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광야를 아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광야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신앙이 없는 비그리스도인이라면 광야라는 단어는 익숙치 않을 것이다. T.S.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의 그 황무지와 같은 현실이 광야라고 볼 수 있겠다(이 계기를 통해 나는 또 대학 시절에 공부했던 영미시 책을 들추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말 그대로 들추어보기만 했다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콤멘트가 앞에 적혀 있는데, 미국의 플로리다에 북상했던 허리케인으로 인해 삶의 터전에 풍지박산이 났을 때, 이 책을 만나 너무 감사했다는 내용도 있다. 광야라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가 만나게 될 딜레마이고, 미궁이고, 늪과도 같은 고통의 터널, 절망의 덩어리라고 볼 수 있겠다.

 

 

 

 

 

1

하지만, 단말마적인 위로가 되는 것은 누구나가 다 광야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광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쨍하고 해 뜰날이 있는 반면에, 고개를 떨구고 비통해하면서 맨홀 뚜껑 아래로 쳐박히는 날들이 또 점철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기에.

 

용기를 내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작자 존 비비어의 아내, 리사 비비어의 말이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겠다. 광야에 대한 존 비비어의 이야기를 한 번 들추어볼까 한다. 이 책은 광야의 중요한 측면, 무엇이 광야이고, 무엇이 광야가 아닌지, 그리고 광야의 목적과 유익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동 그 자체이다!

 

 

 

 

 

2

구약성경에 등장한 욥은 자신이 처한 딜레마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기 238-9

 

백만장자, 억만장자라고 볼 수 있는 욥이 하루 아침에 자신의 사랑하는 열명의 자녀들이 죽고, 가문이 풍지박산이 나고 자신의 몸조차 거덜나게 된 상황에서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불평한다. 흔히 우리를 압도하는 아픔과 상처와 고통에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욥은 버틴다. 불가사의한 믿음으로 버틴다.

 

 

 

 

 

3

욥에게 불어닥친 모든 환난은 신의 不在나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광야는 거부가 아닌 준비된 장소>라고 말한다. 광야는 형벌과 싦판의 결과가 아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준비된 장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깨서 거기로 부르셨다. 사람들은 광야에 머무르면 일단 탈출하고 싶어한다.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광야는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께선 거기서 거주하고 머물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거기서 찾아야 할 것은 더 나은 미래, 파랑새의 꿈, 성공의 신화, 신데렐라의 환상, 슈퍼스타의 드림dream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다. 욥은 그걸 찾았다.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메마름과 황폐함을 평온하게 견뎌내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이 달콤한 임재로 우리를 방문해 주시는 것은 곧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잔느 귀용

 

 

 

 

 

4

광야는 인생의 선배, 믿음의 선배들이 다 거쳤던 곳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터널이다. 성경에서 욥, 모세, 요셉, 다윗 왕, 세례요한, 사도바울, 그리고 밧모섬의 사도 요한...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광야를 거쳐 갔다. 이 말은 광야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준비된 장소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광야의 가장 멋진 점은 하나님이 자신을 새롭게 나타내시는 곳이라는 점이다’(43p).

 

광야는 지치고 헐벗고 굶주리고 열악하고 불편하고 진절머리 나는 곳이지만, 광야가 황홀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스펙트럼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야에 떨어졌다고 해서 무신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이 죽었다거나, 하나님이 외출중이거나 하나님이 주무시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3:5)

 

나는 이 구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구절이 있는 텍스트의 맥락에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13:5의 전반부 구절을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이 나오고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나온다는 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첨 대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떨어지면, 돈이 소진되거나 은행잔고가 부족하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감정적으로 다운 다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도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다. 그게 신앙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광야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설교를 들어왔지만, 정작 ‘Mr.광야를 만나면 당혹스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5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시편 139:8)

 

대학 시절, 한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써클 선배 중에 학교 수업도 빠지고 여행을 다니는 선배와 만났다. 신앙의 방랑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서 방황하였던 것이다. 나도 부러웠다. 여행다니면서 존재론적, 실존주의적 질문들을 하는 것이 너무나 멋스러웠다. 신앙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언제나 한 번씩 신앙의 탈선과 반기독교, 비기독교적 노선과 동선을 훔쳐본다. 거기에 뭔가 대단한 게 있는 듯 싶어서 말이다. 모든 것은 자기 선택이다. 그때 내가 참 마음에 다가왔던 CCM 찬양이 있는데, 그것은 시편 119편을 가사로 만든 곡이다.

 

내가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스올은 지옥, 하데스와 같은 곳이다. 내가 지옥의 저편, 죽음의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신의 부재와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조차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찬양을 좋아한다. 광야에서 해야 할 일은? ‘지금 뭔가 할 필요가 없다단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는 안다면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종종 의문이 드는 것은 왜 나는 '성경마니아'라 되지 않는걸까 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성경을 올리는 이유가 있는데

...왜 빅데이터는 나를 <성경마니아>라 해주지 않는걸까! ㅋㅋ 별 쓸데없는 이야기 해본다. 

 

 

6

문득 예수님을 생각해보았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바로 광야,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말씀이 육신이 되는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것에 육적인 것이 섟이는 이 참담한 오류를 인정할 수가 없었지만, 성경은 그것을 예수님을 통해 보여줬다.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7

우리는 자주 기복(祈福)신앙의 노예가 되곤 한다.

