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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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보코프의 절망

 

나보코프는 언어의 천재였다!

아는 지인 중에 미국 유학 할 때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근데 그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를테면, 중국식당에 가면 독일어성경을 보고, 프랑스 식당에 가면 라틴어 성경을 보고....뭐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왜 그렇게 하느냐? 각기 다른 언어의 세계에서 다른 언어를 보면, 거기에 언어와 언어 사이의 기묘한 차이와 공통점, 뭐 그런 신비감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난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그 친구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길 나누다가 6개국어를 한다고 했다. 독어, 불어, 라틴어, 영어....이름만 들어도 아는 우리나라 최고 S대학과 대학원을 접수한 친구였고 입학 때는 수석으로 들어온 친구였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을 때 두려움이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그 친구는 대학원 공부하면서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목사님에게 라틴어 레슨을 해준다고 하였다. 결국 그 친구는 지금 대학교수를 가장 젊은 나이에 역임하고 있다. 그 친구는 벌써 세계 학자들이 주목하는 대열에 서 있다. 논문으로 상도 받았다고 하던데...

 

 

 

그럼 나는? ...

 

 

나는 그 친구가 쓴 책을 읽어주고 있지 않은가! 하하하~ 하나도 안 부럽다.

 

왜 안 부러우냐고? 다들 잘 아시지 않는가? 내가 왜 안 부러워하는지...

부러우면 진다. 내가 아무리 방탄소년단을 부러워하면 뭐하는가? 그 놈은 그놈이고, 나는 난데. 그렇다고 내가 자존감이 대단히 강하고 견고하진 않다. 푸하하!

 

 

나보코프의 떠돌이 생애 

나보코프는 18994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오래된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가문에 걸맞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 이런 혜택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 귀족계급의 몰락 이전까지 이어졌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여러 나라의 외국어를 다룰 줄 알았던 나보코프의 면모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통해 언어유희를 벌이는 작품을 보면 그의 역량을 알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외국어실력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더 빛을 발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행복과 당연한 혜택들이 사라진 후, 기득권의 특권이 볼세비키 혁명으로 인해 사라진 나보코프는 독일, 프랑스, 미국, 스위스를 전전하며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

 

 

 

문맹의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외국어에 대한 기묘한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극복한 작가이다. 하지만, 나보코프는 외국어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 그는 아마 천재였지 않을까? 싶다. 영국에 가서 캠브리지 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할 정도였다면? 17세에 이미 시집을 펴낸 나보코프! 1922년 자신의 정신적 기둥이자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유력했던 정치인, 아버지가 암살당하면서 나보코프에겐 큰 슬픔과 생활고가 닥친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그렇다. 하나를 잃으면 또 하나를 얻게 된다. 그가 얻게 된 것은 1923년에 평생 배필, 베라 슬로님을 만나고, 1925년에 결혼하게 된다. 그의 아내는 유대인이었다. 1937년에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1940년에는 자신의 첫 영어소설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이란 소설을 들고 미국으로 재차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그의 명성과 능력은 코넬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것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또한,‘시린이 아닌 나보코프라는 이름으로 영어작가로서의 삶을 개척하게 된다.

 

 

나는 결코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러시아는 전부 나와 늘 함께 있으니까요. 문학이, 말이, 그리고 러시아에서 보낸 나 자신의 유년 시절이 나의 러시아입니다....나는 돌아가지 않습니다....그곳 사람들이 내 작품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245p)

 

 

 오래전부터 지친 노예인 

작품 속에서 게르만과 리다의 대화에서 종종 오래전부터 지친 노예인이란 말이 등장한다. 아마도 주인공 게르만 안에는 나보코프의 떠돌이 신세의 운명이 포함된 것이 아닐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의 나보코프의 운명!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 

이웃님 중에서 나보코프의 리뷰쓰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던데,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듯 하다.

솔직히,절망한번 읽어보시라!

절대 술술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냥 참고 읽는 것이다. 160, 170쪽 정도 읽으면 진도가 제대로 나갈 것이다. 그 이전에는 황망하기 그지없다. 대가가 쓴 글에 내가 농락당한 느낌? 농락은 아니더라도 작가와 독자가 이야기하는 대화체로 이끌어가면서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줄거리의 소재가 사기극인지도 모른다. ‘사기란 것 자체가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아닌가!

 

 

작가, 예술가의 '사기'

나보코프는 도대체 이 절망을 통해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걸까? 누군가 소설의 첫 문장이 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듯 한데, 한번 보자.

 

 

소설의 첫 문장이다.

 

 

나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작가이다. 더없이 우아하고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이 점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9p)

 

 

 

나보코프는 이 소설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인 사기극을 통해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한다. 그것이 때론 사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철학은 부자들의 발명품

 

출판된 원고는 매춘부에 진배없다.’

 

예술적 허구가 삶의 진실보다 더 사실적이다(139p).’

