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세계
심경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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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로 된 시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한문으로 이뤄진 한시를 이해하는 것은 외국어로 된 시를 이해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아무래도 한문으로 된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한문으로 된 글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접하는 점때문에 뭔가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장르가 죽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한시는 이해하기 더 어려운 듯 싶었다. 한문실력은 부족하지만 좀 더 한시와 가까워지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고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듯 싶다.

  '나도 한시를 지을 수 있을까?'라는 단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책은 '평측'과 '압운'과 같은 한시의 기본적인 원리부터 알려주고 있다. 중국어의 성조와 비슷한 개념인 평성과 측성, 짝수번째 구의 마지막에 평성자로 된 운자를 하는 압운은 시가 리듬감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한시의 작법에 대해서 언급한 뒤, 구체적으로 내용의 측면에서 한시에 접근한다. '한시는 자연과 친근하다'며 자연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연을 읊는 방식인 선경후정(혹은 선정후경)에 대한 설명을 한 뒤 언지와 연정에 대한 언급 등등 한시의 내용적, 형태적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을 글로만 풀어갔다면 어렵게 느껴졌을텐데 중국의 시와 우리나라의 한시, 외국의 시들을 예로들어 설명함으로, 예로 실린 시와 해석을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아, 한시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한 번에 쭉 읽어가기보다는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한 챕터씩 배워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끔가다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한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덧) 좀 더 쉬운 한시에 대한 이해를 원한다면 정민의 <한시 미학 산책>이나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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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11-07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는 저도 봤는데... 좋았어요. 책에 느낌표가 붙혀져 있는걸 봐서는 아마도 방송에서 선정된걸 보고 산듯 한데...ㅎㅎ; 지금 다시 보니까 좀 뗄수 있게 붙혀 놓으면 더 좋을껄 싶은..- -;

이매지 2006-11-0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 책 예전에 느낌표 선정도서였죠^^; 사실 그 책은 아직 못 읽어보고 <한시 미학 산책>은 과제할 때 몇 챕터 읽어봤는데 이 책보다 더 쉬웠던걸로 기억해요.

free like a bird 2007-09-0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님의 글에서 필요한 정보도 얻고 상식도 넓혀갑니다. 다시한번 깊이 고개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싶고 모쪼록 학문이고 삶이고 더욱 넓고 깊게 가꿔나가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 중남미의 재발견, 개정판
송기도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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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와는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탓인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중남미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영어다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가 '스페인어'라고 하면 우리나라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인종의 샐러드볼(혹은 도가니)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히스패닉 계층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련을 벗어나서라도 칠레와의 FTA등으로 우리는 더이상 중남미국가들과의 관계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와 중남미 국가들과의 유사성에 대해서 여러모로 살펴볼 수 있었다. 외세의 침략과 그로 인한 황폐화라는 역사적인 공통점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흐름에 있어서 많은 점들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먼저, 브라질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2003년 브라질에서는 좌파 성향의 노동자출신인 룰라 대통령이 취임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도 좌파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하지만 룰라 대통령은 최근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도가 20프로대로 곤두박질치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단순히 국민의 지지뿐만 아니라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도 비슷한 양상의 두 사람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둘 다 좌파후보였지만 룰라의 경우에는 취임후 보수주의적 성향의 정책들을 수행하기도 하여 브라질 경제를 살리는 데 큰 공을 세운다. 그의 이런 정책은 기존의 중남미에서 보여지는 페론주의(포퓰리즘: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하는 선심정치)과도 구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브라질 뿐만 아니라 멕시코에서도 우리와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2000년 '국민행동당'의 폭스가 '제도혁명당'의 라바스띠다를 누르고 대통령이 됨으로써 71년 간의 집권한 제도혁명당이 물러나게 된다. (이는 소련의 공산당 다음으로 가장 오래 집권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50년만에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아르헨티나의 추락도 우리나라의 현상태와 함께 생각해봄직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이런 정치적인 상황때문인지 정반대에 위치한 지역이지만 친근함을 느끼며 읽어갈 수 있었다.

  역사와 지리, 현대모습에 이르기까지 중남미를 이해함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들을 적당히 취합하여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예전에 '라틴아메리카 역사와 문화'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배운 내용들이 알기쉽게, 핵심만 잘 설명되어서 전혀 불편함없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국내에 나와있는 중남미 관련 서적들 가운데 딱 한 권만을 읽어야 한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중남미를 접하고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책이었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더이상 미국이나 유럽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덧) 노무현은 2004년 남미 순방을 앞두고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이후 저자인 송기도를 콜롬비아 대사로 기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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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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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나만 해도 매일같이 다이어트를 하겠노라고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땐 버스가 밀렸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예뻐졌다."며 하얀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는 여성들만의 대화방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한 개인이 이렇게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데 하물며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행해지고 있을까? 역사의 왜곡(동북공정이나 독도문제)와 같은 문제에서부터 황우석 사태,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납니다"로 일관하는 모습 등등. 우리는 거짓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거짓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올바른 눈을 갖고 있다면 '거짓'을 '진실'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거짓'으로 받아들여 사회현상에 대해서 좀 더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에서는 사회의 다방면으로 우리가 좀 더 '덜' 속고 살기 위한 눈을 키워주고 있다. 

