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환상의 밤이란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우리가 흔히 환상의 밤이라고 하면 로맨스적인 느낌이나 뉘앙스를 연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신데렐라가 변신하여 왕자와 함께 춤을 추는 무도회의 밤 정도는 되야 환상의 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접근은 굉장히 평범한normal 접근이고, 구태의연한 접근이 아닌가!

 

 

스테판 츠바이크이다. 그가 말하는 건 뭔가 다르지 않아야 하는가! 그렇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독자의 구미를 만족시켜준다. 아주 엉뚱하고도 생경한 방향과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으며, 언젠가 인간을 자신의 품안에 껴안아 본 사람은 모든 인간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154p)

 

 

30대의 주인공은 재벌2세에 해당하는 부호이다. 한량처럼 지내도 쓸 만큼 쓸 수 있고, 누릴 만큼 누릴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위치의 젊은이다. 하지만, 그의 사치와 향락과 쾌락이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힌다. 모든 것에 싫증과 지루함과 지침을 느낀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그가 껍데기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내부에서 꽁꽁 얼어붙은 감정은 너무 기괴했다.’(16p)

 

 

이런 무감동은 부패의 고약한 냄새조차 맡지 못하고 죽어 있는 상태, 무섭게 얼어붙은 감각의 불능 상태, 실제적인 육체의 소멸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17p) 이것은 감정의 메마름이며 , ‘무감동이며, ‘냉소적인 허무한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나와 감정 사이에는 도저히 내 뜻대로 깨뜨릴 수 없는 괴상한 유리벽이 가로놓여 있었다’(18p)고 표현한다.

 

 

이런 무기력과 무감동의 삶이 환상적인 밤으로 바뀐 계기는 자발적인 낮아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울 레이터는 인생에서는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놓는가가 중요하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56p)고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입구가 아주 좁은 항아리에다 바나나를 넣어놓고 원숭이 사냥꾼은 기다린다. 원숭이는 바나나냄새를 맡고 항아리에다 손을 잡아넣는다. 바나나가 드디어 자기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바나나를 놓치 않고선 손을 빼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라도 바나나를 밖으로 빼내려고 하지만, 움켜쥐고선 바나나를 빼낼 수가 없다. 이때 사냥꾼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성큼성큼 온다. 그래도 원숭이는 바나나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결국 원숭이는 사냥꾼의 손에 포획되고 만다.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운명의 비밀, 내려놓음

 

<왜냐하면 나는 자신의 운명을 비밀로 간직하고 사랑하는 자만이 진실로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150p)

 

 

내가 문득 주변의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할 때, 하잘 것 없는 어떤 것도 내게는 감정을 자아내고 의미를 부여한다.’(151p)

 

 

스테판 츠바이크의 글의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내려놓음, 자발적 낮춤을 실천하였을까?....

 

 

*스테판 츠바이크가 쓴 환상의 밤의 주인공 프리드리히 미카엘 남작은 몇 년 뒤 라바루스카 전투에 참여하여 사망했다. 그의 글은 소포로 친척들에게 전달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적으로 교회마다 자주 총동원주일이나 총력전도주일’, ‘전교인전도주일등의 타이틀을 걸고 시작되는 전도에 대한 구호나 문구를 볼 때마다 참으로 눈에 가시처럼 보여졌다. 그것은 너무나 구태의연하게 보이기도 하고 글귀 자체가 너무나 군대식’-억압적인 방식의 전형-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교회마다 이런 불신자에 대한 접근방식이 이전보다는 많이 세련되고 거부감을 주지 않다는 것에 대해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런 집회, 더 나아가서 좀더 색다른 전도집회에서 흔히 있는 볼 수 있는 전도방식이 바로 영접’, ‘초청등의 순서이다. 이러한 현대적 전도 방식의 원조는, 제임스 패커에 의하면, 19세기 초의 찰스 피니다. 현대의 복음 전도는 피니의 방식을 따른 것이요 피니의 인간론의 산물이다. “오늘날 수많은 복음 전도를 특징짓는 것은 수정되고 응용된 피니의 방법이다.” 그런데 패커는 피니가 명백한 펠라기안주의자라고 단언한다. 피니는 일단 사람이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확신되기만 하면 누구나 타고난 능력에 의해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을 힘주어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니는 어거스틴-개혁주의-청교도적 전적 무능력의 교리를 비웃었다는 것이다. 패커는 피니식의 전도방식을 상당히 부정하면서도 나중에는 절충안, 타협안을 내놓는 다소 약삭빠른 전략(?)을 내놓는다.

