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다.

우리 애들 수영장 가고싶다고 해서 수영장에 1시간 반 정도 넣어놓고(동전도 아닌데, 표현이 좀...), 난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카페에 갔다. 아이스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오랜만에 대학후배를 만나 잠깐 담소를 나눴다. 시간을 보니 애들 받기 전 약 30분정도 남아 심심풀이로 도서관엘 갔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이승우의 <모르는 사람들>을 빌려서 첫번째 단편을 읽었다. 첫번째 단편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젊을 때 신학대학원까지 가볼까 하는 영적인 열정이 있던 남편이 그 모든 욕구를 억누르고 집안이 빵빵한 사장님의 딸과 결혼을 한다. 장인이 사장이고 남편은 그 회사의 직원이고 승진을 하고 일을 하지만 남편의 마음의 한 구석은 언제나 공허했나보다. 나이 50이 되었을때 남자는 갑자기 사라진다. 아내는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그 추락한 비행기에 남편회사의 26살짜리 여자모델이 타고 있었는데, 남편이 분명 그 여자와 연애행각을 벌였을 것이고, 두 사람이 밀월여행을 떠나다가 비행기추락사고로 죽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비행기사고자의 명단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10여년이 지난 후,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땅끝선교회 간사라는 사람이 남편이 죽었다고. 외국의 어느 선교지에서 행복하게 사역하다가 죽었다고. 남편은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알린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받아들고 왔고, 아내도 남편의 흔적들을 돌아보며 복잡한 생각들 속에 잠긴다.

 

모르는 사람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가장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에라스트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Godot)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걸어가지만 '희망없는 희망(hopeless hope)'에 목을 맨 채 평행선을 유지하며 걸어간다. 껴안고 포용하고 얼싸안지 못하는 구도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며,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은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한 가정사를 다루면서, 아버지, 주인공 김백수, 김만수, 김석수, 명희, 옥희, 금희, 만수부인, 석수와 영주, 그리고 그 사이에 낳은 아들 태석이, 모두가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가장 부각되는 것은 만수이다.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p.11)

 

형 백수는 생활고와 등록금을 벌기위해 월남전에 참전하지만 거기서 고엽제로 말미암아 차가운 시체로 돌아온다. 동생 석수는 데모하다 도망쳐 함께 동거한 영주에게서 태석이란 아들을 가지지만, 석수는 군대 제대후 사라져버린다. 영주는 태석을 형부인 만수에게 애기를 맡기고 사라진다. 태석이 때문에 만수와 만수부인은 애기를 가지는 것을 계속 미룬다. 하지만 태석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만수부인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존재이다.

 

'아이는 투명인간이었다. 제가 그런 끔찍한 존재인 줄도 모르는.'(p.342)

 

하지만, 만수부인이 신장이 나빠 혈액을  투석하며 고달프게 지낼때,

기적적인 발언을 한다.

 

'나 엄마한테, 저기 엄마, 저기에 있는 엄마한테, 나 신장 주고 싶어.

엄마한테, 엄마한테 나를 데려다...'(p.352)

 

태석이가 그래도 만수부인을 '엄마'라고 부르며 투명인간에서 벗어나오려고 한다.

 

세 딸 중 큰 딸은 공순이 갑순이 편지를 보고서 화전마을인 고향을 보기좋게 떠나 가출하고, 둘재 딸은 그렇게 똑똑했던 연탄가스 사고로 인해 정신지체자가 되고, 막내 딸은 놈팽이같은 놈의 아이를 임신해서 꼴아박는 인생을 산다.  외로움과 소외와 지친 가정사, 투명인간, 하루 20시간씩을 일을 하며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등골빠지는 투명인간 만수의 인생이 너무 고달파보였다.

