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 독서, 누구 마음대로 '필독'이니!

요즘 다른 사람들이 읽은 독서 리스트를 엿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그녀가 쓴 소설은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다양한 독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어 준 백영옥 작가, 기대 이상의 글솜씨를 보여줬던 서민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문유석 판사의 리스트를 엿봅니다.

이전에 나왔던 그의 저작들은 (읽어보지 않아서)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쾌락독서』에서 그가 펼치는 글솜씨는 상당히 서툽니다. 책답지 않은 (SNS 글쓰기 같은) 혹은 판사답지 않은 (10대들 같은) 문장을 구사해서 간혹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글이 솔직해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일부러 지난 날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지금 생각나는 그대로 썼을 뿐. 그래서 설명이 부족한 책들도 더러 있지만, 그런 설명(정보)들은 인터넷서점에서 충분히 검색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이 책을 펴는데 '판사'라는 직업 덕분에 일종의 어드밴티지를 받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고백입니다.

책을 계속 낼 수 있었고, 과분한 관심을 받기도 했던 이유의 70퍼센트 이상은 판사라는 직업이 주는 의외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량진 만홧가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고시생 시절의 내가 『개인주의자 선언』을 써서 출판사에 가져갔다면 뭐라고 했을까? 네네, 선언 많이 하시고요, 응원합니다. 파이팅!

그걸 생각하면 죄송함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교보문고 한가운데서 삼보일배를 할 수도 없고 '앞으로는 더 잘 쓰라는 채찍질로 알고 아마추어적인 글쓰기는 더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드릴 수도 없다. 애초에 나는 말이나 노새도 아닐뿐더러 SM 취미도 없기 때문에 채찍은 그다지……죄송. 그게 아니라 뻔뻔한 얘기지만 나는 완성도에 상관없이 내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79~180쪽

그의 글이 어떻든, 그가 어떤 어드밴티지를 받았든, 책을 본 사람들의 책망을 걱정하면서도 이 글을 쓴 이유는 무엇보다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미있어서 책을 읽고, 재미있어서 글을 씁니다. 세상에, 재미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죠. 그는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부터 원본으로 봐야 보물임을 알 수 있는 『춘향전』, 『아라비안나이트』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만 소개합니다. 그에게는 꼭 읽어야 하는 '필독 도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책들만 있을 뿐이죠.

신나게 '책 수다'를 떨어야 한다고 하는 그. 그럼, 그의 '책 수다'를 살짝 들어볼까요?

 

어릴 적에는 나도 욱하며 어떻게든 마주 비꼬아주거나 반박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

① 험담이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경우 : 그래도 감사할 일이다. 내가 놓치고 있는 포인트를 결과적으로 알려준 것이니 면전에서는 싱긋 웃어주고 돌아서서는 잘 생각하여 내게 득 되는 쪽으로 참고하자.

② 일리는커녕 택도 없는 험담에 불과한 경우 : 그냥 싱긋 웃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배우면 된다. 안타깝지만 인간 세상에는 언제나 열등감, 시기심, 콤플렉스, 공격성, 또는 그냥 멍청함이 넘쳐난다. 더불어 살아야지 어쩌겠니.

③ 일리도 없을뿐더러 악의적이며 내게 실제 피해를 끼치는 경우 : ……본때를 보여준다.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32~33쪽

 

김연수의 상 받은 유명한 작품들보다 이런 소소하고 귀여운 문장들이 더 내 취향이다.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첫 작품 「벚꽃 새해」는 단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단아하고 사랑스러운 글인데, 어느 한 부분을 오려낼 도리가 없으니 한번 읽어들 보시라.

