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쓰는 행위는, 정신 나간 짓이다!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쓰는 행위, 그러니까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을 장장 오백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리는 짓은 고되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신 나간 짓이다. 이미, 이러한 책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들에 관한 요약, 즉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서문」 10쪽

약 오 년 전 밤, '나'는 아르헨티나 작가 '비오이 카사레스'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일인칭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그들이 논쟁을 벌이던 별장의 복도 끝에는 거울이 달려 있었는데, 그 거울을 보고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화자가 이 말의 출처를 정확하게 따져 묻자 비오이는 『영미 백과사전』의 '우크바르' 항목에 그 기록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즉시 별장에 구비되어 있던 백과사전에서 '우크바르' 항목을 찾아보지만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당황한 비오이는 우크바르라고 발음할 수 있는 모든 철자들을 뒤졌지만,우크바르라는 항목은 없었습니다. 화자는 비오이가 자신이 한 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즉석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 비오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비록 자신이 말한 것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백과사전 46권에는 우크바르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그노시스 교도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하나의 환영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궤변이다. 거울과 부권(父權)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분명하게 그런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13쪽

화자가 비오이에게 그 책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자, 며칠 후 그가 그 책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분명히 46권 921페이지에 우크바르 항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별장에서 그들이 함께 확인했던 똑같은 백과사전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페이지 수가 달랐습니다. 별장에 있던 백과사전은 917페이지 밖에 없었지만, 비오이가 가져온 백과사전에는 4페이지가 추가된 921페이지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또, 46권은 Tor에서 시작해 Ups로 끝나서 알파벳 순서 상으로는 결코 마지막 항목에 우크바르가 실릴 수 없었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우크바르의 국경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었고, 그들의 역사는 물론이고 언어와 문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믈레흐나스와 틀뢴이라는 두 환상적인 지역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크바르'라는 미지의 항목을 추가해 넣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우크바르라는 곳이 존재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 책에서 나는 그가 17세기 초 '장미 십자회'라는 상상적 단체에 관해 쓴 독일 신학자이며, 후에 다른 사람들이 그가 예시한 것을 모방하여 실제로 그런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5~16쪽

그로부터 이삼년 후, 화자는 한 책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의 단체를 한 신학자가 언급한 후에 실제로 그 단체가 설립되었다는 글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른 책에서 우크바르와 틀뢴과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또다시 접하게 됩니다.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그 기록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우크바르 혹은 틀뢴 역시 한 비밀 결사의 작품으로 직잠합니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세대의 틀뢴주의자들만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담한 생각은 우리를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회귀하게 한다. 즉, 틀뢴을 만든 것은 어떤 사람들인가?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라는 복수는 피할 수 없다. 하나의 무한한 라이프니츠처럼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어둠 속에서 일하는 단 한 명의 창조자라는 가설은 만장일치로 기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멋진 신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천재의 주도하에 천문학자, 생물학자, 기술자, 형이상학자 시인, 화학자, 대수학자, 윤리학자, 화가, 기하학자 등으로 구성된 비밀 결사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20쪽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해킹한 데이터를 저장한 디스크를 책 속에 숨겨두고, 감독은 일부러 그 책의 제목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 책은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입니다.

이 책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지칭하며,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인 '시뮬라크르 하기'입니다. 이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재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재현'은 존재했던 것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시뮬라크르'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어서 원본 조차 없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시뮬라크르'가 더 촘촘하게, 그리고 완벽해질수록 우리는 실재와 실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믿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틀뢴주의자'들이 했던 작업들도 '시뮬라시옹'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가상의 행성을 만든 다음, 책 여기 저기에 그것의 기록을 남겨 놓습니다. 처음에는 화자처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쉽게 믿어버리는 백과사전이나 지리책 등에 그것에 대한 언급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가상의 행성에 대해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행성을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실제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어떤 것보다 이 행성의 존재를 더 믿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우주를 한 명의 신이 창조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인거죠. 세계 곳곳에는 그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남아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를 믿고 성지순례를 하는데 혹시 이것도 '시뮬라크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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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 지혜와 평온으로 가는 길
혜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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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Alone Together) 분들에게!

