 내가 슈퍼를 가든 문방구를 가든 왜 감시를 받고 설명을 해야 함? 진짜 갈수록 온갖 것에 터치를 받는 게 완전히 빅 브라더와 판박이네. 이럼에도 작가는 말하길, 이 책은 경고를 주기 위함이 아닌 컴퓨터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지 묻는 책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은 독자에게 프로그래밍을 배워보라고 권한다. 입력하고 지시한 대로 실행되는 놀라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며, 컴퓨터로 사람도 통제하고 온갖 작업들도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데 글쎄 난 이미 틀렸음. 그러니 자라나는 초딩들아, 공부 열심히 하렴...


초반 전개가 지나치게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간다. 사실 처음에는 천재 해커 학생이 정부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놀고 나 잡아봐라,하는 식의 전개를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주인공이 정부에 대항하려고 플랜 ABC를 만들어내면 그로 인해 대중들이 피해를 입었고, 자책감을 느낀 주인공은 심신이 점점 약해졌다.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을 못해서,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과 친구들이 경찰에게 당하고 끌려가는 걸 보면서도 반대 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마커스, 너도 참 징하다.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고, 성공적인 결과로 만드는 건 더 쉽지 않았다. 결국 끝에 가서 다시 붙잡혔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고 해줄까 하다가 너무 드라마틱하게 종결되어 그 말이 쏙 들어갔다. 결국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었단 말인가. 


국토 안보부의 빅 브라더가 헌법을 유린하고 정계로 나아가려는 음모가 드러나면서 작품의 진짜 메시지가 빛을 발한다. 헌법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는 안보부의 이념은, 인권을 막으면서 자유를 보호하겠다는 개똥같은 논리였다. 아니, 그러면 화장실에 설치한 몰카도 범죄가 아니겠네? 그러나 그런 개똥같은 말들도 경찰들을 동원해 무력으로 행사하면 시민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 반항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텐데 그걸 누가 감당해내겠음? 게다가 미국정부기관이 오판했다고 누가 의심하겠음? 그런데 작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국가도 시뻘건 독재 권력질로 폭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솔직히 탁상공론은 너네 미국보다 우리 한국이 한 수위임. 꺄불지마라우. 아무튼 이외에 IT 기술들도 다양하게 설명해주지만 나는 ‘컴알못‘이라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하며 읽었다. 작가 딴에는 쉽게 설명한다고 한 건데 온전히 이해 못해서 미안했다. 근데 아직도 컴퓨터가 인간을 어떻게 자유롭게 해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작품 하나 써주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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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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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는 구병모 작가의 특기인 긴 호흡의 문장을 카피하여 써보겠다. 불편한 분들은 차분하게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시면 되지만 그냥 어떤 식으로 썼는지 함 읽어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봐줬으면 하는 겨자씨만 한 작은 소망이 있다. 먼저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완벽한 타인‘이 자동으로 떠올랐는데, 이 책도 그 영화처럼 몇몇 가족들끼리 모여 지내다 불편한 상황이 연속으로 발생하여 결국 배드 엔딩을 넘어서 더티 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대놓고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이번 책은 이웃 간에 겪는 불편함의 지수가 대한민국 아침드라마 수준급으로 높아서, 어머어머 웬일이니 하면서도 팝콘과 콜라를 삼켜가며 구경하는 재미가 킹왕짱 쏠쏠했고, 이 정도면 작가님이 드라마계로 진출하셔도 손색이 없겠다 싶을 정도여서 혹시나 문학은 관두고 연예계로 데뷔하면 어쩌지 싶은 별 희한한 걱정도 이삼 초쯤 들었다. 암튼 이 정도면 거의 민간인 사찰 수준 아니냐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작가의 인생사 관찰력도 대단하지만, ‘파과‘에 비하면 많이 소프트해진 문장들과 짧아진 호흡에 읽기가 편해서 좋았는데, 사실 인간미 가득한 이런 작품은 몰입도가 워낙 대단해서 문장이 길든 말든 상관없다. 아무튼 역시나 구병모 작가다.