나는 왠지 김연수 하면 동시에 김영하가 같이 떠오른다. 아까 '고양잇과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김연수가 수줍고 순둥순둥한 고양이 느낌이 강하다면 김영하는 성격 나쁘고 까칠한 고양이 같아서 매력 있다. 김영하의 글은 감성 과잉이라고는 '1도 없는' 쌀쌀맞음과 감탄스러울 정도의 이지적인 매력이 특징이다. 특히 뭔가의 핵심을 논리적이고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를 했으면 일타 강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알쓸신잡〉을 봐도 내로라하는 말발의 선수들 사이에서 가장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유려하게 이야기하는 건 김영하더라. 55~56쪽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이동진 독서법』을 읽다가 깊이 공감하는 구절을 만났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구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구아수폭포를 보고 싶다, 남극에 가보고 싶다 등 크고 강렬한 비일상적 경험을 소원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쾌락에 불과하고,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 인간의 행복감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공통적으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어떤 '큰 것 한 방'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52~253쪽

여기, 독방에 갇힌 무기수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찮게 한 영문학 교수를 만나 셰익스피어 강의를 듣게 된다. 이후 십 년간 이어진 수업의 결과, 무기수는 삶의 구원을 얻는다.

실로 놀라운 이 얘긴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라는 책의 줄거리다.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25세이던 1983년, 시카고 소재 쿡카운티 단기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자원봉사 삼아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봉사는 2010년까지 약 삼십 년간 여러 교도소로 이어졌다. 196쪽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 『속죄』는 키라 나이틀리, 제임스 매커보이 주연의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진실, 오해, 속죄, 문학의 본질 등 여러 실타래를 촘촘히 짜넣은 작품이지만 직업병은 어쩔 수 없어 나는 재판의 오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며 읽었었다. 212쪽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들을 소개하면서 반대의 이야기도 함께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건 괜찮지만 무엇이 별로라고 얘기하는 건 '그러는 너는!' 등등의 소란스러운 반응을 감수해야 하는 일"(72쪽)이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독서 리스트를 공개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은 소개하면서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들은 소개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쭈뼛쭈뼛 고백합니다. 가벼운 문장들은 제 취향이 아니라고 (SNS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가능하면 책에는 쓰지 않았으면, 나중에 이 말들이 유행이 지나가고 이 책을 펼쳤을 때 어쩌려고), 이 책 역시 제 취향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대신 읽고 싶은 책들은 장바구니 가득 담고 갑니다.

간접경험은 당연히 직접경험만큼의 깊이는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해본 적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들의 삶을 읽기라도 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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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3-02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조금 다르던데 느끼셨어요? 앞부분과 그리고 뒷부분이.

뒷북소녀 2019-03-07 09:42   좋아요 1 | URL
뒤로 갈수록 점점 나아지는 느낌? 이 느낌 맞나요?

카알벨루치 2019-03-07 11:45   좋아요 1 | URL
앞부분은 유쾌하고 뒷부분은 진지하고 나름 갠츈았어요

레삭매냐 2019-03-06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도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은 관계로
판사님의 책 이야기는 리뷰로 보고
패스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바로 성공한 ‘판사님‘의 책소개라는
거죠. 솔직해서 보기 좋네요.

뒷북소녀 2019-03-07 09:43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추천해드려야 하는데, 자꾸 패스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저도 저렇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가장 좋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잘 쓰는 줄 알고... 계속 작가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레삭매냐 2019-03-07 09:46   좋아요 0 | URL
뭔 말씀을 ㅋㅋㅋ

읽어야 하는 책들이 쌔고 쌨는데
취향이 아닌 책을 발라 주시는 게
얼마나 영양가 있는 데요 핫하 -

책쟁이들에게 적은 시간이랍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시골 마을의 술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 바텐더 '테레자'는 그가 이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봅니다. 테레자는 옆구리에 『안나 카레니나』를 끼고 프라하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찾아갑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와 토마시는 이렇게 만났습니다.