 

 

 

예술적 허구인 사기가 때론 삶의 진실에 더 근접할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문학을 대하면서 얼마나 자주 느끼는 것인가! 나보코프의 이 이야기가 다른 소설가들에 비해 덜 자전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거짓덩어리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보코프는 주인공 게르만 카를로비치와 아내 리다, 그리고 사촌 아르달리온, 그리고 늘 수상쩍게 따라다니는 분신이라 칭하는 펠릭스!(게르만이 펠릭스의 실체에 대해 사기치는 장면부터 소설의 가속도는 붙는다. 물론 다른 소설 읽을 때는 다른 가속도이다 쩝...).

 

 

 

'사기'같은 작품속에 드러난 <예술가의 절망>

스토리에 들어있는 피상적인 skin을 벗겨내면 그 안에 들어있는 기괴한 본질은 바로 예술에 대한 나보코프의 철학이며, 생각이다. 그런데, 소설의 사기극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 실패를 통해 나보코프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예술가의 절망>이 아닐까!

 

 

 

나보코프가 한 말을 들어보자.

 

 

절망의 주인공 게르만과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는 닮았다. 하지만 둘의 닮음은 한 화가가 삶의 다른 시기에 그린 용 두 마리가 닮은 경우와 같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닌 악당이다. 그렇지만, 험버트에게는 일 년에 한번 땅거미가 질 무렵 거닐도록 허락된 낙원으로 가는 푸른 오솔길이 있다. 반면 게르만은 보석금을 얼마를 내든 결코 잠시라도 지옥에서 풀려날 수 없을 것이다.’

 

 

‘...지옥에서 풀려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은 나보코프가 예술에 대해, 예술가에 대한 절망한 대목이 아닐까 한다.

 

 

소설의 줄거리를 통해 독자를 농락하는(?) 나보코프의 능력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프랑스의 지성인 사르트르조차도 나보코프의 이 작품에 대한 서평에서 실수를 했다고 한다. 분신에 대한, 펠릭스에 대한 이해 부분에서 여러 가지 착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어판 절망은 제목이 착각이었다. 무슨 첩보소설을 보는 것도 아닌데, 나보코프 자신의 말재주()를 통해서만으로도 독자를 착각으로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절망』의 러시아판과 영어판의 내용도 다소 다르다. 러시아판은 러시아문학을, 영어판은 영어문학을 다루기에 아예 작품을 새로 쓰고 고치는 작업이었다고 나보코프는 말한다. 문학동네의 절망』은 나보코프의 러시아판을 번역한 것이다.

 

 

 나보코프와 도스토예프스키 

나보코프는 왜 그토록 도스토예프스키를 싫어했을까! 의문이다. 나보코프가 작품 속에서 시대의 주류작가이자, 주류의 트렌드로 부상해서 수많은 아류작가들을 낳게 한 장본인,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 왜 싫어했을까 싶다. 작품 속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뿐만 아니라, 푸시킨, 고골, 표도르 솔로구프, 안드레이벨리 등과 같은 러시아 문학의 선배, 문학의 광인들의 작품들의 등장인물들도 등장시킨다. 가장 핵심되는 작가는 푸시킨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문맥이다.

 

 

한 예술가의 절망

나보코프가 품은 문학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얼마나 그로테스크했을까! 그런 대작가가 소유한 문학적 바운드리, 그런 천재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웅대한 것일까?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절망>이라니!... 역설적 진리인 듯 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평생 그 절망과의 싸움터 속에 있는 듯 하다.

그 싸움터에 바로 <문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학은 절망과의 싸움이 아닐까 

문학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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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7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해목 2019-01-18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개는 고사하고 1개의 언어라도 잘 말하고 싶은 저는 친구분이 그저그저 왕 부러울뿐입니다. ㅎㅎㅎㅎ
나보코프 작품 중에서는 <절망>이 좀 읽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가 저는 덤벼들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글만 읽어봐도 도끼 선생과 나보코프는 노는 물이 달라 보이는데 그래서 나보코프가 싫어하는 게 아닐까 무식한 추측을 해 봅니다. ㅋㅋ

카알벨루치 2019-01-18 09:46   좋아요 1 | URL
나보코프가 도끼의 다른 저작을 싫어했는데 <분신>만은 인정했다고 하네요 나보코프는 <절망>으로 도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절망>읽기는 회사생활 버티는 것보단 쉬워요 ㅎㅎㅎㅎ설해목님 홧팅!

oren 2019-01-18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필이면 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다 읽고 나서 거기서 제대로 다 빠져나오지도 못한 상태로(리뷰를 쓰느라 끙끙대고 있어서요...) 카알벨루치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왠지 모르게 ‘절망과의 싸움‘이라는 글의 주제와 내용들이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듯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게 되네요. 더군다나 나보코프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싫어한 이유까지도 특별히(?) 따로 언급해 주시니, 그 까닭의 일단을 다른 책에서 얼핏 엿봤던 기억도 새삼 뒤적거려 보게 되고요.^^
* * *
『죄와 벌』은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결함, 즉 어떤 특정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파심이 강해서 맹렬한 관점이 언제나 글에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그의 계획은 나자로처럼 허무와 회의에서 독자들을 일으켜 세워 러시아 정교로 개종시키려는 것이다.