 

 

피니식의 전도방식과는 사뭇 다른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도방식은 어떤 것인가? 그 중심부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저한 회심론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만큼 회심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설교자도 없었지만 그의 설교는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이 대목을 보면 에드워즈에게 있어 회심이란 것은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였으므로 하나님께 도저히 나아갈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전적인 주권에 의해서만 회심되어지며 중생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칼빈주의 노선에 서 있다. 하지만 에드워즈의 논리는 그와는 색깔이 조금 다르다. 칼빈주의는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믿으면 되는 줄 알지만 인간 스스로는 믿을 수 없다. , 자신이 택정된 자라면 하나님이 자기 때자기 방식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주된 논지이다. 하지만 이것은 칼빈주의의 하나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보탬이 될만한 공로는 존재치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에 대한 어떠한 방도조차 강구할 수 없단 말인가? 극단적으로 몰아붙이자면 그냥 말 그대로 누워서 떡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그런 구원이 바로 칼빈주의식의 구원인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도론은 이러한 칼빈주의의 딜레마를 해소시켜 준다. 에드워즈는 구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즉 각성된 구도자들에게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면서 회심의 은혜를 찾으라고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지정하신 수단들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회심의 은혜를 주시기까지 추구하고 몸부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커가 청교도 전도론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에드워즈는 회심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결단하는 것 대신 그리스도를 찾을의무를 강조했다. 에드워즈는 인간의 전적 무능력의 교리를 믿는 칼빈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수단을 사용할 힘은 자연인에게 있다고 믿었다. 에드워즈는 이 구도론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댄다. 이것은 에드워즈의 준비론이다. 철저한 칼빈주의자로서 에드워즈는 인간이 행위에 의해 구원 얻는 것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함이 없이 구원 얻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우리가 선한 일을 함이 없이는 최종적 구원을 받을 수 없도록 정하셨다는 것이었다.

 

 

에드워즈에게 있어 윤리적 의무 수행도 구도의 일환이며, 자선 또한 은혜의 방편임을 성경적인 근거들을 들어 설명한다. 나는 여기서 에드워즈가 성경해석의 근거를 잘못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에드워즈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비를 많이 베풀며 자선과 구제를 많이 하고 남들보다 더 특출나고 깊은 인품과 인격을 겸비하고 야무진 행동거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인물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더 강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드워즈가 근거를 대는 대목은 다소 의미부여의 측면이 강한 것이 아닌가하고 대단한 용기(?)를 내어 꼬집어 본다.

 

 

에드워즈는 물론, 그는 그것(은혜의 방편)이 하나님 앞에 인간의 공로가 되어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이 영적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자선의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신령한 은혜의 유익을 구입하기 위해 하나님께 값을 치르는것은 아니다. “영적 발견과 하나님의 현현의 축복은 너무나 무한히 위대한 것이어서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을 주고 구입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절대 'give and take'식으로 구도론에 접근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즈의 이러한 논리는 마치 선행이 구원에 기여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교리적으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짓는 일에 헌신되었듯이, ‘그 크고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드는 일을 계속하기를 방주가 완성되어 홍수가 올 때까지 했듯이 에드워즈는 여러분의 노력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하여 추구하기를 계속하시오.”라고 말하는 에드워즈의 이러한 사상에는 그 배경이 있다. 그것은 종교개혁가들이 이신칭의의 교리를 강조한 나머지 행함이 없는 믿음혹은 야고보가 비난한 죽은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오해를 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에드워즈의 이러한 사상들을 모조리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가 이러한 사상을 내게 된 그 저의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또한 에드워즈의 인생의 우선순위를 엿보자면 ‘20세 무렵에 자기 뉴잉글랜드 조상들과 같은 단계와 방식을 따른 회심을 체험하는 데 평생의 주안점을 두기로 결심했다. , 단순히 교리를 수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의 철학은 그의 회심론에서도 드러난다.

