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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차인표라는 배우가 함경도 탄광마을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아버지로 열연을 했었던 <크로싱>이란 영화가 있었다. 원치도 않았던 탈북자가 되어 아들 준이를 만나기 위한 간절한 약속과 바램은 가질 수 없는 한남자의 욕심이었을까? 아직 '닫혀진'채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몫이라고 보기에 영화는 너무나도 간절했었다. 나는 사실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따위의 속뜻은 잘 모르겠다. 이 나이 먹도록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이론과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겪어야 했던 경험담을 들었던 것이 고작이라고 말한다면 너무할까? 아니, 아니다. 정말 알 수 없는 눈물을 무던하게도 흘렸던 때가 있었다.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를 외쳐대면서 이 나라를 온통 눈물바다속에 빠뜨려버렸던 이산가족찾기의 장면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사회주의를 말하라고 한다면, 민주주의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저 무미건조한 낱말들만을 뇌까릴 뿐이다.
작가는 왜 이토록이나 이념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 것이 아마도 <태백산맥>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영화로 나온 뒤에 그 열권이나 되는 책을 다시 한번 읽었을 정도니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 대단하다. 그만큼 파장이 컸다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이념전쟁을 떠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에 눈물이 났고, 그들이 어울어지는 그 한마당이 가슴깊이 다가왔을 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작가의 작품은 모두가 이념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아리랑>을 통해서 다시한번 만났지만 그 이후로 <한강>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었다.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조금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랬으면서도 이 책 <인간연습>에게는 왜 딴 마음을 먹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이념이란 테두리안에서 아주 조금은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같다. 딱히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교묘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그 끌림의 유혹이 왠지 싫지가 않았다.
남파간첩으로 내려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끝내는 강제 전향자가 되어버린 윤혁. 그가 함께 했었던 마음의 동지 박동건. 시작은 박동건의 죽음으로 다가왔지만 그가 죽지않고 끝까지 윤혁의 가슴속에서 살아남아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알겠다. 이념이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이 숨쉬며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질고 질긴 삶의 굴곡을 견뎌내기 위한 하나의 썩은 동아줄같은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까? 굳이 <인간연습>이라고 제목을 달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한 인간으로써 살아감에 있어 필요했던 모든 조건들을 모른척하며 이념속에 갇힌채 오직 한가지만 바라볼 수 있었던 그들에게 사회주의의 몰락은 벼락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념은 어느곳에나 있다. 사회주의가 되었든 민주주의가 되었든 그것을 만드는 것이 이념일테니 말이다. 더구나 이렇게 반쪽으로 갈라진 채 서로 으르렁거리는 대한민국에서의 이념은 어쩌면 더 강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윤혁과 박동건이란 사람을 내세워 작가는 하고싶은 말을 속살거린다. 어느편도 정도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분단된 조국의 미래에 대하여 속살거린다. 아주 조금씩은 서로를 인정하며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던 어린날의 노래가 떠오른다. 통일... 과연 그 통일이란 낱말이 부여잡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우리는 얼만큼이나 알고 있는 것일까? 통일이 되면,이라고 뇌까릴 수 있는 세대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속에서 나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넓디넓은 세상을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조금씩 이념의 테두리에서 빠져나오던 윤혁의 모습은 이채로웠다. 인간으로써 살아가기 위하여 그가 선택해야 했던 아니 그에게 선택되어져야만 했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앞세워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고, 이미 지나가버린 옛시절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포장한 채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필요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행복하냐고 묻지도 못할 것을.. 자신있게 묻지도 못할 질문을 가슴에 안아들면서까지 그토록이나 그에게 안겨주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래... 인간은 이성적이기 이전에 본능적 존재야. 그래, 본능적 존재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성의 힘이 큰 존재로 보려고 한 것이 착각이고... 큰 오해를 저지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104쪽) 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반론처럼 보여지기도 하는 문장들을 풀어헤쳐놓으면서 작가는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잇는 존재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120쪽) 문득 나는 '반복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 말조차도 이길 수 있는 것이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교묘하게 작가의 심리전에 말려들었다. 매일매일 부족하고 모자란것들 투성이, 그래서 이놈의 세상 한번 확 뒤집어져 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하고 사는, 대단히 강퍅하게 살아가고 있는 철저하게 서민인 나는 이래서 이 땅에 살고 있는것일게다. 윤혁에게 과연 인간이 되기 위한 연습은 끝났을까? 그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인간연습이었다면 성공했기를 바래본다. 어찌되었든 인간이 살아내야 할 삶은 어떤 형태의 삶이 되었든 끝없는 연습의 연속일테니..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