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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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 것, 첫사랑인 아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 아내에게 쓴 편지를 책으로 발간한 것, 그리고 둘이 함께 죽은 것에 대해 내가 처음 알게된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의 과거로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집에서 구독하는 C신문사의 주말섹션 'Books' 코너를 통하여 신간 리뷰로 만난 것이다. "첫 동침 후 60년... 죽을 때까지 우린 한몸이었소"라는 굵은 명조체의 인상적인 소개 문구는 신문지면의 한 부분에 내 눈이 응시되게끔 만들었다. 더욱이 젊은 연인의 춤추는 사진과 죽음까지 함께 한 실화라는 점이 나를 더욱 자극시켰고, 구독하지 않으면 안될 단계로 이끌었던 것이다. 

  두껍지 않은 책의 첫 장은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 케어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한다. 자신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오직 『배반자』에서만 아내를 소개했다고 고백하는 앙드레 고르는 그 작품에서 아내에 대한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고 후회한다. 당신에게로 온통 빨려드는 내 마음이 나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음을 『배반자』는 보여주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과오를 곱씹는다. 사랑이야기를 재구성해서 그 온전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함께 겪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는 헌사를 시작으로 아내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들려준다. 

  84세의 남편이 스무 해 넘게 불치병과 싸운 83세의 아내에게 보낸 연애 편지인 『D에게 보내는 편지』는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뜨겁고 강렬한 사랑의 심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돈도 없고 국적도 없는 유대인 앙드레 고르의 일상에 영국 여자 도린 케어는 혜성처럼 등장하여 한 남자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다. 고르는 도린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 함께 죽는 날까지를 회고하며, 자신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절대적이며 유일한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마치 이 우주에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르의 관찰자적 카메라는 사랑하는 아내 도린만을 향한 접사모드로 구속되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앙드레 고르는 정말 대단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다양한 면모를 상찬하는 고르의 편지에는 사랑에 대한 열정과 선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동시에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토로하는 고르의 고백은 지나치게 간절하고 지극히 솔직하기에 깊은 감동을 준다. 1974년 아내 도린이 근육 위축병에 걸리자 다니던 신문사를 퇴사하고 아내의 병시중을 들기 시작하는 고르는 스무 해가 넘는 기간동안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죽음에 임박해서는 아내가 없는 세상은 텅 빈 세상일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하며 자신의 존재이유가 상실되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2007년 9월, 6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둘의 사랑은 동반자살함으로써 고르 자신의 고백을 완성시킨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p. 90>
 

  한결같다는 것, 더군다나 오랜 시간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랑한다는 언어가 소음수준으로 중구난방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주변의 상황에 적지않은 부담을 느끼는 내게, 첫사랑으로 시작하여 죽음까지 함께한 고르와 도린의 러브 스토리는 웅숭깊게만 느껴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내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아마 고르는 자신의 우주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아내 도린의 존재감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요, 신의 불꽃을 확인한 남자였을 것이다.  

  마치 영화같은 그들의 러브 스토리에 굳이 빈정거릴 필요는 없다. 또한 동반자살로 종결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도 없다. 에로스의 농밀함이 점점 밋밋해져만 가는 작금의 시대에 서로를 위해 존재했고, 전적으로 사랑했던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 부럽기만 하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덞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p. 6>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인가? 이런 언어를 발산할 수 있는 남자는 물론, 이를 선사받은 여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과연 나는 앙드레 고르의 고백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감성과 열정을 갖고 있는 남자일까? 그처럼 자신의 우주를 전부 채울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나를 불태우고, 소멸시키며, 신의 불꽃을 발현시킬 수 있는 갈비뼈에 대한 목마름, 스물아홉의 나이를 넘어가는 한 젊은 남자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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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2011-09-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부자가 된 괴짜들
김유미 지음, 비즈니스앤TV 기획 / 21세기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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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괴짜의 정의를 알아보자. 네이버 사전 검색을 두들겨본 결과, 부자는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의미한다. 괴짜는 괴상한 짓을 잘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 『부자가 된 괴짜들』은 괴상한 짓을 통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도대체 얼마나 괴짜들일까, 그리고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백배 발동된 나머지 두껍지 않은 자기계발서의 첫 장을 여유있게 넘길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괴짜'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 13명의 특이한 직종의 인물이 소개된다. 그래피티, 설탕공예가, 허브사업가, 김치사업가, 홈웨딩사업가 등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프로들의 성공기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생각과 감각을 지닌 이들이 얼마만큼의 열정을 갖고 지금의 성공 자화상을 일궈냈는지에 대해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로 알려주고 있다. 