 

 

청교도적 회심론이 현대의 견해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지점은 죄에 대한 깨달음과 관련되어 있다. 청교도들은 죄에 대한 확신이 믿음에 선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청교도들은 자신의 죄들에 대해 정확히 중세적 의미의 통회가 절대 필요함을 알았다. 그러한 통회 없이는 아무도 죄의 형벌로부터만 아니라 죄의 능력으로부터도 구원받기 위해 참으로, 신실하게, 그리고 전심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 또한 자연인이 믿음을 얻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성에 대하 깊은 자각이 있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했고 그 결과로 그의 사상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에 대해 구도론은 공덕 사상, 또는 행위 구원 사상의 발로가 아닌가하는 반론도 등장한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알미니안주의적 교리를 누구보다도 더 열렬히 비판하고 비난하였던 인물이다. 또한 에드워즈의 이론에 따르면 구원이 구도적인 노력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로 인한 파장은 첫째, 구원을 얻는 것이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다. 둘째, 구도가 자연적 능력에 속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에 속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셋째, 부분적으로 에드워즈의 구도론은 행위를 구원에 관련시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그의 사상은 구원이 다소 인간의 선행에 의존한다고 믿는 견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에드워즈에게 있어 그의 모든 신학과 철학과 저술들은 자신 깊은 영적 체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가 곤욕스럽고도 고통스럽게 구도자의 생을 보내면서 종교적인 의무와 항목들을 준수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무런 종교적 감흥도, 감동도 없이 사변적이고도 이성적인 논리의 뼈대만을 내세웠다면 그 가운데 특이할만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그는 또 하나의 알미니안주의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흥과 체험의 신학자였다. 그는 청교도들 중의 청교도이었으며, 지성과 감성을 두루 겸비한 탁월하고도 깊이 있는 신학자였다. 그의 구도론은 오해와 편견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진실하고도 심각한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추구는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갈망thirsty인지도 모른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상대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현 시대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모든 것이 혼탁하기 그지없는 시대이다. 이러한 무질서와 혼돈의 시대에 인간의 죄와 죄성, 죄의 자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감함이 하나님 앞에서 필요함을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절실히 느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18-11-18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쪽 분야는 완전 젬병입니다.ㅠ

페크(pek0501) 2018-11-18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프리쿠키 님의 댓글이 웃겨 웃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댓글이기도 합니다.

페크도 완전 젬병 2입니다.

그냥 가기 섭섭해서 파스칼의 <팡세>에서 본 구절을 옮기고 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세계는 존속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이미 파괴되었거나 아니면 지옥으로 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민음사, 38쪽. - 이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님. 정확히 모르겠음.
저는 이 책이 흥미로워서 옆에 끼고 삽니다. 명언처럼 느껴지는 구절도 많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8 19:57   좋아요 1 | URL
솔직한 댓글 감사드려요 ㅎㅎ 북프리쿠키님도 페크님도 감솨 이빠이~^^
 
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튼, 이 소설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이다
아무튼, 이 책은 단편이어서 너무 짧다
아무튼, 이 책은 <아무튼>보다는 <우편함>이 더 스토리가 낫다!
아무튼, 이 책은 빌려 읽은 게 다행인 듯 싶다
아무튼, 이 소설은 금방 읽을 수 있어 좋긴 하다


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이니깐 봐 준다!

나의 아들에게.
너는 내 젊은 시절의 실수의 산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임을 졌다.

........................................

5월 2일까지는 열흘이 남았다.
그날 저녁, 나는 공항에서 인도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인도냐구?
어디든 상관없다.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이라면.(67-69p)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11-15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타 크리스토퍼닷! 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퍼는 막 좋아요!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15 15:09   좋아요 0 | URL
아무튼, 잠자냥님 덕에 책 많이 추천받아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11-15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카알님의 아고타 내공이 1 상승하셨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5 15:34   좋아요 0 | URL
아무튼, 북프리쿠키님 갑자기 등장하셔서 깜놀입니다 😱😱😱

페크(pek0501) 2018-11-1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님 덕분에 살지 안 살지 결정했어요. 비밀입니다. ㅋ

카알벨루치 2018-11-16 09: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서니데이 2018-11-16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05년의 절판본이라면 언젠가 새 책으로 다시 나오겠네요.
제목과 표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알려진 저자니까요.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11-16 21:2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책광으로 인정! ㅎ 전 감기로 고생하고 있어요ㅜㅜ즐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8-11-16 21:29   좋아요 1 | URL
앗, 저는 읽은 책 많지 않아요.^^;
요즘 날씨가 좋지 않아서 감기 걸리셨나봅니다.
주말에 잘 쉬시고 감기도 빨리 나으시면 좋겠어요.^^
 

 

서민교수는 유쾌하다.

