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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도를 기다리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뮈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오증자 옮김, 민음사)
-feat. 고질독 26기
📚질문 만들기
1. 작가 조사
2. 그 사람 말만 믿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3. 포조는 왜 제대로 답하지 않았을까요?
4. 다른 사람이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
5. 가명을 쓰는 까닭은?
6. 둘은 왜 붙어 다니는 걸까요?
7.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은?
8. 무엇을 기다린 적 있나요?
9. 습관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10. 기억할 일과 기억하지 않을 일을 구분해야 할까요?
5번까지는 1부, 10번까지는 2부 이야기다. 1부는 주로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내용으로 질문을 만들었고, 2부는 ‘평생에 걸친 행동(습관)‘을 주제로 삼았다. 기다림, 기억, 습관(버릇). 특히 습관에 대한 글을 쓸 때는 파스칼의 [팡세]가 많이 생각났다.
📚내가 뽑은 질문: 습관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근에 [팡세]를 읽었다. [팡세]에 유명한 말이 있다. ‘습관은 제2의 본성이다.‘(241-(93)) 이 문구를 읽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이 말은 기억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 글을 보자마자 갑자기 마음에 와 닿았다. 아, 내가 습관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습관의 힘을 얕보았구나.
블라디미르가 말하는 이 말속의 ‘버릇‘이, 다르게 이야기하면 ‘습관‘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사람은 고도를 기다리며 이치에 닿는 것 같은 ‘습관‘을 반복적으로 행한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습관‘. 에스트라공이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습관으로 행동(말)했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고도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를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김연아에게는 올림픽 금메달, 혹은 그랜드슬램 달성이었을까. 어쩌면 잘 죽는 죽음은,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감
이 책도 까뮈의 [이방인]처럼 부조리를 주제로 읽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갔는데, 2부까지 읽다보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가치 없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게 시지프 신화와 연결되고, 까뮈의 부조리와 연결된다. 까뮈는 반항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베케트는 그 반항을 ‘기억하지 않는 습관‘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냐고 묻는 인터뷰에서, 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책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는 고도를 (잘 죽는) 죽음으로 보았다. [이방인]도 죽음을 주목하며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 사는가, 를 다루고 있고, 같이 읽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죽음을 다루고 있어서, 죽음을 계속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면 삶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는 까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만으로도 40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삶의 의미를 다시금 점검하는 시기인가 싶다.
📚독서모임
독서모임 참여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버스 안에서부터 들으면서 와서 집에 와서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역시 독서모임은 놓칠 수 없다.
🔑인물탐구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 덤앤더머.
얘네 행동하는 게 딱 덤앤더머다. 고고는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디디는 기억하려 한다. 그거 가지고 계속 아웅다웅한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놀이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말과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까미가 말한 부조리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포조와 럭키: 서로 속박된 관계.
럭키는 포조의 종이다. 그런데 럭키는 자유로워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포조가 럭키를 버릴 거라고 하니까 럭키는 슬퍼했다. 포조는 럭키의 목줄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포조도 결국은 장님이 되어 럭키가 가는 방향으로 (럭키의 목)줄을 잡고 간다. 서로를 구속한다.
📌소년: 아이히만.
소년은 생각이 없다. 고고와 디디에게 고도의 말을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만 할 뿐이다. 그리고 소년의 말은 항상 같다. 오늘도 고도가 못 와요, 그러나 내일은 꼭 온대요. 생각 없이 전달만 한다는 점에서, 아이히만이 유태인 학살할 때 위에서 시키니까 했어요, 하는 거랑 별 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지 아이히만보다 소년이 소극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분은 소년이 고도가 온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들으니 목사님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재림주로 오십니다.˝, ˝2000년 동안 안 오셨는데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는 무한루프로 말해야 하니, 고도가 예수님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독서모임 땐 말하지 않았지만, 이 책 읽으면서 이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고고와 디디도 종종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상기시킨다.
독서모임 때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전달만 하고, 고고와 디디는 찾아나서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참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점은, 얘네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나의 ‘고도‘는?
위에 있는 질문에도 있지만,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므로 ‘잘 죽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기다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고, 이것을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습관에 주목했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반복하는 습관.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복하는 습관. 잘 죽는 것은 좋은 습관을 가진 자가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리더님이 ‘좋은 습관이란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셔서 ‘성실‘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성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것도 성실하게 하는 것. 어쩌면 ‘성실‘이 아니라 ‘일관성‘이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