 

 

지금 읽고 있는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에서, 주인공 소유는 외할아버지와 엄마와 같이 산다. 아빠는 엄마가 결혼한지 4년만에 돌아가셨다. 소유는 왜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야하는지, 엄마는 왜 늘 자기 옆에 없고 일만 하러 다니는지 이해불가였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고교교환학생 개념으로 자기 집에서 쇼코와 일주일을 같이 지낸다. 쇼코도 할아버지와 고모와 지낸다고 했다. 30년동안 집에서만 지내고, 실내에서 담배를 마음대로 피고, 텔레비전도 늘 할아버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런 할아버지가 너무나 싫었던 소유. 

그러다가 대학을 들어가면서 독립을 하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소유, 서른이 되었지만 변변찮게 방콕(?)만 하면서 우울하게 살아가는 소유를 할아버지가 느닺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할아버지,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기다리며 전화를 기다렸던 할아버지, 소유의 엄마는 할아버지를 식사도 안 챙겨드리고 보냈냐고 나무랐다. 할아버지가 다녀간 이후로 소유가 조금씩 변해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소유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할아버지가 서울 자취방으로 오셨던 날 있잖아."

"응."

"그 때 나한테 뭐라고 하셨는 줄 알아?"

"뭐라 하셨어?"

"내가 이러고 사는 게 멋지다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거니까 멋지다고 하셨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영화 일이 마음으로 정리가 되더라."

"정리가 되다니?"

"이제는 끝내려고, 엄마." (p.53)

 

투명인간처럼 여겨졌던 할아버지가 수면위로 드러나 손녀에게 한 말이 손녀의 삶을 변화시킨다. 소유는 영화감독이 아니면, 영화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변화의 반전을 가져온 소유는 투명인간처럼 여겨졌던 엄마에게도 다가간다.

 

'나는 서울에 살든 고향에 살든 엄마와는 같이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도 이제는 자유로워지라고, 집에는 남자친구든 친구든 불러서 같이 놀고, 누구의 밥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있으라고 했다.'

 

"엄마는 누구보다도 혼자 있기를 바랐던 사람이쟎아."

"......고마워."(p.53)

 

할아버지는 손녀 딸을 위해 평생 구지폐부터 시작해 꼬깃꼬깃 푼돈을 모아둔 돈뭉치를 엄마를 통해 소유에게 유산으로 전해준다. 할아버지의 가슴에 새겨진 손녀, 소유, 할아버지의 가슴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 소유를 변화시켰다. '모르는 사람들'처럼 지내고 싶고,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싶었던 가족이 가슴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영혼의 자유를 경험한다. 소유는 쇼코에 대해서도 포기하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지만, 손을 내밀게 된다. 고령화사회 시대에, 과로노인들은 천대받고 멸시받고 투명인간 취급받는 시대에 가족이라는 뜨거운 피가 내뿜는 애정의 숨결을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어 신선하고 감사했다. 근데 이게 단편이라 좀 아쉽다. 근데 최은영은 단편이지만 묵직함은 장편 못지 않게 길고 깊고 넓고 두껍다.

 

 

 

 

 

 

 

 

 

 

 

 

 

 

 

 

 

 

애들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보니 기다리던 책들이 도착해있었다(도착하면 바로 읽을 것도 아닌데, 우리는 소통전문가 김창옥의 표현처럼 애들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것처럼 택배를 기다린다 ㅎ).

 

지난주 두번에 걸쳐 11권의 책을 질렀다.

난 인제 읽은 책들을 디스플레이하는 서재보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한 반서재를 좋아하는 걸로. 안 읽은 책을 쌓아두고 쳐다보는 것도 참 즐겁다. 예전에는 '아직도 이 책을 못 읽었구나!'하면서 갑갑해했지만, 지금은 또 다시 읽을 책들이 널려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한다. 그래서, 아예 읽은 책들의 책장을 방 안쪽으로 넣어버리고, 거실책장은 반서재로 만들었다. 읽은 책은 더 이상 내게 재미없는 걸로.