우연히 만난 전 여자친구 '썸머', 애인도 싫다며 떠났던 그녀가 이제는 유부녀라고 합니다. 그녀가 식당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책 내용에 대해 물었고 그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화 《500일의 썸머》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상실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최고의 책으로 꼽는 와타나베, 아쉽게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나가사와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하면 유독 그 부분만 잘 기억하게 됩니다. 가끔씩 “그래서 그 둘은 어떻게 되었어?”라고 묻는 분들이 계셔서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책의 줄거리나 핵심 같은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시간 죽이기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시간 죽이기가 아닌 일이 뭐가 있을까. 게다가 나는 나름대로 애서가이기도 했다. 11쪽

삶이 결국은 갖가지 시간 때우기의 퇴적이라면, 틈틈이 몰두할 수 있는, 혹은 몰두한 척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12쪽

『그래도 우리의 나날』 또한 인상적인 에피소드로 시작합니다. 헌책방에서 H전집을 발견한 후미오는 완간 된지 한달 밖에 지나지 않은 H전집을 놓칠 수가 없어서 사버립니다. 마침 아르바이트로 받은 그달치 돈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이번에는 반만 구매하고 한달 뒤에 다시 와서 나머지 반을 구매하겠다고 헌책방 주인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약혼녀 세쓰코는 후미오의 집에서 새로 산 H 전집을 살펴보다가 낯익은 장서인을 발견합니다. 대학생 때 '역사연구회 합동연구회'에서 알게 된 친구가 반강제적으로 빌려준 책이 한 권 있는데, 그 책에도 똑같은 장서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쓰코는 '사노'라는 선배의 책이라며 후미오와 같은 도쿄대학교 출신이니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알아봐달라고 합니다. 한달 뒤 H전집의 나머지 반을 구매한 후미오는, H전집을 내다판 사노의 사연이 궁금해서 그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24~25쪽

이즈음, 후미오의 약혼녀 세쓰코는 묻습니다. 그녀가 왜 후미오를 위해 밥을 지어야 하는지, 후미오가 왜 그녀가 만든 밥을 먹는지, 그리고 이 일들은 얼마나 계속되어야 하며, 이 일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면 세쓰코는 뭐가 뭔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합니다. 후미오는 결혼을 앞둔 여자가 느끼는 흔한 불안감이라 여기며, 그녀와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무역회사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후미오와의 결혼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세쓰코도 대학생 때는 당시 학생모임 중에서도 가장 좌익이라고 알려졌던 도쿄대학교 역사연구회 합동연구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사노를 만났고, 사노가 잠행하기로 결정한 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을 그녀에게 준 것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읽을 일도 없다면서 말이죠.

나는 당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당원이었기 때문에 배신자가 된 거다. 그래, 너처럼 무당파이면 절대 배신자가 될 일이 없잖은가. 나 역시 당을 떠나면 그때는 그냥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당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만약 당에서 떠난다면 그때의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자신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64쪽

한편, 후미오와 세쓰코는 사노의 소식을 쫓다가 그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살 직전 사노는 한 친구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남기는데,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 편지를 얻어 읽게 됩니다. 그 편지 속에는 그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왜 잠행을 결정했는지, 잠행 이후 그가 옳다고 생각해서 따랐던 조직이 얼마나 허무하게 해산됐는지, 그리고 그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모두 쓰여 있었습니다.

사노의 편지가 내 마음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갔을 리는 없다. 나는 H전집을 산 날 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헌책방 책꽂이에서 H전집이 내 마음 한구석에 감춰졌던 공허함에 호소한 것 같은 그 기묘한 체험. 그것은 죽은 이가 마음으로 한 호소였던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걸 지워버렸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과 죽음이 있다. 사노의 삶과 죽음은 어차피 그의 삶과 죽음이었다. 혁명가이고 싶었지만 혁명가가 되지 못한 사노. 99쪽

사노는 물론이고, 사노의 편지를 읽었던 후미오, 결혼을 앞두고 종종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세쓰코까지, 그들은 결국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합니다. "내게 죽음이 찾아왔을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106쪽)

후미오는 세쓰코를 만나 약혼을 하기 전의 일들을 세쓰코에게 고백합니다. 충격적이게도 후미오에게는 한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후미오는 얌전한 결혼 상대를 찾았고, 그렇게 만난 것이 바로 세쓰코였습니다.