체호프나 나보코프 같이 뛰어난 작가들도 그의 그런 태도를 참을 수 없어했다. 그들이 볼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술가보다는 날카로운 예언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중에서

카알벨루치 2019-01-18 13:20   좋아요 1 | URL
절망과의 싸움이라고 번역자가 이야기하던데 그게 번역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전체가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저의 조약한 글이 도움이 되셨다니 감개무량합니다(이럴땐 이모티콘 하나 딱 붙여주면 좋은데🥰)

작가, 예술가는 일종의 광기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광”끼”가 없었다면 그 작가되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싶어요~그러고 보니 러시아 작가들이 참 많습니다 ㅎㅎ도스토예프스키 읽으면 오렌님 글 참고하며 읽어야겠습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9-01-19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책중에 손꼽으라면 <롤리타>였는데 절망도 읽어봐야겠네요. 도끼의 <분신>은 본인 스스로 자부심 있는 작품인데 당시 혹평으로 망작이었다죠..그 작품을 나보코프가 인정했다니. 재미있는 부분이네요. 참고로 도끼의 초기작품은 <기난한 사람들>이 넘흐 사랑스러웠어요^^

카알벨루치 2019-01-19 11:07   좋아요 1 | URL
도끼 읽으라면 한참 걸리겠네요~제가 따라갈께용! 북프리쿠키님 오셨다!!!👏👏👏

카알벨루치 2019-01-19 11:17   좋아요 1 | URL
스치는 생각인데 도끼는 가난한 그룹이었고, 나보코프는 부유한 그룹에서 자라 서로 상반된 삶의 배경 속에서 자란 것이 서로에게 대립감과 갈등을 유발하게 한것은 아닌가 뭐 그런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만인은 평등하지만 사람마다 자기의 기준과 가치가 상이하니 자기만의 프레임에 갇힐 수도. 그들도 우리도 나도 그런 면은 있겠죠 ㅋ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아롬옛글밭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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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기 전에...

 

  미지의 인물,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에로의 여행...

알고 싶은 인물이었다.

위대한 강연가이기도 했던 그의 에피소드

 

-방황기에 서 있을 때 대구를 낀 위성도시의 한 어두운 거리, 전봇대에 꽂힌 교차로전단지에서 발굴해 낸 일화. 슈테판 츠바이크는 강연 중에 잠을 자는 이가 있음을 알고는 다시는 강연하기를 거부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안에서 에라스무스를 본다.

 

98216일 월요일...대학 졸업식 ....

 

 

 

읽고 난 후...

 

  인문주의와 세계주의를 최초로 선보인, 더 나아가 종교개혁에도 보탬이 된 중립자.

그러나, 다소 비겁함이 짙게 배여 있는 중립의 인물, 그가 바로 에라스무스Erasmus였다.

 

98417일 금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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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18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98년에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8 12:31   좋아요 0 | URL
앗!!! 앗앗!!!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습니다 ㅎ^^

카알벨루치 2019-01-18 12:53   좋아요 0 | URL
날짜를 지우든가 사건을 지우던가 해랴겠어용 ㅋ
 

생일날 포스팅을 하고싶은데 시간이 안 난다
여유가 없다 그냥 12시 지나가기 전에 내 생일이었다는 것을 도장이라도 찍고 넘어가야겠다! 참, 내 생일날 내가 읽은 책은 나보코프이다 책 제목이 <절망>이다 절망...

근데 연애할땐 12시 맞춰서 생일축하인사가 오고 그랬는데, 오늘 0시 넘어도 아무런 기척이 없는 내 폰! 역쉬 세월엔 장사가 없고 나이는 먹어가고 인지도가 이렇게 떨어져가는구나! 젠장...근데 내 손에 쥔 책은 <절망>...내가 좋아하는 나보코프의 <로리타>가 아니고 <절망>젠장! 절망적인 생일날이 될 것 같은 느낌...근데 읽고 있는 책이 절망!!! 헐~내년 생일 때는 앙드레 말로의 <희망>을 읽고 있어야 생일날이 밝은 전망을 띨까 싶기도 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루종일 지인들의 축하를 받았다
파푸아뉴기니에서도 연락이 왔다 세상 좋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정관장 쏘니 우리집으로 오네! 카톡의 위력이네!
감사하다 단 하나뿐인 인생에 그래도 나를 기억해준 지인들이 있어 감사했고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로울 수가 없다
셋째가 자다가 깨서 “아빠 생일 축하해!”하고 다시 자는데, 아... 이 감동은 또~
근데 축하받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축하해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 축하받고, 난 또 일년동안 열심히 축하해줘야지! 이것을 보면 give and take의 법칙은 진리인 듯 싶다 먼저 주라! 먼저 기억해주라!


<우리는 사람이지 않는가!>


나보코프 책이야긴 몰아서 해야겠다 한마디만 해야겠다

“나보코푸는 천재닷!”