    특별히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매일이 분주한 요즘입니다. 지인들에게 근황을 물어봐도, SNS를 통해 전해져오는 소식을 살펴봐도 모두가 분주합니다. 요즘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늘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는 더 바쁩니다.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이런 저런 일들을 확인해야 하고, 반응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 누군가의 반응에 즉각적인 응답도 해줘야 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항상 '연결'되어 있지만 어딘가에 '누락'될까봐 걱정입니다.

    혜민 스님은 지금의 현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주로 밖으로 향해 있고,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분주하기 때문에 지금 나는 어떤 느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겨를 없이 그냥 살아"(7쪽)가고 있다고 말이죠. 사람들은 주변이 조용할 때, 혹은 아무도 없을 때 심심해하거나 외로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 고요할수록 우리는 온전히 우리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그렇게 해보라고 합니다.

    고요한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심심한 상태가 아니고, 고요할수록 환하게 밝아져서 내 본래 마음과 만나게 됩니다. 부디 이 책을 읽으시는 동안만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시고 지혜가 밝아지시고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와 쉼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8~9쪽

    외로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주변에 사람들도 많은데 자발적으로 택한 외로움이라는 것입니다. 혜민 스님은 이런 현상과 관련해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선생은 연결은 되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절 당하는게 싫어서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죠.

    선생님은 그건 연결은 되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은 싫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서로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런 공감과 성장의 경험을 하려면 반드시 수반하는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들은 하기 싫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스마트폰 뒤로 숨는 것이다. 213쪽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 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세상도 내쪽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30쪽


    이 글을 쓰기 전에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봤습니다. 베스트셀러 1위에 랭크된 이 책을 포함해 그 밑으로 나열된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요즘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아포리즘 같은 짧은 호흡의 문장들과 사진들이 있는 책들, 한마디로 SNS에 최적화 된 글들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은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문장이 아닌 긴 호흡으로 천천히 생각을 전하는 책들을 좋아해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나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 자신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내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떠올랐던 생각들인데,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글을 보니 제 생각들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는 단서를 붙여놓았으니까요.

    미국 MIT 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은 지금의 현상을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Alone Together" 상태라고 설명한다. 즉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은 스마트폰을 통해 모두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문자, SNS에 몰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모임을 하거나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하물며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틈이 생긴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체크하거나 앱을 열어 다른 세계와 접속한다. 212쪽

    나와 맞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친구와는 만나서 그 부분만을 함께하면 됩니다.