최은영의 소설이 너무 좋아 빌려 읽고 나서 바로 주문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 그리고 소설가들이 뽑은 2016년 소설 공동1위 <쇼코의 미소>

 

토마스 만이 25살에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염을 토했던 작품<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2>,

 

 

 

 

 

 

 

 

 

 

 

 

 

 

 

 

 

 

 

 

그리고 

<1천권독서법>저자의 추천도서 2권-<밥상머리의 작은 기적>,<이상한 정상가족>. 읽고 좋다고 추천하는데는 이유가 다 있다!

나보다 어린 전안나 작가의 의견을 반영하고 수렴한다(난 개인적으로 <1천권독서법>을 읽고 독서의 양적 성장에 목표를 잡았다).

 

 

 

 

 

 

 

 

 

 

 

 

 

 

 

 

 

 

 

 팀 켈러의 저서 2권-팀켈러는 불같은 지성인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생경한 저서, 그에 대한 다른 작가의 저서.

 

 

 

 

 

 

 

 

 

 

 

 

 

 

 

 

 

 

 

 

그리고, 

존스토트의<그리스도의십자가>, 

집에 꽃혀 있는 건 낡고 바래진 93년도판인데, 너무 오래되서 다시 읽고싶은 마음이...그 책을 읽기보다, 새 책 양장본으로 재독하고싶어 구매했다! 일단 재독하기 시작했다. <어톤먼트>리뷰 올리다가 또 생각치도 못한 책에 꽂혀 버렸다! 양장본이니 죽을때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이 책을 보고

“당신을 옷을 팔아서라도 당장 사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또 도착한 책들!

이웃 Cyrus님의 글과 로쟈님의 별5개가 이 내 맘에 훅 들어왔네요!

 

 

막내 안과 다녀오는 길에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읽기'를 들고 다녔다는.

 

 

 

 

 

 

 

 

 

 

 

 

 

오늘 초복인데, 삼계탕 한 그릇 뚝딱하시고 이웃님들 모두 화이팅하세요!

어제 탄산수를 한 박스 사서 더울때마다 레몬 모히토 만들어 마시고 있습니다. 

이웃님들 모두 더위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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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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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을 장편으로 가기 위한 브릿지?! <상실의 시대> 분위기가 났다 했는데, 단편 <반딧불이>는 <상실의 시대>로 가기 위한 교두보였다! 작가도 쉬어가는 틈과 텀(term)이 필요한 듯! 하루키의 글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 난 그냥 읽는다. 하루키를 읽는 것만으로 그냥 감성이 리필되는 느낌? 또 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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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8-07-1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시원하게 보내시고 즐거운 하루되세요!^^

카알벨루치 2018-07-17 12:31   좋아요 0 | URL
저도 장길산 사놓고 눈팅만 하고 있는데...오늘도 강건하세요!

후애(厚愛) 2018-07-17 12:48   좋아요 1 | URL
아 장길산 갖고 계시는군요.^^
저는 7권까지 읽고 지금은 다른 책을 읽고 있어서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
 

다윗…흠모할만한 인간적 매력과 신적인 기풍이 우러나는 인물이다.