젊은 부부 대상으로 나라에서 집을 마련해주는 제도인 꿈미래실험 공동주택. 산속에 지은 작은 아파트에 네 가정이 입주해서 옹기종기 모였는데, 집마다 사정도 다 다르고, 각자 개인의 성향도 너무 달랐다. 어차피 계속 볼 사이니까 잘 지내보자며 이 주택단지만의 규칙도 세우고 아이들도 집마다 돌아가면서 돌보기로 정한다. 이런 공동체의식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일 때라야 가능한데, 성향도 개성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말처럼 쉽나 그게. 가면 쓰고 웃지만 속으론 짜증 내기 일쑤인 나날들이 이어지고, 티 안 나게 서열을 나누거나 선을 긋는 묘한 심리전쟁이 시작된다. 외부 세계와 단절돼있다는 것에서 오는 허전함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남들과 살갑게 지내길 원치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제 자식을 봐서라도 싫은 건 싫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쭉 유지되었다. 마침 키우는 애들이 다 고만고만한 나이라 부모들의 고충도 다 비슷했는데, 부모들끼리 섞이지 못하면 제 아이는 저절로 따돌림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원치 않는 카플도 해야 했고, 남들 잘 때 목청 높여 싸우는 옆집 소리를 듣고도 가서 따질 수가 없었다. 다른 엄마들이 내 아이를 돌보다가 애가 크게 다쳤을 때 화내기 껄끄러운 일들도 다반사였다. 이만하면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견적이 나올 것이다.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가까운 사이가 되려니 감내해야 할 항목들이 너무 많다. 나는 요기까지만 거리를 두고 싶은데 상대방은 웃으면서 그 선을 넘어오니 밀어내기도 뭐 하고, 또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기는 싫으니 억지로 받아주고의 반복이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말임에도 과잉 반응을 해버리면 상대방은 음란 마귀가 끼였느니, 피해 망상이라느니 식으로 나올 수 있어서 나만 이상한 사람 되기 쉬운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이상한 소문나는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든 우리 애가 놀림 받고 따돌림당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공동체 생활은 유지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배려란 게 꼭 의무는 아니겠으나 이것이 잘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로다. 내 집 숟가락이 몇 개인가를 남들이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싫으니까 이해 좀 해줘! 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지금 불편하다는 분위기나 좀 파악해주면 좋을 것을, 왜 다들 그걸 모르시는지. 각자가 생각하는 프라이버시의 범위가 다 달라서 일어나는 일상의 해프닝들이라 이건 도저히 해결 방도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공동생활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융통성도 없고 이해도 안 간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기 집안 챙기기도 바쁜데 공동생활까지 하는 게 버거워서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 국가제도의 취지를 알고 입주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사는 건 거기서 거기일 텐데 서로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받지 못하고 불편해하면서 왜 기를 쓰고 잘 지내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혼자가 익숙한 세대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 공동체 생활이든 아니든 한국처럼 다닥다닥 붙어살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집과 집 사이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구병모 작가를 높이 사는 것 중에 하나는, 고급 단어나 어휘를 ‘평범하게‘ 보이도록 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평소에 잘 안 쓰는 단어를 쓰면 그 단어나 문장이 형광 스티커처럼 눈에 띄게 마련이나, 이 작가는 튀지 않고 내내 덤덤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글을 써서 참 신기하다. 그 세련된 절제미 안에서 나름의 강약 조절이 느껴져 보통 내공이 아니란 걸 깨달을 때마다 이런 사람이 작가를 해야 하겠구나 싶다. 많은 글쟁이들이 있다지만 자신만의 문체를 갖춘 사람은 보기 힘든데, 이 작가는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어서 대단하고 또 부럽다. 그 재능, 겨자씨만큼만 제게 나눠주시면 안되갔습니까. 탐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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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1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된 시절을 적확하게 타격하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이상주의적 공동체의 모습을 추구하기에는 속세의 물이 너무...

물감 2019-04-11 11:34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속세의 물이란 표현이 딱입니다. 앞으로도 공동체생활은 어렵겠죠. 전 지금시대의 생활이나 패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작품으로 확인을 해보니 씁쓸하긴 하네요...

