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터키편, End of Pacific Series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른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바라보는 대상의 차이는 물론이요,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확연하게 구별된다. 아이는 아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어른들은 나름대로의 때묻고 주관화된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지만 아이들은 객관적이며 덜 변질된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천착한다. 그리고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어른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의지를 함양한다 하더라도 생래적으로 비본질보다 본질을 우선하는 득도의 눈을 가진 어린 아이를 따라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오소희씨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읽었다. 언제나 여행에세이를 만날 때는 기대와 흥분의 색깔이 특별나다. 저자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깨달았던 당시의 시공간속으로 나 자신이 침투되는 느낌을 기대하면서 흥분한다. 거기에다 29년의 인생을 살면서 이 자그만 반도를 넘어서지 못했던 개인적 콤플렉스가 뒤섞여 엄청난 앎과 지혜와 도전의 덩어리로 내게 밀려오곤 한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도 이런 내 기대감을 만족감으로 승화시키는 데 일체의 부족함이 없는 소중한 양식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생소한 나라 터키라는 공간에 저자가 아들과 함께 여행했던 3년 전의 한달동안의 시간속으로 나를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은 관찰자의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함께 여행했던 세 살배기 아들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관찰자적 시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그 두 가지 시선이 이 책의 흐름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어른과 아이의 일반적인 시선 프레임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저자는 터키라는 관찰대상을 한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관찰하되 자신이 볼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비록 단순한 시선이지만 어린 아이의 순수한 관찰을 통하여 여행이라는 인생수업이 주는 다양한 앎과 지혜를 1.5배 이상의 학습효과로 얻어 가고 있다.
  아이는 아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내가 그림을 볼 때 개미를 보고, 해협의 별장을 볼 때 그 옆을 지나가는 기차를 본다.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이는 나와 다른 것을 '선택'한다. 나는 그 사실을 여행 초반부에 알게 되어 기뻤다. 그것은 곧 '엄마, 나는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는 마치 선물처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아이가 그 옛날 술탄의 삶에 관심이 없듯 오늘 구석에 핀 들꽃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생생하게 현재를 좇는 아이의 눈은 죽은 자의 흔적을 따라가느라 치열하게 피어나는 생의 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그런 일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일어났따.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 본문 중에서


  터키라는 나라는 어떤 곳인가? 위풍당당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예이자 한국전쟁 당시 전투병을 파병하여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던 우정의 나라.. 2002년 한일월드컵때 그 우정을 재확인하려는 듯 3,4위전에서 보여준 멋진 경기 외에는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서 터키의 남다른 매력을 알 수 있었는데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권이며 그 처절했던 모슬렘과 기독교와의 오랜 전쟁의 중심지이자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대륙의 정 중앙에 위치한 특이한 유럽국가라는 상식수준의 정보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터키사람들이 느리고 순진하며 친절한 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매우 소소한 일상이 펼쳐지는 평범함 속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나라라는 점이다. 터키인들은 노동하는 하루 열 시간이 비즈니스 아워가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비지니스 아워를 살 때는 경제적 행위만을 극대화하지만 삶을 살 때에는 모든 것이 그 안에서 공평해진다는 저자의 언급대로 여유와 안정감의 미학이 있는 터키인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 어떤 곳보다 올림포스라는 곳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그 유명한 톱카스 궁전, 블루 모스크, 그랑바자르, 아야 소피아 등으로 대변되는 이스탄불의 공인된 유명세보다는 올림포스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과의 만남에 더 큰 여행의 기쁨을 발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올림포스 이전의 여행은 올림포스로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고 그 이후는 다시 올림포스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책의 1/3 이상의 분량이 올림포스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저자 자신도 올림포스를 떠난 이후 자기 안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락되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질 정도로 자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올림포스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행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정도다. 그 어떤 문화재나 건축물, 관광지보다 올림포스가 선물한 잔잔한 인간미와 드넓게 펼쳐진 지중해, 다양한 인간상들과의 호흡이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이는 저자 자신이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볼 수 있는 여행의 정의이자 참맛을 바로 올림포스에서 웅숭깊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 책이 여행에세이로 구분된다는 것이 다소의 불만이다. 물론 도서의 물리적인 구분에 따른다면 응당 세계여행기로 불리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제공하는 화학적인 가치를 목도할 때면 무리하게나마 다른 구분 또한 가능하다. 아들의 여행 관찰 시점을 시종일관 조명하는 동시에 아이의 멋있는 미래를 소망하는 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야기, 즉 러브스토리로 말이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저자가 고백한 아들의 현재의 모습과 미래를 향한 설렌 기대감은 너무 아름답게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아이가 세돌 무렵에 처절하게 배낭여행을 했다고 해서 제 친구들과 부쩍 다르게 행동하느냐 하면 그건 물론 아니다. 토마스에 열광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으며 정확히 제 나이에 기대되는 행동반경을 유지한다. 다만, 몇 가지 사소한 차이점은 존재한다.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그곳에 있는 선생님이 조금 놀라운 듯이 내게 말했다.
  "중빈이가 통이 참 커요. 다른 아이들은 소꿉놀이할 때 자동차 타고 이마트 갔다 온다고 하는데, 중빈이는 비행기 타고 베트남에 다녀오겠다고 해요."
  아이는 이 세상에 한 가지 인종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또, 한 가지 언어, 한 나라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다. '나'라는 것 외에 '너'가 있는 '우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경계를 설정하는 일인 동시에 그 경계 너머를 꿈꾸는 일이다.