    내 모든 면과 맞는 친구만 사귀려고 하면 평생 외로울 수 있어요. 219쪽

    영국에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이 생겼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얼마 전에 접했다. 외로움으로 인해 고통받는 영국인이 무려 9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런 장관이 생길 법도 하다. 외로움이 주는 정신적인 고통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정도의 해를 우리 몸에 끼친다고 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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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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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이 가졌으면 하는 것에 대하여!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이 책의 힘(?)이 궁금했습니다. 제목이 공감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우울해도 맛있는게 생각났던 적이 있으니까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저자의 정신과 내원기록을 담은 것입니다. 의사의 동의를 얻어 치료과정을 녹취했고, 그것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원래 치료가 이렇게 진행되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써 준 정신과의사는 신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상담내용에 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이 책이 단순히 녹취를 나열한 것이 아닌, 전문가의 전문적인 분석까지 포함하고 있었더라면 유익한 컨텐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제목은 이 익명의 정신과의사의 글에서 뽑아온 것입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207쪽이나 되는(반어법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아직 이야기도 치료도 덜 끝난 것 같은 부분인 154쪽에서 '2권에 계속'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는 개인 일기장에서 옮겨왔을법한 글들이 부록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나머지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책으로 기획한 책이 아니었으니, 저자나 기획자도 나름 분량을 채우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인 중에 내성적이고 자존감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에 대한 제 평가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정말 엄청나게 쏟아냅니다. 그저 듣고 있는 제가 숨이 가쁠 정도로, 말은 또 얼마나 빠른지. 가끔 신기해서 지켜보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 지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놓은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심정도 이랬을까요? 그렇게라도 토해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렇게 이 책을 쓴 저자의 심정을 더듬어 봅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의 베스트리뷰를 찾아보면, 평점이 상당히 낮습니다. 언제나 부정적인 평이 더 강하게 표출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낮습니다. 그런데 뒷표지에는 칭찬 일색의 리뷰들이 실려 있습니다. 동네책방과 대형서점에 진열되는 출판물을 대하는 독자들의 기대치가 달랐던게 아닐까요? 사실 저는 기대치가 엄청 낮았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평으로 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무르게 만든 그 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저자가 전직 출판마케터라니 홍보도 한 몫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 속 답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의 양 끝은 이어져 있기에 의존성향이 강할수록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예를 들어 애인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애인에게서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여요. 어떻게 보면 일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성과를 낼 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안도할 수 있으니 의존하지만, 그 만족감 또한 오래가지 않으니 문제가 있죠. 이건 쳇바퀴 안을 달리는 것과 같아요.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또 노력하고 실패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된 정서 자체가 우울함이 된 거죠. 21쪽

   서로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나는 늘 혼자이고 싶으면서 혼자이기 싫었다. 의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이는 상태. 매번 상대에게 지독하게 의지하면서도 상대를 함부로 대했다. 내게 많은 것을 주는 이들일수록 지겨워하고 지루해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또 싫어했다. 33쪽

   저는 매번 똑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선생님도 늘 같은 답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제 성향이 바뀌지 않으니까 똑같은 문제가 계속되는 것 같아요.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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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읽어 보지 않으려구요...

베스트셀러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하고는 맞지 않는
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뷰를 꼼꼼하게 읽고 나서 가비압게 패쑤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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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새벽 2시, 이제 겨우 외출에서 돌아온 부부. 그런데 아내가 누군가를 초대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 부부라고 하는데, 조지는 아내의 초대도, 그 초대에 응한 두 사람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젊은 부부가 도착했고, 그들은 이 상황을 불편해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지는 뉴잉글랜드 소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입니다. 46세로 이제 흰머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 들어보이고, 체격은 마른 편입니다. 반면 그의 부인 마사는, 조지보다 여섯 살 연상인 52세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편이지만 덩치가 크고 사나운 성격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조지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 딸로, 늘 조지에게 험한 말들을 내뱉습니다. "나가 뒈져"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새로 부임한 생물학과 교수 닉은 30세로, 금발에 몸매가 좋으며 잘 생겼습니다. 그녀의 아내 허니 또한 자그마한 몸매에 금발을 가진 26세의 젊은 여성입니다.

    나름 교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들은,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에게서는 교양이나 지성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말과 행동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궁금증을 자아낸 '버지니아 울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사실 이것은 말장난 같은 것입니다.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Big Bad Wolf)를."

    이것은 디즈니 만화영화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가사입니다. 아기 돼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늑대가 무섭지 않다며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늑대가 나타날까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 'Wolf'라는 단어에 착안해서 'Virginia Woolf'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19쪽

현실은 피 철철 살점 듬뿍!

    주인공들도 이야기 도중에 '버지니아 울프'로 대체된 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로 대체된 공포는 무엇일까요?