페크pek0501 2019-04-1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병모 작가가 글 잘 쓴다고 제 귀에까지 들어와서 저도 구입한 책이 버드 스트라이크예요.
앞에만 조금 봤는데 특색이 있더군요. 물감 님이 맨 마지막 문단에 쓰신 것. - 고급 단어를 평범하게 보이도록 쓴 것은 그 작품 안에 낱말이 잘 녹아 있다는 것이겠지요. 문장과 문장이, 문단과 문단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음을 뜻할 수도 있고요.
글 잘 쓰는 사람이 왜 이리 많습니까? 저도 탐나네요.

물감 2019-04-17 09:41   좋아요 1 | URL
구병모 작가의 문체는 ‘멋있다‘ 보다는 ‘배워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조명받는 작가들은 다 이유가 있었네요. 나름 리뷰를 여러번 써오면서 느낀건데 노력으로 이뤄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듯 해요. 그래서 결국 뮤즈를 만나야 하는가 싶어요ㅎㅎ
 
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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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바쁜 4월이다. 안 그래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데 하필 고른게 고전문학이라 속도가 매우 더디다. 고전은 어떻게 해야 빨리 읽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03년생인 오웰 선생은 장차 인간 사회가 국가의 독재로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수십 년 전부터 꿰뚫어본 문학계의 현인이다.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동받은 건 좋은데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이렇게 리뷰 쓰기 곤란한 책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을 기준으로 고전문학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이 책처럼 유명한 문학들은 사실 리뷰 쓰기도 민망한데, 뭐 어차피 볼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하하하.


수십 년 전, 혁명 이후 런던은 지독한 사회주의로 바뀌었고 시민들의 웃음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혁명군 지도자 ‘빅 브라더‘는 혁명전에 일어난 모든 과거를 조작하고 거짓 정보들로 사람들을 세뇌교육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똥으로 메주를 쑨다는 당의 말을 그대로 믿게 되었다. 이제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의 감시 때문에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또한 텔레스크린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뉴스에 열광하지 않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표정만 지어도 빨갱이가 된다. 겉으로는 남들과 똑같이 행하지만 주인공은 이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에서 과거의 모든 기록들을 날조하는 일을 하는 윈스턴은 거짓이 사실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표현 없이 한탄해한다. 그리고 당은 사전에 있는 단어를 매일매일 폐기하여 인간의 사고의 폭을 좁혀가고 있다. 그걸 왜 시민들도 찬성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렇게 해야 의견들이 쉽게 일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본인들이 바보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근데 이 책을 읽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빅 브라더는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차단하면서 거짓으로 자유를 박탈시켰다. 이러한 당의 독재에 불만을 가진 반 혁명가 골드스타인이 외치는 것은 자유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국가 간에 전쟁은 지금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현실을 계속 왜곡시킴으로써 자신들이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사회가 원하는 특수한 심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좋은 게 전쟁이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라는 슬로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이 원하는 이상은 모두가 같은 정신, 같은 행동, 같은 슬로건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정반대로 현실은 썩어가고 있다. 인간이 누릴 당연한 것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는데 아무도 불만을 갖거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생각은커녕 다들 잘만 적응해서 살아간다. 물품 배급은 줄어드는데 경제가 200% 성장했다고 뉴스가 나오면 그걸 그대로 믿는 이 거지 같은 현실을 당연시하게 여기고, 심지어 2세들은 자기 부모들조차 당에 신고할 만큼 인간병기 비슷하게 자라난다. 이게 나라냐?