 

하나님이 <주시거나 해 주실 수 있는> 것 때문에 그분을 찾는 것과, <그분 자체를 찾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60p)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이 아닌 하나님 마음을 구해야 한다. 그것을 배우는 시간과 장소가 바로 광야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마음과 인격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만을 바라는 천박한 기복주의와 샤머니즘적인 종교로 전락하여서 사달이 난 것이다. 광야는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정화되고 준비되어가는 곳이다.

 

 

8

내적 삶이 바로 서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저절로 해결되는지 모른다.

-A.W.토저(Tozer)

 

 

 

 

 

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더 깊은 친밀감과 따뜻함의 관계, 교제의 관계를 원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요즈음 저마다 SNS 왕국과 제국을 꿈꾼다. 허세와 인기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존 비비어는 부부의 예를 들면서, 남편이 아내를 아이를 낳아주는 사람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말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에서 종종 이런 잘못된 복음, 비루한 제스처가 등장한다는 것을 꼬집는다.

 

네가 내 계명을 지키면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이미 알고 있다. 내 말의 뜻은 나와 사랑에 빠지면 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76p)

 

 

 

 

10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6개월을 사역하기 위해 30년을 준비하고 죽었다(순교했다). 그는 등 따시고 배부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야, 그것도 빈 들에서 사역했고, 금식과 고행과 낙타털옷과 벌꿀을 먹으면서 수도자처럼 살다가 참 세상 재미없이 살다가 죽은 인생이다. 그는 6개월 반짝 사역하고 30년 준비하고 죽었다.

, 정말 얼마나 허망한가!

그런데, 문득 우리의 인생의 길이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도 역시 숫자놀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 잖아요 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성적의 숫자에 관여치 않겠다고 자주 다짐한다. 물론 잘 안 된다. SNS의 조회수, 좋아요 수, 유튜브의 시청시간, 할인율, 연봉, 사람모인 , 수수수...모든 것이 숫자놀음이다.

 

 

 

 

11

사람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래 살면 좋지만, 그 인생의 길이도 인간적인 패러다임이라는 생각. 하나님께서도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세상에서 제일 큰 자라고 찬사를 보냈던 세례요한의 수명도 좀 길게 늘여 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단명했다.

    

 

  

 

 

 

 

 

 

 

 

최근에 읽은 그 바보청년 의사의 주인공, 안수현은 33년을 짧게 살다가 죽었다. 그가 죽은 이유는 잔디밭에 앉아서 봉변을 당한 것이다. 유행성 출혈이란다.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과 아픔을 당한 자들에게 책과 음반과 수고와 따뜻한 마음을 선물했던 그가 유행성 출혈로 들것에 실려 올 때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더 충격인 것은 그가 살아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그의 생애는 너무 허망한 인생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작품을 인정받기 위해 안달한다. 하지만 심원한 감동은 완벽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연약함 가운데 삶의 아름다움을 잔잔히 보여주는 이들에게서 넉넉히 흘러나오지 않는가. 비움 가운데 더 큰 채움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느 한 명 똑같은 사람이 없는 독특한 인격으로 창조하신 데는 각자에게 맡겨진 삶의 노래를 온몸으로 연주해보라는 뜻이 있다. 그것은 서로 누가 더 나은가를 가리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각 사람만이 고유하게 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소리, 그 숨겨진 멜로디를 누가 들려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삶의 거창하지 않아도, 섬기는 일이 주목받지 않아도 된다. 너무 웅장한 곡은 쉬이 피곤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찬양 곡의 가사 한 구절이 이런 생각을 잘 요약해준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 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안수현의 에세이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영역에서 슈퍼스타를 꿈꾼다. 대박이 나면 좋겠다. 하지만, 인격과 바탕이 되지 않는 슈퍼스타는 결국 허망하게 허물어져 내린다. 근래의 연예계의 소식들은 그러한 세태를 반영해준다. 안수현은 인생 자체가 광야였고 결말도 광야였지만,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에서 과연 어떤 평가와 결론을 내리실까!

 

 

 <꿈이 있는 자유 3집-아침묵상>이다.

 '소원'이 수록되어 있고, 내가 한때 애청했던 음반이다.

특별히 짧은 곡인 '아침묵상'이란 곡도 참 좋다.

 

12

세례요한은 30년을 준비하고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사역을 시작해 예수님과 바통 터치를 한 후 순교했다. 죽었다. 세례요한은 과연 낭비하는 인생이었는가! 세상의 시각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세례 요한이나, 안수현 이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선 시간 낭비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야라고 해서, 뺑뺑이 치는 광야라고 해서 시간 낭비가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존 비비어의 나이는 이제 60대이다. 나는 처음에 그의 프로필을 읽으면서 ‘79년에 출생했으면 나보다 훨씬 젊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네! 인생은 참 불공평해! 나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라고 내심 부러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79년에 대학생이었다는! 허허허....참 나도 무심하게 읽는다 싶다. 어쩔! 작가가 인생의 여정들을 뒤돌아보면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결국 그 분의 마스터플랜에서 맞춰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경험을 실어 말해주는데, 감동적이다.