결혼을 하면 세쓰코는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고 후미오를 따라가야 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세쓰코는 후미오와의 만남도 피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다가 지하철 플랫폼으로 추락해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후미오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이 적당한 결혼 상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세쓰코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후미오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를 경험한 세쓰코가 이미 마음을 정리한 뒤였습니다.

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런 무서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게서 떠나지 않는 피로감의 의미를 깨달았어. 우리 사이, 우리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생은 각자 다른 사실과 현상이 우연히 연속해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함 속에 나는 지쳐버렸다, 내 생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 없다……그 한 가지의 물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은 거야. 175쪽

후미오의 고백과 세쓰코의 선택이 충격적이었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덮으면서 저 또한 그들이 도달했던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과연 저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무서운 질문에 저 역시 답을 갖고 있지 않네요.

당신은 내 청춘이었다는 것! 아무리 괴롭고 답답한 날들이었어도 당신은 내 청춘이었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야. 190쪽

우리 세대는 분명 늙기 쉬운 세대다. 늙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194쪽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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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02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도서관에 가서 시바타 쇼의 책
드디어 빌려 왔습니다.

오래 전에 신형철 씨가 인생책이라고
하면서 문동 팟캐에서 야그해 주셨
는데 인제사 나왔네요.

전공투 시절 이야기라 지금하고는 좀
맞지 않는다는 리뷰가 있어 굳이 구매
는 패스했습니다.

책은 읽는 게 중요하니까요.
물론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은
바로 질렀습니다만.

뒷북소녀 2019-03-15 12:5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창백한 불꽃> 지르러 갑니다^^
요즘 너무 핫한 거 같아서 제 취향은 아닌 것 같지만
도서관 찬스로 읽어봤어요.

쟝쟝 2019-03-14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여주인공 이름이 ... 바퀴벌레 잡는 회사 이름이라.. 내용은 진지한데 자꾸 웃었던... 리뷰 잘 읽었습니다!

뒷북소녀 2019-03-15 12:55   좋아요 1 | URL
아! 세상에! 어쩐지, 여주인공 이름이 낯설지 않다 했어요.세스코라뇨.

쟝쟝 2019-03-15 14:42   좋아요 0 | URL
약간은 썰렁한 저의 웃음 포인트..🤘🏻
 
불멸 밀란 쿤데라 전집 7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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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많되 몸짓은 별로 없다!

'밀란 쿤데라'는 아베나리우스 교수를 기다리면서 맞은편에 있는 헬스클럽의 실내 수영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영 강습을 받고 있던 한 부인이 쿤데라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다섯 살쯤으로 보였는데, 수영 강습이 끝나자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걷다가 강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합니다. 그 미소, 그 손짓이 마치 스무 살 아가씨 같아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쿤데라의 심장까지 졸아들 정도입니다.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 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10쪽

그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녜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이름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11쪽

그 부인의 미소, 손짓으로부터 『불멸』의 주인공 '아녜스'가 탄생합니다.

만약 우리 지구의 인구가 800억을 넘어섰다면, 그들 각자가 자기만의 몸짓 일람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다. 산술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사람 수에 비해 몸짓 수가 비교도 안 될 만치 적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충격적인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즉 몸짓이 개인보다 더 개인적인 것이다. 이를 격언 형태로 얘기하면, 사람은 많되 몸짓은 별로 없다가 된다. 16쪽

『불멸』은 작가 '밀란 쿤데라'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소설 속 '쿤데라'는 친구인 아벨리우스 교수를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 수영장을 관찰합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자신의 매력을 미소와 손짓으로 발산하던 한 부인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불멸』은 크게 세 가지 층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바깥쪽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이것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쓰기 작법처럼, 혹은 자전적 에세이처럼 읽힙니다. '나는 이렇게 소설적 인물을 창조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모티프를 얻어 이야기를 구성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안쪽으로 그가 창조한 '아녜스'의 이야기와 불멸의 작품을 남긴 '괴테'의 일화가 교차돼 등장합니다.