  사실 성공한 사람의 성공 실화를 다루거나, 자기 자신의 자전적 성공 에세이를 다룬 책을 접할 때에는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실적 생동감을 자주 목도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13명이라는 많은 인물을 다루다보니 개개인에 대한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관찰로 인해 깊이가 없고, 한없이 가벼운 접근에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괴짜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여 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리드미컬한 인생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심히 축약되고 압축된 나머지 마치 힘있는 소설의 밋밋한 독후감 버전을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은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블루오션의 시장영역이 많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맹렬한 흐름가운데 형성된 지나친 경쟁주의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보다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생활에 갈증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더욱이 평생직장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러한 풍토는 더욱더 탄력을 받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위해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있는 작금의 취업 현실은 모험과 도전보다는 안정을 취하려는 취업자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자기 자신의 탤런트와 감각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남들이 도전하지 않고 있는 시장에 진출하여 성공이란 열매를 얻어낸 책 속의 주인공들의 삶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하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매번 확인하는 확실한 진리가 하나 있다. 성공한 이들이 갖는 자질 중 가장 공통되고 명확한 것은 바로 <열정>이라는 것을. 책에서 소개되는 13명 괴짜들의 꿈을 향한 열정을 읽어 내려가면서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 할지라도, 경험이 조금 미흡하다 할지라도, 실패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할지라도 자신이 세운 비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성공의 추동이 됨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게 열정이 없었다면 한낱 양치기에 불과했을 것이라 말했다는 징기스칸의 고백은 열정이 성공을 이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다시 한번 곱씹게한다.  

  괴짜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천적인 기질은 물론이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용기와 강건한 자신감이 없이는 괴상한 짓을 하며 살아가기 힘든 것은 인간사 당연한 일일게다. 괴짜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편견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더욱이 그 괴짜라는 것이 볼품없는 괴짜가 아닌,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지향하며 부와 명성을 일궈낸 성공한 괴짜라면 정말 멋있지 않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보편적 타인의 삶을 거부한 채, 자기 자신의 길을 위해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이들이 노력한 만큼의 인과성으로 보답받기를 심히 지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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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청년 2007-12-0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21세기북스의 책을 사랑(?)해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이번달에 21세기북스에서 신간이 많이 나오는데, 오셔서 관심있게 봐주셨으면 하네요...^^
매일매일 한분께 책을 선물해드리고 있으며, 수시로 서평단을 모집하기도 합니다.
카페로 놀러오셔서, 좋은 책과 사람들을 만나시길 바래요^^
카페 주소 : cafe.naver.com/21cbook
 
당신에게 좋은일이 나에게도 좋은일입니다 - 상생과 공존의 지혜를 밝혀주는 15가지 이야기
안철수, 최재천, 이윤기, 강만길 외 12인 지음 / 고즈윈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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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공존의 지혜를 밝혀주는 15가지 이야기'라는 표지 문구를 달고 있는 『당신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는 국내의 저명한 15명의 지식인들의 상생과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생명과학자, 숲해설가, 기업가, 환경론자, 문명 탐험가, 역사가, 건축가, 소설가 등에 이르기까지 15명의 집필자들은 다양한 방면과 각도에서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지식인들 각자의 가치관과 문체로 설파하는 다양성 존중의 외침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차 있는 한국인의 습속에 물들어 있는 내 자신을 냉철하게 반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꽤 반가운 만남이었다. 

  단일민족국가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동안 동일한 민족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것에 익숙지 않은 습속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철저한 입시 위주의 공교육은 획일적이고 주입적인 교육을 양산했다. 그렇기 때문에 '왜(Why)'라고 질문하고 의심하는 학습력은 길러지지 않고, 그에 따른 창의력이나 토론력은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을 뽐내고 있는 형편이다. 더나아가 이러한 배경은 '다름(diffrene)'과 '틀림(wrong)'의 정의에 대한 혼선을 빚게 만들었다. 내 주장과 다른 남의 주장은 수용하기 힘든 사회 구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국회 의사 결정의 현주소는 물론, 사회적 담론에 대한 일반인의 토론 수준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비관용 문화를 그대로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한국인의 속도 문화는 그 어떤 나라보다 경쟁주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960년부터 40년간 경제의 구매력 관점으로 14배 성장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속도는 영국의 5배, 미국의 4배에 달할 정도로 급속도였다. 서구 선진국들이 백 여 년이 넘게 걸린 일을 40년 만에 해치우느라 선전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았는데, 극심한 이기주의와 경쟁주의의 만연이 그것이다. 불과 4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상승하기까지의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었던 가속 엔진은 어느덧 힘을 다했는지 GDP 2만 불의 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KTX의 속도로 달렸던 속도계는 왜 2만 불 앞에서 걷기 수준으로 전락한 것일까? 

