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가 들려주는 예술이야기』에서 시작한 여정은 『발터 벤야민이 들려주는 복제이야기』를 지나 이제, 『맥루한이 들려주는 미디어 이야기』 까지 왔다. 맥락없이 흘렀던 과정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연결하게 된 것이다. 흥미롭다.
맥루한이 들려주는 미디어 이야기
강용수 지음
(주)자음과 모음
'금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라 불리는 캐나다 출신의 문화 비평가 마셜 맥루한(Herbv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의 생활과 감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에 대해 설명한 인물이다.
인류 역사에서 동굴 안에 모여 몸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고대의 사람들에게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발전하여 책이 보급되면서 큰 변화가 생긴다. 혼자 책을 읽는 것이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개인주의가 생겨났다. 그 후 여러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책보다는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 스마트폰이 생활화되는 시대를 맞이한다. 맥루한은 이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이 기술이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디어(media)의 뜻을 무엇일까. 단어의 뜻만 보면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하면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등의 대중 매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맥루한은 미디어란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모든 것을 미디어라고 불렀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에 미디어가 아닌 것들이 별로 없게 되는 셈이다. 모든 미디어는 인간의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주인공 우현이는 아빠와 목욕을 하면서 자신의 여자 친구 이야기와 자신이 휴대전화중독인 것 같다는 상담을 한다. 엄마에게 들었던 미디어와 맥루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며 '미디어는 몸의 확장이다' 란 말에 대해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아빠에게 묻기도 한다. 아빠는 엉뚱한 사람이이기도 했던 맥루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모든 미디어는 인간의 팔과 다리, 우리의 감각을 연장시킨 것' 이라는 주장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서, 우리 몸을 확장해서 만든 미디어가 다시 우리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나간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의 감각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그 감각을 발전시켜 새로운 미디어를 다시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우리의 몸 자체가 미디어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떤 미디어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인지는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 란 말도 남겼다. 맥루한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보다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느냐 하는 형시을 중요시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미디어가 달라지면 사람들은 모두 다른 내용이라고 인식한다는 것. 주인공의 아빠는 " 모든 미디어는 그 메시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단다. 다시 말해서 미디어가 전달하는 것은 그 내용과는 전혀 다른 미디어 자체의 특질이라는 거야. 우리는 그 미디어의 특성에 맞게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지'(p91) 라며 형식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는 미디어의 종류에 따라 인류의 역사를 4단계로 구분한다. 특히 네번째 단계에서는 텔레비전이 촉각을 되살리는 매채라는 것에 주목했다. 인쇄술이 발전하던 시대에는 시각과 함께 선형성(책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것)이 요구되었다면, 전자 시대의 매체에서는 촉각성(tactility)이 강조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각에서 벗어나 오감을 모두 사용하는 원시 시대로 회귀했다고 말하며 인간이 시간과 공간이 넘어 하나가 되는 세상, 즉 지구촌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첫번째 단계 :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던 원시 부족 시대, 인간은 모든 감각을 사용할 수 있다.
두번째 단계 : 문자가 발명되면서 말보다 글을 읽기 위해 눈을 사용하는 소수의 사람이 생겨나던 시대,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바뀐다.
세번째 단계 : 손으로 쓰던 책(필사본)을 인쇄로 찍게 되면서 큰 변화를 맞은 시대, 개인주의와 민족주의가 발전한다.
네번째 단계 : 전기 매체의 시대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인터넷의 사용이 중요해진 시대
주인공은 아빠가 빌려준 맥루한의 <맥루한과 미디어> 란 책을 읽으며 '차가운 미디어(쿨 미디어)'와 '뜨거운 미디어(핫 미디어)' 의 개념에 대해서도 배운다. 뜨거운 미디어는 고밀도로 만들어져서 자료가 충분히 충족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진과 만화 중에서는 사진이 뜨거운 미디어에 속한다.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 신문등도 뜨거운 미디어에 속한다. 만화도 책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만화책에 있는 그림은 사진에 비해 정보가 적기 때문에 차가운 미디어에 속한다.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를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은 참여도다. 뜨거운 미디어는 대중의 참여도가 낮고, 차가운 미디어는 대중의 참여도가 높다. 예를 들어 책은 뜨거운 미디어고, 회화는 차가운 미디어다. 책은 그 내용을 읽고 혼자 이해하면 되지만 회화는 작가의 의도와 시대적 배경을 종합하여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고 상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미디어는 정보에 충실하기 때문에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차가운 미디어는 능동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며 뜨거운 미디어가 차가운 미디어로도 변하거나, 그 반대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이와 직접 미디어를 만든다면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을지도 이야기해보고,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기에도 좋다. 이미 아이에게 익숙한 '미디어'란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보면서 미디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 문화에 일으키는 영향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책의 부록인 [통합형 논술 활용노트]에 나와있는 논제들을 활용하면 생각을 확장해보기에 용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