2부에서는 윈스턴이 자신과 뜻이 같은 줄리아를 만나고서 사랑에 빠진다. 남녀 간에 사적 만남을 금지하는 감시망을 피해 두 사람은 열심히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 태어난 여자의 생각과 사고는, 과거를 아는 남자와 너무도 달랐다. 진실이 무엇이든 결과가 같다면 날조든 뭐든 상관없다는 줄리아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버린 윈스턴. 그게 왜 잘못된 건지 모르는 줄리아의 생각을 바로잡아주는 윈스턴의 대사에서 작가의 심정을 알 수 있다. 모든 기록들이 거짓으로 변조되어 역사가 정지되어도, 전혀 증명할 길이 없어도 끝까지 진실을 기억하는 것. 바뀐 역사가 맞다고 모두가 우긴대도 그 말에 맞서는 것. 진짜 인간이라면 그런 정신과 자세와 용기를 탑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반대로 줄리아처럼 과거를 모르고 자라난 세대들은 진실된 역사도 올바로 믿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부는 윈스턴이 감옥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내용이다. 그들에게 혁명은 독재 정권을 위한 수단이며, 최종 목적은 순수한 권력이었다. 그래서 윈스턴을 절대 죽이지 않고 빅 브라더를 따르도록 정신 개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흥미롭다. 책에서는 ‘이중사고‘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당이 A가 맞다고 했다가 B가 맞는다고 정정하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대로 믿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멍청이처럼 무조건 네 말이 맞아, 가 아니라 모든 논리와 증거에 의해서 맞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가령 2+2는 5라고 했다가 3이라고 바꾸면, 이전에 5라고 들었던 건 싹 리셋하고 새로운 기억장치가 돌아가는, 바로 이것이 이중사고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간성을 지닌 최후의 1인 윈스턴은 죽음 앞에서도 거짓은 진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바꾸고 과거를 지배한다 해도 개인의 정신과 기억은 지배하지 못한다고 대꾸한다. 이 정도면 뭐 독립투사 아닌가. 실존 인물인 줄 알았네.


작가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은 희망을 주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내 자신이 부재중인 상태가 되면 절망뿐인 미래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다움, 진실한 인간성을 갖추어 미래를 설계해나가야 한다. 21세기에도 빅 브라더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위협받고 있다. 최근에 중국 기사 하나를 읽었는데, 2020년부터 중국이 국민에게 사회 신용시스템을 적용한다고 한다. 금융거래 실적과 세금 납부 등의 기준으로 전 국민에게 레벨을 부여하는데 이 레벨이 떨어질수록 불이익이 제공될 거라고 한다. 정부를 욕하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하락되는 이 제도를 두고 ‘중국판 빅 브라더‘라며 말이 많다. 오웰 선생이 기가 막히게 미래를 내다보셨더군. 올해는 고전문학 좀 많이 읽어보도록 해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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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9-04-21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가 의무가 되어버리지 않게 된 시점부터 고전의 매력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시를 조각조각 잘라서 해석하지 않게 된 이후로 시의 맛을 제대로 음이하게 된 것처럼요.
고전을 읽을 때마다 자주 놀라곤 합니다. 현재 상황에 접목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묘사나 분석,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보면요. 저는 Canon이 떠오릅니다. 달라지는 것 같아도 어떤 기본적인 바탕 위에 조금씩 변주되는 것이 아닐까 하구요.
저도 올해에는 틈틈히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고전읽기 온라인 독서모임이라도 해야 할라나요? 워낙 느려터진 독서 속도에 추진력이라도 들러붙게ㅎㅎ

물감 2019-04-22 10:35   좋아요 0 | URL
고전은 읽게되는 시점이 따로 있는것 같아요. 의무로 읽었다면 오히려 거부감 들었을지도...ㅎㅎ 캐논곡에 대한 설명도 신선하네요! 역시 시를 쓰시는 분이라 남다르심^^ 이 책을 기준으로 고전문학을 모으는중이에요. 저랑 같이 독서해요ㅎㅎ

나비종 2019-04-22 13:02   좋아요 1 | URL
그럴까요? 읽으실 책 정하시면 말씀해주세요. 같이 읽어요. ㅎㅎ
나름 온라인 고전읽기 독서모임, 결성되는 건가요? 모임 이름은. .초창기 멤버, 나비종.물감의 합체. . ˝나물˝ㅋㅋㅋㅋ