 

 

 

13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권위, ‘자신의 파워와 에너지와 힘과 능력과 감각으로승부를 내고자 한다. 그게 세속의 원리이고 법칙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권위로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것을 훈련시키는 곳이 바로 <광야>라는 사실이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당시 최고의 잘 나가는 이집트 왕족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40년을 <광야에서>에서 굽게’(to dealy) 하셨다. 광야가 하는 일이 바로 굽는 일이다. 새로운 모세가 탄생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은 세상의 숫자의 스펙트럼에 갇히지 않는다. 광야의 본질은 준비이다. 광야는 새 포도주로의 변화를 위해 준비시키는 곳이다.

 

 

 

 

14

이사야는 이렇게 약속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43:19)

 

도시나 광장이 아니라 광야이고 사막이다. 거기에 길과 강을 내신다 했다. 광야의 시온의 대로가 놓인다. 그 대로는 그냥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풀무불을 통해서 놓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길은 거룩한 길로 놓여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광야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재난과 아픔과 더 깊게는 자신의 쓴 뿌리나 파괴적인 성향과 옛 자아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내면의 영적 쓰레기들을 마주치게 된다. 이를테면, 분노 같은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충격을 받는다. 거기서 우린 감정의 광야, 분노의 광야를 대면하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또한 영적 이스마엘에 비유한다.

 

 

 

 

15

헬쓰 클럽에서 바벨을 들어본 사람들은 근육이 어떻게 팽창하는지 알 것이다. 저자는 헬쓰 클럽에서 다니면서 바벨을 65kg도 겨우 들었던 그가 100, 130, 150kg까지 들게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영적 근육을 키우는 곳이 바로 영적 헬쓰클럽, 바로 광야라고 아주 흥미롭게 전한다. 근육의 힘을 키우면 물건 드는 것, 힘을 쓰는 것은 쉽다. 근육량이 그만큼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광야의 시험은 우리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인데, 우리는 늘 뺑뺑이만 돌고 있다....

 

 

 

 

16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8:10)”

 

광야의 본질은 바로 이것을 제대로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쁨은 우리를 강화시키는 영적인 힘이다(190p). 저자는 광야에서 생수의 강되신 성령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 생수는 여러 가지의 강들(복수)이며, 이것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길러내야(to draw) 한다고 강조한다. 답답함과 갑갑함의 벽과 같은 현실 앞에서도 계속해서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힘이란 사실을 계속 주지하며 영적 싸움의 기도를 계속하라고 촉구한다. 새포도주의 변화된 생수는 맛보기 위해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은 언제나 시간을 최적으로 사용하시는 분이다(218p).’

 

 

 

 

17

예정(predestination)이란 말은 접두사 pre는 단순히 이전혹은 시작 전을 뜻하고, 어근 destination목적지결승선을 뜻한다. 이제 둘을 합치면 출발 전에 결승선을 정하는 것이란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111절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기 전에 인류를 향한 목적 혹은 목적지를 정하셨다는 뜻이다(230p).’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은 무엇인가? ‘출발 전에 결승선을 정한 그 무엇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친밀함의 교제이다. 이 관계가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용기의 반대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낙심'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8

광야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광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광야의 본질은 <준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통찰과 감동이 너무나 크다.

나의 광야 시간에 받을 은혜를 기대한다.

존 비비어 저자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읽으면서 눈시울이 자주 붉어졌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나의 광야 여행이 끝났기 때문에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을 모두 얻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운명을 향해 꿋꿋이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기를 간절히 원한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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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3-21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님은 이런 글 쓰실 때 제일 폼이 납니다.....

카알벨루치 2019-03-21 18:46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이런 댓글 과분한데 너무 좋네요 엔돌픈 500푸로 상승합니다 역쉬 님이 여기 계시니 내가 살아있는듯 ㅎㅎㅎㅎ쇼군 최고!!!

cyrus 2019-03-22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야’하면 이육사 시인의 시가 생각나네요. 학창시절에 그 시를 배운 적이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국어 선생님이 시의 ‘광야’가 기독교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3-22 16:0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사막이나 광야가 없기에 광야란 단어가 어색하게 보이는데 기독교인들에겐 광야는 무척이나 친숙한 단어이죠 윤동주가 기독인이었다는건 확실한데 이육사가 그러했나 모르겠네요~

책과커피 2019-03-22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작성했더니 오류가 뜨고는 사라졌어요...짜증!!!!! 오늘 그렇지 않아도 교장 때문에 광야같은 마음이었는데 카알벨루치님의 좋은 글에 위로받고 퇴근합니다. 금요철야가면 엄청 울것 같네요..ㅜㅜ 카알벨루치님 늘 좋은글 고마워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3-22 16:57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위로가 되었다니 너무 감사하네요 이런 맛에 제가 글을 씁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
 
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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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rologue...