추신:

1)절망스런 이야기: 1월 16일 내 생일인데 12시 지났다 젠장젠장!!!

2)절망스런 이야기2: 난 아시안컵 축구도 안보고 이러고 있다 젠장젠장젠장!!!!

3)티비 틀어보니 축구 루즈타임이었다ㅜㅜ그래도 이겼네! 에휴~
젠장 취소해야긋다!



하마터면 절망할 뻔했다 2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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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17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6일이었나요.
아주 조금 차이니까,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카알벨루치님,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카알벨루치 2019-01-17 00:1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한마디 안하고 가면 내자신한테 넘 미안할 듯 해서 급포스팅했네요 ^^알라디너 첫 축하 감사드려요 ㅎㅎ

2019-01-17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7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9-01-1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라디오를 들을 때 겨울에 생일축하곡으로 자주 나오던 ˝겨울 아이˝가 문득 생각나네요...
카알벨루치님, 생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1-17 00:24   좋아요 1 | URL
그 곡 20대때 노래방에서 열창했던 기억이 갑자기 납니다 감사해요 북홀릭님~태백산맥 이거 은근히 쫄깃쫄깃 하네요 북홀릭님 덕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9-01-17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카알벨루치님 생일 축하드려요^^:)

카알벨루치 2019-01-17 09:14   좋아요 1 | URL
감솨합니다 윽씨 뻘쭘합니다 ^^

syo 2019-01-17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 카알님 오신날!!

카알벨루치 2019-01-17 09:1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Syo님 ㅎㅎ

단발머리 2019-01-17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파푸아뉴기니에서도 선물 보내주는 분이라니 역시 인기가 대단하십니다!!

카알벨루치 2019-01-17 09:18   좋아요 0 | URL
인기 없어요 ㅠㅠㅋㅋ어쨌든 감사합니다~반갑긴했어여 먼데서 연락오니 ^^

설해목 2019-01-17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
내년 생일엔 꼭 생일날 축하인사를 드리겠어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7 09:23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설해목님 땡큐당케메르쉬아리가또 고맙심데이~ㅎ

잠자냥 2019-01-17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푸아뉴기니 정관장이라니 잊지 못할 생일인데요? ㅋㅋㅋ 하루 지났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아, 그런데 카알벨루치 님, 수전 손택하고 생일이 같군요?!

카알벨루치 2019-01-17 12:27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수전 손택님과 생일이 같다니!!! 황송하옵니다 ㅎㅎ파푸아뉴기니의 신혼부부가 보낸 정관장이라...잊지못할 생일 맞습니다!!! Thank u~

stella.K 2019-01-1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뭐 이렇게 궁시렁 궁시렁하십니까?
생일 축하 그냥 받으시면 되는 거죠.
생일 축하합니다!!!!!

아, 근데 다둥이 아빠셨군요. 세상 축하 받아 마땅하다는...!!
그게 더 축하받을 일 아닌가요?ㅋㅋ
게다가 국내도 아니고 파푸아뉴기니에서 정관장이라닛!
평소에 덕을 많이 베푸셨나 봅니다.
내년 생일엔 꼭 <희망>을 가슴에 품은 카알님의 인증샷을 기대하겠슴다.^^

카알벨루치 2019-01-17 14:50   좋아요 1 | URL
앙드레 지드와 앙드레 말로는 관련없는 인물이죠? 앙드레 가뇽도 있군요 ㅎㅎ축하인사 감사요! 제가 원래 좀 그래요 자기가 올려놓고 혼자 뻘쭘해하는 ㅎㅎ

근데 파푸아뉴기니가 히트네욧! ㅎㅎ 인터넷과 비자카드만 있으면 지구촌은 한지붕이네요 ㅎㅎ

stella.K 2019-01-17 15:02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앙드레 삼총사로군요.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17 15:06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4총사입니다 ..... 앙드레 김 ㅋㅋ

stella.K 2019-01-17 15:2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카알님은 어떻게 한 번을 안 지세요?
제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ㅠㅠ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17 15:56   좋아요 1 | URL
제가 스텔라님을 우찌 이깁니까^^ㅎ
 
좁은 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9
앙드레 지드 지음, 오현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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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좁은 문, 두 개의 충격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읽었다. 읽은 후 충격은 굉장히 두껍고 무거웠다. 내가 신앙을 가져서 더 그러할 것이다. 책을 읽은 후의 충격 하나!

 

충격 두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위해 한글로 열심히 글을 적었다. 이제 4/5를 쳤다. 이제 글의 피날레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한글이 뻗어버렸다. 항상 키보드 왼쪽 아래쪽에 버튼을 잘못 누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건 무슨 오류인지?(아시는 분 댓글 달아주세요! 진짜!!!) 그래도, 다시 한글을 클릭하면 임시저장한 파일이 남아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클릭! 어어어어....asv파일 맞나? 그 파일로 남아겠지....그래야 할 파일을 불러오는가 싶더니 그 메시지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안돼! 안돼!!!!!

