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민족적 이상을 쫓아 가망없는 전쟁도 불사하는 대통령, 현재의 국민들을 위한 실리를 쫓아 매국도 서슴치않는 국무총리. 강우석 감독은 보수적 민족주의를 표방한 듯한 냉소적인 시각을 통해 양극단에서 좀처럼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현 정치 상황을 비꼬는 값비싼 마당극을 한 판 벌여 놓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에서는 비장한 대사들이 배우들의 치닫는 감정속에 터져나왔고 그 때마다 관객들의 실소가 흘러나왔다. 우리 모두가 억지스럽고 과장된 상황속에서 한 숨 섞인 실소를 연발하는 가운데 오직 극중 인물들과 감독만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자뭇 진지하고 굿굿하게 낯 간지러운 대사들을 연신 내어뱉는 가운데 초반내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성공이 드디어 감독의 영민함을 끄집어 내려 자기만족적인 실패작을 만들어내고만 것인가하는 생각이 영화 내내 지속되었다.
하지만 종반에 이르러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마지막 대사들을 들으면서 어쩌면 감독은 정리되지 못한 역사의 되새김만 하고 있는 현 정부와 실리를 표방하며 외세에 의존적이다 못해 종속적이 되어 버린 일부 정치 세력 모두를 억지 웃음판으로 내몰아내는 센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영화는 북한과 한국, 일본, 미국을 등장시키지만 일본을 향한 두가지 역사적 시선을 갖고 있는 두 세력의 갈등만을 내세울뿐 어떠한 배경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에는 시민들도 없고, 외국의 반응도 없다. 오로지 일본 앞에 비통한 역사적 피해 의식을 벗어나고자하는 국수주의와 주권마저 내동댕이 치며 현실적 국익에 목매는 뻔뻔한 실리주의만이 넘쳐날뿐이다.
우리를 파멸시키는 적은 북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우리들간의 엇갈린 시각과 그에 따른 분열이라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감독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분열 원인으로 해방이후로 아직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친일 청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국왕이 스스로 만들어낸 위조 국새를 통해 합방이후의 역사는 외곡된 역사(위조 국세를 통해 이뤄진 합방이후의 일제를 통한 여러 조치들)임을 상징하고 잃어버린 진짜 국새를 찾아(내가 생각할 때는 친일 청산이 아닌가 한다.)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민족의 통합(경의선 철도 개통)과 발전의 토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인 반대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데 민족적인 이상 때문에 일본이 포함된 강대국의 이해속에 얽힌 현실을 외면하여 자칫 국제적 고립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또한 잊지 않는다. 사실 친일 청산이 어려운 점은 일본이 아니라 현재 기득권층의 상당 세력이 친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인 것이 현실이고 그들의 주장은 곧 국무총리의 현실에 기반을 둔 괴변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감독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상을 통해 잃어버린 국새를 찾음으로 우리의 식민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결말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역사를 통한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함께 남겨둔다.
이제 영화의 내용으로 돌아가 재미있게 느껴졌던 몇가지 장면을 되새김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영화 초반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에서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우리의 임금과 왕비을 보며 비장한 편집 능력에 힘입어 눈시울이 뜨꺼워졌다. 강수현의 짧고 강렬한 연기력이란!
일본 해상 자위대와의 전투를 눈앞에 둔 이씨 성을 가진 해군사령관은 이순신 장군의 대사를 인용하는 센스를 보여준다. 전투의 승리 가능성을 묻는 대통령에게 해상 자위대의 30%정도밖에 안되는 해군력으로는 질 수 밖에 없음을 시인하면서도 전쟁은 근성과 깡이라는 내용의 대사와 함께, 우리의 군이 있는한 일본 군은 우리 바다를 넘볼 수 없다는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읇어댄다. 충무공의 후예답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충무공 -
일본 외무장관의 대통령 면담 장면은 고종황제에게 군사력을 앞세워 협박하는 일본 사신들과 이에 호응하는 고관들을 오버랩하는 센스를 보여준다. 일본 외부장관이 대통령을 면담할 때 그렇게 많은 수행인원이 함께 하는줄은 몰랐다.^^
고종황제의 독살 장면과 대통령의 독살 시도(총리를 보며 자작극이라는 걸 미리 눈치 챘지롱~^^)를 오버랩하는 장면은 어거지스러웠지만 어떻게 보면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역사적 시각에 얽매인 현 정부를 비꼬는 듯해서 재미있는 장면으로 꼽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경의선 철도에 관한 협약을 앞둔 총리의 뒤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서있었던 을사오적, 아니 다섯명의 장관. 역시나 친일청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니까!
북한은 대포동 2호를 쏘아올려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나 예상과 달리 실패한 것을 두고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감춘 의도적인 실패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역시 성공작이라는 평보다는 실패작이 아닌가하는 평을 받고 있지만 의도한 면이 다분히 있지 않는냐는 평이 지배적인 것 같다. 어찌되었건 논란을 통한 관심은 집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