나는 서민교수가 방송에 출연한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전지적 참견시점> 첫 방송이었던 것으로 안다. 나비넥타이를 하고 나오셨던데. ! 바로 서민교수님! 그런데 첫 인상은 별로였다. 정신과의사가 한 분 거기 나오지 않는가! 그분을 첫 대면한 자리에서 외모에 대해 딴지를 걸었다. 나는 순간 좀 놀랬다. 그런데, 그 정신과의사 분 대처가 좋았다.

 

서민 교수님이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면 보통 상대가 얼굴을 붉히게 되는데, 우리의 서민 교수님은

 

, 그래서 이 자리에 계시는구나!’(인기가 있을 만한 자격이 있구나! :개인적인 의역임)

 

라고 맞받아치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상대방을 까는 대화로 물꼬를 튼다는 것은 굉장히 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낮추는 농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언짢게 만든다.

아무튼, 그 대목만 보고 그 뒤는 보지 못했다. 원래 내가 TV랑 친하지 않아서.

책으로만 대하던 서민 교수가 방송에 나오니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와중에

 

 

 

밥보다 일기

책이 나왔다. 일기...너무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다. 방송에서 보여준 약간의 편견을 독자 입장인 내게 선사해 준 서민교수가 책을 통해 과연 만회할 수 있을까?

 

책은? 일단 재미있다. 쉽고 잘 읽힌다. 우리 초등학교 2학년 딸에게 읽히고 싶을 정도로 쉽다(근데, 우리 딸이 읽으려고 할지는 모르겠다, 아직 안 물어봤다). 잘 읽혔으면 일단 까먹은 점수는 만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몇 자 적어볼까 싶다.

 

 

 

첫째, 기록의 힘이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매일 쓴 일기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일기를 썼다.

아무 일 없는 날은 말 그대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문장의 반복 밖에 없다.

 

 

근데, 그게 역사적인 사료 가치가 된다. 매일 쓰는 일기가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기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친절하게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서민교수의 이야기 중에 인스타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SNS에서 좋아요를 날리는 이 온라인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지존 지식검색 네이버 박사가 과연 사라질까? 요즘 동영상의 트렌드의 절대지존 유튜브가 사라질까? 절대 그럴 일이 없다.’

 

뭐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일례로,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싸이월드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도토리만 까먹다가 망했다는 이야길 한다. 싸이월드는 패전을 면치 못했고, 오히려 마크 주커버크는 싸이월드를 통해 페이스북 왕국을 세웠다. 아무튼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모든 온라인 공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인터넷 온라인에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기록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끔 한다. 또한, 사진으로 도배하는 현 시대의 트렌드를 지적한다. 그토록 목매던 좋아요는 공중분해되고 나의 추억의 기록과 과거의 기록은 어디에도 사라져버린 현실을 서민 교수는 이렇게 지어냈다. 진짜 웃긴다.

 

 

젊은 날엔 일기를 안 쓰고 인스타에만 올인했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남는 것은 일기밖에 없구나

인스타가 문을 닫을 때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허세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추억을 남기는 건 소중하구나

언젠가는 우리 후회하리 어디서 뭘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우리 후회하리 남은 추억 하나도 없다고‘ (69p)

 

 

우리는 종종 사진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고자 한다. 추억보따리는 사진첩이기도 하니. 하지만, 사진첩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세밀한 분석과 매의 눈을 가진 서민 교수가 좋다. 여행을 가더라도 꼭 일기를 쓰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사진으로 도배하고 끝내버린다. 그런데, 서민교수의 축적된 독서량에서 튀어나온 책은 바로 마크 트웨인 여행기였다. 나는 이걸 보면서, 작가는 여행을 해도 다르구나! 싶다. 요즘 읽고 있는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도 감칠 맛 난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역시 거장이다 싶다. 마크 트웨인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관람하면서 적은 글이다.