멘붕!!! ...어찌 할꼬!

(마음을 가다듬고 샤워를 하고 애들을 재우고 컴터 앞에 앉아 다시 글을 쓴다)

 

 

 

 

2 충격은 꿈으로 나타나

독서의 여파는 꿈으로도 나타났다. 지드의 작품이 내겐 충격이 컸나보다.

꿈 이야기이다.

대학원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여차저차해서 내가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꿈이었다. 수군수군거리고 조롱당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비천한 지경에 처해진 모양새였다. 피부로 확 느꼈다. 그러면서 잠을 깼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던진 질문은?

 

내 인생이 비천하게 멸시당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을까?였다.

 

그러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난의 대가, Job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성경을 좀 아는 분이라면, 욥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으로 인해 고통의 담금질을 당한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꿈을 깬 후에 내 삶이 이대로 흘러가 죽음을 맞이한대도 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있을까? 란 질문을 곱씹는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는데... 내 삶이 계속 시궁창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있는가란 테제가 머릿속에서 감돌았다.

 

<내 모든 것을 잃고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을까?>

 

비천하기 짝이 없는 내 글이지만, 내 사랑하는 글이 쓰레기취급을 당하고 내 인생이 맨홀 뚜껑 아래,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때도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이었다.

왜 이런 질문들이 연달아 나왔는가?

 

바로 좁은 문의 알리사 때문이었다. 알리사는 제롬의 연인이었다. 하지만, 알리사는 끝내 처절한 구도자의 고행의 길을 선택한다. 그 알리사를 보면서 나는 이런 꿈을 꾸었고, 이런 생각들이 내 존재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내가 신비주의자인가?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다. 이건 내 삶의 스토리이니.

 

 

 

3 <좁은 문>인가?

좁은 길, 좁은 문, 왜 그럴까?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길은, 주여, 좁은 길이옵니다. 좁아서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는 길이옵니다.”(178p)

 

<좁은 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해석을 밝혀본다.

 

첫째, 좁은 문이란 것은 혼자서만 가는, 둘도 셋도 아닌, <혼자서만 가야 하는 길과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이다. 그 길은 <영원하고 전능하신 이신 하나님과 나>라는 존재만의 관계에서만 유통되어지는 길이요, 문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죄렌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앞에선 단독자라는 말이다.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죽음 이후의 영원한 심판, 그 영원한 심판대 앞에 설 때는 모두가 혼자서 오롯이 그 case by case를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에누리가 없다.

 

 

 

둘째, 좁은 문이란 <죽음의 문>이기도 하다. 죽음은 혼자서 죽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쥴리엣처럼 동반자살하는 경우도 있지만(그 커플도 시간 차는 있었다), 사람은 모두다 자신의 죽음을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죽는다는 리얼리티 앞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셋째, 좁은 문은 고독한 한 영혼의 <존재Sein로서 들어가는 문>이다. 한 사람, 한 영혼이 한 평생 가졌던 업적과 공로와 성취와 재력과 사람들을 안고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벌거벗은 한 가련한 영혼Soul이 자신의 존재만을 가지고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인 것이다. 존재의 모든 악세사리를 벗기고 벌거벗은 채로 들어가는 또 한 사람의 아담이자, 이브가 되는 셈이다.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는 관 밖으로 자신의 빈 손으로 내놓은 채 장례식을 치뤘다고 하지 않는가! 역시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다운 위대한 장면이다. 좁은 문은 한 존재의 벌거벗은 상태로 가는 문이기에 좁은 문이다.

 

 

 

 

알리사의 구도자의 행보에 동의할 순 없다

이 작품을 흔히 청교도주의적 이상주의라고 명명한다. 그 안에 바로 알리사가 있고, 제롬이 있다. 제롬이란 이름은 초대기독교 교회 신학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거기서 앙드레 지드가 따왔는지는 모르겠다. 알리사와 제롬의 끊임없는 평행선 긋기! 알리사는 여동생 쥴리에트에 대한 부채의식 외에도 당여한 행복, 당연한 연애, 당연한 결혼, 당연한 인생을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거부한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5 Not 고행, But 훈련

