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맘먹고 드디어 아이팟을 질러버렸다. 주말에 거의 반 충동에 못이겨 사고야 말았는데 어제 물건이 도착해서 기대어린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다.

인터파크에서 314,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샀는데, 옵션으로 10,000원을 주고 추가 구매한 투명 케이스는 실망이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실망스러워서 사진으로 올리기도 싫다. 대신 아이팟 자체는 정말 이쁘고 앙징맞은 디자인에 아이팟을 유명하게 한 디자인 중 하나인 원형 터치 휠은 가히 애플다운 아이디어의 집약체인 듯 보였다.
포장상태도 역시 불만족 스러웠다. 내가 구입한 기종은 30GB HDD 타입인데 HDD 특성상 충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충전재를 채워서 충격에 대비해주는 센스가 아쉽다.
이게 포장의 전부이다. 다만 아이팟 제품 자체 포장은 꽤 내구성이 있어보였다.
아이팟 포장은 CD 크기의 박스에 한 쪽은 아이팟이 꼭 파묻혀 있고, 다른 한 쪽은 박스안에 설명서와 CD, 이어폰 등이 들어 있었다.
내가 구입한 기종은 iPod video 30GB인데 목에 걸기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이럭 저럭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없는 무게감이었다.

마지막으로 디자인 감상을 위해 앞, 뒷면 사진을 올릴까한다. 한가지 주의해줄 것은 구입하자말자 구입시 붙어 있는 앞면의 보호필름을 띄기전에 미리 보호필름을 구입해두는 센스와 뒷면이 쉽게 긁힐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보호케이스를 구입하라는 점이다.
난 결국 판매사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실리콘 재질의 케이스에 당분간 만족하기로 했다.
번들 이어폰은 오늘 하루종일 들어봤는데 음질이 너무 밋밋해서 나중에 괜찮은 놈으로 하나 장만을 해야할 것 같다. 케이스 때문에 터치휠의 동작성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염려를 했는데 놀라우리만큼 잘 반응한다. 이번 구입은 아이팟 본체에 대한 걸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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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가장 정직한 정치 교과서 서해클래식 5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재일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위인들의 행적에 대한 지식보다 더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제 지식은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고대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얻은 것들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심사숙고하며 검토해 왔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이 자그마한 책자에 간략하게 담아 전하께 바칩니다.
...
저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주제를 묘사하고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세련된 미사여구, 과장된 단어나 고상한 표현법, 또는 외관상 아름다움을 위한 심심풀이 기교 따위로 이 책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영예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이 책의 독창성과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이 인정 받는 것이며, 그것은 제 바람이기도 합니다." (헌사 중에서)


"프랑스인은 정치를 모른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마키아벨리. 제조업과 상업을 바탕으로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 금융업이 꽃피웠던 피렌체의 내치와 외치 업무를 관장하며 18년간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던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군주정의 복귀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반역의 죄명으로 옥고까지 치룬후, 시골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한 그가 다시금 정치적 재기를 꿈꾸며 자신의 18년 공직 생활을 바탕으로 조국 피렌체의 부국강병을 꿈꾸며 탄생시킨 역작이 '군주론'이다.

군주론과 마키아벨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책이요, 작가이지만 창피하게도 고등학교 때 제목과 저자만을 외웠던 기억외에 실제 읽어보지는 못했었던 수많은 고전중의 하나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강력한 군주정이야말로 국가를 통합시키고 주변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치켜낼 수 있음을 역설하고 그러한 군주국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을 사례를 들어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 자신은 이미 권력에서 밀려남으로 이러한 역작 조차도 책상물림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조국 피렌체, 나아가 이탈리아의 진정한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데도 실패하였다.