  30대 초반의 일이다. 그때 우리 첫애가 태어났다. 난 직장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그냥 직장을 나오고 싶었다. 부끄러웠다. 실수한 그 날 바로 상사를 찾아 사직서를 제출했다. 붙잡지 않더라.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는 생각과 열패감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빨리 그 직장을 탈출하여 해방감을 맛보고 싶었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정말 사표를 확 던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 그때가 그랬다. 사람들에게 일구이언이나 변명 따위는 하지 않고 직장을 나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군은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내주는 사택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사표는 수리되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당시 나는 너무 지쳤고 힘들었다. 직장생활의 틈바구니에 나는 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느낌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보면 ‘unsuitable’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락과 문맥을 떠나 정말 몸에 맞지 않는, 적합지 않은느낌이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들었다.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정년은퇴를 한 분이 자신이 직장생활이 맞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그렇게 따지면, 다들 보편적으로 자기에게 꼭 맞는, 안성맞춤의 직업군에 속해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어쩌겠는가!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가! 그때 나는 와이프랑 아들과 함께 처갓집 신세를 2-3주 지게 되었다. 짐은 컨테이너에 맡겨두고. 근데, 정말 그런 짓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집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본가는 시골이었고, 아내가 그래도 편한 처갓집에 다음 직장을 준비하면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더라. 그리고 생활의 짐들을 컨테이너에 맡기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어쩌겠는가!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것이지.

 

 

김승옥의 무진기행(민음사)에 포함된 10개의 단편소설 가운데 오늘은 차나 한잔이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승옥의 <차나 한잔>

내가 20대 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맘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나 한잔 하시죠?’ 아니면 커피나 한잔 하시죠?’이런 이야기로 접근하면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작 나는 그런 길거리 헌팅을 시도해 본적은 없는 듯 싶다. <차나 한잔> 김승옥의 이 단편은 말 그대로 차나 한잔 하자면서 대화의 물고를 트는데, 그 대화의 내용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되느냐인데,

 

오늘 치는 빠졌더군요.”(153p)

김 선생님, 결국 목 잘렸습니다.”(187p)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맥락에서 상사가 당사자에게 건네는 문장이 바로 차나 한 잔 하자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신문사(잡지사)의 만화연재작가이다. 그런데, 자신이 실컷 그린 만화가 지면에 빠지고, 실리지 않은 상황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물론 60년대의 배경하의 언론사는 작품 속의 복덕방 영감이 김 선생의 해고 이유를 추측하는 데 다분히 정치적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심하게 정부를 까더니 그예 당했구려?’(164p)

 

이유가 어찌 되었던지 간에 신혼부부와 같은 주인공이 꼼짝없이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이다. two job으로 다른 일을 프리랜서로 뛰고 있었지만, 변변치 않은 수입이었다. 작가 김승옥은 위태위태한 직장생활인의 불안을 주인공의 소화불량, 설사, 배앓이를 통해 표현해 준다. 말 그대로 똥이 더 나올 듯한 개운치 않음이 젊은이를 뒤따라 다니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신경쓰는 불안을 걱정해 휴지를 챙겨주고 안위를 걱정하고 염려해준다. 주인공은 설사가 자주 나올까 봐 늘 불안해한다. 버스를 탈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불안해한다. 방귀를 끼려다 설사가 나올 수도 있으니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60년대에는 자가용이 오늘날처럼 흔한 시대가 아니었다. 밖에서 변을 당하면 손 쓸 도리가 없는 지경이다.

 

 

그야말로 어쩌다가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기가, 지난날 우연 속에 자신을 맡겨버린 것이 갑자기 역겨워졌다. <거지 같은 자식이었다>하고 그는 자신을 욕했다. 손톱만큼이라도 좋으니 나의 주장이 있었어야 할 게 아닌가’(155p)

 

우리가 우리의 직업과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신중함과 심사숙고함이 셋팅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일과 job이 우연한 동선에 의해 놓여질 때가 얼마나 많던가! 주인공의 독백을 보면서, 십수년 전에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나올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실패의 쓴 맛을 맛보았을 때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욕하고 싶고 저주하고 싶고 또한 내가 몸 담았던 과거에 대해 욕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가득한가!

 

    

 

 

 

 

차나 한 잔 하러 가실까요.”

자신의 연재만화를 관리했던 문화부장이 주인공과 차나 한잔하자고 한다. 두 사람은 그토록 일로, 사무적으로 부대끼면서도 차 한잔하지 못한 관계였다고 문화부장을 새삼 떠올린다. 하지만, 문화부장의 마음도 굉장히 드라이하다. 문화부장은 오늘 분량의 만화 원고를 그려왔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당연히 자신의 밥줄과도 같은 그 원고를 그려왔다. 하지만, 신문사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고 눈치 빠르게 대구한다.

 

그려오지 않았는데요.”

그럼 알고 계셨군요.”

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166p)

 

나는 주인공이 문화부장 앞에서 그려오지 않았는데요.”라고 말하는 이 대목이 너무 짠한거야. 그렇게라도 말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엿보여 다 마음이 싸하다.