  길을 지나가는 이에게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국가는 어디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열에 아홉의 답변은 동일할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존재가 우리들 머리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국한지 230년에 불과한 초짜 나라 미국이 그 짧은 기간동안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전반에 걸쳐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집약적인 의견은 바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에 기인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서로 다른 사상, 체제, 이념, 신앙, 출생지, 성징, 피부색 등에 대해 배타하지 않고 그것을 존중하며 공존하고 상생하는 문화, 그것이 유일무이한 초강대국 미국이 존재하는 추동력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0여 년 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초강대국이었던 로마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유니버셜 세계였다. 속주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또 그 주민들을 로마 제국의 시민으로 인정해 주는 체제는 로마 제국이 주도하는 평화 체제, 즉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건설하는 동기가 되었다. 사실 이러한 관찰은 한국사에서도 여실히 목도된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강력한 힘을 가졌던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였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였고, 그 다양성의 존중과 상생이 초강대국 고구려를 지탱한 힘이 되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시선의 렌즈를 대한민국으로 돌려보자. 여와 야가 끊임없이 반목하며, 국회는 대통령을 존중치 않고, 정부와 언론이 전쟁을 일쌈으며, 노와 사가 계속해서 대립하는 대한민국의 관용 문화의 수준을 재설계하지 않고서는 GDP 4만불은커녕 3만불조차도 머나먼 당신이 되리라 단언한다. 이제 국가적 에너지가 한 개인의 역량이나 개인과 개인의 경쟁주의를 통해 효율이 발휘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리더십보다는 멤버십이, 독점보다는 나눔이, 집중보다는 네트워킹이 중시되는 '관계'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21C 대한민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임을 갈파하고자 한다. 

  책의 제목을 생각한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정말 멋진 문장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와 같은 속담이 없어질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한층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미래와 희망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제목의 의미를 곱씹는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콩 세알의 삶 

생명농사 지으시는 농부 김영원 님은
콩을 심을 때
한 알은 하늘의 새를 위해
또 한 알은 땅속의 벌레들을 위해
나머지 한 알을 사람이 먹기 위해
심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만주 들판에는 삼전(三田)이 전해오는데
일제 때 쫓겨 들어간 우리 조상님들이
눈보다 속에서 맨손으로 일궈낸 논을 3등분해
하나는 독립운동 하는 데 바치는 군전(軍田)으로
또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세우는 데 학전(學田)으로
나머지 하나는 굶주림을 이겨내는 생전(生田)으로
단호히 살아내신 터전이 바로 삼전인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오늘
내가 번 돈
나의 시간
나의 관심
나의 능력
어디에 나눠 쓰며 살고 있는가요

지금 나는 콩 세알의 삶인가요
삼전의 뜨거움, 삼전의 푸르림,
셋 나눔의 희망을 살고 있는가요. 

<p. 100, 박노해 《나눔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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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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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제(Imperor)'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두가지 면이 공존한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전자가 강하다는 것,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 신성한 것 등으로 정리된다면, 후자는 폭정, 잔인한 것, 백성들의 고통 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재위하는 황제가 성군일 경우 백성들은 행복하고 국가는 태평성대를 누리지만, 폭군일 경우에는 온갖 피바람이 일어나면서 백성들의 찢어지는 고통이 발생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B.C. 200년 즈음에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후 약 2,000년 동안 중국사는 황제의 역사였다. 하나의 왕조가 탄생될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백성들의 고통과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이며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암투속에서 대략 200여명의 황제들이 2,0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다. 중화민족사 연구회 회장인 사식(史式)은 『황제들의 중국사』를 통해 진시황제 이래 2,000년의 중국역사를 황제라는 절대 권력자의 존재를 통해 관통하고 있다.  

  저자 사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통념과는 배치된 의견을 제시한다. 역사는 오로지 사실 안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성공과 실패로만 역사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결과보다는 동기 차원에서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당 맞는 얘기다. 우리가 학습하는 과거의 역사 자체가 승자의 역사일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하기에 과정론적으로 역사와 인물을 천착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은 심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지나친 과정 중심의 역사 해석은 역사의 긴 줄기라는 측면에서 역사의 인과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어떤 과정으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발생한다는 역사의 인과성은 역사 자체를 넓고 깊게 보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역사적 통념을 전복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그 논거가 지엽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해서 읽는 내내 적잖은 부담이 발산된다.  