 

  그렇다. 한 사람의 멋진 미래는 IQ가 결정하지 못한다. 의지력이나 집념도 아니다. 부모의 교육열은 더더욱 아니다. 우주라는 연극무대에서 배우로서의 개런티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항아리의 크기와 정확하게 비례한다. 크고 단단한 항아리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세상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아리는커녕 종제기와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다시말해서 인류는 극히 소수의 항아리들에 의해 절대다수의 종제기들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큰 항아리 안에 '나'를 품고 '너'를 품고 '우리'를 품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이 지구와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때에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고 천국이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영어 단어나 피아노 수업으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항아리의 가치를 깨달아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삶은 물론이요, 자신들이 만든 작은 천국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위대한 항아리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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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철학적인 오후
하인츠 쾨르너 외 지음, 이수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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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때는 자기계발서보다 아름다운 동화 한편이 보다 깊이 있는 지혜와 성찰을 비춰줄 때가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이건 하지 말고 저건 이렇게 하세요' 등의 어투로 일관하는 자기계발서의 건조한 문체가 부담된다면 잔잔한 동화 속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더 강한 포스를 던져줄 때가 있다는 얘기다. 『아주 철학적인 오후』라는 책도 나에게 그런 무게감으로 읽혀졌다.

 

  이 아기자기한 소설집은 6명의 독일작가들의 단편동화 13편을 묶어 놓은 동화집이다. '삶에 두 번 일어나는 일은 없고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는다'라는 강렬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동화집은 표지로 흑백의 모노톤을 사용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다양한 색상의 비쥬얼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는 내용의 무게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고도의 계산에서 나온 디자인일까? 흥미있게 의문을 던져보며 양장본의 첫 장을 넘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나무 이야기』, 『나무 이야기 2』, 『네 갈래 길』, 『새인지 몰랐던 새』, 『하루』, 『사랑은 선물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진리는 조각낼 수 없다』, 『악수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손』, 『고래의 노래』, 『중심에서 사는 사람』, 『꿈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 『관계』.. 이렇게 13가지의 동화 속으로 독자들을 침투시키고 있다. 어떤 것은 잘 읽히고 바로 머리속에서 정리되어 가슴으로 운반되는가 반면 어떤 것은 읽다가 다시 앞장을 넘겨가면서 읽는 등의 진도의 더딤을 경험키도 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두뇌를 지나 가슴으로 오기까지 수없이 내용을 되새김질하며 내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춰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사랑의 에너지는 유한한 듯하다. 아니 유한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막상 자기 자신만의 렌즈를 통해 사랑하고 싶은 것만 골라내서 사랑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상대방이라는 그 자체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린 사랑의 지도를 펼친 채 거기에 맞추는 작업이 비일비재하다. '인류는 사랑할 수 있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인류에게 우선되어야 할 가치일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무런 꿈과 도전 없이 인생을 무료하고 드라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미래는 꿈꾸고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의 폭과 거리를 합리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혜안 또한 중요하다. 꿈이 없이 사는 것도 문제지만 허황된 꿈과 몽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화살같이 날라가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 그 후에 머뭇거리면서 오는 미래에 대한 꿈과 도전을 갖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성공과 행복이라는 기다림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망각하고 지나갈 때가 많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1년마다 찾아오는 생일, 운동을 할 때 경험하는 러너스 하이의 희열, 마음 맞는 이와 함께 하는 소주 한잔의 시간 등등.. 소소한 일상가운데 지나치기 쉬운 소중한 인생의 조각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은 무언가 크고 특별하고 유별난 것만을 지향하는 경향에 익숙하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기 바로 전의 시간 앞에 직면했을 때를 그려보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소소한 일상가운데 감사와 행복을 인식하지 못했던 후회가 엄습할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것에서 감사할 줄 알고 소소한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이 필요하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은 유한하다. 과학이 빛의 속도로 발전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인류의 공간은 지구 안에 묶여 있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밖에 갈 수 없는 1차원의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 1차원의 세상을 포함하는 2차원의 세상이 있고, 2차원의 세상을 포함하는 3차원의 세상이 있듯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을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포함하는 세상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간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위시하여 수많은 과학자들은 우주가 최소한 11차원 이상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천착하고 있다. 