다윗을 떠올리면 언제나 내 머리 속에 연상되는 것은 ‘로망스Romance’적인 분위기이다.
이 글을 적는 가운데 나는 ‘로망스(로맨스)Romance’라는 단어를 적으면서 나는 ‘로마서Romans’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렸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나의 순간적인 착각이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이런 단어선택에 있어서도 이런 착각을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이 ‘다윗: 현실에 뿌리 박힌 영성’이라는 책의 분위기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성경적인, 신학적인 분위기에 대한 색채가 이 책을 통해 문학적인, 현실적인 분위기로 아주 심도있게 유진 피터슨이 이끈다는 것이다. 푸른 초원 가운데 양 떼들을 방류해놓고 자신은 시냇가 에 앉아 수금을 연주하며 풍류를 즐기는, 시인의 자질과 음악가의 자질들을 충분히 그리고 유감없이 발휘하는 면모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다윗에 대한 상상은 교정이 필요하다. 자연이 펼쳐져 있기에 한 소절의 노래와 시가 노닐만한 구석과 공간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목자(양치기)의 일을 하면서 늘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는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양들을 지켜내야 할 목자의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다윗의 소년시절의 단면은 그의 인생을 다분히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기에 다윗에겐 ‘로망스’적인 요소가 다분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유혹자’의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삶은 신적인 여가relax의 축과 인간적인 열병sickness의 축이라는 구도로 잡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두 가지 축에 대한 조망은 어쩌면 우리 인생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한 탐색과 아울러 내 인생에 대한 자잘한 반성들reflections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다윗의 신적인 여가relax의 축을 살펴보자.
다윗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릉도원에 누워 풍요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없이 여유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낭만적인 인물이었고 정열의 사람이었고 믿음의 사람이었다. 삶의 자잘한 기쁨들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다윗의 다윗됨은 모두 신적인 경유를 가진다. 그의 삶은 바로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면함’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신적theistic’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다윗의 하나님중심적인 삶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목은 바로 ‘골리앗’사건이다. 다윗은 ‘상황적인 광야’로 늘 내몰리지만 그 가운데 그가 더욱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다윗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가 다른 성경의 위인들과는 대별되는 ‘시와 음악’이라는 예술적인, 문학적인 요소를 소유하였다는 것이다. 시편의 무수한 시들이 그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다윗은 ‘시와 음악’은 말 그대로 ‘현실에 뿌리박은 시와 음악’이다. 고통가운데 신음하면서 그는 찬양하였고 시를 적었던 것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시편 57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강력하게 선포하며 찬양하고 있다. 이 모습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살아있는 다윗’의 모습이다. 도망자의 구질구질한 신세 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는’ 송축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또한 다윗의 삶은 인간적인 열병sickness의 축을 가진다.
그는 맹렬한 짐승들의 공격을 육박전으로 벌일만큼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의 열병이 가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소년시절의 경험은 후에 사울로부터의 피난길에서 수없이 앓았고 사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로는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이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사건으로 불거진 왕권문제 등이 그러한 삶의 흔적들이다. 이러한 삶은 ‘일상적earthy’이라 명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다윗의 삶은 ‘역동성’ 그 자체였다. 현실안주와 안락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를 ‘인생은 하나의 모험’임을, 그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 주를 경외하는 법을 혹독하게 가르치신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인 법, 하나님은 다윗을 결코 고인 물처럼 놔두지 않으시고 콸콸 흘러, 굽이 굽이 흘러 시내를 채우고 강을 가로질러 바다를 향해 쭉쭉 뻗어가게끔 인도해가신다. 그것은 다윗의 삶의 생리일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아니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고전 1:24)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패턴이다.

평생 피로 얼룩진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낸 다윗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의 삶은 영적 전쟁터, 정신적인 전쟁터의 전사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 전쟁터’이다. 다윗의 인생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유진 피터슨은 문학적인 상상력을 성경적인 텍스트에다 불어넣어 성경의 인물들이 텍스트라는 땅을 딛고 일어서서 움직이게끔 하고 있다.이 책은 삼상, 삼하, 시편 그리고 신. 구약을 넘나들며 다윗의 삶을 테마 별로 조망해가는데, 그 글 솜씨와 글맛이 압권이다. 이전에 다윗에 대해 이야기 할 일이 있어 이 책을 자주 인용. 참고하면서 얼마나 흥분하였던지…그 감격과 흥분은 이 책을 들추어 볼 때마다 되살아 날 것이다. 다윗의 시적 감각과 문학적 소양과 음악적 기질을 나름대로 음미할 수 있는 특권과 그의 삶의 리얼리티를 묵상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유진 피터슨이라는 영적 거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랫동안 부여잡고서 씨름했다. 읽지만 진도가 좀체 나가지 않아서 늘 조급해하다 이 책도 소화해내지 못했던 시간들.
이제서야 ‘다 읽었구나!’