  예컨데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하지 말라는 강렬한 문장을 시작으로 유방과 항우를 비교한 저자의 주장과 논거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항우는 진실된 사람이요, 훌륭한 장군이요, 양심이 있는 영웅이다. 하지만 유방은 출생이 미비한 천민이요, 전쟁을 모르는 자요, 은혜를 모르는 소인배다. 그런데 어떻게 유방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저자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용인술'에 기인한다. 저자는 항우의 단점은 사람을 잘 쓰지 못한 것이었고, 유방의 장점은 사람을 잘 쓴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유방의 용인술은 항우와 비교하여 유방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비꼬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얻고 다루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사에 있어 성공과 실패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식할 때, 유방의 승리는 당연한 인과성의 순리라 할 수 있다. 항우라는 개인이 가진 장점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 흠모를 표현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으나, 그 주관적 잣대를 논거로 승자와 패자의 역사적 인과성을 무시하며 일반적 통념을 전복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진시황제가 평생 남에게 통제당하며 살았던 황제라고 주장하며 이런저런 논거를 즐비하게 늘어 놓는다. 또한 뛰어난 전략가였던 조조에 대한 주관적 비방도 강렬하게 내뿜는다. 더욱이 '정관의 치'와 '개원의 치'로 대변되는 중국사 최고의 태평성대를 일군 당태종 이세민과 당현종 이융기의 존재감마저 건드리고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과 해석은 좋은 것이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객관성을 잃을 때에는 접하는 이에게 설득력을 얻기 힘든 법이다.  

  황제의 자질을 평가하는 저자의 일관된 잣대는 <덕성>과 <도덕성>으로 함축된다. 황제는 정직하고, 양심이 있어야 하며,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진시황부터 옹정제까지의 15명의 중국황제들을 다루면서 오직 덕과 도덕의 기준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물론 덕성과 도덕성을 갖춘 군주가 좋은 군주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의 어느 나라의 역사보다 개국과 망국이 많았고, 그에 따른 왕조 교체가 빈번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 황제사 2,000년의 특질을 깊이 사유할 필요가 있다. 죽고 죽일 수 밖에 없는 왕조 교체의 반복된 혼란상, 그리고 진시황 이래 계속되어진 절대적인 권력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봉건주의 사회라는 점을 곱씹는다면 덕과 도덕의 잣대로만 한 영웅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저자가 언급한 <도덕성>의 잣대를 작금의 시대로 들이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위정자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정치인의 자격요건이 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한 자가 어찌 국민과의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겠는가? 실수한 대통령은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말 하는 대통령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미국 유권자들의 정치 철학은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대통령을 갖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존재감을 정갈하게 대변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 중국의 군주제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하다. 서양과는 달리 별다른 견제장치가 없었던 중국식 황제 제도는 결과적으로 전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력하게 피력한다. 사실 그렇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속성이 있기에 세계사에서 가장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가졌던 중국 황제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불행의 2,000년 역사를 만든 동기가 되었다. 극소수의 성군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혼군이나 폭군이었던 중국 역사 2,000년은 인간이 힘과 권력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교훈이 된다. 

  저자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지나치게 주관적인 영웅 해석이 되어버린 책이지만, 황제라는 절대 권력자를 통해 2,000년의 중국 역사를 관통한 점, 그리고 몇몇 중국 황제들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일반적 통념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점에 대한 신선한 시도와 용기는 반갑기만 하다. 불완전한 인간의 특질, 일인 절대 권력 체제의 허구, 중국식 황제 제도에 대한 모순 등은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에게 여러가지 각도에서 다양한 사유를 하게 한 주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의 중국식 절대 봉건사회를 이름만 들어도 번쩍하는 몇몇 황제들의 존재감을 통해 관통하고 싶다면 사식의 『황제들의 중국사』 는 적잖은 흥미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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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부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나라 시에라리온은 내게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하여 그 나라가 겪은 참상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 약 5백만 명의 작은 나라이자, 평균 수명이 25~35세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나라이며, 인구 대비 신체 장애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그리고 인구 대비 난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정보가 머리속 기억 저장소에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에라리온이 그런 프로파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동기에 있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10년의 내전에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과 인권 말살이 이 작디 작은 국가에서 십 여 년이 넘도록 일어난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그때...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책 표지>
 