  <한겨레 21>에서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한 인터뷰 특강의 자료를 모은 이 책에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이 등장한다. 정혜신, 박노자, 김두식, 정희진 등등.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이들이 각각의 주제에 맞춰 거짓말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이 책은 되어 있다.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옮겼기때문에 읽으면서 마치 강연장에 앉아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고, 구어체로 된 글이라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사람, 과학, 한국사, 사회, 북한, 여성, 인도.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이들은 우리가 얼마나 속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사회는 얼마나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에 대해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는 말은 이제는 더이상 낯선 말도 아니다. 아니, 우리는 '눈을 뜨고도 코 베이며' 살아가지 않는가. 그 누가 황우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그의 거짓말에 놀아났고, 그의 거짓말이 밝혀진 뒤에도 선뜻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그럴싸한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허탈'해하고 '분노'했는가? (여기에 굳이 정치인들의 거짓말까지 예로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우리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체질화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 강연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런 감정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똑똑해지고, 좀 더 사회에 눈을 떠야한다는 것이다. 정혜신은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다양하게 생각한다면, 거짓을 좀더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김두식은 "남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왕따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어보라"고 이야기한다.

  한 권의 책에서 이토록 깊이감있고, 폭넓은 지식과 안목을 습득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느 정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좀 더 많은 지식을 향해, 좀 더 속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하나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나만해도 이 책 속에 등장한 사람들의 저서를 다시 접해볼 의향을 갖게 됐다.) 거짓말은 물론 나쁜 것이고, 누구도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힘들다. (오죽하면 가장 심한 거짓말이 "나는 거짓말을 한 번도 안해봤어~"겠는가?) 거짓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거짓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를 판단하는 눈은 개개인에게 달린 문제다. 잘못된, 비뚤어진 거짓을 거짓임을 알아채고 막아내는 것은 이 사회가 좀 더 긍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함이고, 희망적인 사회로의 밑바탕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거짓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그것을 알아채는 눈과,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을 얘기하지 않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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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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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우정에 대한 숱한 고사들이 있었고, 우정을 소재로 한 많은 문학작품들도 있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우며 살아가지면 정작 나이가 들면서 서로의 이해에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하며 살아가기 급급하다. 실리만을 따지는 이 세상에 진정한 우정은 어디에 있고, 혹 그것이 있다고 하여도 지킬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우리 역사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우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실체가 없는 참다운 우정의 회복을 부르짖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옛날에는 참다운 우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둥, 세상이 황폐해져 우도友道를 찾기가 어렵다는 둥, 옛일을 낭만적으로 떠올리며 내가 사는 이 시대를 개탄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완벽하고 영원한 우정의 모델을 제시해, 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압박할 마음도 없다. 나는 다만 내 삶을 성찰하고 싶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벗 하나 없는 내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따스한 벗이 되어주지 못하는 내가 우정을 이야기하는 이 불일치와 아이러니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이 책을 지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물론, 저자가 이렇게 밝히고 있다고 해도 이 책에서 어떤 이는 분명 진정한 우정을 찾기 힘든 시대를 개탄할 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진정한 우정을 찾아야겠다는 압박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저자가 펼쳐놓는 옛사람들의 우정 속에서 우정보다는 '신뢰'를 배우게 됐다. 신분과 직업, 나이, 성별, 사상에는 차이가 있어도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옛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우정을 쌓아간다. 