 

 

식탁 높이의 계단, 매우 많은 층, 우리의 팔을 잡고서 한 계단씩 위로 튀어가 우리를 잡아당기면서 매번 우리의 다리를 가슴 높이까지 빨리 들어 올려서 우리가 거의 기절할 때까지 들고 있으라고 강요하는 아랍인들. 피라미드를 오르는 일이 기분 좋거나 상쾌한 것이 아니라 몸을 찢고 근육을 긴장시키며 뼈를 비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고문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나는 시종들에게 더 이상 내 관절을 조각조각 비틀지 말라고 애원했다. 나는 되풀이해 말하고 반복하고 심지어 꼭대기까지 가는 것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지 않다며 그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그들은 팁을 요구하면서 10분 동안 나를 쉬게 하고서는 미친 듯이 피라미드를 오르기를 계속한다. 그들은 다른 일행을 이기고 싶어한다.....그들은 언젠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평온해지고 기뻐져서 나는 정상에 절뚝거리며 지친 채 잠잠히 있었지만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했고 평온했다.’(마크 트웨인 여행기상권, 320-322p; 밥보다 일기, 207-208재인용)

    

 

서민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서민교수가 예를 들어주는 책들이 참 좋다. 나는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주는 저자를 좋아한다. 나처럼 서평 쓸 때 이것 저것 다 이야기하는, 스포 완전대방출하는 사람 말고, 좋은 책인 것만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그런 저자를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정혜윤의 스페인 야간비행여행일기를 예를 든 부분도 인상적이다. 굳이 인용하진 않겠다.

 

    

둘째, 사소한 것, 평범의 힘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개인적은 것은 무시할 수 있고, 배제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고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요즘 겨우 남기는 메모식의 일상,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일기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일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한 부분, 한켠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1952, 맨해튼 이스트 10스트리트에 아파트를 얻어, 201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그 집에서 살았다. 미술 애호가이자 오랜 파트너였던 솜스 밴트리(2002년 사망)도 같은 건물에 살았다. 말년에 레이터는 고양이 레몬과 함께 살았다. 레몬은 레이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함께 사는 사람을 바꾸며 살다가 2016년에 죽었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292p)

 

사울 레이터가 말한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90p)

    

    

한때 보았던 영화중에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원들도 많이 적어댔다. 그 때 버킷리스트의 초점은 언제나 <장소>였다. ‘지금과는 다른’, ‘현실과는 차이가 있는’ <장소>가 주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anytime, anywhere 정말 중요한 것은 사울 레이터가 말한 자신의 시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가난한 도시라고 볼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동네에 사울 레이터는 60년을 살면서 거기서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의 명성을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시각>,<관점>이었다.

 

    

마찬가지로, 일기에서도 서민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시각’, ‘자신만의 시각이 서린 기록을 남기자는 데 있다고 본다. 끊임없이 쓴다는 것,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계속 쓴다는 것,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는 말했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는 곧 영원으로 통하는 비범한 하루이다.”

 

평범한 일상이 곧 비범한 일상이다. 자신만의 일기, 자신만의 시각이 담겨진 평범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공유의 힘이다.

 

 

우리가 남긴 기록은 누군가에게 읽혀질 수도 있고, 읽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기억에는 아버지는 그냥‘무서운 아버지로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의 일기를 보게 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아버지의 생각을 공유한다. 거기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왜곡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일기를 공유함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긍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서, 이 책은 마무리된다. 마지막이 감동적이다. 책의 순서를 그렇게 편집한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이다.

 

난 저자의 벌거벗은 글쓰기가 참 좋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솔직하게 못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이 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아버지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 보이는 아들, 서민 작가를 볼 수 있었다. 한 인간, 서민을 볼 수 있었다. 서민이란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 했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대화체 형식의 문체도 그렇지만, 저자의 마지막에 보여준 용기는 감동적이다.

 

 

일기쓰기의 기록은 후에 그것을 읽는 누군가와 공유하게 될 때 나타나는 힘이 있다. 서민교수가 아버지의 일기 이야길 하니, 문득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교외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존 치버의 일기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일기가 문서로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내게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반복적으로 물어왔다.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쓰신 글이라면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고,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월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내게 공책 한 권을 주셨다. 그리고 읽어줄 수 있는지 물으셨다.......(중략).......

난 글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죽기 전까지는 그 일기들이 출판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아버지는 책이 출판되면 나머지 가족들이 힘들어할 것이라 했다. 난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일기에 내가 거의 언급되지 않다는 점 역시 나를 놀라게 했다....‘(존 치버의 일기, 10-12p)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든지 간에, 존 치버의 일기는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일종의 공유의 힘이다. 하지만, 공유의 힘이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음을 존 치버의 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학 때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중에 주인공이 과거의 일기를 부인이 우연히 읽고 나서 파문이 일어난 스토리였다. 문학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삶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배타적이기도 하다.

