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이 쓴 소설들을 읽으며 감명받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먼바다'를 집었다. 그 때의 두근대고 번쩍였던 감흥은 싹 가셨다.
첫사랑을 20년 만에 만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무실로 전화해 신분을 밝히고 남겨 둔 나의 연락처, 차 한잔의 잠깐의 시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떠 올리고 싶지만 감감하다. 그리고는 그의 조심스러움이 너무 크게 다가오고, 내가 크게 잘못한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의 순전한 짝사랑이지 않았을까. 아니, 입대 전날 만났으니까, 첫 사랑일까.. 암튼 난 그를 첫 사랑이라 명명하고 싶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미호의 첫 사랑은 신부가 되려는 사람이었다. 서로 엇갈린 시간들의 마지막 남은 퍼즐, 먼바다로 같이 헤엄쳐 간 일이 맞춰졌다.
각자의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며, 누군가는 피천득 '인연'을 말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꼭 한 번은 만나 마음을 정리할 필요는 있었다. 두 번 세 번은, 아니 만나야 할 거 같았다. 만나서는 안 되는 거 같았다. shall, must
그리고 난 첫 사랑을 생각하면, 김이듬 '겨울휴관'이 떠오른다.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장미 한송이 참 예쁜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아했던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란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거야 근처 미술관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있네
우리는 마주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 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곁을 떠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