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카톨릭대에 심리학과 대학원(야간)이 생겼기에 다녀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다.

성형외과 의사인 한 선배와 얘기하다가 내가 정신과에 막대한 관심을 보이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 걔네(신경정신과 의사들) 책 쓰고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거 다 구라야. 걔네가 뭐 환자를 상담해서 치료하는지 알아?
요즘에 좋은 약이 얼마나 많은데.....우울증 치료제도 얼마나 많은지 알아? 걔네 다 약물치료해.방송 나와서는 말 많이하고...."

선배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몰라도,
그 말을 듣고 많이 실망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그런거야?"

<사람 풍경>은 몇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은 김형경이
자신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여행하면서 발견한 자기 자신을
소재로 쓴 "아마츄어 정신분석"이다.

이 책은 <무의식>,<사랑>,<대상 선택>,<투사>,<콤플렉스>,<자기애>등 주제별로 쓴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자신,주변 사람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신분석이라는
"tool"로 단정지어 얘기하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친절한 사람을 보면 친절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고,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면 말로써 타인을 움직이려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책에 나온 사람들이 불쌍하다.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재단" 당하다니....

읽으면서 막 화가 났던 부분도 있다.

뉴질랜드 여행 중에 담배가 떨어진 김형경.
담배를 피우고 있던 마오이족 여자한테 담배를 빌렸다.
잠시 후 그 여자는 김형경한테 담배를 하나 더 권하며 활짝 웃었다.
그 여자의 친절을 김형경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때 그녀는 다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친절 정도가 아니라 담배를 준다는 행위에서 그토록 기쁨을 느끼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는 심리,그런 행위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자의 마음에 닿는 것 같았다.그것은 중독에 취약한 사람의 특성이기도 했다.(p102)

아...그럴리 없겠지만 담배를 빌려준 마오이족 여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좋은 마음으로 담배 빌려 줬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존재 가치" 얘기까지 듣다니....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뭐가 그렇게 다 이유가 있는지....
뭘 그렇게 다 "정신분석"에 맞추어 설명을 하려 드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때굴때굴 구르면서 웃은 적도 있다.

한밤에 전화해서 서너 시간씩 고통을 호소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상담해주기를 바라는 후배가 있었다.그와 전화 통화를 서너 번 반복한 다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서운하겠지만 잘 들어.지금 네가 원하는 것은 나의 조언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야.그것도 유년기의 아기가 환상 속에 창조해둔 이상화되고 미화된 엄마의 보살핌이야.그러니 아무리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어.이런 일이 계속된 후에 네가 도달하는 곳은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 아니라 나에 대해 화가 나는 지점일 거야.네 안에 억업되어 있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내게 투사하게 될 거야.네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투정하는 아기는 다른 누구도 보살펴줄 수 없어.성인이 된 네가 스스로 보살펴야 해."
(p96)

아...정말 너무 한다.
힘들어서 전화한 후배에게 정신분석 이론 강의까지 하다니...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재단"하고야 마는 김형경은
스스로 자신의 이런 경향을 알고 있다.

이유 없이 저항감을 안게 되는 부류의 사람이 또 있었는데 그것은 가르치고 지배하려는 말투를 가진 사람,자신의 가치관으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는 사람,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다 안다는 듯한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었다.그것은 내 엄마의 특성이면서동시에 나의 내면에도 있는 것이었다.(p140)

나도 김형경의 "단정적인 글쓰기"에 저항감을 느낀다.
칭찬을 들으면 그냥 기분 좋게,
친절한 사람을 보면 그냥 감사하게,
주위 사람들을 분석하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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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2-2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학의 매력에서 한발 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게 바로 그런 단정적인 글쓰기였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별을 하나만 깍아 넷이나 줬는데..^^;; 이런저런 잣대에 맞춰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펴볼 여유도 좀 생기더군요. 가슴 뜨끔한 대목도 꽤 있었구요. 암튼, 추천함다.