머지 않아 이 또한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유한하고 지엽적인 것임을 자각하여 주마간산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겸손함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깨달음과 지혜의 일렁임이 머리속에서 진행된다. 삶과 죽음, 행복과 사랑, 기쁨과 슬픔, 욕망과 꿈, 지혜와 어리석음 등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그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동화는 「아주 철학적인 오후」의 제목의 의미를 넘어서 「매우 지혜로운 오후」로 내게 존재했다.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예리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관대함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제시하는 이 소중한 동화를 삶을 보다 충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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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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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당시 '그리스 로마 문명사'라는 3시간짜리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0년작 『스팔타커스』라는 영화를 강의시간에 시청하면서 스파르타쿠스의 삶과 그 시대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이다. 주연이자 기획자였던 커크 더글라스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켰는데 큐브릭은 로마 제국이 멸망할 수도 있었던 노예 반란 전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그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전쟁과 러브스토리가 절반씩 섞인 영웅담을 원했다. 수많은 마찰음과 가위질이라는 치욕을 겪으면서 1,200만불을 투입하고도 밋밋한 영화가 되었다. "난 이 영화를 가능한 사실적으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스팔타커스가 누구인지에 관해 신뢰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멍청한 시나리오에 반발했다. 만약 용납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필요하다면, 감독이란 그저 돈많이 받는 다른 기능공이나 제작자나 다를 바 없다. 내 생애에서 『스팔타커스』가 그 증거다."라고 말할 정도니 당시의 큐브릭 감독의 불편했던 심정을 알 만하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었다. 읽기 전에 책 표지와 제목에서 오는 강렬한 비쥬얼에 홀딱 반했고 로마 역사 사상 가장 위협적이고 큰 규모의 노예 반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그릴지가 관심이었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삼두정치가 진행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내정과 권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의 정치형태로 변모해가는 발판을 마련해 준 전초가 된 역사이기에 많은 기대감을 갖고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시대의 알렉상드로 뒤마'라고 불리며 90권이 넘는 저서를 쓴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한다는 막스 갈로와의 첫대면은 흥분 그 자체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기다리는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마치 당시의 로마제국이 수많은 노예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유린했던 것처럼 이 소설은 내 기대감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서사의 맥조차도 마음껏 유린하고 짓밟은 느낌이다. '내 이름은 가이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이다.'라고 외치는 크라수스의 부관 살리나토르의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자유를 갈구하는 트라키아인 스파르타쿠스,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 아폴로니아,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 그리스인 웅변술 교사 포시디오노스, 검투사 교관 쿠리우스 등의 중심인물들의 언어와 관점이 섞이면서 액자형구조 속으로 이야기를 침투시키고 있다. 하지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삼류 번역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사의 맥이 뒤범벅되어 스토리텔링의 형편 없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저자는 기원전 70년경에 발생한 이 노예반란사건을 독자들이 어떻게 인식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그저 고대 로마사 그 자체? 자신과 체제의 한계에 도전하는 한 남자의 영웅담? 로마제국의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변천과정을 전초하는 영웅들의 출현기? 자유로운 죽음을 위해 싸운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정의로운 전쟁기?.. 머리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아쉬움과 씁쓸함만이 일렁인다. 번역 또한 형편 없는 수준이다. 외국도서의 경우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작이 주는 느낌이 달라진다. 아무리 훌륭한 원작이라 할지라도 일관성 없고 깔끔하지 않은 문장으로 번역되면 작가가 제공하는 원초적인 맛이 희석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 소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스파르타쿠스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의 존재이다. 실존 인물인지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끊임없는 결정과 판단의 기로에 설 때마다 자신이 섬기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기준에서 조언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연인인 아폴로니아로 대변되는 디오니소스 신의 존재감과 자이르로 대변되는 유대의 유일신의 존재감이 교차되고 대조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은 "오,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시는 유일신이시여, 정의의 지배자시여, 고통의 십자가가 희망의 십자가가 되도록 하소서!"라고 외치는 자이르의 기도로 정리된다. 기독교의 출생과 박해와 번영이라는 역설적인 역사가 머지않아 로마제국을 뒤덮을 것이라는 작가의 예언적 메시지일까? 흥미있는 천착이 아닐 수 없다.
 