    조지와 마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환상 속에서만 아이를 갖고 키우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만 마사가 허니에게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두 사람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마사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허니에게 말해버리자 조지는 환상 속에 있는 아이를 죽여버립니다.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사는 엄청나게 괴로워합니다. 환상 속에만 존재하던 아이를, 환상 속에서 죽여버렸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환상을 믿고, 그것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환상이 빠진, 삶의 진짜 모습을 대면하는게 무서웠던게 아닐까요? 주인공들처럼, 사람들이 상상하는 교수라는 지위의 이미지와 실제 교수의 삶이 거리가 있는 것처럼, 모두들 그런 면면을 지니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어둠 속 어딘가에 있는 조지. ……내게 잘해 주지만 내가 욕을 퍼붓는 조지,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기죽이는 조지, 나를 웃게 하지만 나는 그 웃음을 억지로 참지. 밤에 나를 안아 주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지만 피가 나도록 내가 물어뜨는 조지, 내가 규칙을 바꾸는 만큼 우리가 하는 게임을 빠르게 계속 배워가는 조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데 난 행복하고 싶지 않아. 그래, 난 행복하고 싶어. 조지와 마사, 슬프고, 슬프고 슬프지.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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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5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심보선 추천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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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형이상학은 불쾌한 기분의 자각!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 알바루 드 캄푸스, 「담배 가게」 51쪽

    '형이상학(metaphysics)'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용어로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시인 알바루 드 캄푸스는 왜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다고 한 것일까요?

    페르난두 페소아,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페소아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는 여러 개의 이명(異名, 다른 이름)을 만들어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가 만든 이명들은 단순한 가명이나 필명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명을 만들고, 각 이명들마다 나름의 직업과 캐릭터, 상황까지 설정해뒀습니다. 이명들마다 문체나 추구하는 주제도 당연히 달랐습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는 페소아가 가장 사랑했던 이명,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으로 발표한 시들을 엮은 것입니다. 페소아보다 3년 늦게 태어난 캄푸스는 글래스고에서 교육받은 선박 엔지니어로 기술 전성시대를 시로 표현한 모더니스트였으며, 이명들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페소아가 죽기 한달 전까지도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에는 시끄러운 소음과 기계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어들과 다른, 동력전달장치, 프로펠러, 밸브, 콘크리트와 같은 단어들과 기계음들이 시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도 그들만의 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시를 잃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기계들까지

그들만의 시가 있다, 거기다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

상업적이고, 세속적이고, 지적이고, 감상적인 삶은,

기계의 시대가 우리 영혼에 가져온 것들.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215쪽

    "페소아의 미친 쌍둥이 형제"라고도 불렸던 캄푸스, 그의 시 속에서도 페소아가 느꼈던 불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페소아처럼, 존재에 대해, 특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실재하는 '존재'가 아닌 페소아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존재'였기 때문에 페소아보다 더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누구나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기 힘듭니다.

이 깊은 불안, 다른 것들을 향한 욕구,

나라들도 아니고, 순간들도 아니고, 인생들도 아닌,

어쩌면 영혼의 다른 상태들을 갈구하는 이 욕망이

느리고 먼 이 순간을 안에서부터 촉촉이 적셔 온다!

─ 알바루 드 캄푸스, 「송시에서 발췌한 두 편」 121쪽

내가 누구길래 울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나?

내가 누구라고 너에게 말을 걸고 너를 사랑하나?

내가 누구라고 너를 보는 것만으로 심란해지나?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229쪽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우리는 철학(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페소아는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방해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소녀는, 초콜릿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달콤한 초콜릿 맛만 생각할 뿐이죠. 모든 이명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알베르투 카에이루 또한,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캄푸스 또한 자신의 스승을 이렇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맑게 보기를 가르쳤단 말이가, 맑게 볼 영혼을 가지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면서?"(「스승, 나의 사랑하는 스승이여!」 67쪽)

    우리도 어린 소녀처럼, 달콤한 초콜릿을 진심으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걸 쓸 생각에 잠기며

그 담배에서 모든 사상들의 자유를 맛본다.

나름의 길이라도 되듯 연기를 따라가 보며,

나는 만끽한다, 예민하고 적절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형이상학이 불쾌한 기분의 결과라는 자각.

─ 알바루 드 캄푸스, 「담배 가게」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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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하고 시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외국 시인의 시라면 더더욱.

근데 많은 분들이 페소아의 시가 좋
다고 하니 한 번 시도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