마키아벨리가 주창한 군주는 한마디로 '교활하기가 여우같으며, 강력한 사자와 같은 힘'을 가진 냉혹하고 철저하게 계산적이면서도 잔혹스러운 괴물과 같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하긴 최근 개봉한 '괴물'이라는 영화도 '권력'을 형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괴물'을 등장시키고 있으니 과연 권력을 가진 자는 괴물과 같은 자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일면 신의를 기반으로한 우리의 전통적 국가관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주장이지만, 유약한 군주로는 자주성을 획득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필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비견 르네상스를 꽃피우기 시작한 근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게다가 남북 대치 상태에서 핵개발,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 등으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함과 동시에 같은 민족이기에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외교 상황과 IMF를 겪으면서 진행된 경제적 자주성 침해로 인한 해외 자본의 잠식, 유가 폭등과 국가 경제 운영 미숙으로 말미암은 경기침체 등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마키아벨리가 주창한 강력한 군주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이미 독재자로 치부했던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그러한 요구가 차기 대통령 선거의 주요한 쟁점이 되리라는 것도 예상되고 있다.

군주론은 나같은 평범한 이학도에게는 유명하지만 낯설은 고전이지만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교양서이므로 자세한 내용을 들먹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을 소개함으로 군주론이 결코 정치에만 국한된 책이 아님을 역설하고 싶다.

"나는 운명을 무시무시한 강에 비유한다. (중략)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강이 범람하기 전 인간은 제방과 둑을 쌓아 미리 예방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중략)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운명은 자신에 대항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곳에서 위력을 떨치며, 자신에 대항해 아무런 제방이나 둑이 건설되어 있지 않은 곳을 공격하기 마련이다. (후략)"