  형편 없는 번역과 어설프게 맞추려는 이야기 전개에 적지 않이 실망한 작품이다. 뒷표지에 이 책을 평가하는 문구가 매우 흥미롭다.

고대 로마사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쉽게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 쿠리에 프랑세

역사가로서의 정확성과 엄정함, 소설가로서의 재치와 입담이 어우러져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가 탄생한 곳인 고대 로마 사회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었다.   - 레코 드 루에스트

 

  위와 같은 평가를 한 이들에게 김훈의 『남한산성』이나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책여행 보내고 싶을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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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기술 -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의
하지현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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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지능지수IQ가 절대우선가치였던 시대가 지나가고 감성지수EQ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러다가 '의사소통지수CQ: Communication Quotient'가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물질만능주의의 팽배와 심각한 이기주의의 심화에 따른 비사회적 현상들이 빈번히 벌어짐에 따른 인류의 건조화가 지능과 감성 못지 않게 의사소통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이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대인관계, 대 사회관계의 중요성을 더욱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공존지수NQ: Network Quotient'의 중요성까지 강조되고 있는 세상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사회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의 근본적 경향은 계속해서 재확인될 수 밖에 없음을 인간 스스로 자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할까? 어떤 소통이 나 자신 뿐만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는 『소통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 다양한 소통의 방법과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통의 가장 큰 볼륨이 언어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을 언어습관에 대한 방법과 주의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더욱이 저자의 전공이 정신분석학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국내외의 연구와 실험의 사례를 소개하며 의사소통에 관한 다양한 기술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저자는 네 가지 챕터를 나누면서 총 18가지의 소통의 기술을 얘기하고 있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01. 백 마디 발보다 진심이 통하는 한마디가 필요한 이유

02. 말하는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03. 차이를 인정하면 소통이 쉬워진다

04. 선입견을 버리면 소통이 열린다

05. 때로는 지혜로운 거짓말로 소통하라

06. 자존심을 살려주면 관계가 술술 풀린다

07. 마음을 헤아리고 체면을 살려줘야 특별한 관계가 된다

08. 통할 수 있는 '코드'를 반드시 찾아라

09. 소통은 일반통행이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이다

10. 주파수를 맞추고 맞장구를 치며 공감대를 형성하라

11. See you again! 처음 만난 사람을 평생 만날 사람처럼 대하라

12. 주는 만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만족을 즐겨라

13. 첫 단추를 잘 끼워라

14.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조절해야 관계가 행복하다

15. 마음을 읽으면 관계가 보인다

16. 관심과 애정이 담긴 질문이 소통을 살린다

17. 현명한 화술로 대화에 날개를 달자

18. 솔직함은 누구라도 마음을 여게 하는 열쇠다

 

