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 가면서 알게 된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한 싸움이나 승부가 명확하게 갈리는 일은 스포츠 경기에서나 벌어지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모두가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 P195196

어쨌든 세희는 거짓말쟁이였다. 사연이야 있을 수 있어도 그 애가 저지른 일들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 P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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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독이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 내적인 소양이나 태도입니다. - P42

우정과 공동체 의식은 무엇보다도 내적인 자질이며 이 내적인 자질을 인정하면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은, 훨씬 더 큰 실재를 유쾌하게 표현하는 일입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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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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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윤우섭 옮김, 현대지성)
-feat. 다북다복 3rd.

톨스토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에는 단편 소설 세 편이 실려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일꾼‘, ‘세 죽음‘으로, 모두 죽음을 소재로 쓴다. 독서모임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만 다루었다. ‘세 죽음‘은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나 ‘주인과 일꾼‘처럼 죽음을 맞는 사람의 내면을 다루지는 않는다.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마지막에 나무의 죽음을 에피소드로 쓴다는 점이 신선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장에서 이반 일리치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반 일리치는 어떻게 살았기에 아무도 진정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사람이 없나, 하고 생각했는데 뒤에 읽어보니 매우 평범하게 산 인물이었다.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품위를 유지하기에 적절한 돈과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 빈트 게임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렸다. 이런 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음을 앞두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에 대한 증오와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빛 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농부 게라심이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기에,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산다. 이반 일리치가 죽기 전에 깨달은 진리는, 게라심을 만나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이방인], [고도를 기다리며]와 함께 읽어서인지, 까뮈와 베케트의 관점으로 죽음을 생각하던 차였다. 까뮈에 의하면, 무의미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힘쓰는 데서 부조리를 느끼지만, 죽을 이유가 없으므로 산다. 이런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를 누린다.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리며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산다. 나는 고도를 ‘잘 죽는 죽음‘이라 했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반 일리치는 잘 살지 못해 죽음 앞에서 괴로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부위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까지도 오래 걸렸고(우리의 문제도 본질은 삶과 죽음의 문제일 텐데, 문제 자체에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니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옳은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인 것은 죽기 한 시간 전이었다.
아직까지도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 변하지 않음에 체념하기도 한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가 내 속에 정립되어 있지 않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열심을 내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타인의 것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물리적 경계의 축소가 필요한 것 같다.-작품해설에 ‘주인공의 물리적 경계가 작아질수록 생각의 세계는 넓어지는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내가 생각이 많은 것은, 물리적 활동 반경이 좁고 잘 움직이지 않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을 죽음과 오롯이 대면하는 데 쓰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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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뮈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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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오증자 옮김, 민음사)
-feat. 고질독 26기

📚질문 만들기
1. 작가 조사
2. 그 사람 말만 믿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3. 포조는 왜 제대로 답하지 않았을까요?
4. 다른 사람이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
5. 가명을 쓰는 까닭은?
6. 둘은 왜 붙어 다니는 걸까요?
7.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은?
8. 무엇을 기다린 적 있나요?
9. 습관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10. 기억할 일과 기억하지 않을 일을 구분해야 할까요?

5번까지는 1부, 10번까지는 2부 이야기다. 1부는 주로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내용으로 질문을 만들었고, 2부는 ‘평생에 걸친 행동(습관)‘을 주제로 삼았다. 기다림, 기억, 습관(버릇). 특히 습관에 대한 글을 쓸 때는 파스칼의 [팡세]가 많이 생각났다.

📚내가 뽑은 질문: 습관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근에 [팡세]를 읽었다. [팡세]에 유명한 말이 있다. ‘습관은 제2의 본성이다.‘(241-(93)) 이 문구를 읽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이 말은 기억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 글을 보자마자 갑자기 마음에 와 닿았다. 아, 내가 습관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습관의 힘을 얕보았구나.
블라디미르가 말하는 이 말속의 ‘버릇‘이, 다르게 이야기하면 ‘습관‘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사람은 고도를 기다리며 이치에 닿는 것 같은 ‘습관‘을 반복적으로 행한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습관‘. 에스트라공이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습관으로 행동(말)했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고도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를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김연아에게는 올림픽 금메달, 혹은 그랜드슬램 달성이었을까. 어쩌면 잘 죽는 죽음은,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감
이 책도 까뮈의 [이방인]처럼 부조리를 주제로 읽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갔는데, 2부까지 읽다보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가치 없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게 시지프 신화와 연결되고, 까뮈의 부조리와 연결된다. 까뮈는 반항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베케트는 그 반항을 ‘기억하지 않는 습관‘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냐고 묻는 인터뷰에서, 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책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는 고도를 (잘 죽는) 죽음으로 보았다. [이방인]도 죽음을 주목하며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 사는가, 를 다루고 있고, 같이 읽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죽음을 다루고 있어서, 죽음을 계속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면 삶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는 까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만으로도 40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삶의 의미를 다시금 점검하는 시기인가 싶다.

📚독서모임
독서모임 참여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버스 안에서부터 들으면서 와서 집에 와서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역시 독서모임은 놓칠 수 없다.

🔑인물탐구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 덤앤더머.
얘네 행동하는 게 딱 덤앤더머다. 고고는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디디는 기억하려 한다. 그거 가지고 계속 아웅다웅한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놀이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말과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까미가 말한 부조리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포조와 럭키: 서로 속박된 관계.
럭키는 포조의 종이다. 그런데 럭키는 자유로워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포조가 럭키를 버릴 거라고 하니까 럭키는 슬퍼했다. 포조는 럭키의 목줄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포조도 결국은 장님이 되어 럭키가 가는 방향으로 (럭키의 목)줄을 잡고 간다. 서로를 구속한다.
📌소년: 아이히만.
소년은 생각이 없다. 고고와 디디에게 고도의 말을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만 할 뿐이다. 그리고 소년의 말은 항상 같다. 오늘도 고도가 못 와요, 그러나 내일은 꼭 온대요. 생각 없이 전달만 한다는 점에서, 아이히만이 유태인 학살할 때 위에서 시키니까 했어요, 하는 거랑 별 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지 아이히만보다 소년이 소극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분은 소년이 고도가 온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들으니 목사님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재림주로 오십니다.˝, ˝2000년 동안 안 오셨는데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는 무한루프로 말해야 하니, 고도가 예수님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독서모임 땐 말하지 않았지만, 이 책 읽으면서 이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고고와 디디도 종종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상기시킨다.

독서모임 때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전달만 하고, 고고와 디디는 찾아나서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참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점은, 얘네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나의 ‘고도‘는?
위에 있는 질문에도 있지만,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므로 ‘잘 죽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기다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고, 이것을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습관에 주목했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반복하는 습관.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복하는 습관. 잘 죽는 것은 좋은 습관을 가진 자가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리더님이 ‘좋은 습관이란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셔서 ‘성실‘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성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것도 성실하게 하는 것. 어쩌면 ‘성실‘이 아니라 ‘일관성‘이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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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법 만드는 아이들 - 어린이를 위한 민주 시민 교육 동화 아이들 시리즈
옥효진 지음, 김미연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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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효진선생님 책으로는 두 번째 읽은 책이다.-처음 읽은 책은 [세금 내는 아이들]이다. [세금 내는 아이들]을 잘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 교육에(정확하게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하는 일) 관심이 있다면 봐도 괜찮겠다. 고학년이 읽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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