알리사의 인생에 필요한 것은 고행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청교도적 이상에 목을 맨다. 쥴리에트에 대한 트라우마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나아간 것 같다. 쥴리엣은 표피적으로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나갔다. 물론 그것은 표피적인 모습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고행이 아니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알리사는 하나님께 더 나아가기 위해 당연한 모든 행복의 요소들과 거리를 둔다. 제롬이 아니면 안 되는 알리사였지만, 제롬을 포기한다. 의도적으로, 계속적으로, 의지적으로 포기한다. 결국 남는 것은 두 사람 가슴에 남는 상처였다. 알리사도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구도자의 길을 끝까지 간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필요한 것은 억지스럽고 억압적인 고행이 아니다. 신앙을 가진 구도자라면, 그런 자학적인 고행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계속적인 훈련(discipline)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지드는 알리사와 제롬은 그런 구도로 설정한다. 그 시대에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융통성 없는 이상이 두 사람을 질식하게 만들었고, 결국 알리사는 정신적인 피로 끝에 쓸쓸하게 죽어간다. 읽는 독자는 숨이 막힌다.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는 늘 불안의 현이 튕긴다. 그것이 지드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주 자기 부인’, ‘자기 희생을 강조하셨고, 심지어 자신도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하지만, 알리사가 이야기한 이런 방식은 아니다. 내가 이 고전을 읽고 느낀 점은 바로 <진리가 무엇인가>이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진리를 문서, 텍스트, 율법의 텍스트라고 생각했다. 그 율법은 yes 아니면 no의 삶이었고, 그것은 규칙이었고 법칙이었다. 거기에 매달리면 사람이 숨을 쉴 수가 없다. 종교지도자들은 그 텍스트 위에(over)에서 기득권에 목맸고, 백성들(종교가들은 백성들을 땅의 사람들: 암하레쯔라고 율법도 모르는 무식한 이라고 조롱했다)을 무시하면서도 토라의 텍스트, 그 율법을 강요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알리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고행스런 구도자의 삶이었다. 하지만 알리사는 신적사랑으로 가기 위해 에로스가 거세된 그 길을 억지스레 끌고 간다. 제롬도 알리사가 걸어간 그 길, 쥴리에트가 말한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랑’(196p)에 목매는 것을 보고 울부짖는다. 결코 고행이 답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No Cross, No Crown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알리사와 제롬에게 이렇게 대입,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도 본다. 비평가들은 이 구도를 가지고 앙드레 지드의 도덕주의의 편견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알리사란 인물은 앙드레 지드가 어릴 적 사랑했던 사촌누이의 상징이기도 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진리는 정형화되고, 고착화되고, 문서화된 율법덩어리였다. 그 덩어리는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워줬다. 알리사와 제롬의 고통스런 이상을 향한 구도자의 길은 말 그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었다. 좁은 길, 좁은 문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도그마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진리는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일어나게 하며, 생명을 움트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지드는 엄격한 그리스도교의 윤리에 지친 을씨년스런 그림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

 

앙드레 지드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진리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 시달린 수많은 알리사와 제롬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율법덩어리가 아니라 사랑덩어리이시다.

 

 

 

 

진리는 숨 막히지 않는다. 진리는 날 숨쉬게 한다.

나는 그 진리 속에서 때론 일탈과 방황과 방랑의 삶을 살기도 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러하다(내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는 충분히 탈선의 여지가 많은 죄인이다...). 어떡하다 보니, 글이 자전적 고백형식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내 스타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은 大作이다.

 

앙드레 지드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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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9-01-12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스팅하기까지 정말 좁은문을 지나셨군요. 허허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끝까지 포스팅하신 카알벨루치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2 10: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잠자냥의 댓글에 함빡 웃었네요 감사합니다 ^^ㅎㅎ잠자냥 질주에 비하면 전 완보로 가는거라 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2 12:16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미안합니다 제가 님짜리를 어디다 빼먹고 그러는지 ㅡㅡ; 그것도 두번씩이나 죄송합니다 읔~ㅜㅜ즐거운 날 되십쇼!

잠자냥 2019-01-12 17:10   좋아요 1 | URL
푸하하 아닙니다. 님 자 빼먹은 줄도 몰랐네요. 또 빼먹으면 어떻습니까.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12 17:12   좋아요 0 | URL
난 잠자냥님 연령대를 갸늠할 수가 없시요 나중에 알아맞춰야겠어요 ㅎ

syo 2019-01-12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써내셨군요. 대단하십니다 ㅎㅎ
저같았으면 에라이프로그래머것들아!!! 이러고는 이불 뒤집어썼을텐데....👏👏👏

카알벨루치 2019-01-12 12:14   좋아요 0 | URL
다시 쓰는게 힘든거지만 그래도 다시 앉으니 써져서 다행입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2 12:1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9-01-12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묵직하고 좋은 책만 읽으시구...흥! 3=33

카알벨루치 2019-01-12 15:36   좋아요 0 | URL
전 다만 닥치는 대로 읽을 뿐이오니 넘 괘념치 마소서 ~ㅋ

페크(pek0501) 2019-01-13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전을 끼어 읽기, 로 해서 데미안을 사 놨어요. 좁은 문, 데미안. 둘 다 오래전에 읽었는데
데미안을 다시 읽기로 했어요. 유명한 구절만 생각날 뿐이어서.
고전 읽기, 하시는 님을 응원합니다. 응원의 소리 쫙쫙쫙!!!!!

카알벨루치 2019-01-13 13:03   좋아요 1 | URL
응원 받고 또 달려갈랍니다 감사해요^^

cyrus 2019-01-14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좁은 문>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볼 때마다 고구마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14 17:09   좋아요 0 | URL
목이 맥힐 정도로 ㅎㅎ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를 밝히는, ()을 밝히는 색녀?