  상기 18가지 제목을 주제화한 뒤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 사건, 해외 저명한 석학들의 연구와 실험 사례를 통하여 이를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LET'S THINK ABOUT IT!'라는 박스를 통해 과거 일간지에 실린 소통과 관계된 기사를 부연하고 있으며 'CHECK IT!'이라는 자그만 박스에서는 독자의 소통지수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과 통하는 특별한 공감 코드'라는 두 번째 챕터를 통하여 한국인들의 성향에 맞는 소통방법과 주의점 등을 얘기해주고 있기도 하다. 개인계발서, 특히 의사소통과 관련된 도서는 수도 없지만 대부분 외국 저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어서 외국 문화와 사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성향을 간파하여 그에 적합한 소통의 기술을 설파한 점은 매우 실재적이고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나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그리 큰 도전도 얻지 못했음을 토로한다. 최근 자기계발서와의 다양한 만남이 희소성의 가치를 떨어뜨린 이유도 있지만 책 자체가 주는 시원함의 농도가 너무 얕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접한 자기계발서와 굳이 비교한다면, 『소통의 기술』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강렬함과 자신감 있는 논지에 있어 『이기는 습관』보다 못하고, 자기계발이라는 식상한 주제의 반복적 외침의 한계를 극복키 위한 접근방법의 신선함에서는 『프레임』만 못했으며, 심리학적인 다양한 임상실험 및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면에 있어서도 슈테판 클라인의 『행복의 공식』메 못미쳤다. 게다가 내용의 소재로 사용된 몇몇 이야기와 연구 실험사례, 위인들의 명언에 있어서도 이미 이전의 자기계발서에서 적지 않이 접했던 것이 많아 재탕,삼탕을 느끼는 기분도 적지 않았다. '누구와도 쉽게 통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감 코드'라는 흥미있는 부제를 저자의 사진과 함께 앞면에 배치하고 있지만 책의 내용은 그저 그런 평이한 수준의, 기존의 자기계발도서의 반복적 외침의 정리라고나 할까? 중고등학교 도덕교과서를 읽는 느낌이었다면 너무 가혹한 평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작금의 시대가 소통지수CQ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소통의 기술을 알고 터득하고 정리하여 올바른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제기와 집필의지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같은 얘기의 지루한 반복이라 할지라도 옳고 좋고 따뜻한 얘기의 반복이라면 인간의 망각적 뇌구조를 감안할 때 분명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책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관계에 있어 솔직해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야구에서 다양한 변화구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지 결국 영원한 승부수는 직구에 달려있는 것처럼 대화에서도 나만의 솔직한 직구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응당 맞는 얘기다. 체면치레로 하는 말, 관계 때문에 싫어도 좋은 척 하는 것, 이 사람 앞에서는 저런 척, 저 사람 앞에서는 이런 척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 다양한 변화구다. 하지만 변화구는 영원한 승부구가 되기 어렵다. 투수가 경력이 오래 되고 힘이 떨어질수록 직구보다 변화구에 의존하게 되고, 던질 줄 아는 변화구의 수가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회경험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대화에서도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변화구가 싱싱하던 어깨를 혹사시켜 빨리 망가뜨리듯이 변화구에 의존한 관계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이건 아닌데'하는 기분이 종종 들게 한다. 솔직한 직구가 주는 강하고 무거운 힘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교회 후배 녀석의 얘기를 하는 것으로 서평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매우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있다. 그 후배의 경우 말을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성격도 다소 내성적인 편이다. 자신감과 용기, 리더적인 기질에 있어서도 크게 부각이 되지 않는 녀석이다. '남자녀석이 왜 저럴까?'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몇 년 전 내가 갖지 못한 그 녀석만의 찬란한 보물을 확인한 후 그는 내게 작은 멘토가 되어 있다. 내가 받은 충격은 이런 것이었다. 당시 미국생활을 하다가 2년만에 돌아온 후배녀석은 제일 먼저 나를 찾았고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에 일어났던 집안의 좋지 않았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당시의 힘듦과 마음앓이를 고백하니 내 자신의 기분이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녀석의 반응에 있었다. 녀석은 나의 얘기를 듣는 동안에 아무런 답변과 위로를 하지 않았고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어떤 위로와 답변보다 강렬한 빛을 발산할 수 있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남자의 눈물을 나는 목도했던 것이다. 말은 내가 하고 있었지만 그 녀석은 철저하게 말하는 이의 마음이 되어 가슴으로 소통하는 경청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었다. 당시 녀석이 보여준 눈물과 함께 수준 높은 경청의 태도는 화자역할을 하기 좋아했던 내 자신에게 큰 깨달음과 지혜를 주었다. 그리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진솔하고 솔직함이 그 어떠한 자기관리보다 강할 수 있다는 깊은 혜안을 얻기도 했다. 최대한 자신의 가면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고결하고 찬란한 인간미의 극치일 것이다. 소통에 있어 가장 큰 기술과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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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 - 평범한 직딩의 밥보다 좋은 여행 이야기
조은정 지음 / 팜파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직장생활을 시작한지도 어언 4년여가 넘어가고 있다. 사회에 진출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의미한 대학생활을 보냈다는 생각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에 대한 후회인데 하나는 영어공부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이 없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보다 깊고 넓고 큰 것을 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은 20대 인생의 가장 큰 후회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데 절대 돈의 문제도 아니었고 시간의 문제도 아니었다. 오직 준비와 열정의 부족이었음을 토로한다. 이러한 나의 해외여행콤플렉스는 아마 결혼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신혼여행이 있으니 말이다. ㅋ