쿤데라의 소설 속 '아녜스'는 변호사인 '폴'과 결혼을 해 딸 브리지트를 두었고, 자신보다 8살 아래의 여동생 '로라'도 있습니다. '아녜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비서가 아버지에게 보냈던 미소와 손짓을 목격한 뒤부터 그것을 자신의 몸짓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미소와 손짓은 '쿤데라'가 수영장에서 목격했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모방하기 좋아했던 '로라'가 똑같은 몸짓을 하는 걸 보고는 다시는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로라'는 언니가 사고로 죽은 뒤에 형부인 '폴'과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폴'은 '로라'의 몸짓을 보고는 '로라'만의 몸짓이라고, 자신에게만 보내는 몸짓이라고 감탄합니다.

갑자기 그녀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팔 하나를 허공으로 날렸다. 그 동작이 너무도 경쾌하고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잽싸서 마치 금빛 풍선 하나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올라 문 위에 걸려 머무는 것처럼 보였다.

즉시 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더니 그가 아베나리우스의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보았소? 저 몸짓을 보았소?"

(…) "아, 로라! 그녀만의 것이야! 아, 저 몸짓! 그녀의 전부를 함축하는 몸짓!" 542~543쪽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

또다른 이야기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괴테'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미 아내가 있던 괴테에게 한 젊은 부인이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며 그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 부인의 이름은 베티나, 괴테가 23세 때 사랑했던 여자의 딸이기도 한 그녀는 스스로 '괴테의 딸'이라고 여깁니다. 괴테는 베티나 때문에 (물론 작품도 그러했지만) 사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불멸'을 누렸습니다.

불멸. 괴테는 이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옷차림이 가벼운 한 인물이 사원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등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에게선 어떤 비범한 구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선구자 없이, 다른 위대한 모델들에게는 무관심한 채,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불멸을 만나러 걸어간 그는 바로 셰익스피어였다."

물론, 여기서 괴테가 말하는 불멸은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른 불멸, 사후에도 후세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자들의 세속적인 불멸이다. 81~82쪽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불멸에 이를 수 있으며 모두가 청년 시절부터 불멸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만난 헤밍웨이는 '불멸'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삶이 힘들어서 혹은 싫어서 권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에게는 영원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끔찍할 정도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불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일단 불멸의 배에 오르고 나면 영원히 내릴 수가 없지요. 나처럼 두개골을 권총으로 쏘아 버려도 자살한 모습 그대로 그 배 위에 머무릅니다. 끔찍한 일이에요. 요한. 정말 끔찍해요. 138쪽

이쯤되니 밀란 쿤데라 자신은 '불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분명 그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속적인 불멸'을 누릴텐데, 그에게 '불멸'은 어떤 의미일까요?

쿤데라는 '불멸'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은 불멸'과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큰 불멸'이 바로 그것인데, 예술가와 정치가는 대부분 '큰 불멸'의 길을 걸었습니다. 셰익스피가 가장 먼저 그 길을 걸었고, 괴테와 헤밍웨이도 그 길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82쪽) 않습니다. '아녜스'는 죽은 뒤에, '작은 불멸'로 남았습니다. '폴'과 '로라' 모두에게 잊혀진 것 같았지만, '로라'의 몸짓으로 '작은 불멸'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나는 아녜스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녀를 상상한 게 벌써 이 년 전이다. 그때 나는 클럽의 긴 의자 위에서 아베나리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내가 포도주를 한 병 주문한 것은 그래서였다. 나의 소설이 끝났기에, 첫 발상이 이루어진 곳에서 이를 자축하고 싶었던 것이다. 550쪽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제목은 이 소설에 붙여야 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을 쓸 때 '7'이라는 숫자에 집착합니다. 그의 첫 소설인 『농담』을 쓰고 난 후부터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6부로 구상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7부로 나누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 역시 7부로 구성되어 있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보여줬던 기법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6부에서 먼저 엔딩을 보여준 뒤에 7부에서 왜 그런 엔딩이 나왔는지 되짚어줍니다.