다윗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관찰과 해석과 글은 정말 감동과 지적 해갈함과 다윗에 대한 인간적인 찬사와 신적 경이감을 불러 일으켰다.
탁월한 책, 삼상, 삼하, 시편 그리고 신.구약을 넘나들며 다윗의 삶을 테마별로 조망해가는 작가의 글 솜씨와 글맛이 압권이었다. 깨닫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인지와 도전은 나를 많이 흔들었다. 번역도 참 잘 된듯하다. 다시 이 책을 후에 참고하게 될 것 같다. 몰랐던 사실이 이 책에 많이 수록되어 있기에…. 2003.03…


-이 글은 IVP독서감상문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것으로 기억한다.

유진 피터슨 저작중 소장도서들이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성경>쓴 저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들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떠난다>와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를 추천한다. <그들은...떠난다>는 유진 피터슨 뿐만 아니라 다양한 리더들의 글이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글모음집인데,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한 묵상연구서이다. 제목이 넘 멋지지 않은가!Run With the Horses! 말들과 함께 달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전시키시고 일으키시고 세우시고 업 그레이드시키시길 원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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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은영이란 소설가를 염두해 두기로 했다! 순전히 우연한 선택에 의해 빌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 가득담긴 주옥같은 표현과 넘치는 심리묘사, 내면세계를 순례하고 관찰하는 구도는 내 마음과 영혼과 감성의 결을 다정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결코 “무해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러면 우린 진공상태나 달나라 쯤 가 있어야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디테일하게 훑으며 심리를 추적하고 진단하고 두드리는 작가가 최은영이었던가!


책을 펼치면 그 사람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흠뻑 빠져든 기분이다. 단편들이 다 좋구나!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주인공과 공감되는 이야기 옆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작품에서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
<601,602>에선 아들중심적인 나의 가정과 효진이네 가정, <지나가는 밤>에선 주희와 윤희, <모래로 지은 집>에선 고교때 통신친구였던 공무, 모래와 나.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p.120)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p.127)

‘걔랑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하고 웃어도 괴로웠어. 우리는 마음이 너무 달라서 외로웠어. 마음이라는 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사라질까봐 겁이 났어.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이니까. 그 마음 잃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 하는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봐(p.141).’

“너에게 그런 충고 듣고 싶지 않아.”
“넌 이런 감정 모르잖아.”
그 때의 나는 화가 났을까 슬펐을까. 아마 외로웠던 것 같다. 모래의 말은 맞았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맷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조끼를 입고 헬맷을 쓴 영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p.152).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p.180-181).


<고백>에선 미주, 주나, 진희는 고1때 같은 반 친구들이다. 학년이 올라가 미주와 진희가 같은 반이 되었다.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 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 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p.195-196).

진희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친구들에게 고백했지만 미주, 주나는 충격을 받아 못 받아들인다. 그게 고백한 진희를 더 충격으로 몰고가 진희는 자살한다.

한참후에 다시 만난 남은 자, 주나가 미주에게 말한다.

“네가 그때 걜 어떤 표정으로 봤는지 알아? 걔가 사람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경멸하듯 봤어. 넌”
“몰랐으니까. 몰랐으니까 그랬어.”
“넌 예전부터 의뭉스러웠어. 아니, 위선적이었지.남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신경쓰고, 네가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나 있었어?”...
“이렇게 잔인하게 굴면 네 마음 편해져?”
“우습다. 가장 잔인한 사람은 너 아니었니.”(p.206)

그날, 진희에게 지었던 표정을 미주 자신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 애를 바라봤는지 잊은 건 아니었다. 주나의 말이 맞았다. 미주는 눈빛으로 주나가 진희에게 했던 말(“우웩”, “정말 역겹다”)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다. 그 사실을 미주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p.207).


