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맘이 바빴다. 부모님을 뵈러갔고, 생일 여행도 다녀왔다. 

양말뜨기는 거의 중독 수준이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잠자는 내내 코 수를 잘 못 세어 다시 풀고 뜨기를 반복하는 꿈을 지금도 꾸고 있다. 몇 십켤레를 떠서 두 세개씩 나눠 주었다. 허즈번은 조끼를 원해 그거까지 마무리 하느라 시간이 지났다.

한코 한코에 그들에 대한 기도도 함께 담았다.  

맹자 공부는 매일 빠짐없이 하면서 책 읽기는 멀리 있었다.

그러면서 오월이 왔다. 

어딘가를 늘 가고 싶어 자유로를 수번 달렸다.

'소설가의 영화'를 보았다.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지속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홍상수 영화다. '아깝다'라는 말을 다시 인지했다. 

김영하는 도쿄를 허점투성이 카메라, 롤라이35로 찍었다. '롤라이35는 실패작을 양산하는 카메라이다.(186쪽)'

그래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을 잘 찍었다, 아니다를 어떻게 말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를 다시 가고 싶다. 여전히 맘 속에 머물고 있는, 그들의 친절함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점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최근 비보이들의 향연을 보고 있다. 매주 기다림이 무지 길다. 아니 기다리기가 힘들어 되풀이 관람 중이다. 진조크루 윙, 리버스크루 피직스, 플로우엑셀 홍텐...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가, 놀라울 따름이다. 

하고 싶은 일은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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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박완서님의 글을 다시 읽었다. 오타가 있어, 읽는 이야 그 정도는 지나갈 수 있지만, 오히려 저자에게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뭐랄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염치, 부끄러움, 공감, 연민들이 고루 버무려져 있다. 특히, 참척을 당한 이의 마음을 곡절히 풀어 헤쳐, 죽은 이를 제대로 보내는 과정은 산 자가 편히 살기 위해서랄까...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들을,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데도, 안일하고 안하무인 격이다. 정말로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아는 일'들이 도처에 있것만 끝까지 모른척 하고 살 수 있을까... 잘한다고 했는데, 천년만년 오랫동안 잘 살 것 같았는데, 어느새 늙고 아픈 상태가 되어 있다... 죽으면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가져갈 수도 없는데, 아둥바둥, 특히 남을 무시하면서, 금방 드러나는 게 뻔한 데도 아닌 척, '부끄러워하고, 대범하게' 살아가야지.  


*대범한: 성격이나 태도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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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마다 맹자를 공부한다고 역주를 미리 읽어봤다. 

배울 내용을 한 번씩 써보고 모르는 한자를 찾아서 음을 달고, 해석도 미리 해 본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토를 달고, 따라 읽고, 해석을 듣고, 한 번씩 돌아가면서 읽고 해석하는 시간이 재미있다. 

임금 앞에서 소신껏 말하는 맹자, 그러한 맹자를 불러 자신의 욕심에 맞장구 쳐주기를 원하는 임금... 위정자들은 지금에야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같다.

인을 중히 여기고, 왕도정치, 성선설까지,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백성과 같은 마음이라면, 심지어 정복하는 나라의 백성들이 기뻐한다면 할 수 있다는...

학창시절 한문시간에 배웠던 사자성어들이 난무하다. 


화요일마다 복지관 카페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몇 달간 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대바늘로 양말을 떠서 선물로 줬다. 

조카 대학원 논문 영문초록 적어줬다. 

몸을 가만두지 못한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다. 

영어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영어 성경을 한 번 써보자고 했는데,

모든 게 다짐으로 남는다.  

점점 귀찮음이 넘쳐나고 있다.  

내적으로는 뭘 해 줄께라고 약속을 하고, 외적으로는 부탁을 기꺼이 해 주는, 

그러나,

심심함과 귀찮음의 양극점을 오가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는, 

지금 이 정도도 충분하다,는 마음도 필요한데,

이 부분의 정의를 제대로 내리고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수 번의 봄날을 기쁘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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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이 쓴 소설들을 읽으며 감명받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먼바다'를 집었다. 그 때의 두근대고 번쩍였던 감흥은 싹 가셨다. 

첫사랑을 20년 만에 만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무실로 전화해 신분을 밝히고 남겨 둔 나의 연락처, 차 한잔의 잠깐의 시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떠 올리고 싶지만 감감하다. 그리고는 그의 조심스러움이 너무 크게 다가오고, 내가 크게 잘못한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의 순전한 짝사랑이지 않았을까. 아니, 입대 전날 만났으니까, 첫 사랑일까.. 암튼 난 그를 첫 사랑이라 명명하고 싶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미호의 첫 사랑은 신부가 되려는 사람이었다. 서로 엇갈린 시간들의 마지막 남은 퍼즐, 먼바다로 같이 헤엄쳐 간 일이 맞춰졌다.

각자의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며, 누군가는 피천득 '인연'을 말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꼭 한 번은 만나 마음을 정리할 필요는 있었다. 두 번 세 번은, 아니 만나야 할 거 같았다. 만나서는 안 되는 거 같았다. shall, must

그리고 난 첫 사랑을 생각하면, 김이듬 '겨울휴관'이 떠오른다.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장미 한송이 참 예쁜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아했던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란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거야 근처 미술관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있네

우리는 마주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 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곁을 떠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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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여러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짐)는 가족 이야기다.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 수는 없다'가 한영진의 삶을 지배한다. 어느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듣고 싶은 말,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맏이라서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물건을 팔 때는 자식보다 엄마 본인을 챙겨야 한다고 권하지만, 정작 자신은 거짓말하고 있다. 한영진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한세진 여동생은 본인이 좋아하는 삶을 사는 듯 보이고, 한만수 남동생은 해외에서 자신의 삶을 펼친다고 여긴다. 이순일의 이야기는 보통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이 집 식구들은 제대로 된 소통을 전혀 못한다. 그러려니 짐작하고 그럴거야로 단정한다.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말하지 못한 말들이, 묻고 싶은 말들은 한영진을 계속 좌절시킨다. 칠십대의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 이순일 엄마에게 무슨 말을 묻을까. 영원히 오지 않는 순간을 거짓말로 되뇌이고 있다. 

나 또한 지속적으로 엄마의 말에 뽀족하게 답하는 것은 말하지 못한 게 있어서다. 몇 번이나 입안 가득 물었던 말들을 팔십이 넘은 엄마에게 해서는 뭐하나. 하지만, 한 가지 잘 못한 게 여러 가지 잘 한 일을 이기려 한다. 어쩌면 엄마도 이순일처럼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그 까이꺼 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한영진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순일 또한 금방 사라진 그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키워 준 사람들과 친구와 남편과 자식들에게까지. 자신의 문제만 더 크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순일은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나서는, 한영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다.  

가족들은 가깝고도 멀다. 우리 오남매도 각자 기억의 범위와 강도가 많이 다르니, 부모와의 관계가 개인의 삶을 좌우하고 있으니, 가족의 일은, 가족 관계는 연년세세가 맞다.

가족 내에서 각자의 호칭이 아니라 이름을 호명한 부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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