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수는 앉은 자리에서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어느 시인은 북적이는 전철안에서도 시를 썼다고 하는데
노래가 짠해서도 아니고 시가 안쓰러워서도 아닌데

그저 오늘같은 바람이 불고, 변변하지 못한 청춘이 가여운 날에는  
선/운/사/에 가/고/싶/습/니/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떠나실 거에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 선운사, 송창식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선운사에서,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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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에 미친척하고 민정언니랑 셋이 한번 갈까요 언니?

굿바이 2010-02-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미친척하지 않아도 갈 수 있어. 그러니까 고!

동우 2010-03-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하. 굿바이님, 웬디양 (웬디양님 해야 되는 건가요? 하하)
당연한 말씀.
좁은 한반도 어디인들, 아무렴요 미친척 하지 않아도 훌쩍 떠날수 있는 곳.
4월의 부산 봄바다도 그러하지요. ㅎㅎ

굿바이 2010-03-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아~ 4월의 부산! 완전 좋아요^^

니나 2010-03-0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암사 화장실에서 나는 잃어버린 삶의 경건성과 삶의 자유로움과 삶의 서늘함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눈물겨웠다. 아, 그리운 것들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그러니 그리운 것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운 것들을 향해서 가자. 가자. 가자. 무릎걸음으로 기어서라도 기어이 가자. 그것들이 살아 있는 한, 내 마침내 그곳에 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사랑은 불우하지 않으리.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

김훈, 자전거여행

언니 글 읽고서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똥사면서 내세를 생각하는 이남자... (싫지 않으니 어쩜 조아)

굿바이 2010-03-09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러게, 어쩜 좋니~
 

쓸쓸한 소식은 봄바람을 타고 오는구나.

그런 친구가 있었다.
공부 잘 하고, 글 잘 쓰고, 운동 잘 하고, 용기있고, 잘 웃고, 강자 앞에서 강하고, 거짓말 하지 않고, 사려 깊고, 함부로 사랑하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神이 계시다면 편애가 심해도 너무 심하구나 할 정도로, 내가 같은 남자는 아니었지만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열등감에 불을 지르는 그런 녀석. 그런데, 미워할 수도 없는거라. 미워할 구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녀석이 거의 폐인이 되어 잠적했다고 하네. 상상할 수가 없어. 잘 다려진 셔츠같던 녀석인데, 믿기지가 않지. 믿을 수도 없지. 소식을 전하는 호들갑스러운 친구에게 사실이냐고 재차 묻다가 그만 두었다. 그럴 수 있으니까. 그래 실은 그럴 수 있지. 잘 아니까. 그래, 뭘 물어 싶네.

너는 세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너를 알던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웠을거야. 한 번도 누군가에게 기대보지 않은 마음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힘들지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벼랑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었는데.

어디서 뭘 먹고 어디서 어눌한 쇼를 하며 오늘도 잠시 눈을 붙일 곳을 찾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그저 살아라, 그저 견뎌라,라고 부탁하고 싶다. 부탁이다. 
그리고 보니 내 소식을 듣는 너도 그렇게 웅얼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저 살아라, 그저 견뎌라,라고. 
그래 나의 쇼도 너만큼 옹색하고 또 피곤하다. 그렇지만 실존이 거추장스럽고 던접스럽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삶이, 그저 어느 경구로, 단어로만 존재하지 않듯이 상념으로만 존재하는 죽음역시 없으리라 본다. 지루한 하루가 가고 지리한 겨울이 끝나면, 꽃나무는 앞다투어 꽃을 피울 것이고, 어느 공원에선가는 단내나는 분수가 졸음을 재촉할 터이니, 그것만이라도 같이 보자. 그래도 먹먹하고 속이 클클하면, 우리 국수 한 사발 하자. 그러니까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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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2-16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흐음, 굿바이님.
그래요, 삽시다. 견딥시다. 그래도 속이 클클하면 국수 한사발 하면서..
젊어 한때 정말 빨리 늙었으면 하고 진정으로 기원하였더랬지요.
하하, 굿바이님.
견디며 살다보면 늙기도 한답니다.