무해한 사람?
나는 얼마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처럼 살아왔던가! 법없이도 살 수 있는 무해한, 무공해의 도덕론자를 자처했지만, 누구에게나 웃고 화내지 않고 온유한 성품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내 곁에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생채기를 남겼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인간실격자이다.


이기호의 단편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윤희를 3년만에 찾아온 민호에게 윤희가 말한다.

“오빠...민호 오빠...이제 이자 놀음 따윈 그만 좀 하고 사세요.”

어떻게...네가 나한테 ...저 사람을 데려올 수가 있어...어떻게 네가 나한테...그럴 수가 있냐고...(p.232-233)

‘이자놀음’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의 이자놀음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듯 했다.


<최미진은 어디로>에서도
“그런데 씨발.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꼭 그 말을 들으려고...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p.31)

이 친구, 최미진과 헤어진 전 남친이 하는 말을 보라.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이 말이 ‘누구에게나 친절하다고 자부하는’ 작중의 작가의 가슴에 꽂힌다. 전 남친의 환경적 상처였고, ‘꼭 그 말을 들으려고...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는 최미진과 연결된 또 다른 깊은 상처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고 자부하는 미주나 강민호의 모습이 꼭 나의 자화상 같다는.


엄기호의 <단속사회>에서 그런 이야길 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편’의 이야기는 잘 하지만, ‘곁’의 이야긴 잘 하지 않는다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 에 따라 이야기와 스토리가 달라지고 그것에 귀를 쫑긋 세운다. 내 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자르고 가르고 베어버리는 게 우리의 습성이라는. 그래서 정말 당사자의 “곁”에서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이야기는 잘 없다는 사안이다.
‘곁을 파괴하고 편을 강조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p.7)

역시 이기호의 소설에서 제기한 “환대”의 문제이다.

 


우린 결단코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없기에.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더 따스해질 수 있는 “곁”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빌려서 읽었는데 <내게 무해한 사람>은 읽고난 후 당당 책을 구매했다! 또 읽고 싶다는. 근데 또 읽고 싶은 사람치고 잘 읽는 사람 드물던데...

<손길>에서 숙모와 혜인...
<아치디에서> 랄도와 하민, 랄도의 가정사, 하민의 가정사.

‘내가 춤을 추면 사람들이 웃어. 그러면 마음이 아프거든. 그렇게 마음이 아프면 편해지는 게 있었어. 그래서 그랬어.’(p.291)

‘넌 네 삶을 살거야.’(p.300)

하민의 제스처가 적절한가?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렇게 내 마음,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성찰이 있다면, “곁의 이야기” 를 내 가슴으로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을 제대로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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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의 책읽기에서 언급된 “토니오 크뢰거”, 김영란은 대한민국 최초 여자 검사라는 타이틀을 쥐기 위해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견뎌냈을까! 한스와 토니오의 “다름”에서 오는 그 답답함의 고뇌를 보며 남성위주의 법조계에서 여성인 김영란이 얼마나 인내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이 책이 김영란의 인생책이 되 지 않았나 싶다.

김영란법의 주인공, 김영란이 된 것은 그저 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독서가 체내화된 김영란이었다!

토마스 만, 이 사람 정말 장난 아니네! 책 읽고 나서 묵직한 그 어떤 기분과 느낌이 우아...고전은 다르다!

왜 토마스 만이 토마스 만인지 알겠구나!
25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런 사람, 대박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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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8-07-13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시는 글 잘 보고 있어요.^^
더위조심하시고 행복한 오후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8-07-13 15:21   좋아요 0 | URL
오늘 엄청 덥습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ㅎ

cyrus 2018-07-16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이 토마스 만의 대표작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고, 추천했어요. 만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작품이에요. ^^

카알벨루치 2018-07-16 13:13   좋아요 0 | URL
그거 바로 구매했습니다 25살 수상작!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