제 소설들은 7이라는 숫자 위에 세워진 동일한 건축술의 변형인 셈이죠. 『소설의 기술』 126쪽

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화자 뒤에 살짝 숨어 있었던 '쿤데라'가 『불멸』에서는 소설 앞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는 『삶은 다른 곳에』를 쓴 작가로 등장하며, 심지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눠 독자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비교할 수 밖에 없도록 (혹은 읽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6부를 기다리며 안달하네. 새로운 인물이 내 소설에 등장할 걸세. 그 6부가 끝날 때쯤 그는 등장할 때처럼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릴거야. 그는 무엇의 동기도 아니며, 어떤 효과도 낳지 않네. 내 마음에 드는 게 바로 그런 거라네. 소설 속의 소설이요, 내가 써 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가 될 거야. 자네 역시 그 이야기를 읽고 슬퍼할 걸세."

아베나리우스는 잠시 어색한 침묵을 지키다가 상냥하게 물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 그 제목은 이미 써먹지 않았는가."

"그래. 써먹었지! 하지만 그때 난 제목을 잘못 달았어. 그 제목은 지금 쓰는 소설에 붙여야 했어."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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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으로 시작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4명의 주인공을 따라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급급했었고, 다시 읽었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각각의 주인공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구별하며 읽었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다보니, 이제야 비로소 밀란 쿤데라의 문장과 사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이런 제 푸념을 밀란 쿤데라가 들었다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자신의 소설을 띄엄띄엄 읽었다고 말이죠.


 

만약 독자가 내 소설을 한 줄이라도 건너뛴다면 소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렇지만 행을 건너뛰지 않는 독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행과 페이지를 잘 건너뛰는 사람 아닌가? _ 밀란쿤데라, 『불멸』 533쪽

 

하지만 절대 띄엄띄엄 읽지 않았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데, 감히 건너뛰다니요.


아무튼,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전에 쓴 리뷰에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설하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라는 존재와 그 행동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절대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적인 것이란 없고 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는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이 존재 자체가 한없이 가벼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한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도 모르고, 이 존재의 끝도 알 수 없어서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존재를 견디기 힘듭니다. 이 소설의 원제 또한 '참을 수 없는'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돼서 똑같은 삶을 살고, 또 살게 된다면 우리 존재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 또한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한 번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되는데, 그 '한 번'이 얼마나 견딜 수 없이 무거울까요.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짐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12쪽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13쪽

 

밀란 쿤데라는 늘 '존재'에 주목합니다. 그는 소설의 존재 이유 또한 "삶의 세계를 영원한 빛 아래 간직하고 우리를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키는 것"(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33쪽)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존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전히 밀란 쿤데라가 어렵다면,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렵다면 굳이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문장만 따라 읽어보길 바랍니다. 그 문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빛나는 작가니까요.

 

사람들이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카프카의 탁월한 상상력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알레고리를 찾으려 들기에 결국 상투적인 해답만 들고 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둥(아니면 부조리하지 않다는 둥), 아니면 신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둥(아니면 우리와 닿을 수 있는 존재라는 둥) 그런 것들이지요. 상상력이 그 자체로 가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_ 파리 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1』,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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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7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의 책이라고는 <무의미의 축제>
하나 읽은 게 다네요.

<참을 수 없는...>은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 실패 -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귀찮네요.

쿤데라 다른 책도 있는디.

