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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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는 구병모 작가의 특기인 긴 호흡의 문장을 카피하여 써보겠다. 불편한 분들은 차분하게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시면 되지만 그냥 어떤 식으로 썼는지 함 읽어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봐줬으면 하는 겨자씨만 한 작은 소망이 있다. 먼저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완벽한 타인‘이 자동으로 떠올랐는데, 이 책도 그 영화처럼 몇몇 가족들끼리 모여 지내다 불편한 상황이 연속으로 발생하여 결국 배드 엔딩을 넘어서 더티 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대놓고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이번 책은 이웃 간에 겪는 불편함의 지수가 대한민국 아침드라마 수준급으로 높아서, 어머어머 웬일이니 하면서도 팝콘과 콜라를 삼켜가며 구경하는 재미가 킹왕짱 쏠쏠했고, 이 정도면 작가님이 드라마계로 진출하셔도 손색이 없겠다 싶을 정도여서 혹시나 문학은 관두고 연예계로 데뷔하면 어쩌지 싶은 별 희한한 걱정도 이삼 초쯤 들었다. 암튼 이 정도면 거의 민간인 사찰 수준 아니냐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작가의 인생사 관찰력도 대단하지만, ‘파과‘에 비하면 많이 소프트해진 문장들과 짧아진 호흡에 읽기가 편해서 좋았는데, 사실 인간미 가득한 이런 작품은 몰입도가 워낙 대단해서 문장이 길든 말든 상관없다. 아무튼 역시나 구병모 작가다.


젊은 부부 대상으로 나라에서 집을 마련해주는 제도인 꿈미래실험 공동주택. 산속에 지은 작은 아파트에 네 가정이 입주해서 옹기종기 모였는데, 집마다 사정도 다 다르고, 각자 개인의 성향도 너무 달랐다. 어차피 계속 볼 사이니까 잘 지내보자며 이 주택단지만의 규칙도 세우고 아이들도 집마다 돌아가면서 돌보기로 정한다. 이런 공동체의식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일 때라야 가능한데, 성향도 개성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말처럼 쉽나 그게. 가면 쓰고 웃지만 속으론 짜증 내기 일쑤인 나날들이 이어지고, 티 안 나게 서열을 나누거나 선을 긋는 묘한 심리전쟁이 시작된다. 외부 세계와 단절돼있다는 것에서 오는 허전함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남들과 살갑게 지내길 원치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제 자식을 봐서라도 싫은 건 싫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쭉 유지되었다. 마침 키우는 애들이 다 고만고만한 나이라 부모들의 고충도 다 비슷했는데, 부모들끼리 섞이지 못하면 제 아이는 저절로 따돌림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원치 않는 카플도 해야 했고, 남들 잘 때 목청 높여 싸우는 옆집 소리를 듣고도 가서 따질 수가 없었다. 다른 엄마들이 내 아이를 돌보다가 애가 크게 다쳤을 때 화내기 껄끄러운 일들도 다반사였다. 이만하면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견적이 나올 것이다.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가까운 사이가 되려니 감내해야 할 항목들이 너무 많다. 나는 요기까지만 거리를 두고 싶은데 상대방은 웃으면서 그 선을 넘어오니 밀어내기도 뭐 하고, 또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기는 싫으니 억지로 받아주고의 반복이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말임에도 과잉 반응을 해버리면 상대방은 음란 마귀가 끼였느니, 피해 망상이라느니 식으로 나올 수 있어서 나만 이상한 사람 되기 쉬운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이상한 소문나는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든 우리 애가 놀림 받고 따돌림당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공동체 생활은 유지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배려란 게 꼭 의무는 아니겠으나 이것이 잘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로다. 내 집 숟가락이 몇 개인가를 남들이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싫으니까 이해 좀 해줘! 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지금 불편하다는 분위기나 좀 파악해주면 좋을 것을, 왜 다들 그걸 모르시는지. 각자가 생각하는 프라이버시의 범위가 다 달라서 일어나는 일상의 해프닝들이라 이건 도저히 해결 방도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공동생활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융통성도 없고 이해도 안 간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기 집안 챙기기도 바쁜데 공동생활까지 하는 게 버거워서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 국가제도의 취지를 알고 입주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사는 건 거기서 거기일 텐데 서로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받지 못하고 불편해하면서 왜 기를 쓰고 잘 지내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혼자가 익숙한 세대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 공동체 생활이든 아니든 한국처럼 다닥다닥 붙어살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집과 집 사이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구병모 작가를 높이 사는 것 중에 하나는, 고급 단어나 어휘를 ‘평범하게‘ 보이도록 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평소에 잘 안 쓰는 단어를 쓰면 그 단어나 문장이 형광 스티커처럼 눈에 띄게 마련이나, 이 작가는 튀지 않고 내내 덤덤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글을 써서 참 신기하다. 그 세련된 절제미 안에서 나름의 강약 조절이 느껴져 보통 내공이 아니란 걸 깨달을 때마다 이런 사람이 작가를 해야 하겠구나 싶다. 많은 글쟁이들이 있다지만 자신만의 문체를 갖춘 사람은 보기 힘든데, 이 작가는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어서 대단하고 또 부럽다. 그 재능, 겨자씨만큼만 제게 나눠주시면 안되갔습니까. 탐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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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1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된 시절을 적확하게 타격하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이상주의적 공동체의 모습을 추구하기에는 속세의 물이 너무...

물감 2019-04-11 11:34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속세의 물이란 표현이 딱입니다. 앞으로도 공동체생활은 어렵겠죠. 전 지금시대의 생활이나 패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작품으로 확인을 해보니 씁쓸하긴 하네요...

페크pek0501 2019-04-1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병모 작가가 글 잘 쓴다고 제 귀에까지 들어와서 저도 구입한 책이 버드 스트라이크예요.
앞에만 조금 봤는데 특색이 있더군요. 물감 님이 맨 마지막 문단에 쓰신 것. - 고급 단어를 평범하게 보이도록 쓴 것은 그 작품 안에 낱말이 잘 녹아 있다는 것이겠지요. 문장과 문장이, 문단과 문단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음을 뜻할 수도 있고요.
글 잘 쓰는 사람이 왜 이리 많습니까? 저도 탐나네요.

물감 2019-04-17 09:41   좋아요 1 | URL
구병모 작가의 문체는 ‘멋있다‘ 보다는 ‘배워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조명받는 작가들은 다 이유가 있었네요. 나름 리뷰를 여러번 써오면서 느낀건데 노력으로 이뤄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듯 해요. 그래서 결국 뮤즈를 만나야 하는가 싶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