 

 

 

 

 

 

 

*. 난 일기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 이야길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인 모양이다. 나는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아니기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1-15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5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1-1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보다 일기>, 제목이 참 좋습니다. 일기를 쓰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보다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커피 한 잔 들고
노트를 펼칠 때 좋고, 어떤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일기장에 끼적거릴 때 좋습니다.
마태우스 님의 책을 몇 권 읽은 1인으로서 글의 유쾌함을 잘 알지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을 듯합니다.

2018-11-16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쫄지 마세요! 일단 찍고 올려보세요.”(243p)

 

정말 말 그대로 요즈음은 동영상의 세계, 동영상의 시대, 동영상의 세대가 되었다.

 

 

유튜브Youtube1분 동안 4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하루에 5760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이 분량은 한 사람이 66년 동안 동영상만 봐야하는 분량(144p)’이다. 엄청난 동영상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내가 느낀 점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첫째, 저자의 아이디가 대도서관이다. 겜방송하는 사람이 무슨 대도서관이란 닉네임을 쓰는가 싶었다. 요즘 워낙 자기개성이 강한 시대라 자기가 별명을 뭘 쓰든 무슨 상관인가 마는. 그런데, 대도서관은 한 달에 책을 사면 30만원치씩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 저자도 공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내는 자는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아닌가! ‘덕질을 하다가 덕후가 되지만, ‘덕후가 된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발전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뭐든지 개척자가 되려면, 남보다 앞서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저자의 소통능력을 들고 싶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 아니라 영향력이다(216p).

 

저자가 한번은 생방송을 하다가 너무나 피곤해서 잠시만 자고 다시 방송하자고 했다. 시청자들도 허락했다. 그런데, 저자는 너무 곤히 자버렸고 그게 1시간이 넘어버렸다. 저자는 생방송 중에 1시간 이상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오히려 그 부재의 시간을 통해 팬들은 더 자유로운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장이 없어도 게임방송을 통해 그런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 자체가 바로 대도서관의 영향력이 아닐까 싶다. 고작 게임방송을 하는데, 소통은 무슨 소통이냐고, 무슨 영향력이냐고? 기성세대가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디지털 유목민인 우리 세대와는 달리, 디지털 원주민인 다음세대와 젊은 세대들은 유튜브나 게임, 온라인, 인터넷은 인제 그들 삶의 일부이고, 문화이기에 다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게임방송을 통해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 아닐까!

 

    

-우리 다음에 오는 세대는 '디지털원주민'이다!

 

이제 게임방송을 하는 개인브랜드 유튜브인들이 억대연봉을 받고 비즈니스가 먹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청소년들이나 더 어린 세대들에게 건전하고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인데, <세상에 쓸 데 없는 일이란 없다?>

저자는 자신을 키운 8할은 바로 소위 말하는 쓸데없는 짓이었다고 고백한다. 과연 게임하면서 노는 것으로 앞날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싶었으나, 저자는 돌아보니 그 쓸데없는 짓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대도서관이란 개인브랜드로 아이들조차도 그 닉네임으로 유명하다.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유명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저자의 쓸데없는 짓의 8할을 긍정적인 직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에는 칭찬을 보낸다. 부디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유튜버로 남아주길 바라.

    

‘팬들과 거리를 유지하라’(189p)
“센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센 거야.”-하얀거탑 중에서(152p)
‘시청자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177p)
‘한국이란 시장이 정말 좁다’(237p)
‘어떻게 내 분야의 판을 키울 것인가? 우리의 시청자는 70억 세계인이다.’(238p)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틈에 2018-11-13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아이들은 수십년간 이어진 틀에 박힌 교육을 강요 받지요. 졸업 후에는 어른들이 옳다 믿어 온,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구요.

지금은 웬만한 어른들 보다 오히려 아이들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강요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서포트 해주는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2018-11-13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3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11-13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쓸데 없는 책이나 뒤적거리는 1인입니다 ㅋ 카알벨루치님의 태평양같이 넓은 독서분야에 늘 대단하시다는 느낌을 받고 갑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3 18:58   좋아요 1 | URL
태평양은 무씬 ㅜㅜ닥치는대로 읽는데 수월하게 읽히는 것들 위주로 읽고 있는 가벼운 1인입니다 오늘 <전쟁과 평화>1권 펼치다가 벽 만난 느낌......년말 가기전에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