뒷북소녀 2019-02-27 12:57   좋아요 0 | URL
아, <무의미의 축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여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미스테리합니다.
작가가 탐구하고 있는 ‘존재‘ 그 자체가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여러 번 읽다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시길^^

카알벨루치 2019-02-27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견딜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해와 공감이 팍팍!ㅎㅎ

뒷북소녀 2019-02-27 12:58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다보니, 한국어로 번역된 ‘참을 수 없는 ‘ 것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이 더 와닿는 것 같더라구요.
처음 이렇게 제목을 지은 번역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카알벨루치 2019-02-27 15:24   좋아요 1 | URL
20대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근데 리뷰가 넘 좋네요👍👍👍

뒷북소녀 2019-02-27 23:10   좋아요 1 | URL
저는 며칠 전에 읽어도 늘 가물가물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설해목 2019-02-27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의 소설은 이 한 권이면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작하다 포기 시작하다 포기를 반복...ㅎㅎㅎ;;;;;
언젠가는 나도 뒷북소녀처럼 멋지게 읽어내겠지? ~~ ^^

뒷북소녀 2019-02-27 12:59   좋아요 0 | URL
아, 정말인가요? 저는 다음으로 <불멸>을 읽었는데, <불멸>도 정말 좋더라구요.
한 권으로는 절대... 부족한 것 같아요. 도전해 보셔요. ^^
 
또또
조은 지음 / 로도스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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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에서 '또또'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가 발췌해 준 문장만으로도 '또또'가 자꾸 눈에 밟혔는데, 다른 작가의 에세이에서 '또또'를 또 만나게 됐습니다. 평소 (남녀노소가 아닌) 수컷 암컷 대소를 불문하고 개라면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희한하게도 '또또'는 자꾸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유일하게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다 간 강아지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일까요? 그 녀석의 이름은 '뽀뽀'였고, 키울 능력이 부족했던 우리를 만나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보내져야만 했습니다.

사직동에 사는 동안 나는 몸도 건강해졌고, 의식도 성장했다고 느꼈다. 느리고 굼뜬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 세월 동안 한결같이 내 곁에 있었던 존재는 상처 받은 채 내게로 왔던 작은 개 또또였다.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또또만이 고른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다. 잡종개였던 또또만이 내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슬픔도 묵묵히 덜어내 줬다. 또또는 한 번도 내게 싫증을 내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의 시시한 면면을 누설하지 않았고, 인간을 통해서는 줄일 수 없었던 내 아픔을 조용히 나눠 가지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동안 내게 기쁜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밖으로 나도느라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니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또또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처럼 나는 삶이 내게 주는 무게를 또또를 통해 덜어 내곤 했지만, 같이 사는 동안엔 그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그걸 알고 뭉클뭉클 솟구치는 고마움을 느꼈을 때 또또는 이미 폭삭 늙어 버린 뒤라 우리 앞에는 안타까운 시간만 남아 있었다. 10쪽

한번 키워보고 싶다며, 어느 날 동생이 무턱대고 데려온 '뽀뽀'. 하지만 우리에게는 '뽀뽀'를 제대로 보살펴 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야만 했던 '뽀뽀'는 우리가 떠난 현관 앞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우리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않고, 하루종일 집 안에 혼자 두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뽀뽀'를 하루종일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지인에게 입양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입양 보낸 우리가 어디가 좋다고, 가끔씩 그 지인이 하는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뽀뽀'는 헤어진 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습니다.

'뽀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마도 저였을 거예요. 알레르기도 있고, 강아지도 무서워해서 곁에 두지 않았는데 집에 있을 때면 늘 뒤에서 맴돌고 있었나봐요. (곁에 있는 건 워낙 싫어하니까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의자를 뒤로 뺐는데,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의자 바퀴에 작은 발이 끼여 버렸던 것입니다. 동생이 여행을 가고 온전히 혼자 '뽀뽀'를 돌보게 됐을 때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했고, '뽀뽀'를 데리고 이동해야 할 때는 가까이 안아주는 게 아니라 멀찍이 들고 다녔습니다. 저도 제 나름의 사정(알레르기와 공포)이 있었지만, 지인들은 '뽀뽀'가 너무 무서울 것 같다며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뽀뽀'는 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뒤에서 맴돌고 있었죠. 제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절대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죠.