 

평상시에 차나 한잔하지도 않은 관계가 그 심각한 상황에서 차나 한잔한다는 것이 참으로 사람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물론 자초지종도 모른 채 잘리는 경우도 많지만. 문화부장의 말은 자신의 역할을 이제 좀 더 비용이 저렴한 미국의 만화가들의 신디케이트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전에 기사 폭주관계로 자신의 원고가 누락 되었고 빠졌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이걸로써 내가 그 속에서 살아났던 한 가지 우연이 끝장났구나....그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서 또 무엇을 붙들어야 한다. 오늘 중으로 무언가 확실한 걸 붙들어 둬야 한다.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을 순조롭게 연속시켜 주는 것을 붙잡아 둬야 한다.’(172-173p)

 

 

오늘 중으로, 반드시 오늘 중으로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무엇을 말인가?...그는 답을 얻었다. 만화다.’(176p)

 

 

 

차나 한잔, 그것은 일종의 추파다....내가 그곳에서 성실을 다했던 하나의 우연이 끝나고...그것은 이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동양적인 특히 한국적인 미담....’(189p)

 

 

 

 

 

 

다음에 좀 봅시다

우리가 흔히 빈말로, 형식상의 인사말을 한다. ‘다음에 좀 봅시다길을 걷다가 자신의 잘린 직장과 연관된 키 큰 카메라맨을 만난다. 그리고서, 그는 이 말을 툭 던진다.

 

 

이 형, 다음에 좀 봅시다.”

 

 

작가 김승옥은 이 말에 대해 이렇게 묘사해준다.

 

그는 그네들의 말투를 알고 있었다. 저 도회의 어법을, 그리고 그는 항상 그 어법에 잘 속았었다. 방금 카메라맨이 말한 다음에 좀 봅시다.”. 그 뜻을 따라서 정확히 표기하자면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안녕히 가십시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란 부사를 집어넣어서 듣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음에 좀 만납시다.”어쩌면 당신에게 일자리를 얻어 줄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요인가? 생각해 보라.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지 않은가? 그는 아침나절에, 그가 관계하던 신문사에서 문화부장에게 속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가 해고당한 것을 알리기 전에 문화부장은 먼저 오늘치 만화 좀......”했던 것이다....“오늘치 만화....”라고 했으면 그는 자기가 해고당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리라. 또는 오늘부터는 그리실 필요는 없게 됐습니다.”라고 하면 유감스럽긴 하지만 그것도 뜻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치 좀......”했던 것이다. 오늘치의 만화를 보아서 재미가 있으면 계속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해고다라고밖에 들리지 않던 그 말투, 그는 갑자기 꽥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186-187p)

 

 

 

설사 VS 방귀

   주인공은 설사로 인해 늘 조심조심 움직인다. 그런데, 자신의 옆방에 세든 부부가 사는데, 그 아줌마는 하루 종일 재봉틀을 돌리면서 생계를 꾸려간다. 직장도 짤렸고 동병상련을 겪은 만화가 김선생을 만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옆방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주인공이 던지는 말이다.

 

 

어지간히 성실하게 사는 척하지?”

 

그런데, 갑자기 옆방에서 방귀소리가 둔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아내가 말한다.

 

 

그래도 별수 없이 보리밥만 먹는 신센데요, ?”

 

   그러면서 주인공 부부가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그런데, 방음이 안 되는 그 이웃끼리 웃음의 비밀이 공유되어버렸다. 아주머니의 어지간히 성실하게 사는 척하는 재봉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주머니, 그건 건강한 증거입니다. 돌려요. 어서, 돌려요.’다시 재봉틀 소리가 돌아간다. ‘그럼요. 아주머니, 방귀 좀 뀌었기로서니 재봉틀 소리를 죽여야 할 거까지는 없습니다. 돌려요, 어서요.’(191p)

 

 

   다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다. 주인공도, 옆집 아줌마도. 옆집 아줌마의 방귀 소리에 호들갑을 떨며 웃어버린 주인공이지만, 정작 자신의 똥을 쌀지도 모르는 설사를 참아가면서 사는 더 불쌍하고 슬픈 현실인 것을 작가는 대조시켜주고 있다. 술김에 아내를 안고 누운 주인공은 자신이 지금은 아내를 부드럽게 대하지만, 언젠가는 옆집 부부의 아저씨가 아내를 때리는 것처럼 지금은 그 부부를 욕하지만, 자신도 어떤 상황과 환경과 원인에 의해 언젠가 아내를 때리게 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수많은 불안, 수많은 정신적인 설사들을 떠올리면서 그는 울음이 터질 뻔했던 것이다.

 

 

    

 

 

 

Epilogue...

나쁘지 않은 인생은 나쁘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십수 년 전에 느꼈던 나의 열패감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지나갔다. 시간이 수년 지났을까? 그 상사분이 '나의 진가(?)'를 알아봐주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ㅋㅋㅋ 상사는 무척 아쉬워하셨고 나중에 같이 MT도 같이 갔었다. 지금도 관계의 끈은 계속 연결되고 있다. 뭐 그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나는 탁월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안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는 내 에너지를 다해 일을 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안 해주고는 차후의 문제이다. 일단 나 자신에게 나는 충실하고 싶은 습성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같은 유형은 직장생활에서 치이고 치여 지치고 낙마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직장생활은 수많은 <좀>이 필요한데 말이다. 아부도 좀... 감언이설도 좀...적당한 좀의 형식적이지만 수사학적인 칭찬과 둘러치기, 오버래핑, 가면, 철판, 강심장....뭐 그런 좀좀좀....좀좀의 그런 것들들....그런데, 그게 나하고 안 맞다.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마터면 절망할 뻔 했다. 하지만, 인생에게 절망도 때론 약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절망하지 않고서 희망의 싹을,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는가!