"어떤 사람이 신중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고, 상황과 환경이 자신의 방식과 어울리는 방향으로 변하면 그는 분명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상황과 환경이 다시 변한다면 불행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유는 그가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중략) 그러므로 신중한 사람이 신속하게 행동할 필요가 생길 경우,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과 환경에 맞게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언제나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정말 오늘날 IMF 이후 어려운 경제 가운데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걸맞은 명언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정말 힘되고 마음에 들었던, 아마도 마키아벨리 스스로에게도 힘이 되었음직한 구절을 옮김으로 마칠까한다. 사족이지만 이 글의 겉모습으로 성차별 운운하는 말장난은 없었으면 한다. 그건 훌륭한 고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환경은 변하는데 인간은 유연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방식이 환경에 맞으면 성공하고, 맞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나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낫다고 확실히 믿는다. 운명은 여성이기 때문에 군주가 여성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신중한 남자보다는 과감한 남자에게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운명은 여성이기 때문에 항상 젊은 남성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젊은 남성들은 신중하지 않고 공격적이어서 운명을 대담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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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민족적 이상을 쫓아 가망없는 전쟁도 불사하는 대통령, 현재의 국민들을 위한 실리를 쫓아 매국도 서슴치않는 국무총리. 강우석 감독은 보수적 민족주의를 표방한 듯한 냉소적인 시각을 통해 양극단에서 좀처럼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현 정치 상황을 비꼬는 값비싼 마당극을 한 판 벌여 놓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에서는 비장한 대사들이 배우들의 치닫는 감정속에 터져나왔고 그 때마다 관객들의 실소가 흘러나왔다. 우리 모두가 억지스럽고 과장된 상황속에서 한 숨 섞인 실소를 연발하는 가운데 오직 극중 인물들과 감독만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자뭇 진지하고 굿굿하게 낯 간지러운 대사들을 연신 내어뱉는 가운데 초반내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성공이 드디어 감독의 영민함을 끄집어 내려 자기만족적인 실패작을 만들어내고만 것인가하는 생각이 영화 내내 지속되었다.
하지만 종반에 이르러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마지막 대사들을 들으면서 어쩌면 감독은 정리되지 못한 역사의 되새김만 하고 있는 현 정부와 실리를 표방하며 외세에 의존적이다 못해 종속적이 되어 버린 일부 정치 세력 모두를 억지 웃음판으로 내몰아내는 센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영화는 북한과 한국, 일본, 미국을 등장시키지만 일본을 향한 두가지 역사적 시선을 갖고 있는 두 세력의 갈등만을 내세울뿐 어떠한 배경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에는 시민들도 없고, 외국의 반응도 없다. 오로지 일본 앞에 비통한 역사적 피해 의식을 벗어나고자하는 국수주의와 주권마저 내동댕이 치며 현실적 국익에 목매는 뻔뻔한 실리주의만이 넘쳐날뿐이다.
우리를 파멸시키는 적은 북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우리들간의 엇갈린 시각과 그에 따른 분열이라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감독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분열 원인으로 해방이후로 아직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친일 청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국왕이 스스로 만들어낸 위조 국새를 통해 합방이후의 역사는 외곡된 역사(위조 국세를 통해 이뤄진 합방이후의 일제를 통한 여러 조치들)임을 상징하고 잃어버린 진짜 국새를 찾아(내가 생각할 때는 친일 청산이 아닌가 한다.)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민족의 통합(경의선 철도 개통)과 발전의 토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인 반대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데 민족적인 이상 때문에 일본이 포함된 강대국의 이해속에 얽힌 현실을 외면하여 자칫 국제적 고립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또한 잊지 않는다. 사실 친일 청산이 어려운 점은 일본이 아니라 현재 기득권층의 상당 세력이 친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인 것이 현실이고 그들의 주장은 곧 국무총리의 현실에 기반을 둔 괴변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감독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상을 통해 잃어버린 국새를 찾음으로 우리의 식민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결말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역사를 통한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함께 남겨둔다.
이제 영화의 내용으로 돌아가 재미있게 느껴졌던 몇가지 장면을 되새김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영화 초반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에서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우리의 임금과 왕비을 보며 비장한 편집 능력에 힘입어 눈시울이 뜨꺼워졌다. 강수현의 짧고 강렬한 연기력이란!
일본 해상 자위대와의 전투를 눈앞에 둔 이씨 성을 가진 해군사령관은 이순신 장군의 대사를 인용하는 센스를 보여준다. 전투의 승리 가능성을 묻는 대통령에게 해상 자위대의 30%정도밖에 안되는 해군력으로는 질 수 밖에 없음을 시인하면서도 전쟁은 근성과 깡이라는 내용의 대사와 함께, 우리의 군이 있는한 일본 군은 우리 바다를 넘볼 수 없다는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읇어댄다. 충무공의 후예답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충무공 -
일본 외무장관의 대통령 면담 장면은 고종황제에게 군사력을 앞세워 협박하는 일본 사신들과 이에 호응하는 고관들을 오버랩하는 센스를 보여준다. 일본 외부장관이 대통령을 면담할 때 그렇게 많은 수행인원이 함께 하는줄은 몰랐다.^^
