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매드 시리즈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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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흔한 병맛 B급이 아닌 프리미엄 C급 소설이다. 교양과 기품이 전부인 영국인에게도 이렇게 확 깨는 감성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부디 앞으로도 이 스타일을 잃지 마시옵서예... 라고 하려다가 취소했다. 왜 그랬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일단 ‘왕자와 거지‘의 현대판 이야기이다. 물론 재해석도 이런 재해석이 없지만 말이다. B급은 좋아하지만 이런 막장 스토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가 미쳐버린 한 여자만을 다루고 싶었던 걸까? 독자들은 이 작품에 시간 쏟지 말고 다른 책 읽으시길 바란다.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이 언니를 시기 질투해 언니의 삶을 뺏는 내용이다. 인생 탄탄대로인 언니와 달리 막장 인생으로 세상만사에 불만 가득한 동생은 직장에서 야동 보다가 걸려서 퇴직한다. 마침 지내던 집에서도 쫓겨나 할 수 없이 이탈리아의 언니 집으로 간다. 언니는 잘생긴 갑부 남편을 만나 관리 잘 받은 귀부인이 돼있어서 동생의 자존심은 팍팍 깎였다. 언니는 자신의 좋은 저택과 돈도 다 제공할 테니 어느 한 날에 자신과 신분을 바꾸자고 한다. 잠깐 동생이 된 언니가 외출하고 와서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있었고, 동생과 옥신각신 다투다가 저택의 수영장에 빠져버렸다. 형부가 뛰어들어 구해냈으나 이미 언니는 죽은 뒤였다. 그리고 형부가 동생에게 하는 말. ˝여기서 처제를 죽이면 어떻게 해? 계획대로 했어야지!˝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된 주인공. 자신은 곧 죽을 입장이었던 걸까? 언니네의 원래 계획은 뭐였을까? 몰려드는 비구름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동생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낼까.


언니의 삶도 남편도 아이도 전부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며 그렇게나 증오하던 언니였는데, 막상 언니의 신분이 되고 나니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지다니. 복잡 미묘한 이 마음과 자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자신을 죽일 계획이었다는 걸 알고도 언니인 척을 하고 살아야 한다니. 그러나 이런 고민들은 잠깐일 뿐, 내가 이제부터 언니다! 라고 인정해버리니 모든 게 OK였다. 전개도 빠르고, 스릴감도 넘치고, 캐릭터 표현도 좋고,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밀당 스킬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느낌이 중반 이후로는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언니가 왜 신분을 바꾸려 했는지, 완벽한 생활에서 왜 도피하려 했는지, 자신이 왜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등등. 호기심 유발하는 스킬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그런데 비밀의 정체들을 너무 허무맹랑하게 드러내니까 이건 뭐 쫄깃쫄깃한 맛이 전혀 없다. 이 작가는 템포 좀 낮추고 적당한 무게함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


제목 그대로 동생은 미쳤다. 아니, 점점 미쳐간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죽은 사람을 보고 흥분을 하더니, 마침내 본인이 총질로 죽인 사람을 보며 쾌감을 얻는다. 심지어 마피아 집단의 오른팔을 죽여놓고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고 싶어 한다. 게다가 섹스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을 헤치려는 남자를 보고도 음란한 생각뿐이다. 등장하는 남자들하고 전부 잠자리를 가지는데 굉장히 적나라한 묘사의 문장들이 가득하다. 이쯤부터는 인물 설정에 지나친 무리수를 둔다고 느꼈다. 아무리 나사 빠진 사람이라도 이 정도로 무식하고 생각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반까지만 해도 나름 신선한 문화 충격의 스릴러라고 여겼는데, 이건 뭐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19금 장면만 정성을 쏟다가 끝난다. 언니 부부가 죽고 난 뒤에는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형부 집안에 마피아가 개입되어있다는 게 특별한 설정도 아니고 말야. 유쾌한 코믹 에러 스릴러 장르인 척하고 있지만, 이건 그냥 냄비 받침대로 써도 될 듯.


내가 만약 저 아이돌로 살았다면, 내가 만약 저 사업가였다면 하는 상상. 흔히 하는 상상이지만 그건 단지 상대방의 껍질만 보고 판단하는 것 밖에 안된다. 상대방이 어떤 환경과 생각, 입장, 고민 중에 있는지 알고도 그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내가 지금 당장 빌 게이츠가 되고, 정우성이 되고, 방탄소년단이 된다면 무조건 행복할까? 이 책은 그런 환상을 철저히 박살 내주는 작품이다. 남의 삶을 대신 산다는 건 강호동이 M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남의 삶을 탐내기보단 그냥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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