 

  그렇다면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가능할까? 직장을 다니면서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꿈만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그 시간과 용기는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나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직장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이가 있다. 여행기와 여행사진, 여행팁을 모아 놓은 사이트로 유명한 존정닷컴(www.zonejung.com)의 관리자 조은정씨인데 그녀가 여태까지의 여행기를 정리하여 책을 냈다. 『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이 그것이다. 잦은 해외여행을 다닌 것도 대단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과 휴가를 이용하여 짬짬이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녔다는 것은 더더욱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여행에 경도되었길래 그럴 수 있는지하는 호기심과 서두에서 언급한 개인적 콤플렉스를 간접적으로 풀어보기 위한 기대심을 갖고 구독하게 되었다.

 

  매우 흥미있고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가 인터넷 관련 업무 및 생활을 해서인지 편안한 필체와 풍성한 유머가 묻어나는 책이다. 무엇보다 여행의 절대고수답게 굉장한 전문성이 돋보인다. 여행경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 해외여행 시 반드시 챙겨야 할 품목, 여행배낭 싸는 방법, 각 종 할인과 이벤트 정보 등 그녀가 오랜 기간동안 여행하면서 체험하고 습득했던 따끈따끈한 정보들이 즐비하여 읽는 이에게 큰 앎의 기쁨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내용은 직딩(직장인)들을 위하여 주말을 이용해 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 방법과 코스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직장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못 갈 곳이 없다. 시간이 없다느니 돈이 없다느니하는 것인 핑계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떠나야 할 이유가 있고 떠나야 할 의지가 있으면 가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철저한 계획수립과 열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만 말이다.

 

  여행비용에서부터 목적에 맞는 여행코스와 그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굉장히 감질맛 나는 내용들이 많다. 직딩용 주말여행 코스부터 해서 일주일 휴가지, '먹자 관광' 코스, 가족 여행지, 세계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정보만 콕콕 찝어서 정리해 놓고 있다. 종종 등장하는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들은 이 책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다양한 여행사진들이 여행 당시의 장면 속으로 침투시키는 듯하다. 저자가 추천한 체코,헝가리의 아름다운 야경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그리스의 페타치즈의 고소한 맛은 기회가 되면 꼭 접해보고 싶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책을 보면서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이 되면 동일한 일상의 반복이 계속되는 무료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 다른 것, 큰 것, 깊이 있는 것,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신선한 만남이 갈급하다. 좌정관천이요, 정저지와인 나의 좁은 세상보기를 극복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이 책을 통하여 앎과 지혜를 누리게 되었으니 기쁘다. 저자의 개척정신과 열정에 도전을 얻었기에 코 앞으로 다가온 여름휴가계획이나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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