 

하지만, 지금은 더 큰 열패감과 실패의식의 유령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생이 롤로코스터인데 말인데. 하우석의 내 인생 5년 후에 나온 문장이다.

 

나쁘지 않은 인생은 나쁘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문장만큼은 좋다.

<나쁘지 않은 인생은 나쁘다>

<나쁘다>가 있기에 <좋다>가 있는 것이 아닐까! 롤로코스터 인생에서 절망의 벽에 부딪힌 인생에게 김승옥의 단편소설 <차나 한잔>은 어떨까 싶다. 추천한다. 공감의 울림이 있을 것이다.

 

, 저는 커피로 하겠습니다.

 드립커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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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쟝 2019-03-14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시에는 이 병명이 없었겠지만. 주인공은 그 병을 앓으셨군요.. 과민성대장증후군...ㅋㅋ

카알벨루치 2019-03-14 18:50   좋아요 0 | URL
ㅋㅋㅋ저는 신경쓰고 피곤하면 입술주위가 허는데 말입니다 주인공은 그거군요 ㅋㅋ

쟝쟝 2019-03-14 19:06   좋아요 1 | URL
제가 한참 술독에 빠져 살았을때 앓았던 병이지요... 술을 줄이고 씻은 듯 나았는데...

카알벨루치 2019-03-14 21: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화려한 과거가 있었네욧!!!

북프리쿠키 2019-03-16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는 광활한데 우리의 삶은 선택지가 몇개 없는 객관식 인듯 합니다.
직장이나 결혼 같은 중대한 일에서도 말이죠..
돈을 벌고 성공하려는 목적이 어찌보면
주관식 답을 쓰고 싶은 바람 아닐런지요.

그런 의미에서 카알님의 ˝나쁘지 않은 인생은 나쁘다˝라는 말 공감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3-16 12:52   좋아요 1 | URL
인생엔 나쁨이 좋음보다 더 많기에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걸 긍정하고 에너지화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화이팅입니다 ^^
 
조선왕조실톡 2 - 조선 패밀리의 활극 조선왕조실톡 2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이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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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왕조실록을 이미 아는 사실인데, 굳이 이 책을 대여한 이유는 “톡talk”, “카톡”형식을 빌었다는 점 때문이다 작가가 가진 참신함과 젊고 유쾌한 유머까지 곁들인 역사이야기가 기성세대에겐 가볍디 가벼울 수 있는 대목이긴 하나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접근하는 데 있어 흥미롭게 읽어가겠다 싶은 점은 제법 고무적인 부분이다.


2
그나저나 요즘 독서가 지지부진이다 막힌 파이프관 같은 느낌이다 어쩔! 슬럼프인가 싶기도 하고 근데 알라딘 뉴스레터 이번주에 안 날라온거 맞죠? 내 생체리듬과 알라딘이 같이 가나?



3
선조는 자신이 방통승계라는 출신성분의 트라우마로 인해 당쟁에 대해 밀당을 자주 해 서인 주도의 정철의 폭력(기축옥사) 방관했다가 후에는 정철을 귀양보내버린다


4
십만양병설을 주창했던 이이의 의견이 무시되었고 결국 임진왜란은 터졌다 임진왜란의 원인을 싸울 군사가 모잘랐다고 흔히 이야길 하면서 이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조선을 탓하지만 저자는 당시 군사는 충분했으나 그 군사들을 지휘할 체계의 허술함과 지도자의 부재를 지적한다 유성룡은 전쟁의 위기 가운데 속전속결로 대응하기 위해 제도의 개편을 주장했지만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살던 관리들이다 제도를 “바꾸기 번거롭다”했던 경상감사 김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36계로 줄행랑을 쳤고 당시 명장 이일을 경상도에 두고자 했지만 “명장은 서울에 둬야한다”는 병조판서 홍여순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성룡이 조총의 위력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야한다고 하자 신립은 “조총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찌 하나하나 다 정확하게 맞추겠느냐?”라며 콧방귀를 꼈다고 한다 방심이 장난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5
“그리하였다고 한다 끝”


이렇게 매 장(chapter)이 끝이 나는데 이 대목이 너무 유쾌한거다 이야기를 막 하다가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 말과 그림이 너무 발칙하다 작가 너무 센쓰가 있구만!


6
구국의 낙하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사람이다! 유성룡의 낙하산의 결정적인 성공작이 바로 <영웅 👍👍👍>장군이었다! 농땡이자 별볼일 없는 그를 알아본 유성룡의 대단한 안목을 칭찬해주고 싶다

