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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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라면, 가을에는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두 상의 기준은 등단 10년이다. 전자는 등단 10년 이내, 후자는 10년이 지난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등단 10년 이내 작가는 주로 젊은 편이기에 뭐든 해보려는 젊은 에너지가 넘친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이때문에 봄이면 문학 커뮤니티는 시끌시끌하다.


등단 10년이 넘은 작가들은 어느정도 초연함이 느껴진다. 뭔가 중년의 안정감이랄까, 하하하. 문장도 성기지 않고 잘 읽힌다. 대체로 무난하고 논쟁거리보다는 아름다운 소묘의 느낌을 풍긴다. 그래서인지 주목도는 ‘젊은작가상’이 훨씬 높지만, 나는 ‘김승옥문학상’을 선호한다.


각 단편을 소개하면서 느낌을 말하고 싶지만 그럴 깜냥은 되지 못하고, 전체적인 느낌은 뭐랄까, 성인이 되어서도 이기지 못하는 사회의 짐과 굴레가 가득한 소설집이라고 하겠다. 이는 표제작인 ‘포도밭 묘지’(편혜영)에서 가장 잘 느껴진다. 역시 편혜영 작가는  암울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잘 쓰는 것 같다. 이야기 안에서 발생한 갈등(개인 - 개인이든, 개인 - 사회든)을 봉합하지 않고 끝맺음하여 찜찜한 느낌을 주는 것도 여전하다.


‘진주의 결말’(김연수)에서는 사회가 한 인물에게 부여하는 부정적인 이야기와 이에 재귀적으로 동조하는 사회를 보여주며, 자극적인 것만을 따라가는 우리의 모습을 묘사한다. 하지만 ‘홈파티’(김애란)에서는 기득권이라 칭할 수 있는 인물들의 민낯을 보기좋게 깨부수면서 오롯이 자신을 드러낸다. ‘일시적인 일탈’(정한아)도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내면과 욕망을 들여다본다.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근래의 10.29 참사(이태원 압사 사고)와 이어져서 뜻깊게 읽힌다. 이 단편에서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겪은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소설과 논문으로 쓰려고 한다.


> 경험을 소설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을 논문으로 만든다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애초에 소설과 논문은 같은 영역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그 둘이 같은 차원(글쓰기)이기는 하다면 경험은 아예 다른 차원(실재)의 일이니까.  _187쪽,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 당사자가 아닌 나는 글로 사건을 접한다. 처음에는 뉴스 기사로 읽고, 나중에는 심층적으로 사회학, 인문학적으로 다뤄지고 분석된 글로 읽는다. 하지만 당사자의 경험을 인지할 생각은 못한다. 그것은 극한의 공감의 영역인데, 사실 이건 불가능하다. 글로는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나는 10.29 참사를, 아니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 가장 환한 단편이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흑설탕 캔디’와 결이 비슷한 단편이다. 메시지가 아주 직설적이고 단순해서인지 마음에 쏙 들었다.


>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우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_236쪽, ‘아주 환한 날들’에서


세월이 흘러 온갖 이별과 상실을 알았음에도, 우리는 사랑을 잃지 않고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사는 존재라는 걸 소설을 통해 깨닫는다. 각박한 세상에서도 희망을 갖고 사는 건 나를 믿고, 내 주위의 다정한 사람들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서는 종국에도 사랑과 신뢰가 피어날 테니.


잡담이 길어졌다. 좋은 책이어서 그런가 보다. 두고 읽을만하다. 단편들이 실린 작품집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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