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만 권의 책을 돌파한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떠할까.
상당히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 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해져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다행히 인간의 두뇌에는 한도가 있고, 기억의 용량도
정해져 있으므로ㅡ물론 사람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ㅡ
그 용량을 넘어선 만큼의 양은 잇따라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란 참으로 부조리한 것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잊기 위해 읽는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읽은 것을 모두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뇌리에 깊이 새겨진 인상은 약간이나마
무의식의 층에 침전하며, 뜻하지않은 때에 의식의 표면으로
불쑥 튀어 나오곤 한다. 그게 독서의 보수일것이다.'
ㅡ 보르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