이조판서가 된 유성룡은 자신의 권한을 마구 휘둘러 당시 별 볼일 없이 지내던 동네 친구 동생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특별한 전공도 없었고 직장 상사와 싸우고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겨우 정읍현감을 하고 있던 이름 없는 무장이었다. 그런 그를 전라좌수영이라는 높은 자리에 턱 하니 꽂아준 것이었다. 남들이 본다면 낙하산이라고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으나 이 동생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원리원칙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수군의 근무지는 원래 바다 위였다. 그러나 이것이 참 고된 일이다 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다들 배에서 내려 육지에서 깔짝거리는 게 기본이 되었다. 그러나 이 동생은 내내 육지에서만 근무했으면서 첫 바 다 근무에서 바로 ˝원칙대로 고고!˝를 외쳤으니 전라좌수영의 사람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는 능히 짐작이 간다. 다툼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낙하산 뒤에는 자그마치 우의정이라는 장대한 빽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전리 좌수영은 본인들의 뜻과는 별로 상관없이 조선 최고의 수군으로 거듭나게 되었 다. 그 동네 친구 동생의 이름은 이순신이었다(193p, 구국의 낙하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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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3-11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연재를 볼 때와 종이책은 또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3-11 23:31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1권읽고 서니데이님 리뷰 봤지요 ^^오래되었습니다 그쵸 근데 전 인제 읽네요 다 읽을수 있을지...ㅎㅎㅎ댓글 감사! 언제나 세밀함에 감사드립니다

2019-03-12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2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망스
윤태호 지음 / 애니북스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을 첨 봤을때, 윤태호가 무슨 연애담 이야기를 썼나 싶어 궁금했다.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고 윤태호 만화라 서슴치 않고 도서관에서 빌렸다. 

 

 

 

로망스는 노망(老妄)기가 가득한 노인들의 비망록, 숱한 인생의 풍파를 거친 백전노장의 무용당(romance), 영원히 식지 않는 정열과 섹스와 연애담(romance)이다. 이 책은 노인들의 끄집어내기 힘들고, 추측하기 힘든 성생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노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 이를테면 기저기까지도 끄집어내 준다. ‘한국 최초의 본격 노인 개그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노인 세대>에 대해 만화가 윤태호는 그것을 건드려주고 있다. 2002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만화 작품이기도 하다.

    

 

 

한 세대를 풍미했고,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할매, 할배, 바로 노인들에게도 로망스(romance)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그냥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20대였더라면 덜 다가왔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도 언젠간 노인이 될 것이고, 로망스가 노망스가 될 수도 있으니, 고령화시대에 다양한 세대, 특히 노인 세대에 대한 공감과 동감이 필요한 대목이다.

 

 

요즘 가장 큰 욕은 '뭐도 할 사람'이 아니라 '뭐도 못 할 사람'이란 말이란다. 고령화 세대에 무언가라도 할 수 있는, 그것이 어떤 행동이든지 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칭찬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노인들도 섹스를 할 필요가 있고, 기저기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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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개인적인 (대단히 비관적인) 생각이지만, 현재 2030 세대(저도 여기에 포함됩니다)는 정말 불행한 세대입니다. 취업 준비 때문에 연애, 결혼을 포기합니다. 특히 남성은 나이 들어서 혼자 살게 되면 섹스를 할 기회가 없을 거예요. 이런 남성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려고 할 것입니다. 노년층 성범죄가 늘어나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만 언론에 자주 부각되면 노년층의 섹슈얼리티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노년층도 섹슈얼리를 추구할 수 있는데, 이걸 단순하게 ‘노망난 생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노년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노년층의 섹슈얼리티도 관심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3-11 17:53   좋아요 1 | URL
로망스를 노망스로 한 것은 비꼰다기 보다는 노인생활 훔쳐보기 혹은 관심갖기 정도로 보면 될 듯 합니다 노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윤태호가 왜 이런 소재를 가지고 만화를 그렸을까 싶네요~솔직한 사이러스님의 댓글에 그냥 짠합니다...^^

레삭매냐 2019-03-1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청춘
들은 미처 모른답니다.

그러니 어찌 노인 세대와 소통이
가능하겠습니까...

또 한편으로는 요즘 한층 기세를
올리는 노인 분들도 이해가 되긴
하네요.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지나가는 광음을 누가 잡을 수 있
겠습니까.

카알벨루치 2019-03-11 17:54   좋아요 0 | URL
모든 세대가 소통과 관심의 소외벽이 생기면 안되는데~누구나 노인이 되는데 말입니다 ...
 
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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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나 동화에 흠뻑 매료된 기억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이야기를 흠모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은 한 교육자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독서의 태도나 독서법, 독서의 방식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20년 남짓 교사를 한 인물이다. 12살까지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다. 학창 시설 열등생의 심각함도 보였다. 그런 성장배경이 어떻게 교사를 20년 동안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는가! 중국영화 중에 이런 영화가 있다. 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젠장! 특수부태 출신의 이력이 있는 교사가 5명의 핵심적인 문제아가 있는 고3반을 맡게 되는데, 5명이 또 사고를 쳐 완전히 퇴학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 그 선생님 한 사람의 영향력과 수고를 통해 아이들이 변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화려한 선생님의 이력만큼 액션씬도 보인다. 파란만장한 삶의 과거가 있는 교사는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가 삶에 가득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이해하는 대목에서도 영민함이 돋보이기 마련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아마 그런 유형의 교육가라고 볼 수 있겠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오늘날의 다니엘 페나크는 여행과 문학(독서)로 마블링 된 방랑 생활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삶이 소설처럼느껴졌던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처럼느껴졌듯이, 모든 작품, 모든 문학, 모든 소설이 진작에 소설을 소설답게,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스토리를 스토리답게읽어줘야 하는 다이나믹한 역동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늘 꿈틀거리고 생각하고 시종일관 좌충우돌이다. 몇일 전에 딸 아이가 영화배우가 뜬금없이 되고 싶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말을 하기가 싫었다. 후에 아이와 이야기를 해보니 아빠의 말투에서 무시당하는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젠장! 아이에게 많은 사전지식적 정보를 내놓으면서 아이를 설득하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내가 반감과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되하니 아이의 마음이 다치게 된 셈이다.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동감을 해주고 후에 설득이 되어져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교육인 듯 하다.