또또는 죽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받은 나쁜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도 편히 자지 못하던 또또를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워 악몽으로부터 건져 내야 했던 밤의 기억이 너무도 강해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말에 얼른 동조하지 못한다. 그때를 제외하면, 말년의 또또는 평화로웠다.

(…) 상처투성이로 내게로 왔지만, 또또는 내게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공포감을 다스리지 못해 저도 모르게 나를 물기는 했지만. 물고 나선 곧바로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고, 그동안 녀석의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냥 번쩍 들어 품에 안아 줬으면 녀석은 명랑하고 상냥한 태생적 본능을 잃지 않고 예쁘게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그랬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했을 것이다. 11쪽

원래 '또또'는 조은 시인이 세 들어 살던 개량한옥 주인집의 개였습니다. 십 대 후반의 두 아들과 살고 있는 주인집은 평소에는 너무도 조용하고 강아지도 방 안에서 키웠는데, 가끔씩 이 강아지를 학대하는 장면이 시인에게 목격됩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강아지를 때리기도 하고, 추운 겨울밤에 목욕을 시킨 후 말려주지도 않은 채 마당으로 쫓아내기도 합니다. 겨우 1만 원짜리 강아지라며 막 대하고, 개 장수에게 줘버린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또또'가 불쌍해서 시인이 가끔씩 돌봐주자 '또또'의 안부를 시인에게 묻기도 합니다. 지난밤에 얼어 죽지 않았는지, 새벽에 나가는 걸 봤는데 돌아왔는지 등.

갈색 실꾸리 같은 것이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끼어 내 쪽으로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그것이 둥글게 오므라들며 마른 큼직한 플라타너스 잎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 나뭇잎이 회오리치는 바람에 굴러 내 발목에 와닿았다. 열리지 않는 문의 의미를 병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을 때였다. 곧이어 무엇인가가 내 바지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뭔가가 이상해 허리를 굽혀 발치를 내려다보던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나뭇잎이거나 실꾸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예쁘게 생긴 작은 강아지였다. 나는 그때껏 그렇게 예쁘게 생긴 강아지를 본 적 없었다. 강아지는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다.

(…) 강아지는 내가 일찍이 본 적 없이 예뻤지만, 나는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19쪽

사실 시인은 개와 가까워지는 게 두렵습니다. 어릴 때 키웠던 '마루'가 아빠 친구들에게 잡아먹힌 사건 이후로 충격을 받아 더이상 개는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마주치는 이 '또또'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기만하면 물어버리는 '또또', 시인 역시 여러 번 '또또'에게 손을 물렸습니다. 아픈 '또또'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의사는 이런 예민한 성격에, 잘 먹지도 않아서 3년도 못 살거라고 말합니다.

집주인과 공동으로 '또또'를 키우던 시인은 이사를 하면서 아예 '또또'를 데려갑니다. 주인 역시 시인에게 별말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1만 원짜리였으니까요.

또또는 사람이 의도를 갖고 자신을 때리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고통에 강했다. 녀석은 정말이지 죽을 정도로 아파도 조용했다. 내부의 고통을 수용하는 녀석의 태도는 인간인 나도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102쪽

하지만 시인과 '또또'는 무려 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또또'가 아파도 더이상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병보다는 그런 스트레스가 '또또'에게 더 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예민하고 아팠지만, 신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줄 알았던 '또또'. '또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날, 시인은 동물병원으로 '또또'를 마지막으로 데려가, 편안하게 보내주기로 결심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또또'에게 보내는 시인의 '애도'일지도 모릅니다.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또또는 '저렇게 먹고 어떻게 생명이 유지될까?' 싶을 정도로 적게 먹었는데, 3년을 못 넘길 거라던 수의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17년을 살았다. 135쪽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이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저오가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러운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그들에게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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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5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희 이모님이 기르시던 댕댕이
이름을 제가 또또라고 지어 주었었는데...

지금 무지개 다리 건너갔구요.

뒷북소녀 2019-02-27 13:03   좋아요 0 | URL
아, 또또...
강아지들은 주로 부르기 쉬운 이름들로 명명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