나는 이 책을 펼쳤다. 남녀의 섹스 과정을 보여주는 옷들의 무질서한 배열을 보여주는, 에로티시즘을 유발케 하는 사진들...그리고, 남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쓴 글에 조금은 식상했다. 그래서 읽기를 멈췄다.

 

아니! 아니 에르노는 늘 밝히기만 하는가?

 

 

그러다가 이 문장을 접했다.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힘든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 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71p)

 

그리고서 읽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에 대한 나의 색녀의 편견은 사라졌다. 그녀가 유방암에 걸렸단다.

 

그러면서 질문을 한다.

 

내가 만약 암(유방암)에 걸렸다면, 욕망에 치중할 수 있을까?”

 

 

 

사진은 그녀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 머무는 욕망

그녀의 사진들은 삶과 죽음 가운데 머무는 욕망이었다.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역사를 동학(動學) dynamics’이라고 했다. 아니 에르노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욕망의 동학이다. 유방암이 걸려 죽음을 생각하면서 병원 퀴리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그녀는 단테의 문장을 떠올렸다.

 

이곳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다.”

 

  

사진은 그녀의 <생존 의지>와도 같았다

암이란 낯선 불청객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녀가 느낀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죽음의 기운이 아닌 자신의 살아있음의 기운과 에너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욕망의 생기를 통해 살아있음을, 생존의 단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일종의 생존의지같아 보였다.

 

 

 

그녀의 벌거벗은 글쓰기

글쓰기, 그것은 하나가 되었다가 또 다시 분리되는 행위이다. 가끔 두렵기도 하다. 글이라는 자신의 공간을 내놓은 일은 자신의 성기를 내놓는 것보다 더 폭력적이다.’(49p)

 

어느 날, (M)는 내게 당신은 글을 쓰기 위해 암에 걸린 거야.”(60p)

 

나는 삶이 글의 소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위한 미지의 기획을 원한다(61p).

 

 

 

 

아니 에르노는 폭로disclosure의 대가이다.

프랑스 여성들의 11%가 유방암에 걸렸고, 유방암을 앓고 있다. 3백만 여성이 넘는다. 꿰매고, 스캔하고, 붉은색, 파란색 그림으로 표시하고, 방사선을 쬐고, 재건한 삼백만의 가슴이 셔츠와 티셔츠 안에 감춰져 있다.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언젠가는 과감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내가 내 가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 드러냄의 의지에 동참하는 것이다(93p).’

 

내게 글쓰기란 모든 감각의 정지 상태다. 다만 그것을 탄생시키고 일으킬 뿐이다(115p).

 

 

 

 

나를 향한, 나를 위한 글쓰기

나는 그가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와 상관없이 세상을 향하기를, 내 경우는, 그가 내 것을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를 고려하여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단순히 사진에서 그리고 현재의 구체적인 흔적에서 내가 이중으로 매료되었던 것들을 탐색하여 하나의 텍스트 안에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173p)

 

 

 

그녀의 글의 목적과 방향과 의도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결코 나쁜 의미가 아님)이고 개인주의적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한 사람이라도 나의 글을 읽을 독자(?)를 향해서 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독자는 세상 그 어떤 누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가장 또렷한 독자, 단 하나의 청중(the audience of one)이다. 페이퍼를 쓸 때마다 느낀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쓰는가? 작가도 아닌 내가 누굴 위해 종을 울리며, 누굴 위해 이 글을 적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서민 교수는 리뷰나 서평을 적을 때, 스포일러를 방출하지 말라고 했다. 난 그게 잘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글을 읽을 때,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디테일한 것을 기억하고 싶고 곱씹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당연히 스포일러가 방출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적지 않는다면, 닳아져 가고 나빠져 가는 나의 기억과 뇌를 위해 누가 위로해준단 말인가!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 이해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을 위한 글쓰기의 정신과 본질이 너무나 충실한 작가이다. 그게 없으면 아니 에르노의 매력은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의 어느 여류작가가 자신의 애정행각 이후의 사진과 함께 글을 실어 출판할 용기가 있을까? 아니 에르노이기 때문에,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출판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진의 용도>를 읽으면서 아니 에르노의 철학과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별점을 원래 2-3개 정도만 주려고 했다. 하지만, 완독한 이후에 별 5개를 과감없이 준다.

 

 

나는 <진부한 것을 추방하는 것을 목격한 우연한 관객>이다

 

아니 에르노는 진부한 사진, 진부한 모양새와 형식을 벗어버리고 거기서 생존의지를 보여준다.