  열두 살의 나이. 과연 열두 살의 내 초상은 어떠했을까? 영원히 정지해 있는 내 삶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 본다. 열두 살이면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다. 동네 개천에서 가재와 개구리를 잡고, 공을 차고 놀며, 팽이 돌리기와 딱치치기에 몰두했던 열두 살의 초상이 떠오른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이스마엘 베아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인간이라는 동일한 종족으로 동시대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외면하듯 나의 열두 살과 그의 열두 살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상대적인 차이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사는 것에 대한 절대적 기준의 차이이자,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한 어린 소년의 처절한 아픔이요, 상처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군과 반군의 수 년에 걸친 전쟁을 통하여 시에라리온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옥이 되었다. 정치적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의 머리를 베고, 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전부 불태우고, 아들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강간하도록 강요하고, 시끄럽게 운다고 갓난아기들을 반 토막을 내고,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라 아기를 끄집어내 죽이는 등 인간으로서, 아니 짐승이라도 할 수 없을 만한 짓들이 일어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른들의 엽기적이고 광기 어린 행태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두려움의 데드 수치를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황폐한 영혼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소년병>이라는 것이 조직되어 아이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살육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에라리온은 지옥 중에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처참하다.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이스마엘과 그 친구들의 기나긴 여정은 뜻하지 않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피폐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총과 칼로 무장한 소년병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부모와 이웃을 죽인 원수들 밖에 없다. 가는 곳마다 총을 난사하고 칼을 휘두르는 어린 아이들의 생생한 장면을 읽어 내려가면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일렁거리며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죄라면 시에라리온에 태어난 것. 고작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이길 포기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몸 속에서 들끓는 전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극히 어린 나이에 못 볼 것을 보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야만 했던 이스마엘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하여 아픔과 상처, 회복과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스마엘은 AK-47을 들고 사람 죽이는 일이 물 마시는 일보다 쉬운 것이라 외치며 환호한다. 더 나아가 지치고 상처받은 심신을 위로받고자 코카인과 마리화나 등의 마약을 친구로 벗삼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옥같은 곳에서 구원받고, 치유받으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이스마엘을 아껴주고 보듬어준 간호사 에스더를 통하여 이스마엘은 <사랑>이라는 인류 최대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고, 점점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스마엘에 대해 에스더가 보여준 관심과 사랑은 이스마엘이 안정감을 누리고 회복할 수 있는 추동이 되면서 따뜻하고 위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잠시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생각의 시선을 돌린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단 3년 사이에 400만 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잔인한 전쟁을 겪은 나라. 이 전쟁으로 제조업 시설의 절반과 철도의 75% 이상이 파괴된 폐허의 나라. 1961년 연간 1인당 소득이 82달러로, 당시 가나의 1인당 소득인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 하지만 그 이후 40여 년의 시간차를 넘어 GDP 2만불,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그 어떤 칼이나 총으로 위협받지 않고 두 발 뻗고 잠 잘 수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행복지수를 부여했던가? 열두 살의 어린 소년 이스마엘이 겪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말살을 목도하며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는 내 자신을 동시에 목도한다. 그리고 새삼 감사를 사유(思惟)한다. 

  비단 시에라리온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곳은 적지 않다. 정치적인 이유로, 또는 가난과 기근으로, 또는 질병과 무지의 이유 등등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좁게는 우리 주변의 질병과 가난과 장애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 넓게는 시에라리온을 위시하여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외민족들까지 제법 인간답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을 돌아보고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음은 자명하다.  

  <인권>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권은 그 어떤 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것이다. 우리는 신으로부터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라는 의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인간이 함께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평화를 이루고 지향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평화, 그리고 단지 우리 시대만이 아닌 영원한 평화를 말이다. 우리가 이 작은 행성에 공존하고 있는 이상, 같은 공기를 마시며 동일하게 2세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인간>들이란 사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바로 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생각하자. 이 권리는 절대 명제다.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인간도 이 명제의 카테고리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된다. 이는 개인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치이자, 동시에 신이 인류에게 질문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직 인간만이 이런 아름다운 지구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과 특권을 선사받은 유일한 종족이기 때문에 이 절대 명제를 완성키 위한 생명수 또한 인간 자신에게 있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나에게 하늘이 자기를 쳐다보고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는 말을 걸어준다고 하셨다. "언제나 하늘에 모든 것에 대한 답과 설명이 있단다.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혼란이든, 뭐에 대해서든 말이다." 그날 밤 하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p. 244>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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