고종황제의 독살 장면과 대통령의 독살 시도(총리를 보며 자작극이라는 걸 미리 눈치 챘지롱~^^)를 오버랩하는 장면은 어거지스러웠지만 어떻게 보면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역사적 시각에 얽매인 현 정부를 비꼬는 듯해서 재미있는 장면으로 꼽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경의선 철도에 관한 협약을 앞둔 총리의 뒤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서있었던 을사오적, 아니 다섯명의 장관. 역시나 친일청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니까!
북한은 대포동 2호를 쏘아올려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나 예상과 달리 실패한 것을 두고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감춘 의도적인 실패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역시 성공작이라는 평보다는 실패작이 아닌가하는 평을 받고 있지만 의도한 면이 다분히 있지 않는냐는 평이 지배적인 것 같다. 어찌되었건 논란을 통한 관심은 집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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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온 플럭스'를 봤다. 최근에 극장에 갈 여유가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관람을 했는데, '트레버 굿차일드' 가문의 두 형제가 그들이 개발한 백신으로 살아남은 5백여명이 생존하고 있는 도시인 '브레그나'를 4백년간 지배하기 위해 7세대에 걸쳐 자신들을 복제하며 삶을 지속시킨다는 설정을 보면서 영화속의 몇 가지 설정이 오버랩되어 글로 남길까 한다.
복제된 육체와 기억의 전수로 인간의 영생은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설정을 극명하게 들어내는 것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지사가 열연한 '6번째 날(2000)'이다. 영화에서는 애완동물을 복제함에 있어서 기억을 되살려 애완동물의 영속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주인공인 '아담 깁슨' 자신까지도 복제하여 복제된 '나'를 만나게 되기까지 한다.
또 명작의 반열에 오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도 전뇌를 이용한 기억의 전송을 통해 인간의 육신에서 벗어나 기계속에 자리잡기까지 한다. 한발더 나아가 극장판의 경우 인간의 육신을 버린 마당에 물질에 의존할 이유가 없어져 기억으로 대변되는 정신만이 네트에 남게 된다는 극단으로 치달아버린다. 이러한 결론은 역시 애니메이션 '레인(Serial Experiments Lain 1998년 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결말도 역시 조금씩 차이가 난다. '6번째 날'의 경우 기억은 학습되지 않고 육체와 마찬가지로 '복제'되며, 원본인 '나'와 복제본인 '나'에대한 자기 본질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공각기동대' 역시 기억은 '전뇌'속에 복제되며 '기억'으로 유지되는 '인간'과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기계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는 발칙한 질문을 던지며, '기억' = '정신'이라는 전제가 성립하면 결국 인간의 본질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레인'의 경우도 같은 맥락의 질문을 던지는데, 두 애니메이션과 '6번째 날'의 차이점은 '기억'을 담고 있는 주체의 복제 여부이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기억'의 복제는 '존재'의 유지 수단이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복제에 대해 거부감'보다는 '육신을 버림에 대한 거부감'이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6번째 날'의 경우 복제를 통한 자아의 대량 생산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좀 다른 예를 든다면 영화 '아일랜드'의 경우 복제는 육체에 한정되고 복제된 장기를 통한 영생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 영화의 쟁점은 복제된 인간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이온 플럭스'로 돌아가보면 복제된 자신에게 자신의 기억을 '학습'시키므로써 자신의 본질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론을 펼쳐내고 있다. 하지만 복제 이전의 기억이 마치 본능처럼 이어지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복제를 통해 본질성이 본능처럼 복제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비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정신을 추구하는 동양에 반하는 물질 추구의 서구적인 발상이 아닐가. 이전의 작품들이 그나마 인간의 본질성을 정신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나마 육체의 본능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하여 씁쓸함만이 남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기억이나 본능만이 남은 인간에게 남은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역사를 이어가려는 것이야 말로 영혼을 버린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기적인 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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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7
인고 발터 지음, 유치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미술에는 문외한이다. 하지만 좋은 그림은 내 마음을 움직인다. 더운 여름날 무얼하며 더위를 이겨볼까하다가 신문을 통해 충동구매한(^^) 책이다.
유명한 베이식 아트 시리즈를 번역했다는데 역시 미술에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책인지는 몰랐지만 고흐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주저없이 사고 말았다.
고흐하면 해바라기와 강렬한 노란색의 물결이 떠올랐고 그저 그림은 잘 그렸지만 평탄치 못하게 산 예술가라고만 알 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자화상 속의 고흐의 눈빛이 더없이 안쓰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신앙을 갖고 있었지만 그 속에 자신을 녹여들게 하지 못했고, 스스로의 예술에 대한 정열이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어버리고 만 범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천재의 고독을 평생 앉고 살면서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고흐. 책 뒷 표지의 붕대를 매고 있는 자화상은 고갱과의 일화를 읽고 나서 너무도 강하게 머리속에 박혀버렸다.


고흐의 붕대맨 눈을 응시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깊은 좌절을 맛보면 저런 눈을 갖게 될까? 얼마나 깊은 절망이 저런 눈을 갖게 하는걸까? 금방이라도 울음이 나올 것 같지만 울 수 없다. 너무도 깊은 상처이기에 표면적인 감정으로까지 표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포기나 관조가 아니라 열망이 담긴 눈이다. 절대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울 것없는 열망은 결국 자신을 연소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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