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버트 : 젊은 작가들에게 충고를 하신다면?
 

보르헤스 : 젊은 작가들에게 아주 초보적인 충고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작품의 발표가 아닌 작품 자체에 대해 생각하라고. 발표를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독자를 망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픽션을 쓰려거든 진지성을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쓰지 말라고. 단지 놀랍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것들을 쓰지 말고, 자신의 상상이 용인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을 쓰라고. 그리고 문체에 관해서는 어휘의 풍요함보다는 어휘의 빈곤함을 추종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중략...) 또한 나는 작가가 즉흥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가가 지나치게 빨리 어떤 어휘를 맞는 것으로 단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어휘는 내게 그럴 듯한 사실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한 작품이 끝나면, 그것은 비밀스러운 전략과, 공허한 기교가 아닌 겸허한 솜씨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즉흥적인 듯한 것으로 보여야 합니다. (147-148쪽.)  

 

 기버트 : 만일 지식인이 이따금 현실을 망각한 채 자신의 상아탑 속에 갇혀 있다면 그러한 그가 자신의 몸담고 있는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변화시키는 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르헤스 : 나는 상아탑 속에 갇혀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또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상아탑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시 한 편을 떠올리고 있고, 어떤 책 한 권을 구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현실적인 겁니다. 나는, <현실은 일상적인 것이고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지구가 생겨온 이래 정열과 관념과 추측들은 일상적인 것만큼이나 현실적이었고, 그리고 게다가 그것들은 늘 일상적인 것들까지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나는 세계의 모든 철학자들은 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40-141쪽.)

 

* 보르헤스가 하버드 대학 교환 교수로 있을 때(69세) 기자 리타 기버트와 했던 대담 <보르헤스가 보르헤스에 대해 말하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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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 그는 내 또래의 작가. 법학을 공부해서인지 혹은 원래가 그런지 논리적인 글쓰기를
보여주는데 날카로움도 느껴진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본 산문집으로 2000년 1월부터 이 년간에
걸친 연재 에세이를 단행본화 한 것이 이 책이다.

 연재 에세이답게 무겁기보다는 짤막하게 그의 느낌을 담담하게 적었다. 첨가물 없는 음식처럼 그렇게
간략하게. 애당초 하나의 현상에 착안하여 깊이 있게 써서 만든 책은 아니지만 읽기 편하고 그의 독특
한 생각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조금 차가운 느낌이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스며있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을 필터 없이 받아들여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세상은 오염되었고 그것은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로의 회복이 미래로의
추구와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쳐졌으니 끊임없이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매스미디어가 못마땅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가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정보의 수신자와 송신자 모두를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유입된 정보에
미치는 매체의 영향에 대해 더욱 명확한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언론
은 이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신자인 우리도 매스미디어와 좀더 냉
정하고 적합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19쪽, 정체 모를 것.)




-4341.01.17.나무의 날. 작년에 만난 책. (0714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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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2002)

낱말을 치장하지 마라.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
수동태는 피해야 한다. 절대로 쓰지말라가 아님.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사족을 달지 마라.
아는 것에 대하여 쓰라. 서술, 묘사, 대화!

좋은 소설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유혹하는 글쓰기中 여러부분 정리.)

 

탁월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이 들려주는 소설처럼 재미있는 글쓰기 책.
책의 3분의 1가량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두 형제를 힘들게 키우는 어머니, 머리 좋은 형,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스티븐 킹의 이야기가 주이다. 베이비시터에게 학대받은 기억 등도 있지만 그
럼에도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삶을 살며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갔다. 이후 본격적인 글쓰기에 대한 지침
이 이어지는데 특별히 새롭기보다는 알고 있는 사실이나 실행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간과할 수 없
는 부분. 또한, 이 책의 팁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창작과정 등을 엿볼 수 있다. <캐리>, <스탠드>, <미
저리>
등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슬럼프가 오고 이겨내는 모습은 작가 스티븐 킹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이만하면 읽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그외의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글쓰기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올 만큼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지만 아직 누구도-작가라 해도- 글쓰기에
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제대로 쓰려는 방법을 찾고 연습한다. 그러니 각자의 코드에 맞는 글쓰기 책
을 찾아 시도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환경과 우리의 환경이 일치하지는 않으므로 필요한 부분만 가려야겠다. 그런 점에
서는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같은 오감을 연습하는 글쓰기 책이나(이 책도 간단하다고 할 수 있
는 내용이나 도움이 된다.) 이태준의 <문장강화>같은 고전책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더 많겠지만 글쓰
기에 관한 책을 읽지 않는 편이라 앞으로 조금씩 찾아 읽어보고 판단할 일이다.