물감 2019-04-22 13:17   좋아요 1 | URL
나물ㅋㅋㅋㅋ작명센스 굿입니다. 일단 지금 독서중인 서평단 책이 있어서 그거 끝나고 말씀드릴게요ㅎㅎ감사해영ㅋ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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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작품. ‘7년의 밤‘으로 검증된 작가의 내공을 떠올리며 즐거운 내용은 아니지만 즐겁게 읽었다. 언제부턴가 책을 고를 때 아무런 정보 없이 집어 들다 보니 실패 확률이 높아졌는데, 이 책도 초반만 보고 실패한 줄 알았다. 7년의 밤과 스타일이 크게 다른 것도 있었고, 초중반까지는 장르가 파악이 안돼서였다. 이래서 기본 소개 글이라도 읽어야 하는 거구나. 많은 서사를 담고 있지만 결국 이 책은 디스토피아이다. 그동안의 여러 리뷰를 통해 디스토피아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고 몇 번 말했는데, 한국의 디스토피아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 잘 알던 외국 스타일과 많이 달라서 그런지 익숙함과 낯섦의 만감이 여러 번 교차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 독자를 데려다 놓고 싶다는 말을 했던데, 과연 그 말대로 나는 정유정 세계에 갇혀서 캐릭터들과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런 게 문학의 힘이요, 정유정 작가의 마력이다. 올해에는 정유정 소설 도장 깨기나 해볼까나.


늑대개한테 물린 사람의 눈이 검붉게 충혈되고 폐에 고인 피를 토하며 죽는 전염병이 도시 곳곳에 퍼져나간다. 이 원인모를 병의 증상은 개와 사람이 동일하여 개들은 거리에 버려졌고 병원에는 입원 환자가 줄을 섰다. 도시 전역에 감염자들이 넘쳐나고, 그 수를 감당 못한 소방대원들과 의료팀들도 감염되어 거의 다 죽었다. 정부는 화양시를 봉쇄하는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모든 유기견의 살처분을 선포한다. 무간지옥에 갇힌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강도질과 살인과 강간이 이어진다. 여기서 병에 걸리지 않은 네 명의 남녀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소방대원 한기준, 수의사 서재형, 간호사 노수진, 기자 김윤주. 그리고 사이코 박동해와 투견 출신의 늑대개 링고. 각자의 트라우마와 서로의 감정들이 부딪혀 발생하는 갈등과 사건들. 작가는 화양시와 이들을 통해서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7년의 밤‘ 때도 느낀 건데 정유정 작품은 어쩐지 리뷰 쓰기가 버겁다. 이 책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다른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세상에, 작품만큼이나 수준 높은 리뷰가 가득했다. 작가의 서늘하면서도 담담하고 전문성 담긴 문체가 독자들의 글에서도 고스란히 보였다. 아 점점 글쓰기 싫어진다. 먼저 이 책은 주인공이 따로 없다. 바꿔 말하면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런 멀티 시점의 플롯은 젠가 놀이처럼 하나만 잘못 건들어도 와장창 무너지기 쉬운데, 우려한 게 무색할 만큼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균형이 완벽했다. 그 많은 인물 중에서 주인공은 아마도 김윤주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녀의 눈과 귀를 통해서 이 재난의 시작과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걸린 가축과 동일 취급받고 버려진 인간들, 정부의 무책임한 방안, 꺼진 희망 속에 자라나는 인간의 동물적인 모습 등등 전쟁터에서 중계하는 특파원처럼 사건의 중심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내가 쓰는 소설도 이렇게 살아있는 캐릭터라야 할 텐데.


동해의 분노가 아버지에서 반려견으로, 재형으로, 가족과 세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광기는, 엘리트만 좋아하는 현대 부모가 낳은 결과를 상징한다는 작품 해설에 소름 돋았다. 워낙 악역의 광기를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해서인지 정유정의 소설이 부담된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 그 기분 나도 뭔지는 알 거 같다. 정유정은 필력이 뛰어난 작가는 아니다. 필력보다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스타일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묘사를 못 견뎌하는 여린 독자가 많은데도 팬층은 두터우니 희한한 일이다. 아무튼 작가 고유의 분위기가 ‘미나토 가나에‘하고 비슷한데 그보다는 좀 더 세다. 미나토 가나에가 송곳 같다면, 정유정은 톱 같다고나 할까. 하아, 무서운 언니들...