 

 

 

 

몸의 증발, 죽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의 몸이 증발하고, 남은 것은 옷뿐인 것이다.’(103p)

 

유방암에 걸려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도, 온 몸에 의료기구가 달려 있으면서도 그녀는 섹스를 했다. 그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었고, 생존에 대한 무겁고도 심각한 갈망이었다.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어떤 사진도 지속성을 나타내진 않는다. 사진은 대상을 순간에 가두어 버린다.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14-115p)

 

우리들의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내 육체의 소멸을 본다. 그러나 그곳에 더는 내 손이나 얼굴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걸을 수 없다는 것, 먹을 수 없다는 것, 성교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소멸이다. 나는 몇 번이고 내 사고가 다른 곳에서 계속될 수 있다면 죽음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그녀가 두려워한 죽음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고의 죽음, 사고의 소멸이었다. 얼마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각하고 사유하고 철학한 여인인가! 그래서 <사진의 용도>는 별 5!

 

 

 

이제 나는 과학적, 철학적, 예술적인 모든 연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무()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임을, 그리고 무의 그림자가 어떤 형태로든 글을 따라 배회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무용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페드르, 고백6, 보바리 부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구토, 바흐, 모차르트, 와토와 실레 그림 속의 그 그림자.’(126p)

 

 

 

삶을 삶되게 만드는 것은 욕망이다?

나는 세일이라는 상품이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 가치하락과 사물, 보수가 매우 좋지 않은 일에 대한 모독으로 이뤄진 매혹적인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특징 없는 옷들과는 거리가 먼, 사랑을 나눈 후 버려진 우리들의 옷들의 작품들을 다정하게 생각했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내게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에게 존엄성을 돌려주는 것이자,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의 <신성한 제복>을 만들려는 시도로도 보였다.’(159p)

 

아니 에르노는 모든 옷이 상품에서 출발하지만, 욕망을 거쳐간 옷은 다르다는 것, ‘다정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 욕망은 단순한 리비도libido가 아니라 삶에 대한 욕망이자, 갈구이다.

 

 

 

아니 에르노의 <The Voice Within>

이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The Voice Within>을 많이 듣게 되었다. 가사의 내용도 좋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우리가 젊을 때 익히 들었던 뮤지션 아닌가! 혹자는 에드립이 너무 심해서 싫어한다고 하지만, 아길레라는 아길레라 대로의 멋이 있는 법이다. 마치 아니 에르노가 아니 에르노 대로의 멋이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니 에르노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The Voice Within’을 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곡을 애청했던 아니 에르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아니 에르노와 그의 연인 마크 마리가 뽑은 탑 나인 곡 중에서 이 곡이 제일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뮤지션과 익숙해서인지도 모르지만. 가사가 너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nA2k79EGHbc

 

 

 

The Voice Within - Christina Aguilera

 

Young girl, don't cry

I'll be right here when your world starts to fall

Young girl, it's all right

Your tears will dry, you'll soon be free to fly

 

 

When you're safe inside your room you tend to dream

Of a place where nothing's harder than it seems

No one ever wants or bothers to explain

Of the heartache life can bring and what it means

 

 

When there's no one else Look inside yourself

Like your oldest friend Just trust the voice within

Then you'll find the strength That will guide your way

If you will learn to begin To trust the voice within

 

Young girl, don't hide

You'll never change if you just run away

Young girl, just hold tight

And soon you're gonna see your brighter day

 

 

Now in a world where innocence is quickly claimed

It's so hard to stand your ground when you're so afraid

No one reaches out a hand for you to hold

When you're lost outside look inside to your soul

 

 

Yeah...

Life is a journey

It can take you anywhere you choose to go

As long as you're learning

You'll find all you'll ever need to know

 

 

You'll make it You'll make it

Just don't go forsaking yourself

No one can stop you

You know that I'm talking to you

 

 

Young girl don't cry

I'll be right here when your world starts to fall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아니 에르노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라 더 인간적인 매력이 간다. 인제 80대에 접어든 그녀에게 더 많은 글을 기대하는 것은 내 욕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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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0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1-10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니 에르노는 늘 밝히기만 하는가? ㅋㅋㅋㅋ
저도 아니 에르노는 별로 읽을 마음이 없는데
카알님 오늘 글 읽어보니까 생각이 좀 달라지네요.

저는 서재 활동을 하면서 스포일러란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피해야할 것이고 꺼려해야할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 들어요. 알라딘 서재는 얼마 전부터 아예 체크 블라인드까지
설치했잖아요. 내가 남의 글을 도용할 생각이 없고 출처를 밝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더군요.
물론 스포일러 너무 난발해도 그렇지만 글 쓰기의 자유를 위해선
당연한 건데 마치 그거하면 큰일 날 것처럼 한다는 게 전 좀 그래요.
외국도 그렇까요?

카알벨루치 2019-01-10 14:12   좋아요 1 | URL
체크 블라인드는 좋은것 같아요 ~스포에 대한 좋은 에피소드가 있죠 한 친구가 극장을 나왔죠 사람들은 그친구가 본 영화를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네요 그 친구 버스를 타고 가면서 줄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범인은 누구야!!!!”라고 외쳤다는 이야기.

추리나 스릴러물 소설은 결과를 알면 진 빠지죠 ㅋㅋ 외국은 안 살아봐서 몰라유~프쉬케님이나 로라님이나 transient guest님한테 물어봅시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