스티븐 킹의 이 책은 상업적인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그의 소설이 될 테니 말이다. 사실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정말로 재미있
는 책이다. 또한, 글쓰기에 자신감을 실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질문과 답일 것이다. 글쓰기, 더 나아가 소설을 쓰고
자 고심중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4341.01.17.나무의 날. (08004_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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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의 탄생
이영록 지음 / 서해문집(2006)

◆간단평
- 대한민국 건국사와 함께하는 헌법 이야기를 통해 진지하게 돌아보다.
 혼란의 시대에 탄생한 우리 헌법.

 

◆끼적끼적
- 우리 헌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비이(http://blog.naver.com/7714blue)님이 이달의 책으로 선
정했을 때 읽었는데 이제야 정리를 한다. 특히 제헌 국회 이전의 헌법안들인 유진오 안과 권승렬 안 등
그 기원과 역사인 3장이 흥미로웠다. 헌법 탄생의 비화라고나 할까. 원래는 내각책임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나 당시 이승만이 대통령제가 채택되지 않으면 정부 구성에 불참하겠다고 대놓고 협박하여 결
국 대통령제가 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물론, 과거 일본강점기의 법질서나 미군정시대의 제정법까지
존속하게 된 헌법이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그 혼란기에도 헌법을 기차게 만들어낸 사실은 놀랍다. 대한
민국이라는 국호가 국회 헌법안 심의 과정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었다는 재미있다.

공산주의 적대감을 반공의식으로 이용하던 시대. 대중심리를 이용했던 그때를 지금 세대는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사실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다닐 때만 생각해도 생생하다. 때가 되면 의무적으로 강당
에 모여 잔인한 반공영화를 보고 학교에서도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했던 이야기들. 그것이 바로 비정상
적인 반공의식의 고양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때 생각이 났다. 기억하지 않아도 될 영화의 장면도 함께...

이 책은 그간 알고 있던 내용을 돌아보게 만들었으며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웠다. 토막토막 알던 내용
을 상세하게 이어가며 나름의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지루한 부분도 많았다.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그랬
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루하다 싶으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서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결함 많은 출발이기는 하나 확실히 출반은 출발이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진정한 민주
주의를 향하여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한 국가를 보면 주도세력에 의해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우리 헌법을 통해 역사를 돌아보며 재차 느낀
사실이다. 아직도 내게 헌법은 낯설고 어려운 이야기지만 조금씩 관심을 둬봐야겠다.



-4341.01.14.달의 날. 작년에 만난 책. (0714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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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동화책 읽기

 

 

 

 그리그리나무 위에는 초록바다가 있다 - 린 호셉, 다른

간단평

-
안나 로사의 성장, 가족 이야기가 다채롭고 고운빛으로 물들어 있는 책.


끼적끼적

-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성장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처럼 표면에 두드러지지 않아 무난하게
 넘어간 듯 보였어도 실은 있었으니 말이다. 이상이나 꿈보다 현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넓어지는 나이가
 되면서 잊어버렸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 틀을 깨고 나온 후 살아가기에 바쁜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멈추지 않을 거 같은 고통은 지나가고 그만큼 성장했을지도 모를 지금... 어떻게 그리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 또한 안나 로사처럼 글쓰기와 자연을 좋아해서 중학생 때까지도 친구들과
 소설클럽을 만들거나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던 문학소녀였다. 언젠가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이 물었다. '아직도 시를 쓰니?' 대답 대신 웃어버렸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 그때를
 이 친구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그런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하긴 지금의
 상태로 보면 언제 그랬을까 싶다. 그 친구는 당시 시문학회 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시발표회 때는 초대
 하기도 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다시 글을 생활화했던것이. 그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
 다. 더듬거리며 책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정말 쓰고 싶은데 공책은커녕 종이가 없어서 쓰지 못하는 안나는 어느 날 구아리오 오빠의 수첩
 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결국 수첩을 다 써버렸다. 그래서 수첩을 숨기고 그것을 찾느라 가족은 한바
 탕 소동이 있었다. 이후 오빠는 매달 안나에게 공책을 사주겠다고 하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슬픈 현실
 을 동화처럼 표현해서 삶의 양면이 느껴진다.


  제목처럼 아름다운 이 책 속에는 아름다운 유년의 향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4341.01.05.흙의 날. 작년 8월에 만난 책. (0714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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