  우정을 나눈 옛 사람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성과 한음'일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은 그들의 일화를 접하고 우정에 대해서 배우곤 했다. 이 책 속에도 물론 그들은 등장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함께 사고를 치며 돌아다니던 모습이 아닌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국난을 함께 살아갔던 두 재상의 모습으로 등장한다.(어린시절 읽은 책에서는 그들을 불알친구처럼 그려내지만 사실 그들은 이항복이 스물세 살, 이덕형이 열여덟 살 때 교유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이런 류의 우정은 또 있었다. 흔히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남인과 서인, 주기론과 주리론으로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던 이황과 이이도 실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퇴계는 율곡보다 28세나 많았지만 그를 벗으로 삼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제자로 삼기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율곡이 퇴계 문하에서 정식으로 학문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자주 만나며 정을 쌓은 것은 아니지만,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분과 성별이 달랐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옛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함으로써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벗도 내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실리만 따질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춘다면 벗은 자연히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곁에 진정한 벗이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벗을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나를 위해, 그리고 나의 벗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큰 울림을 남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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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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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의 여성들은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는 말을 하려 할 때 '전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혹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터넷 기사라도 뜨면 '페미꼴통들'이라는 내용의 댓글들은 셀 수 없이 달린다. '여성부도 있는데 남성부도 만들어라', '여성을 위한 정책은 지나쳐서 남성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등등. 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의 감정의, 그리고 입장의 골은 깊기만 한 듯 보인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봐달라, 혹은 자신과 다른 시각이 있음을 인정해보자와 같은 과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 책은 결코, 페미니즘만이 올바른 길이다와 같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사회에서의 여성의 처지를 하나씩 예로 들며 독자 스스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해 눈을 뜰 수 있게 도와준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실제의 사례를 들어 페미니즘의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었다. 같은 한국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과격한 섹스'로 인식하는 반면에 외국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민족의 수치 혹은 침략'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성을 밥벌이의 도구로 삼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그들은 매(賣. 팔기)는 하지만 매(買, 사기)는 하지 않으므로 엄밀히 말해서는 '성판매 여성'혹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으로 표현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심결에 사용해온 단어들. 즉, 남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수많은 단어(예를 들어, 남성명사에는 人이 붙지만 여성명사에는 女가 붙는다. 여성에 人이 붙는 경우는 미망인뿐이다.)들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는데 뜨끔하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분명 나도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남성주의적 관점이 강하게 박힌 탓이리라.)

  우리는 살면서 한시도 떨어져 이성과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이해는 서로 부족한 편이다. 사유의 방식이 다른 서로를 단순히 자신과 다른 신체구조를 지닌 사람으로만 인식하거나 혹은 말랑말랑한 연애관(숱한 연애심리관련서들을 보라)에서 바라볼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파란 옷을 입고 총을 가지고 논 남성과 분홍옷을 입고 인형을 가지고 논 여성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본성도 다르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자체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전혀 다른' 상대를 바라보려고 하는데서 갈등은 생겨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우리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성판매여성을 보호하고자 만들어졌다는 '성매매방지법'은 사실 지나치게 비대화된 성산업이 '정상적인'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준에 이른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인신매매 3등급 국가, 여자 장사 왕국이라는 국제적인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법 제정 운동의 계기가 된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 참사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성판매여성에 대한 감금, 구타, 강간, 인신매매 등의 사건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된 것이다. 요컨대, 상황적으로, 그리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게 되었던 것이고 때문에 이는 성판매 여성의 실상과는 동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힘든 일이다. 21세기를 함께 살아가지만 사회는 여성에게 때로는 21세기의 모습으로, 때로는 19세기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즉, 때로는 사회의 진취적인 일꾼으로, 때로는 남성의 보조자로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득권, 남성의 논리가 아니다. 자신의 굳건한 영역을 깨부수는 것으로 보이는 페미니즘은 어쩌면 남성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방해물일지로 모른다. 하지만 이 방해물을 마냥 피해만 다니기보다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할 때 남성 스스로 더욱 더 유연성을 갖게 되어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 속의 여성의 이중적 잣대를 잠시 거두고,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중적 시선을 잠시 거두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사회는 발전해갈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이 사회 속의 많고 많은 갈등을 해소할 조그마한 퍼즐 조각일 뿐이다. 사회 속에서 여성만이 피해를 보는 것도, 절대적 소수도 아니기에 우리에겐 이해하고 받아들일 퍼즐 조각들이 페미니즘말고도 수없이 많기에 이해심과 그것을 받아들일 넓은 마음, 그리고 배려, 관용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런 소수에 대한 빈 공간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갈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이 마련해준 것 같다. 간혹 다소 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글이 아니었나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 그리고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고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성적 이데올로기와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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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8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6-10-2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수정하는 사이에 홀랑 추천까지 눌러주시다니. 민망하네요^^; 시험기간때문에 거의 보름을 붙잡고 있었던 책이라 사실 앞부분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뒷부분 중심으로 쓸 수밖에 없어서 아쉬워요 ㅠ_ㅠ

비로그인 2006-10-28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희진을 좋아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 책 읽고 푹 빠져버렸습니다..;;;

기인 2006-10-28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도 추천하고 가용~~
새벽에 안 자고 스타리그 보면서 감동하고 있는 긴 -_-a

릴케 현상 2006-10-28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용

멜기세덱 2006-10-2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제가 읽고 있는 책인데요, 읽으면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요...ㅎㅎ

이매지 2006-10-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 / 저는 처음 접했는데 괜찮더라구요.
기인님 / 그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뭐하셨습니까? ㅋㅋ스타리그에 너무 푹?
자명한 산책님 / 감사합니다^^;
멜기세덱님 / 세뇌는 아니고 왠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멜기세덱님의 리뷰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