앞에서 말한 작가 고유의 디테일에 대해서 좀 더 적겠다. 디테일이 돋보이는 많은 장면 중 베스트는, 사이코 박동해가 병에 걸린 엄마와 마주했을 때였다. 사실 엄마는 동해의 계획에 없는 인물이나 마찬가지라서 꼴좋다는 한 마디로 싱겁게 끝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자존심을 부여잡고 숨죽인 채 발악하였고, 동해는 그렇게 고상한척하던 이 집안도 별 수 없다는 마음과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했다. 서로가 가만히 말만 주고받았던 이 장면은 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동적인 형용 못할 그림이었다. 이 그림에 대한 감상은 정성스레 빚은 도자기에 고대 문양을 새겨 넣는 듯한 장인의 손길을 보는 것 같았다. 뭐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작가의 손길은, 과하다고 느낄 경계선을 넘는 법이 없다. 마치 죽은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던 노수진의 심경처럼, 힘겹지만 어떻게든 버티면서 썼다는 인상을 주는 작가였다. 


진짜 너무하다 싶을 만큼 희망이라곤 1%도 없는 무자비한 작품이다. 과거나 현재나 사랑하는 개들을 전부 잃은 수의사 재형. 가족이 개한테 물려죽어 괴로운 소방관 기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수진. 자신의 기사 때문에 멀쩡한 개들이 집단 살처분 당하는 것을 보고 절망하는 기자 윤주. 이들 중에 누구의 슬픔이 더 무거울까. 모든 이들의 슬픔의 모양이 다 달라도 사랑하는 대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동일했다. 작가는 이들을 통하여 ‘생명‘의 가치를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는데, 전혀 상반되는 가치관까지도 다루었다. 몰살되는 보호소 개들을 보며 진작에 풀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재형과, 사람을 물어 죽이는 개들을 보며 거리에 맹수를 풀어놓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노인. 일방적으로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같았지만 입장과 생각은 정반대였다. 작가는 수년 전 구제역에 걸린 가축들을 산 채로 매장하는 장면을 보며 생명의 가치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 계기로 이 책이 만들어졌단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간도 똑같이 생매장 당하고 살처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동물의 생명을 폐기물처럼 보는 인간에게 벌을 내리듯이. 그렇게 반려동물과 가축의 생명 또한 인간과 다르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항상 강조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화양시 사람들은 전염병을 무서워하면서도 집에 있기보다 병동에 모여있길 원했다. 그것은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다 죽고 혼자 남는 과정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지만, 그 불씨는 언제 꺼질지 알 수 없었다. 재형과 윤주가 그랬고, 기준과 수진이 그랬고, 시민 모두가 그러했다. 전혀 모르던 사이였고 좋은 만남도 아니었지만 서로서로가 유일한 안식처와 탈출구가 되어주곤 했다. 근데 아이러니한 것은 한 개인의 내면세계를 무너뜨리는 역할도,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달래는 역할도 모두 ‘사람‘이란 거였다. 중공업체 D사에서 사람이 미래라고 하던데 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그럴까 의심이 들지만, 난 그래도 인간의 악한 면보단 선한 면을 더 믿고 싶다. 아이고, 글이 엄청 길어졌네.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아무거나 쓰다가 분량 조절 실패했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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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2019-04-03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년의 밤을 힘겹지만 재밌게 읽었는데 28도 도전해봐야겠내요. 항상 물감님 서재에서 재밌는 책

추천 받아 읽고 있습니다^^

물감 2019-04-03 10:03   좋아요 1 | URL
제 리뷰가 이런 감사한 댓글 달리기 정말 어려운데, 도움이 된다니 참 기쁩니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않았는데 패스파인더님 댓글로 위로 받았네요. 감사합니다ㅎㅎ

chl25kr 2019-11-26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28>에서 느꼈던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이렇게 글로 보게되니 반갑네요 너무나도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물감님의 적절한 비유와 재밌는 표현들덕분에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은 리뷰였습니다.

덕분에 책을 읽고 표현할 엄두를 내지 못한 제 감정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아요. 저도 이제 리뷰쓰러 가겠습니다 뿅

물감 2019-11-26 17:50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이 된다니 기쁘네요^^ 글에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글로 적는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입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언젠가 이웃님의 리뷰도 볼 날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