굿바이 2010-02-1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어서, 늙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국수 한 사발 제가 쏠께요~
 

비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건물 틈 어딘가에 쌓여있던 눈이었습니다. 눈이 녹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기다리던 소식이 올 것만 같았습니다. 전화가 오긴 왔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새삼 무슨 소용이겠어요. 한파가 잠시 물러간 사이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습니다. 반갑고 들뜬 마음에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춘은 2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저는 잠시 둥둥 떠오르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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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1-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시간에우리는 잠시봄이라고좋아하고있었어요언니~ 저도 이시간에 어딘가에 일기를 쓰고 있었던 ㅋㅋ

굿바이 2010-01-1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곳에서우리는 겨울도지나갈것이라고믿고있었구나웬디야~ 심심상인!ㅋㅋㅋ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한 15분 동안 얼마나 추웠는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논현역 근처에 내려 다시 지하철로 거의 뛰었다. 뛰다가 나는 멈췄다. 

좌판도 아니고 땅바닥에 종이를 깔고 열쇠고리를 파는 모녀가 서있다. 털모자를 쓰고, 귀마개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오리털잠바를 입었다. 어린 딸은 내 조카 하연이만한 아이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지나칠 수가 없다. 다가가자 아이는 눈만 보인다. 덜덜 떤다.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열쇠고리가 얼마냐고 나는 묻는다. 여자는 꽁꽁 얼었는지 발음도 부정확하다. 오백원이란다. 지갑을 뒤졌다. 삼만원이 잡힌다. 아이는 덜덜 떤다. 여자에게 삼만원을 건냈다. 그리고 오늘은 그만 들어가시라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본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황군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펑펑 울었다. 울면서 말했다. 아이가 덜덜 떤다고, 이 추위에 아이가 어미랑 꽁꽁 얼어 열쇠고리를 판다고, 그래서 내가 가진, 삼만원을 줬다고, 황군이 잘했다고 한다. 그 모녀 오늘은 찜질방에서라도 잘 수 있겠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너 사업 하지마라, 인권단체에서 일하지도 마라, 정치도 하지마라, 너는 그냥, 그냥, 아니다 몸이나 녹이자,라고 말한다.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삼만원이 남은 돈 전부였다고 했다. 황군이 말한다. 괜찮으니까, 그래, 귤 먹자,라고 한다.  

나는 못살겠다. 속상해서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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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0-01-1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보는 저도 속상한 글을 보면 뭐라고 댓글을 남겨야 할지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남기고 가요, 추운날 감기걸리시면 안됩니다 누나 ㅎ

굿바이 2010-01-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진환씨^^
진환씨도 감기 조심하고,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고!

동우 2010-01-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후니마미님도 글을 맛갈스레 참 잘 쓰시고.
굿바이님 역시 참 글을 잘 쓰신다는 말씀 아니 드릴수 없습니다.

........./"괜찮으니까,그래,귤 먹자."... / 나는 못살겠다. 속상해서 못살겠다.
사람의 심금을 건드립니다.

아이티의 참상.
굿바이님이 르포를 쓰신다면 지구인의 따뜻한 마음 더욱 동하게 하실듯.

굿바이 2010-01-1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니마미님 글은 따뜻하고 치우침이 없어 참 좋습니다. 동우님의 글은 일단 제가 가늠할 사이즈가 아니라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ㅜ.ㅜ
아이티가 겪고 있는 재난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저와도 연관이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인데, 그저 얼마의 성금만으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녀, 운다.  

어쩌자고, 또 우냐고 나는 물었다. 어쩌자고....K는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울었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이제 어쩌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K가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어떻게 헤어져야 했는지, 나는 쭉 지켜봤었다. 그러니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바닥까지 다 드러낸 기특한 사랑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잊어라,하자니 내 마음이 철렁하고, 지나가게 두자,라고 하자니 바닥이 까무룩 멀어진다. 살아있는 한 따라다닐 시간이고, 따라다닐 기억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뭐든 오래 붙들고 생채기를 내고 그렇게 뒹구는 사람들.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제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사람이 따뜻하다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알았다고 K는 내게 말한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한다. 커피 5잔을 축냈다. 그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사실 K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밥을 먹일까 싶었다. 얼마간 굶었을 것이고, 얼마간 울었으니 허기도 질 것이다. 그런데, 차마 밥먹자는 소리가 안나왔다. 그때, 눈은 다시 내리고 우리는 각자의 기억 어디쯤으로 잠시 피신할 수 있었다. 살아있어 다행인 밤, 그렇게 다시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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