 

 

 

우리는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우리가 받은 지식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될수록 빨리! 그렇지 않으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부터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59p)

 

 

‘“좋아! 그렇다면 이제 텔레비전 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

그렇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텔레비전이 보상이라는 지위로 격상함에 따라, 당연히 독서가 억지로 해야 할 고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다름 아닌 바로 우리에게서 나온....우리 자신의 발상이었다는 사실을....’(63p)

 

 

우리도 그렇게 대단한 교육을 받은 자도, 대단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자도 아니면서 부모라는 위치가 그런 것을 강제하게끔 하는 것 같다. 쉽지 않다. 디지털 이주민인 부모 세대가 디지털 원주민들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67p)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로 남을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북돋워 줘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아이 스스로가 그 즐거움을 의무로 삼고자 할 때까지는 말이다. ’(67p)

 

 

아이들의 자발성과 동기부여가 될 만한 독서교육이 쉽지 않다. 아이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내놓기가 주저된다. 나도 쉽고 싶고, 나도 지치고 어렵고 힘들고, 아이들이 생각지 못하는 인생의 사안들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기다려주는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

 

 

 

평생 저녁마다 장부의 수지 타산을 맞추는 일만 한 아버지를 뒀던 프란츠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렇게 썼다.

 

어른들은 저녁나절, 한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있는 아이를 결코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만 책을 읽고 자야만 하는 이유를 강변하는 어른들만의 논리를 아이는 결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75p)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이 말은 엄마 아빠와 나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찰 만큼 서로 사랑해야 해요라는 뜻이다. 다시 읽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늘 새롭게 보여주는 끝없는 사랑의 표시다.(71p)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 교육자가 된 부모는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경직되고 부드럽지 못하다. 저자 다니엘 페나크는 강의시간에 소설을 10분동안 큰 소리로 읽어주기만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소설의 매력, 이야기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는 임상실험으로 인해 검증된 교육학적 보고를 하고 있다.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청중을 향해 페로스 교수(이야기의 주인공)가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이든 큰 소리로 읽어주셨다는 사실이에요! 교수님은 이해하고 싶은 우리의 열망에 단숨에 자신감을 심어주셨어요.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신 덕분에 우리는 책의 높이에 닿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지요.‘(121p)

 

 

단지 아이들은 책이 무엇이며,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151p)

 

그게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이야. 책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마음은 입에서 입으러 전해지는 법이거든. 당신은 바로 그 책에 대한 사랑을 전도하는 대사제인 셈이야.”(96p)

 

 

 

프랑스에서는 <읽다>를 속된 말로 꼼짝없이 매이다라고 표현한다. 두꺼운 책은 흔히들 보도블록에 빗대기도 한다.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나면, 보도블록도 구름이 될 것이다.’(163p)

 

 

 

아이들에게 책읽기, 독서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다니엘 페나크는 무언가를 바라지 말기를 권한다. 부모의 욕심, 부모의 꼰대근성, 부모의 아집, 부모의 편견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독서의 독, 교육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164p)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급함과 바쁨이 현대인의 일상이요, 화두가 된 지금, 우리는 기다리지 못한다. 참지 못한다. 분노와 화와 짜증과 책망과 꾸중이 아이들에게 나아가고 심지어 체벌까지로 더해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기다림...쉽지 않지만...기다려야 한다. 부모인 우리도 우리를 기다려준 우리의 부모님과 수많은 교육자였던 소울 메이트와 지인들이 있지 않았던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독서를 하면서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다’(178p)

 

독서는 하나의 작품, 이야기는 하나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읽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사유하고 생각하는 것이지,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종의 체감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다시 말해서, 쓰기의 자유는 결코 읽기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195p)

 

아무도 우리에게 책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 보고서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225p)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게, 아이들이 이야기의 매력이 흠뻑 빠져들 수 있게 무엇보다 부모는 이야기를 제시해주기만 하면 된다. 이것도 쉽지 않다. 다니엘 페나크는 이 책에서 우리의 인생이 이야기인 것처럼, 우리의 삶이 소설인 것처럼 그 자체로, 작품 그 자체로 대해줄 수 있는 자리로 부모들을 초대하고 있다. 우리도 금방 독서가로 자리매김할 수 없지 않았던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늪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력과 매력이 존재한다. 이야기는 충분하다. 소설은 충분한 힘과 에너지와 변화의 파워를 가지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Story is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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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3-11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년 전에 읽은 책인데 이번에 문지
에서 커버를 달리해서 나온 모양이네요.

말리지 마, 내 맘 대로 읽을 테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가사를 패러디해
BoAㅆ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3-11 17:49   좋아요 0 | URL
오래된 책이네요 저만 몰랐군요 ㅎㅎ독서는 자기 멋대로 읽는게 정답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