2005-02-27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27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5-02-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선무당이 사람잡는거 아니겠습니까^^ "아전인수" 라고도 하지요. 정신분석이란게 다양한 케이스에 일정한 특징만을 잡아내고 분석하는거 아니겠어요.근데 원래 뭐하나 배웠다 싶으면 여기저기 다 한번 끼워넣어보고 싶어지는 것도 이해합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원인과 처방을 밝히는 것 외에 심리학에 기대 사람의 열길물속을 알아낸다는게 가능할까요.개인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봐요.무슨 얼어죽을 존재가치야...기냥 벌린 손이 안돼보이니까 하나 빌려준거지.저도 예전에 담배 빌려줄때 존재가치 생각 하지 않으면서 기냥 주었는데...모르죠.소설하시는 분이라 ...

kleinsusun 2005-02-2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제가 별을 너무 박하게 줬나요? ㅋㅋ
속삭이신님, 책을 읽으며 제가 김형경이 아는 사람 아닌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또 무슨 유아기의 트라우마, 항상 웃는 얼굴이라는 "방어기제"를 쓰는....하고 등장했을지도 모르쟎아요.ㅋㅋ

kleinsusun 2005-02-2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드팀전님 표현 너무 후련해요! "얼어죽을 존재가치" 그죠? 담배 빌려달라 그래서 담배 빌려 줬으면 감사하면 되지, 무슨 "존재가치" 얘기 까지.... 뭐 하나 배웠을 때 여기저기 다 한번 끼워넣어 보고싶은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모든게 다 유아기 때 엄마와의 관계에서 근거한 것이라고 단정하는거...넘한 것 같아요.

icaru 2005-02-2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님의 이렇게 솔직한 글을 대하니... (님은 항상 솔직하게 쓰시기는 하지만...) 추천이요!! 히힛...

니르바나 2005-02-2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얼마전 입적하신 숭산스님께서 주신 화두가 필요한가 봅니다.
"오직 모를 뿐"
수선님의 글을 조용히 잘 읽고 있습니다.

kleinsusun 2005-02-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니르바나님 감사합니다.
"오직 모를 뿐" 정말 그렇게 살고 싶어요.

moonnight 2005-02-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도 사람풍경의 리뷰를 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 써도 되겠네요. 수선님께서 하고픈 말을 다 해 주셨습니다. ^^
김형경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이나, '성에'를 읽었을 때의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 여전하더라구요. -_-;
솔직, 담백한 리뷰 감사해요. ^^
월요일입니다. 2월의 마지막날이구요. 행복하세요! ^^

kleinsusun 2005-02-2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onnight님, 안녕하세요!
Notre Dame de Paris 보고 moonnight님 생각했어요.뮤지컬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내일 쉬네요.넘 좋아요. 가뿐한 월요일 보내세요!

바람구두 2005-03-1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은 다소 박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글 자체는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잘 쓰셨는걸요. 다만...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단정이 아닌 척해도 또 하나의 단정일 수밖에 없다는 어려움은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거겠죠. 문제는 얼마나 용기가 있느냐 보다, 그 단정적인 언사를 좀더 교묘하게 구사하거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건데... 일단 전 설득되었다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천하고 가구요. 첫 인사 드리는 것 같습니다. 반가워요.

kleinsusun 2005-03-1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안녕하세요!
바람구두님 글은 항상 잘 읽고 있어요.홈피에도 가끔 들어가구요.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미뽀 2005-03-23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100% 공감합니다.
특히, 주변인들을 tool로 접하는 글쓴이의 방식에는 진저리가 쳐지더라구요. 여행하는 내내 저런 생각을 하고 다녔다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싶더군요. 주제에 맞는 문제점을 가진 사람들이 제때제때 나타나준것도 신기하고.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원.

kleinsusun 2005-03-2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enign님, 안녕하세요. 서재에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님의 코멘트가 있네요.
정말 그렇죠? 주제에 맞는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요.
제가 주변 사람이 아니라는데 안도를 했던 기억이...ㅋㅋ
행복한 봄날 보내세요!

thd388 2005-08-2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글에 100% 공감, 책 읽는 동안 가졌던 화냄이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사그라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